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2001-12-25 16:57:19 성경본문 빌립보서 1장 20-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립보서 1장 20-21절)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살다가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고 어려워 한숨 쉬기도 했고, 눈물 짓는 사연도 숨긴 채 미소지으며 여기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고통을 참아가며 앉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올 수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달려 나왔습니다. 각기 형편과 사정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사오니 하나님, 신령한 은혜의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 은혜로운 자리에 먼 곳에 나가 있음으로, 객지에 나가 있음으로 외국에 나가 있음으로, 군대에 나가 있음으로, 병상에 누워 있음으로 참석치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들에게까지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이 섰사오니 성령께서 능력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눈길에, 미끄러운 데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떤 분은 언덕에 차가 오르지 못해서 평상시에 10분~20분이면 교회에 올 수 있었는데 오늘은 1시간 30분 만에야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투구 벗은 흑기사> 같은 제가 강단에 섰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e-mail을 보내셨는데 "투구 벗은 흑기사 같은 목사님"이라고 하셨는데, 그 표현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위로해 주던 제가 지난 몇 달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하지만 성령께서는 큰 은혜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인천 <숭의교회>에 일이 있어서 갔더니 이호문감독님이 저를 보시더니 한참 아래 위로 쳐다보시다가 "멋있네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에는 "뭐가 멋있나,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래, 이런 모습으로 있어도 멋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3월 첫 주일입니다.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3월에도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하며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주보 8면에 나와 있는 저의 목회이념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재의 수요일"(Wednesday of Ash)이라고 해서 부활절 전 40일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는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강단에 꽃장식도 지혜롭게 절기에 맞게 보라색 꽃으로 장식을 해 주셨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는 경건히 살고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제가 꿈꾸고 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전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 말씀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영문성경에 보면 "기대"는 'expect', "소망"은 'hope'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대'는 '~이라고 생각하다, 좋은 것을 기대하다'라는 뜻이 있고, '소망'은 '바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보낸 편지에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기대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①부끄럽지 않은 것이고, ②온전히 담대하게 살며, ③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하려 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빌립보서 1장 20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저희 집에 가훈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고 싶고 이 말씀대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1. 복음적인 교회(Kerygma)가 되기를 원합니다. 1)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교회(고전 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기둥교회가 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거나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말 많은 사람, 힘있는 사람, 권세있는 사람, 직분 있는 사람, 어떤 특정한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만족을 위한 모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 많은 교회들 가운데 고집쟁이 목사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세상 많은 교회들 가운데 말많고 힘있는 장로님에 의해 움직여가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미끄러운 눈길에도 교회에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예배하기 위해 오신 여러분들에게는 타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책에 보니 [어떤 부인이 교회에 안 다니는 남편이 자꾸만 댄스홀에 가자고 졸라서 몇 년간 계속 거절하다가 너무 남편을 무시하는 것 같아 한번만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댄스홀에 가서 아주 재미있게 춤을 즐겼습니다. 그러고 난 후 남편에게 "오늘은 내가 댄스홀에 같이 가 주었으니까 다음 주에는 나하고 교회에 같이 가요!" 그랬더니 남편이 말하기를 "여보! 웃기지 마. 오늘 보니까 당신 신앙이 엉터리던데, 뭘... 오늘까지도 당신이 댄스홀에 가는 걸 거절했으면 '이 사람은 정말 어쩔 수 없구나'하고 다음 주부터 내가 교회로 갈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아주 엉터리야!" 라고 하더랍니다.] 언제나 "딱 한번만!"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에게 "딱 한번만 교회에 가자"하며 교회에 모시고 나올 지언정 "이번 한번만 내가 따라 가준다"고 그 사람을 따라 하다가는 그 말에 올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셨고, 여호수아 24장 15절에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색깔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 범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 꿈이고, 제가 바라는 것이고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2) 다 성경을 토대로 하는 목회(딤후 3:16) 성경에 있는 대로 하고 싶습니다. 물론 성경말씀대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을 성경에 있는 대로 하고 싶습니다. 예배 드리고, 가르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남을 향해 전도하는 것도 다 성경에 있는 대로 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편안하게 하시죠. 왜 자꾸 모이라고 하십니까"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강대상에서 성경에 없는 얘기, 성경에 없는 것을 강조합니까? 성경에 있는 것을 하자고 하면 여러분들은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다 교회를 중심 한 신앙생활(딤전 3:15)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교회를 중심한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교회가 아닌 곳에 있으면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 밖의 봉사단체나, 선교 단체에 소속되어 열심히 일하지만, 교회와는 발을 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교내의 기독서클이나 선교 단체에 속하여 열심히 하지만 교회일에는 손을 끊고 봉사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교회 밖의 단체, 교회를 중심하지 않은 "para church movement"들은 모두 정리되어 지고 달라지고 있다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이 땅위에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기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를 가나 문제는 있습니다. 혹 오늘 기둥교회를 정탐하러 오신 분이 계시다면 기둥교회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등록하시려면 깊이 생각해 보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든지 문제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거리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기둥교회에도 죄송하지만, 문제 인물들이 많이 모인 교회입니다. 그나마 예수 믿어서 그 정도인 것이 천만다행이지 어느 교회든지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제가 부탁드리는 것이 "좋은 교회를 찾아 다니는 방랑자가 되지 말고 좋은 교회를 만드는 사명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교회를 찾아 봐야, 방랑해봐야 이 세상에 좋은 교회,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2. 가르치는 교회(Didache)가 되기를 원합니다. 1) 준비하는 목회(벧전 3:15) 제 수첩에는 2002년 12월 말까지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설교를 한 번 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 부목사님들에게도 무슨 교육을 하든지 반드시 교재를 만들어 교육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먼저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가르치는 목회(마 28:20)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이유는 잘 가르치는 목회를 하기 위함입니다. 가르치지 아니하면 배우지 못합니다. 3)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성도(딤후 3:14)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3월 13일부터 'PB Academy-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둥교회에서 누가 성경공부를 제일 안하는가 했더니 죄송하지만 권사님들이 제일 안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성경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배우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여러분, 과거에 숨을 많이 쉬었다고 지금 쉬지 않아도 됩니까? 목사가 교회에서 '성경공부하라'고 할 때 본이 되어야 하는 권사가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저런 일로 바쁘고 힘든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여 있으려고 노력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3.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사도행전 1장 8절) 1) 생활 중 무시로 전도(딤후 4:2) 그러나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전도는 생활 중 무시로 전도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향기, 예수의 냄새가 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 예수 잘 믿는 사람이지, 저 사람처럼 살아야지'라는 느낌을 받게 하면 그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 속에서 예수의 향내를 풍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2) 잃은 양을 찾는 전도(마 10:6) 과거에 신앙생활하다가 현재 하지 않는 사람, 어렸을 때 신앙생활 하다가 결혼해서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 잘 하다가 부천에 와서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 하지만 다른 교회에 불쑥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내가 늘 출석한 교회는 모르지만, 다른 교회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 와야 합니다. 3) 세계 모든 족속을 향한 전도(마 28:19) 제가 미국에 가서 특별히 음악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2년제 음악 신학교에 가봤습니다. 그 학교는 나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나이를 막론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학교는 매일 아침 8시에 1500여명의 전교생이 모여서 1시간 동안 찬양을 하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도 아침 8시에 그 학교에 갔는데 한국 학생 한 명을 만났습니다. 대전에 있는 어떤 교회의 찬양대에서 찬양대원들끼리 회비를 걷어서 한 찬양대에서 한 명씩을 2년 동안 공부하도록 후원해 준다고 합니다. 단 2년 동안 공부한 후에는 한국에 돌아와 찬양대를 위해 일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 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찬양대는 회비를 걷어서 먹기만 하더군요. '선교'라고 하는 것은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물질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회비를 걷어 각 선교회별로 개척교회를 돕고, 어려운 기관을 도우라고 하는 이유는 그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교회장은 명목상의 선교회장이 아닙니다. 선교회장은 눈물 흘려가며 선교회를 위해,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 흘림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학생부흥회를 인도했던 이요섭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현대 교회에서의 순교는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현대의 바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시간을 드리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의 순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전도하는 일에,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4. 봉사하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Diakonia) 1) 서로 섬기는 생활(갈 5:13) 서로 섬기려면 자기가 낮아져야 합니다. 자기가 잘 나서, 대단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퍽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분이 선교회 모임에 갔다 와서는 제게 만나자고 하기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선교회가 수준이 안 맞아서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저 사람은 천국도 수준이 안 맞을 텐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도 찾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수준에도 안 맞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 선교회장을 하고 있어도 "회장님, 회장님"하면서 같이 일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부자라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의 발을 닦을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모두 섬기는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웃을 돌보는 생활(약 2:26) 복지관, 야간학교…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고생이 많은 줄 압니다. 그리고 일하면서 '우리 목사님은 일 만드는데 선수'라고 말하는 것도 제가 다 압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 있으면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인 무료 급식을 하고, 노인들을 위해 물리치료를 해 주고, 머리를 깎아 주고, 식당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예수 믿기 때문에 그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웃을 돌보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지관을 운영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한 달에 그 일을 위해 지출하는 예산이 어마 어마 합니다. 그래도 더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우리 기둥교회가 풍성하여 더 베풀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이웃을 위해 돌보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3) 작은 일에 충성하는 생활(마 25:23) 우리 기둥교회는 일꾼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일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이렇게 큰데 일 할 사람이 모자라냐고 합니다. 여러분 1주일만 교회에 와서 지켜 보세요. 일하는 사람만 일합니다. 일꾼이 언제나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교역자 회의를 하면서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 우리 교회에 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일하는 데 있어서 제한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 할 수 있도록 일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에 충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다 제각기라 서로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사람이 똑같으면 섬기고 봉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3월 1일에 어린이, 학생 부흥회를 마치고 교회학교 교사들이 놀이동산에 갔다고 합니다. 갔다온 분들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놀이 기구 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보통은 한번이라도 더 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 권사님이 놀이 기구를 탔는데 너무 무서우니까 속으로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시면 다시는 이런 것 안 바라고 봉사활동 잘하겠습니다"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구 타는 게 재미있어서 자꾸 타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살려달라고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약한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가 5. 친교하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Koinonia) 1)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요 4:24) 예수 믿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사귀어야 합니다. 어떤 놀이를 통해서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께 속한 그룹(group)을 통해(요일 4:1-6) 여러분의 그룹이 하나님께 속한 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 등 모든 그룹이 하나님께 속한 그룹이어야 합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고 1985년 우리 기둥교회에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이 계곡으로 야유회를 갔다가 돌아오는데 교회에 운전하는 사람만 오고 선교회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전자에게 "왜 혼자 오느냐? 교인들이 나갔다 오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헤어져야지 다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하셨던 분이 '모르시는게 좋은데요'라는 대답만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선교회원들이 물통에 소주를 담아가서 한잔씩 걸쳤던 것입니다. 벌건 얼굴로 교회에 들어올 수 없어서 중간에 내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후부터 선교회원들이 교회를 떠나 야유회를 간다고 하면 누가 가는지, 몇 명이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매번 확인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다운 모습으로 다녀야 하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모여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께 속한 그룹으로 사귀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통해(요 15:5) 예수 믿는 사람끼리의 사귐에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1장 21절 말씀에 고백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 말씀은 "내 안에 사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죽더라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그분을 위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가 많다는 것은 반대로 교회가 적다는 뜻도 됩니다. 여름에 홍수 때 보면 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마실 물은 없습니다. 교회가 많다는 것은 교회가 적다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적다는 얘기입니다. 교인이 많다는 얘기는 교인이 적다는 뜻도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부끄럽지 아니하고, 담대하고,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는 삶입니다"라고 고백했던 바울과 같은 삶이 되서 훗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는 자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왕이면 잘 믿기를 원합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기를 원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시작하는 저희들,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시고 고난과 헌신과 섬김의 색깔인 보라색을 우리의 마음에 담아 헌신하고 섬기고 봉사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땀흘리고 애써 모은 물질 가운데 이 시간 십일조, 감사헌금, 일천번제 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여러 가지 제목으로 예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3월 4일 주일 낮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