너희 안에 이 마음을
2002-01-11 01:25:58






빌립보서 2:5-1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소원에 따라 결정됩니다. 무슨 소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인격이 형성이 됩니다.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 소원을 가지고 살고 저속한 사람은 저속한 소원으로 일생을 삽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마음속에 저마다 다 소원이 있는데 그 소원은 복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복을 받아야 되느냐? 그리스도의 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복, 그리스도가 받은 복을 내가 받을 때 바로 이 복이 그리스도인다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복받은 분으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받으신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복을 많이 받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오 성자 예수여! 그 복을 내게 주소서. 오 성자 예수여! 그 은혜를 내게 주소서. 주께서 받으신 복을 내게 주소서.' 이 소원을 갖는 것이 복이고 그리스도인다운 소원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복이 무슨 복입니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입니다. 그 복을 인격적 복이라고 말합니다.
지상에는 두 가지 복이 있습니다. 인격적인 복과 소유의 복이 있습니다. 소유의 복은 물질이나, 명예, 재산, 학위 등을 많이 갖는 복인데 이런 복받은 사람을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인격의 복은 삶으로 얻는 복입니다. 마음으로 얻는 복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갈 때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소유의 복을 받으면 남들이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인격의 복을 받으면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 역사 속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받는 복을 받은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인격적인 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인격에 대한 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이 끝날 때 소유는 다 떠납니다. 재산도 떠나고, 명예도 떠나고, 물질도 떠나는데 인격적으로 받은 복만 하늘나라까지 이어집니다.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소유의 복이 없었습니다. 그는 물질을 가진 것도 아니요, 집을 가진 것도 아니요, 명예를 가진 것도 아니고 아무런 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격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이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역사속에 길이 살아서 그 복을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이시면서 '너희도 그 복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와서 소유의 복을 받지는 않습니다. 소유는 세상에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는 인격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복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복은 마음에 담아 있습니다. 인격의 복은 마음에 담습니다. 세상의 복은 우리가 손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의 복은 마음에 담습니다.
성자는 성자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요, 악인은 악인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요, 악마가 악마인 것은 악마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이 되신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신앙생활이요, 최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론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놓은 헌장이 빌립보서 2장 5-11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당시에 빌립보 교인들이 서로 싸우고,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갈등이 있을 때 "너희가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하나 되기를 원하느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겸손과, 섬김과, 희생입니다.

먼저,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자기를 낮추시고' 이것이 겸손입니다. '종의 형체를 가져' 이것은 섬김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이것은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나실 때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사실 때는 겸손에 바탕을 두고 섬김으로 사셨습니다. 마지막 죽을 때는 십자가에 달려서 만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겸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예수님의 생애는 겸손의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실 때 목수의 아들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마 13:55).
예수니은 머리둘 곳이 없는 가난한 일생이셨습니다(눅 9:58)
예수님은 천대받는 나사렛 출신이었습니다(요 1:46).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습니다(눅 7:34).
예수님은 학력이 없었습니다(요 7:15).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요 5:30).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신다고 했습니다(요 5:30).
예수님은 겸손하게 나셨고 겸손하게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내 마음에 품는다면 이 세상을 사는데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계곡이 깊어야 물이 많이 고입니다. 온갖 산속의 보화는 계곡 깊은 곳에 있습니다. 빈그릇이라야 물이 담깁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하늘의 보화가 쌓입니다.
예수님 마음을 담아 일생을 살아간 성프란체스코가 어느날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어습니다. 그때 제자가 영안이 열려가지고 하늘 보좌를 보는데 보좌가 비어 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천사님, 저 자리는 왜 비어 있습니까?" "내 사랑하는 프란체스코가 장차 앉을 자리란다. 그 자리는 교만한 천사가 쫓김을 받은 자리이니 겸손한 성프란체스코가 앉을 자리로 예비해놓았느니라"
이 놀라운 광경을 본 제자가 성 프란체스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말씀은 온당치 못합니다. 선생님 같으신 분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만약 우리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이 세상 악한 자에게 주었다면 나보다 훨씬 더 선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은혜를 많이 받고도 보답하지 못한 죄인이다." 그때 제자는 '하늘에서 보여준 환상은 참으로 옳은 일이구나!'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감사하며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겸손한 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감사는 겸손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은혜입니다.

둘째, 섬기는 종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이 사랑이셨기에 남을 인정하고 그리고 섬기는 종을 다른 사람을 받들어 주셨습니다.
교만은 섬김을 받으려하고 겸손은 섬기려 합니다. 겸손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즐거움으로 종의 멍에를 맵니다.
주님은 섬김으로 사셨습니다. 섬김은 남을 위해주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가는 곳마다 섬깁니다. '저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도와줄까'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어느 목사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가 엉엉 울면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날 반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그날 밤 학교에서 반장을 하고 있는 형들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반장에 출마한다고 해서 다 뽑아 주는 게 아니야. 반장이 되려면 평소 행동거지를 똑바로 해야해. 이제부터 친구들에게 열심히 봉사해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러면 언젠가는 꼭 반장이 될 수 있을 거야."
이 아이는 와신상담 끝에 이듬해에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반장이 된 후 한 사나흘을 뽑내고 다니더니 이내 시들해집니다. 그 아이의 목표는 오로지 반장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아이가 3학년이 되어서 마침내 반장이 되었습니다. 대체 몇 명이 출마했냐고 물었더니 무려 16명이 출마를 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떠한 공약을 가지고 어떠한 연설을 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반장을 뽑아 주시면 저는 여러분을 위한 걸레가 되겠습니다!" 그랬더니 몰표가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아이는 걸레라는 말을 깊이 생각하며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표를 좀 얻을까 궁리하던 끝에 나온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엔 놀라운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반장이 되어 친구들에게 걸레 역할을 하겠다는 그 아이의 다짐엔 진정한 섬김의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걸레라는 한 마디에 감동을 받은 반 친구들이 그에게 표를 던진 것입니다.
걸레는 더러운 것을 씻는 것입니다. 남의 더러운 허물을 씻어주고,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고, 이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닦아주는 것이 걸레의 사명인데 예수님께서 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이 세상의 모든 더러운 인간의 마음을 닦아주고, 눈물을 씻어주고, 오염된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섬김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2천년 교회사에서 존경받는 분이 누구입니까? 다 섬기는 분들이 존경받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남보다 많이 가진 자요, 위대한 사람들은 자기를 많이 버린 사람들입니다. 소유를 많이 가진 자가 성공한 자요, 위대한 자는 인격을 아름답게 만든 자인데 인격의 아름다움이 뭡니까? 겸손, 섬김, 자기를 버린 것입니다.
셋째,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버립니다. 예수님의 복이 어디 있었습니까?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복을 받기 원한다면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의 씨앗이 싹을 내기 위해서 껍질을 벗습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자기 꽃잎을 떨굽니다. 열매는 씨앗이 되기 위해 스스로 썩습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비단으로 된 자기 무덤을 뒤에 남깁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자기를 비우고 희생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교회 100년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여종이 있습니다. 그 여종이 백선행 집사입니다. 그는 16세에 자식도 하나 없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먹고, 안쓰고, 삯바느질하여 번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방직을 하여 200냥을 벌었습니다. 200냥을 벌어놓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시아버지, 남편 좋은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써서 잘 모실 수 있는 선산을 사야지' 하고는 모은 돈 200냥으로 선산을 구입하려고 먼 친척뻘 되는 사람에게 산을 사달라고 했더니 대동강변에 있는 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산 문서를 받아 쥔 백과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산 구경을 가보니 이것은 산이 아니라 나무하나 살 수 없는 바위산이었습니다. 너무나 크게 실망하였으나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려니 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산을 샀더라면 그가 망할 것인데 이 손해를 나에게 돌리시니 감사합니다."
백선행 집사는 예수님 마음으로 이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로 백과부는 망했다는 소문이 평양에 자자했습니다. 그 후에 일본 사람들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계획하고 시멘트 공장을 세우려고 석회암 지질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에 있는 석회암산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주인을 찾으니 백선행 집사 땅이었습니다. 기업주 오노타는 소개인을 넣어 300냥에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선행 집사는 팔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거절하므로 더 받으려는 줄 알고 나중에는 일백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자 나중에는 오천냥을 준다고 했는데 또 거절했습니다. "이 산은 절대로 팔 수 없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 했습니다. 그들은 백과부가 석회암이라는 것을 알고 베짱을 부리는 줄 알고 산값의 백배인 2만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또 거절했습니다. 드디어 일본 사람은 백집사가 목사님 말씀은 잘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도지사를 동원하여 백과부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설득하도록 했습니다. 목사님은 심방을 하여 산을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백선행 집사는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백냥에 이 산을 사가지고 사람들이 나더러 망했다고 하는데 이 산을 이만냥에 사간다면 그 사람은 망할게 뻔한데 그 사람이 망하는 것을 어떻게 봅니까 믿는 내 양심으로는 나 혼자 망하고 말지 다른 사람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산이 석회암 산임을 알고 이만냥에 산을 팔았습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 회관 건물을 짓고, 평양신학교 재단 설립에 예산을 바쳤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회장을 치뤘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한 집사를 위해서 사회장을 치룬 예는 없었습니다.
예수님 마음을 품고 착한 마음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자기를 비우고 선하게 살았기에 후대에 그 이름을 선행이라 지어 불렀습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자기를 낮추는 겸손, 섬김, 순종, 희생의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별세의 마음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복이 무슨 복입니까? 예수님 인격이 내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의 인격을 담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 귀히 여기는 복입니다. 회사에 가서도 귀히 여김을 받는 존재가 되십시오. 귀중히 여김을 받는 자녀가 되십시오. 귀중히 여김을 받는 남편과 아내가 되십시오. 섬기는 자, 겸손한 자,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자를 귀중하게 여깁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최고의 복이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는 복입니다. 그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복은 자기를 비운 자에게 줍니다. 자기를 비웠다는 말은 자기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죽였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자기를 비운만큼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서 그 인격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이기적인 것을 다 비워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담으면 겸손해집니다. 섬깁니다. 그리고 희생적으로 자기를 부정합니다. 이때 그 인격은 존경받고 귀히 여김받는 인격이 될 것이고 그 사람이 바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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