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라 2001-12-26 17:01:10 본문 욥 22:21∼30 항해를 하는 배는 종종 자기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배가 바른 항로에서 벗어나 있으면 방향을 수정해서 바른 길로 돌아와야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고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거리 운항을 하는 대형 비행기에는 조종사들과 객 실 승무원들외에 항법사(航法士)가 동승하는데 이 항법사가 하는 일이 비행기 의 위치와 항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위치를 확인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배나 비행기가 엉뚱한 곳으로 갑니 다. 미국에서 우리 나라로 오던 비행기가 잘못해서 소련영공으로 들어가서 큰 사건이 빚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소련의 어느 얼어붙은 호수에 불시착을 했고 한 번은 격추 당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나?' '내가 가야할 길을 가고 있나? 이것을 종종 확인해야합니다. 배나 비행기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잘못된 길을 가거나 표류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는 등대나 별을 기준으로 위치를 확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 려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먼저, 작은 기준들이 있습니다. 부부는 결혼할 때의 서약이 기준이 됩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한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나?' 확인하고 서약할 때의 마음으 로 돌아가야 합니다. 직장인은 첫 출근할 때의 마음이 기준이 됩니다. 그 마음가짐에서 멀어져 있으 면 그 때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허름한 스웨터 하나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때때로 꺼내 입습니 다. 성도들이 처음에는 "목사님, 그 스웨터 너무 낡았습니다. 이제 그만 입으시 지요" 했는데 그 스웨터의 내력을 알고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중병에 걸려 입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시면 제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겨울이었는데 환자복 위 에 스웨터를 걸치고 입원실 침대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퇴원해서 목회를 계속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 스웨터를 꺼내 입고 그 때 간절하게 기도 드리던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제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이 있는데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때 드린 기도, 그 때 하나님과 약속한 것입니다. 그 약속을 기준으 로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살펴보기 바랍니다. 올해가 이제 보름 남았는데 이 보름은 그 때의 기도, 그 때의 약속이 회복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 큰 기준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고, 절대적인 기준 이라고 할 수 있고, 부동(不動)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23절에 그 기준이 나옵니다. '전능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작은 기준들은 사람에 따라서,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시기에 따 라서 다를 수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 하나님은 다릅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 는 전능자를 기준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욥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겪자 친구 셋이 찾아와서 '욥이어, 당신은 이런 이유로 이렇게 고난을 겪는 것 같소. 그러니 이렇게 하시오'라고 말합니다. 한 친구가 말하면 욥이 대답하고, 다음 친구가 말하면 욥이 또 대답하고 이런 일 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이 욥기의 앞부분입니다. 욥기 22장은 엘리후라는 친구가 세 번째로,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이 렇게 가정법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가정법을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너는 반드시 전능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전능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는 전능자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 입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문제, 세계의 모든 문제가 다 그렇습니다. 전능자와 나의 거리가 멀수록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요즘 세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느끼고 또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위기감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분, 하나님을 기준으로 지금 각자의 위치를 확인해 보시기 바 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까? 전능한 분과 지금의 나, 전능하신 분이 원하는 길과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고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 니다. 성경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사사기를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 님께서 멀어지면 불행이 찾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부족의 압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와 있구나!' 깨닫고 부르 짖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서 구원해 주십 니다. 얼마동안은 하나님에게 돌아와서 잘 살다가 또 멀어지고, 또 이방민족의 학대 를 받고 또 돌아와서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서 또 구원해 주고 이 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사사기입니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까 좀 답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못나 보입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못나 보이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의 훌륭한 점입니다. 역설 같지만 사실입니다. 부르짖으며 전능자에게 돌아오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직 가나안 땅에 뿌리 를 내리지 못한 이스라엘은 이방부족들의 손에 소멸되거나 동화되어 버리고 말 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려는 노력이 이스라엘을 존속할 수 있게 했고 나라를 이루게 했습니다. 사사기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는 말이 여섯 번 이상 나 옵니다(3:9, 15, 4:3 6:6, 7, 10:10). 여섯 번이 아니라 육십 번이라도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르짖어야합니다. 조난을 당했을 때 "살려주세요!" 부르짖는 사람은 구조를 받 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며 돌아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도우십니다. 사사기에 엔학고레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격전을 벌여 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에 가보면 물이 얼마나 귀한지를 잘 깨닫게 됩니다. 삼손은 그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하 나님께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셨습니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소생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고 하였습니 다. 부르짖으면 샘이 터집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나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이 나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 곳곳에 엔학고레,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샘을 터뜨려 주신 샘들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조금씩 가까이 갑니다. 이것은 나 선형식(螺旋形式) 전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은 가 운데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런 전진을 이뤄야합니다. 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 야합니다. 2001년은 2000년 보다 같은 것 같지만 조금 앞으로 나간 해가 되어 야 합니다. 못을 쾅쾅 박는 것보다 나사를 천천히 돌려가며 박으면 더 튼튼합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길을 걷기 위해 힘쓴 사람입니 다. 그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게 만든 일입니다. 엄청난 범죄이지요. 그러나 선 지자 나단이 다윗을 꾸짖을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회개합니다. 정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깨닫습 니다. 이 회개가 없었으면 다윗은 죽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 설흔아홉 권 가운데 열여섯 권이 예언서입니다. 이 예언서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입니다. 호세아는 호세아서 6장 1절 앞부분에서 이것을 이렇게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습 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분,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기준이 되 는 전능자는 어떤 분입니까? 욥기에 나타난 전능자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창조주입니다. 욥기 38장 이하에는 창조의 장엄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남부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욥기 38장 22절은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커다란 눈 곳간을 마련하시고 때를 따라 그 곳 간을 열어 흰눈을 내리게 해서 세상을 하얗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해서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 이 없는 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욥42:3).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는 분입니다. 계획하신 것을 모두 이루시는 분입니다. 계획한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다 이루는 사람이나 기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 십니다.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시기 위해 때로는 엄청나게 힘든 일도 하십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 다.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인데 대림절은 하나님의 그같은 사랑에 감사하는 때입니다. 욥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격 가운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이해되지 않더 라도 따라야 하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욥은 자기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탄식도 하고, 하나님께 묻기도 하고, 자기의 출생을 저주도 하였습니다. 세 친구의 말을 끝까지 반박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것 이고,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는 것이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 려운 일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욥42:3). 이해가 되는 것만을 믿으려 하는 것은 귀로 듣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고 따르는 것이 눈으로 주를 뵈옵는 신앙입니다.(욥42: 5) 여러분, 지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멀리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공정함과 더 오묘한 섭리와 인도 와 사랑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힘써야합 니다. 나중에 '아, 그래서 그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이해를 하게 됩니다. 전능자에게 돌아갈 때 우리는 세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치유와 회복 과 흥왕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요약입니다. 호세아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 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 여호와께 돌아갈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치유, 심령의 치유, 내적 인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그 제품을 만든 회사의 애프터서비스 센터에 가면 쉽 게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만든 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지금 육신, 마음, 가정, 어디가 고장 나 있는 상태입니까? 전능자에게 돌아가면 고칠 수 있습니다. 자주 듣는 설교 예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포드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를 운전하 고 가는데 차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차를 세우고 여기 저기를 만져도 수리가 되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차가 옆에 서더니 한 신사가 내려서 "도와드릴까요?" 했습니다. 이 신사는 잠깐 차를 살피더니 한 군데에 손을 댔습니다. 차가 금방 "부릉!"하고 시동이 걸렸습니다. 고장났던 차의 주인은 놀랍고 고마워서 "선생님은 도대체 누구이신데 그렇게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신사는 "저 말입니까? 저는 이 차를 디자인하고 만든 헨리 포드입니다"하고는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이 세계와 나의 모든 문제를 다 고 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23절은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음을 받는다는 말은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표 준새번역성경」은 23절을 "전능하신 분에게로 겸손하게 돌아가면 너는 다시 회 복될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으로 겸손하게 돌아왔을 때 욥은 치유와 회복과 흥 왕, 이 세 가지를 모두 체험했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을 지경이었으나 회복되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욥기 42장 9절 끝부분에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 다. 그리고 10절에는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때 욥은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욥6:27),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 들이로구나"(욥16: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욥19:2∼ 3)라고 말합니다. 친구들과 사이에 금인 간 것입니다. 우정이 깨질 대로 깨졌습 니다. 이것도 회복됩니다. 재물의 복, 자녀의 복도 이번보다 많이 받습니다. 더욱 흥왕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전능자에게로 돌아온 사람의 대표적인 본보기는 누가복음 15장 에 나오는 둘째 아들입니다. 집을 나갔다가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을 때 이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들의 지위가 회복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기쁨의 생활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전의 풍족한 생활이 회복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회복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전능자에게로 돌아와서 치유와 회복과 흥왕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 니다. 우리가 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능하신 분들에게서 멀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여보시오, 전능자에게로 돌아오시오!" 외쳐야 하는 일입니다. 찬송가 269장,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이 찬송에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찬송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분들 가운데 하나인 찰스 웨슬리가 작사한 것입니다. 웨슬리 형제가 감리교 운동을 일으킬 당시 영국 사회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술집과 도박장과 감옥은 차고 넘치는데 학교와 교회는 텅텅 비었습니다. 신앙 은 형식적이고 냉각되었습니다. 찰스 웨슬리는 그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찬 송가를 작사했는데 5절의 가사를아시지요? "여보시오 내 동포여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시네",우리 모두 이런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윌리엄 키르크패트릭(William Kirkpatrick 1838∼1921)라는 미국의 감리교인이 있었습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군대의 군악대 장교생활 을 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가구상을 하다가 마흔 살부터는 교회음악 사역에 전 념한 분이었습니다.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거나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열다섯 편이 저희가 사용하는 「통일 찬송가」에 실려 있습니다. 1892년, 이 분이 펜실베니아 로렌스빌(Rawlinsville)이라는 곳에서 교회 음악사 역을 하고 있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 청년 한 사람이 찬양으로 집회를 도왔습니 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르는 것이 좋아서 키르크페트릭을 돕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키르크페트릭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청년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서 그에게 영감을 주셨습니다. 좋은 가사를 주셨고 좋은 곡조도 동시에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331장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이 찬송가 가사는 시작에서 끝까지 한 번에 줄줄 나왔습니다. 키르크페트릭은 이 찬송을 그 청년에게 주고 어느 저녁 집회에서 부르게 했습니다. 이 청년은 새 노래라니까 좋아하면서 몇 번 연습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찬송을 불러나가는 동안에 이 청년은 자기가 바로 이 찬송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가 가사에는 '나'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영어 원문에는 열다섯 번이 나옵니다. 이 청년은 그 '나'가 바로 자기라는 것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음성이 떨리고 눈물이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 니다. 전에는 이 청년의 노래를 노래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찬송으로 듣게 되었 습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재능이 많은 한 청년이 전능자에게서 멀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가 전 능하신 분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혜로운 찬송이 탄생하게 했고 그 청년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으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매크랄렌이라는 분은 욥기 22장을 주석하면서 전능자에게 돌아온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능자에게 돌아온 삶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신뢰로 충만할 수 있다 전능자에게 돌아온 인생은 하나님께 대한 충만한 교제로 축복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삶은 실패나 어두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삶은 항상 희망차고 마침내 구원의 영광을 얻을 것이다. 연말이 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전능하신 분,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 하나님을 기준으로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지금 모두 바쁩니다. 그러나 이 일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동창회, 망년회, 모 임에 좀 덜 나가더라도 이 일은 꼭 해야합니다. 그리고 전능자에게 돌아가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전능자와 지금 나의 거리가 가까우면 얼른 돌아가고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면 포기하지 말고 애써 돌아가야 합니다.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치유와 회복과 흥왕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목 양교회가 되기를 우리를 오라고 간절히 부르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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