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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보대로 천천히
2002-01-10 23:21:10


창33;12-20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큰 아들 에서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정에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권을 넘기려고 하다가 야곱과 리브가의 합작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이에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이려 하였습니다.사냥꾼인 에서는 짐승을 무참히 죽이던 잔인함이 동생 야곱을 죽이려는 잔인함으로 변하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이렇게 하다가는 야곱을 죽일 것 같아서 자기 친정 하란으로 야곱을 몰래 보냈습니다. 잠시만 피해 있으면 에서의 화가 누그러들고 그러면 야곱이 돌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 야곱을 다시 보지 못 하고 죽어 막벨라 굴에 장례 지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금방 돌아온다는 것이 20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아내 4명에 11남 1녀를 두게되었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도망하였던 그는 거부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형 에서는 20년이 지났는데도 그 화를 풀지 못 하고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잡으러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오직 살 길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믿고 밤새 얍복강 나루터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씨름하다가 환도 뼈가 부러지도록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야곱이 눈을 뜨고 보니 앞에 20년 만에 만나는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앞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형 앞에 7번 절을 하였습니다. 아내들도 자식들도 모두 에서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말했습니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창33;10-11)

에서는 너무나 좋아하면서 야곱에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라고 앞장 섰습니다. 20년만에 형제가 화해하는 정말 아름다운 순간 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어머니 리브가가 보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이렇게 앞장 서면서 가자고 하는 에서에게 야곱이 한 말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13-14)
그래서 야곱은 형을 먼저 보내고 네 아내의 행보대로, 어린 아들들의 행보대로, 그리고 짐승들의 행보대로 천천히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행보대로 천천히 간 야곱은 에서보다 나중에 더 큰 인물이 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생 길은 행보대로 천천히 가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무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란부터 가나안까지 수 100 km를 걸어 왔습니다.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몇 달 걸린 여행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에서를 따라가다가는 지쳐 쓰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말했습니다.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 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13-14)
무엇이든지 과(過)란 말이 들어가면 안 좋습니다. 과식, 과로, 과음, 과시, 과신, 과실, 과언,과장, 과취 이런 것들은 모두 무리한 것들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이런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멀러 떠나게 되었을 때 같이 거느리고 있는 종들에게 똑같이 자본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5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2 달란트를 그리고 다른 종에게는 1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자기 능력에 맞게 무리하지 않게 일을 맡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5달란트를 주어서 5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주어서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상급은 같았습니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일군들에게 일을 맡기실 때에는 결코 무리하게 맡기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100세 이상 사는 사람은 1,284명입니다. 그 중 가장 장수마을은 첫번째 장수 마을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 임전 마을인데 69명중 55명이 80세가 넘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60세는 아이들입니다. 최고령자는 서울 쌍문동에 살고 있는 최 남이 할머니로서 114세입니다. 남자로서는 서울 효창동 손 영만 할아버지로 112세입니다.
어느 기자가 장수마을을 취재하고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조사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달랐습니다.
1.식수가 오염되지 않고 좋았습니다.
2.유기질이 많은 토양에서 자란 식물성 음식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3.밥보다 잡곡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4.자연 생수를 마시고 있었고, 산나물이나 밭 나물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5.부지런히 일하면서 적당한 휴식을 취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6.낙천적으로 살면서 웬만한 일은 <그까짓 것>라고 넘길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야곱이 행보대로 천천히 가겠다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무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2.나보나 나은 남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야곱에 형 에서에게 <행보대로 천천히> 가겠다는 말은 잘 하는 사람따라 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에서따라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서는 자기 땅입니다. 건강합니다. 보통 걸음으로 가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야곱의 식구들과 야곱의 짐승들은 에서를 따라 간다는 것이 무리입니다. 에서를 따라 살면 안 됩니다.자기 형편에 맞아야 합니다.

어느 한 까마귀는 자기 몸이 까만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얀 칠을 하고 까치 속에 들어가서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왔습니다. 하얗게 칠한 것이 빗물에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까마귀도 아니고 까치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까마귀에게 갔더니 까마귀가 아니라고 쪼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까치에게 갔더니 까치들도 우리와 다르다고 쪼아 버렸습니다. 이리 저리 따돌림 당하다가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따라 가지 않고 <행보대로 천천히> 자기가 자기를 알아서 자기 분수대로 걸었습니다.

얼굴이 사람마다 다르고 손금이 사람마다 틀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사명을 다르게 주셨고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여 보십시오. 무엇을 하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지를 찾아 보십시오. 그 일을 하여야 합니다. 남따라 살면 안 됩니다.

미국의 어느 부흥사가 하나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고 싶으냐? 너는 아들을 내게 잡아 바칠 수 있니?"
"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아브라함처럼 될 수가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주셔서 미국의 모세로 만들어 주옵소서!"
"모세처럼 되고 싶으냐? 그러면 모세처럼 사람을 죽여 모래속에 파묻을 수 있냐?"
"나는 살인을 할 수 없습니다""그러면 너는 모세처럼 될 수가 없단다"
"하나님! 그러면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엘리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엘리야처럼 되고 싶어 하는구나.그러면 너는 많은 이방인을 죽일 용기가 있느냐?"
"나는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엘리야처럼 될 수가 없단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하나 하나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모두 부정이었습니다. 부흥사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나는 누구처럼 되라고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너처럼 되거라"
이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나 이전 나는 없었습니다. 나 이후에도 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행보대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3.주변도 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행보대로 천천히 걸었다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도 보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 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13-14)

자식들은 유약하였습니다. 당시 맏아들 루우벤이 겨우 13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 요셉이 6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12명의 자녀였습니다. 그야말로 연년생이었습니다. 정말 고아원이 이동하는 것 같은 웃기는 행렬이었습니다. 양떼와 소떼가 새끼를 가졌습니다. 아내 4명은 연약한 여자의 몸입니다. 하루만 에서의 행보대로 가면 지쳐서 죽을 것이 뻔했습니다.이미 수 개월을 걸어 온 지친 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행보가 아니라 자식과 짐승의 행보대로 걷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보대로 천천히> 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게 주변을 맞추는 삶이 아니라 주변에 나를 맞추는 삶입니다. 이것에 행보대로 걷는 삶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 행보대로 걸은 것이 아니라 자식들 행보대로, 짐승들 행보대로,아내들의 행보대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보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예수님은 우리의 체질을 잘 알고 우리 형편에 맞추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서 임중 목사님이 우리 교회 오셔서 부흥회 인도하실 때 하신 말씀 중에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찬송가 부르기 경연대회가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 가정이 나와서 부르는 데 가사가 틀렸습니다. 교인들은 모두가 까르르 웃었습니다. 집사님은 무한하여 얼굴이 갑자가 홍당무가 되어 자리로 들어 와 앉았습니다. 다음 차례가 목사님 가정 차례였습니다. 목사님도 결정적인 곳에서 가사를 틀려 불렀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게 틀렸기에 누구나가 다 알 정도였습니다. 온 교인들이 까르를 웃었습니다.
찬송가 부르기 경연대회도 마치고 세월이 흘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목사님 유품을 정리하다가 목사님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X월 X일
찬송가 부르기 경연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 가정이 찬송을 부르다가 틀렸더니 온 교인들이 까르르 웃었다. 무한하여 얼굴이 빨개져서 자리에 앉았다. 그 다음은 우리 가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틀려 주었다. 교인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집사님을 바라 보았다.
'목사님도 틀릴 수 있구나'라는 안도의 웃음을 얼굴에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한 가정을 기쁘게 하였다"
교인의 수준으로 내려와 사는 삶-이것이 주변의 행보대로 걷는 삶입니다.

4.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행보대로 천천히> 걸었다는 의미는 서두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아야 합니다. 야곱의 목표는 벧엘입니다. 시간적인 제약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행보대로 천천히 벧엘까지만 가면 됩니다.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다. 그곳까지 가면 됩니다. 시간을 스스로 정해놓고 쫓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지난 주간 느낀 것이 있습니다. 결실의 가을을 맞아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벼를 베고 과일을 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애리 태풍이 불어 왔습니다.61명이 죽었습니다. 우리나라 논과 과수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9.2%인 20만 2천 430 ha이 침몰되어 버렸습니다. 바람 30시간 불은 것이 매일 300만명을 투입하여 벼를 일으켜 세워도 일손이 모자라고 완전 폐농이 되어 버렸습니다.
들녘에서 추수를 흐믓하게 바라보던 농부들은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빗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기만 하는 과일도 다 못 쓰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행보대로 걸어야 합니다.

늘 일에 쫓기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만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묘안을 생각하여 냈습니다.
그 날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내게 3개의 손이 더 달려서 모두 5개의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두 개의 손으로는 도저히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진정으로 원한다면 세 개의 손을 더 줄 수가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겠느냐?.잘 생각하여 결정하여라"
농부가 대답하였습니다.
"절대로 후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농부에게 모두 5개의 손을 주셨습니다.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소득도 많았습니다. 일도 빨랐습니다. 휴식시간도 늘어 났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구경오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고 나니 밑에 하인들이 많아서 입으로 일하면 되었습니다. 손이 필요없어졌습니다. 이제서야 농부는 자기가 불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취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대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없었습니다. 서두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30세에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3년 일하려고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모세는 80세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해야할 일을 이제 시작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야곱은 행보대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1.무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2.남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3.주변도 보라는 말씀입니다.
4.서두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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