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 2001-12-24 20:59:41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몬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눅2:25-30) 들어가는 말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아기로 탄생하신 이후에 할례를 받고 또 결례를 받은 이 야기를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어난 아이가 7일 동안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결례는 바로 마리아가 부정한 기간이 끝나고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그때의 그 제사를 지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시몬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서 부정한 기간을 거치고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제일 먼저 보았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몬이 그 아이의 대하여 예언도 하고 찬송도 하는 이러한 일이 있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어떻게 될 것이며, 그분이 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예언이 35절까지 이르게 되고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수난을 받을 때에 마리아가 마음의 고통을 받을 것까지의 전부 다 예고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 이 예루살렘에 있던 그 시몬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하는 것과 그리고 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한 계시 우선 오늘 성경은 이 시몬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임했다고 말합니다. 그 계시는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계시였습니다. 메시야를 보기를 사모하던 사건은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는 못하지만은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은 즉시 아담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것들을 확연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자손을 낳는 것이야말로 뭔가 소망스런 일과 연관되어진다라고 하는 분명한 인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정죄함을 받고, 그리고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의 삶이 그 낙원에서 주님과 함께 살았을 때에 그 삶과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이들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없이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가까운 교제 속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지극한 영락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모든 자연을 통해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자연을 향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서, 아담과 하와는 이전에 무죄 상태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던 그 아름다웠던 시절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인간의 그 참된 구속, 그 회복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뭔가 분명하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 후손이 그러한 회복에 소망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했던 장본인인 그 사단의 세력과 우리 몸에서 나온 후손과의 괄목할 만한 투쟁을 통해서 자손이 승리하게 되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찌하든지 우리가 그 옛날로 돌아가는 그 회복과 관계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온 이래로 수많은 족장들이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나라가 서고 왕이 서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서면서 끊임없이 이런 소망을 가지고 선자자들은 때때로 불같은 목소리로 모든 회복을 위해 오실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 예수 이 한사람을 향하여 주목하며 내다보며 예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구체화시키실 때마다 백성들과 선지자들은 그 주어진 말씀을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뛰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우리를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잃어버린 이 비참함으로부터 건져내실 그 구세주가 오시리라 하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바라보고 즐거워 하다가 죽었을 뿐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몬이라고 하는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복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축복 중에서 이 사람과 같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전에 선지자들이 받았던 모든 계시에 대한 복을 합계를 해도 이 사람이 받았던 축복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로 들었으나, 이 사람은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들은 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그 시대에 증거해 주었고 기록 속에 남겼지만, 이 사람은 친히 보았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 시몬 그런데 왜 시몬이었을까요?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것은 그 사람의 성품과 내면세계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삐뚤어지고 왜곡된 그 시대를 바라보면서 그 시대의 참된 희망이 제사장이나 혹은 율법사들이나 유대교에 있지 아니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붙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의를 찾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불의한 모든 사조와 모든 타락한 종교로부터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과 경건을 잃어버린 종교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여기에 한 번 나오고 성경에 영원히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아니었고 수많은 추종자가 딸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나 이 사람은 가슴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구원을 위해서 오셔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의한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경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또한 이 사람의 삶은 어떠한 삶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이라" 이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삶의 방식을 살았느냐 하는 것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이 가장 불행한 시대에 모든 동포들과 함께 태어났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라가 메대와 바사에게 찢기고 헬라에게 빼앗기고 로마에게 또 넘어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신앙도 급격히 하락하고 종교적인 형편은 심히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이 시몬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위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켜 그리고 로마 나라를 쳐부수는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로마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적으로 잘 타협해서 독립된 주권이 회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위로라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는 그 한 아이의 태어남에 달렸다는 것이 시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나름대로 다른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말구유에 태어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궁궐에 태어난 자랑스런 왕자였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마굿간에 벌거벗고 누워있는 강보에 싸여 누워있던 한 아이가 아니라 백마를 타고 기사처럼 이 땅에 나타나는 장군이었던 것입니다.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이 원했던 것은 지혜와 모략을 한 번에 가진 위대한 정치가였던 것입니다. 그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그리고 그 모든 용기와 담력으로 세상을 파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해방자였던 것입니다. 가끔 위대한 임금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해방을 맛보았고, 능력 있는 장군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전리품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영원한 위로, 이스라엘을 향한 완전한 위로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저희를 죄에서 구원할 아기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위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시몬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듣기만 했던 그 그리스도 예수를 눈으로 뵈옵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그릇된 위로를 구하면서 주님의 참된 위로를 바라지도 않고 소원하지도 않으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록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게 되었다하더라도 그들은 자기의 참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위로를 구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위로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완전한 위로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이해 받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그 위로가 없는 것 때문에 외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위로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환경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에도 위로를 동정해 주지 않아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그분을 소유함으로 그분 안에서 참된 위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참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헤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넘치는 삶, 이것은 우리의 소망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이 험악한 세상을 이겨나가게 한 유일한 원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한 해 동안 인생이 고달프고, 눈물이 많은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삶이었습니까? 아우성치는 파도와 물거품을 헤치며 노도와 싸우며 등대마저도 불빛이 꺼져버린 그런 칠흑과 같은 바다에서 부러진 돗대를 부여잡고 항해하는 것과 같은 삶이었습니까? 괴롭고 어려웠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얼마나 내가 하나님의 참된 위로의 넘치는 삶을 살았는지 보십시오. 금과 은은 우리에게 없었으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비록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과 같은 평탄한 길을 걸어오진 않았지만, 이 풍랑 인연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세상의 위로가 없는 것을 인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도무지 세상에서는 위로 받을 수 없는 그러한 마음의 갈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 기뻐하십시오. 여러분들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 시몬 시몬의 마음이 의롭고 경건했고 이 사람의 삶의 목표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의 영적인 삶에 대해서 성경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의 영적인 삶이었습니다. 아무도 한 아기가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임을 믿지도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을 매일 베껴 쓰는 사람들도 몰랐고, 성경을 매일 가르치는 사람들도 실패했습니다. 어린양들은 이 예수의 그림자였음에도 불구하며 제사장들은 그 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백성을 위해 자기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그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갈 어린양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몬 이 사람은 성령이 그 위에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언제든지 음성을 들려주어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주님이 불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든지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성령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영적인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사무엘아, 사무엘아!’주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지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사무엘 그 어린 아이 하나였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1년 동안 우리의 영적인 삶이 얼마나 깊어졌습니까? 주님을 향하여 더 활짝 열려진 영적인 삶,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늘 성령이 동행하며 그를 떠나시지 않는 영적인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실 때에 언제든지 여러분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여러분들은 그 음성을 듣고 오늘 시몬이 그랬던 것같이 성령의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깨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위에 함께 하고 계십니까? 언제든지 주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실 때에 우리는 들을 수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예민합니까? 깨어서 살고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인 것입니다. 시몬은 보통 영적으로 깊은 삶을 살았던 게 아닙니다. 그 날도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들어가니까 똑같은 시간에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나와 오는 장면과 딱 마주치는 겁니다. 누가 하신 겁니까? 성령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번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을 산 것으로 충분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함께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하더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와 함께 결례를 받기 위해서 성전으로 들어오는 그 메시야를 안으신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이 예언이 이루어졌겠습니까? 그는 언젠가 한번 그 위에 성령이 함께 하시던 사람이 아니라 계속 성령이 함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이 그렇게 함께 하시니까 아기가 들어 올 그 시간에 성령으로 그 마음을 감동시키는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식이 아닙니다. 상식이 아니라 생생하고 선명한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이러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주님이 무엇을 꾸짖고 계시는지 예민해져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정리함에 있어서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상식으로 한해를 정리하고 상식으로 한해를 맞는다면, 내년은 올해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를 위한 생애 그는 놀라운 감동 속에서 아기를 만났습니다. 시몬은 그들에게로부터 아이를 안고 하나님을 높이 찬송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난지 7일밖에 되지 않아서 밖을 내다보면서 눈이 부셔서 눈도 잘 뜨지 못하는 이 작은 2∼3㎏되는 어린아이를 안고 가슴에서 복 받쳐 오르는 터져 나오는 찬양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 아이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향한 궁극적인 해결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찬송 가운데 이 시몬의 찬송은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시몬의 생애는 이 한 순간을 위해 달려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를 기다리며,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시며 살 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는 참된 구원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할 그 때 그 이후로부터 시몬의 인생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매이는 생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로지 이 태어날 핏덩어리 어린아이 하나에 매이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하루를 살았고, 1년을 살았고 이 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그 분 하나에 매여 있었고, 그리스도 예수 그분 하나가 이 모든 인생의 푯대가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모든 것이 거기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다운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이며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이며 진심으로 참된 위로를 기다리는 그의 백성들이 삶이 어떠한 것인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그리스도와 함께 묶이는 삶으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성탄시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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