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자녀를 낳으라 2001-12-15 21:17:38 사무엘상 1:4-11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4-11>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것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어머니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자녀 사랑에 대한 애착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좋은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되려면 반드시 자녀를 낳거나 길러야 합니다. 본문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 나라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엘가나라는 한 남자가 두 아내를 거느리고 삽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돈 많은 남자가 두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부다처제를 원치 아니하셨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같이 사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의 두 아내 이름은 하나는 브닌나고 하나는 한나인데 브닌나는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은 브닌나는 자녀를 낳지 못한 한나를 업신여깁니다. 그를 격동시킵니다. 크게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의 남편 되는 엘가나는 아이를 낳지 못한 일로 인해서 슬퍼하는 한나를 위로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고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러 나갈 때에 연보를 줄 때에는 한나에게는 브닌나와 다른 자식들보다 갑절이나 더 많이 주면서 늘 위로하려고 했지만은 한나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일로 너무 마음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갈 때 그는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실로라고 하는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을 돌아보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서 아들을 하나 주신다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다시 드리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의 기도는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하고 힘을 다했던지 나중에는 기력이 쇠해서 음성도 나오지 않았고 온 몸에 경련이 날 정도가 되었고 입술이 떨릴 정도가 되었을 때 엘리라고 하는 제사장은 한나가 술취한 줄로 생각하고 한나여 어찌하여 독주를 마셨느냐? 술을 끊으라 이렇게 하면서 모욕을 하게 됩니다. 그때에 한나는 내 주여 나는 술 취한 것이 아니고 내 맘이 슬픈 여자입니다. 내가 이러저러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라고 말하자 이 엘리 제사장은 그에게 축복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축복을 할 때 한나는 제사장의 축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근심 걱정이 사라졌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 문을 여시고 아들? ?낳게 했으니 그 아들 이름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주시고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시는 약속을 이행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 한나라는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여 기도했고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여 아들을 주었다는 역사적 한 사건을 우리가 들으면서 그와 같은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옛날 이야기이면서도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것을 우리에게 기록한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의 하나님은 지금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만 복된 자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자녀를 낳는데 두 부류의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는 혈통적으로 태어난 자녀가 있고, 하나는 영적으로 태어난 자녀가 따로 있습니다. 영적인 부모가 있고 영적인 자녀가 있으며 혈통적 부모가 있고 혈통적 자녀가 있습니다. 혈통적 가족관계가 있고 영적인 가족관계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며 자매뇨.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내 모친이 되고 내 형제가 되고 내 자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13절 말씀에서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어머니라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루포의 어머니는 루포에게 있어서 혈통적 어머니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영적인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가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아본 일도 없고 아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너는 내가 낳았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고 빌레몬서 1:10절 말씀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 감옥에 들어온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통해서 오네시모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게되자 오네시모는 내가 갇힌 자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혈통적 아들이 아니고 영적인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혈통적 자녀를 낳아서 기뻐하는 것보다도 영적인 자녀를 낳고 더 기뻐하는 것, 그게 바로 영에 속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육에 속한 자녀는 부정모혈(父精母血)의 관계에서 태어나고 영적인 자녀는 복음전파를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니 우리는 남녀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것도 복이나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신령한 여자가 되어서 신령한 한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를 많이 낳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천국을 갑니다. 어느 날 니고데모라고 하는 유대교의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갖고 온 화제는 어떻게 물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을까? 그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고 왔는데 예수님의 관심은 표적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거듭나지 않으면 본 어게인 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두 번 태어난다는 말은 모태로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심령으로 변화를 받아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던져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존 뉴턴이라고 하는 영국의 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지은 찬송가사가 몇 곡있는데 245장도 그 분이 지은 찬송시입니다. 그 찬송가 3절 가사에 보면 주의 은혜 내가 받아 시온백성되는데 세상 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하리라. 세상 헛된 모든 영광 아침 안개 같으나 주의 자녀 받을 복은 영원무궁하도다. 이런 신앙 고백적 찬양을 그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 뉴턴이라고 하는 목사님은 처음부터 훌륭한 목사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부친은 지중해에서 무역선 선장이었습니다. 거칠고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그러나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였고 그의 나이가 어렸을 때 무릎에 앉혀놓고 성경얘기 해주고 몸이 아플 때면 손을 얹고 기도해주시던 사랑많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뉴턴의 나이 7살 때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학교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탄 배에 타서 아프리카를 오고가면서 나중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를 부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갖 죄를 다 범하고 지내다가 어느 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는데 그 배안에서 누가 읽고 놔둔 책을 발견합니다. 그 책! 이 바로 토마스 아켐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인데 그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무릎 위에 앉혀놓고 읽어주던 성경말씀, 자기를 껴안아 주면서 기도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그리고 거기에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국에 돌아와서 어떤 분의 중매로 메리 케틀렛이라고 하는 한 처녀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데 이 처녀의 믿음이 아주 독실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영향을 받아 그는 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학을 하고 42년간 목사생활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건졌습니다. 영국의 오릴리교회에 묻힌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존 뉴턴목사, 한때 방황하며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부리던 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긍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자라 그렇게 썼다는 것입니다. 불량했던 과거를 청산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은 주님이시지만 그렇게 그로 하여금 새사람 될 수 있도록 그 주위에는 두 분의 여인이 있었으니 한 분은 어머니였고 한 분은 아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인은 연약한 존재로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현숙한 여인은 자기 남편을 성중의 장로로 더불어 앉게 하며 자식들이 언젠가는 일어나서 사례할 날이 올 것이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신령한 여자, 신령한 한나가 되어서 한나가 아들을 구한 것처럼 한 아들을 구한 것처럼 우리도 한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육신의 자녀만 구할 것이 아니라 신령한 자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한 아들을 구했는데 2장에 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육남매를 낳게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닫아 논 태의 문을 기도로 다시 열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엇인가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하십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높이기도 하시고 낮아지게도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 여하에 따라서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고 주실 수도 있고 가져가는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한나가 아들을 구한 것처럼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신령한 아들, 신령한 딸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 불신자 가족 중에 우리 남편, 우리 아들 딸, 우리 어머님, 아버님, 이모, 그리고 고모, 조카, 삼촌, 친구 누군가를 우리가 지명해놓고 그 영혼이 구원받도록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한나의 믿음의 기도요 생명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어떤 일이겠습니까? 예배드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봉사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받는 일인줄 믿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오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사람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눅 15장에 보면 목자가 백마리의 양가운데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고 기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생활 할 때 기쁘고 즐겁게 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쁨이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반대로 하나님 마음에 근심의 대상이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평생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 섬길 때 평생 기뻐하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마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하인 한 명이 중풍병으로 쓰러져서 몹시 괴로워할 때 그 중풍병자를 구원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원자 예수님을 찾아와서 엎드려 절하며 간구합니다. 내 하인을 좀 고쳐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시자 주님께서 우리 집에 오심을 내가 감당할 수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저더러 오라 하면 저가 올 것이요 나더러 가라 하면 제가 가겠습니다.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주 앞에 겸손을 보이자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하시고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 곳에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겉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최후의 날이 되면 다 쭉정이가 되어서 다 천국곳간에 들어갈 수 없는 이 안타까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마음에 합당한 믿음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소위 영웅, 호걸, 열사가 있고 만민이 우러러보는 위인도 있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그 인생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서 자살하는 경우를 가끔씩 봅니다. 저는 1989년 5월달에 저 미국 마이애미라고 하는 곳에서 바닷가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 분이 살아생전에 누웠던 침대에 나도 한 번 누워보았고, 앉았던 책상에도 가서 한번 앉아보았습니다. 그 분은 문학가로서 명성을 떨친 분입니다. 노벨문학상까지 탄 분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의 할아버지는 디.엘.무디라고 하는 유명한 전도자의 친구로서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믿음이 없었습니다. 자녀들 교육을 제대로 못시켰습니다. 나중에 이 헤밍웨이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자살한 이유는 고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 써놓은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속에 사로잡혀 있다. 고독하다. 외롭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시급히 전도해야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예측못할 일들로 인해서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어떤 이는 인생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몰라 방황합니다. 적절치 못한 인간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난치병으로 신음을 합니다. 어떤 이는 성장기에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항상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이 있고 부정적 사고로 가득 차서 인간관계가 깨뜨려져서 단 하루도 마음에 기쁨이 없이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연령은 어린아이 수준이어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바로 믿기만 하면 새로워지게 되고 변화 받고 가치를 발견하고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 전도대상자를 마음에 정하고 그 전도대상자를 태신자라 생각하고 내가 임신한 아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을 잘 돌봐야 합니다. 건강한 어머니여야 건강한 어린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저는 유아교육을 좀 배워보면서 태아는 알고 있다 하는 책을 한번 탐독한 일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태아가 임신 2개월이 되면 그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감정표현을 원시적 신체적 언어로 사용한다. 4개월이 되면 좋아서 웃기도 하고 싫으면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6개월이 되면 귀를 기울여서 밖에서 나는 소리를 신중히 듣기도 한다. 그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저능아나 신체적 이상이 있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다. 태아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어떤 리드미컬한 소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이다. 어머니의 심장박동 소리가 가장 좋은 음악소리로 들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정적으로 뛰는 심장의 박동이 갑자기 충격을 받고 이상이 생기면 그때부터 아이가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태아는 알고 있다. 태교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임신을 한 여인은 그 날부터 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몸이기 때문에 몸조심, 마음조심, 입조심, 행실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어날 자녀를 위해서 어머니가 건강해야 하고 어머니가 안정이 있어야 하고 항상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야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데 있어도 인상쓰고 화내고 거짓말하고 싸워가면서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그것은 사산이 되고 맙니다. 아이가 죽고 절대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언제나 기쁨이 충만해야 할 줄 믿습니다. 복음이라는 말 자체가 기쁨의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하면 항상 기쁜 표정, 밝은 표정, 언제나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언제 사람이 기쁨을 얻고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랑의 감정을 가질 때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 그때 마음이 평안합니다. 또 하나는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 하여튼 사랑한다는 감정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굽니까? 사랑의 대상이 없는 자,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자, 이게 바로 고독입니다. 이 고독이 사람을 자살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차 서로 사랑을 확인해야 합니다. 눅 1:44절 말씀에 보면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아이가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어 놀더라. 이 말은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잉태하고 있을 때 마리아가 문안을 왔습니다. 그러자 자기 조카가 찾아오니 매우 기뻤습니다. 어머니가 기뻐하니까 뱃속에 있는 아이도 기뻐서 뛰었다 그런 말입니다. 어머니가 기뻐하니까 아이도 기뻐했다고 여기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역시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 보면 얼굴에 다 쓰여있습니다. 복음, 기쁜 소식, 사람이 기뻐하면서 산다는 것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되면 암도 녹아 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사실이고 과학적인 확실한 증거들이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을 때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토페롤 감마 이런 것들의 분비가 증가되어서 어떤 나쁜 것들을 저항할 수 있는 힘이 100배, 200배로 커지면서 우리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것을 밖으로 몰아내는 힘이 강하다. 그런 것은 많이 발표된 일들입니다. 또 사람이 너무 기뻐서 한번 웃을 때 우리 몸에 650개의 근육이 있는데 한 번 크게 웃을 때 231개 가 움직여서 전 몸에 운동이 되어서 크게 껄껄대고 웃으면 에어로빅 한 10분 뛴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그런 얘기도 있는데 아무튼 여러분, 우리가 기쁨을 창출해내야 되는데 언제 사람이 가장 기쁩니까? 집안에 아기가 오래도록 없다가 아기가 태어났다, 그 집에는 진짜 기쁨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를 구했는데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를 구했는데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원하는 아이가 생겨졌을 때는 기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너를 통해서 신령한 자녀가 태어나기를 원한다. 너는 신령한 한나가 되라. 한나는 한 아들을 구했는데 나는 여섯 자녀를 주었다. 나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번 기도해 보라. 그리고 그를 위해서 노력해보라. 그리고 전도를 할 때는 그만큼의 수고와 그만큼의 희생을 지불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보낼때 너는 전도를 할 때 고난을 받으라 했습니다. 애 낳을 때 고통 없이 낳은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인위적인 방법으로 고통 없이 자녀를 낳으려 하는데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정해준 고통의 방법을 반드시 통과하셔야만 아이도 좋고 산모도 좋다는 책을 제가 읽어보았습니다. 뭐든지 쉽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누에가 번데기가 된 다음에 자기가 들어가서 살집을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만듭니다. 그래서 타원형으로 딱딱하게 만들어진 것을 고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치 속에 들어가 있다가 이듬해에 나방이 되어서 나오려고 합니다. 입으로 자기가 나갈 구멍을 적당하게 뚫습니다. 그래서 나오는데 머리는 작은데 몸통은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기를 쓰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때에 옆에 있어서 보고 있던 사람이 불쌍해서 가위로 뻥 뚫어주면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날지 못하고 곧 죽고 맙니다. 고통이 있어도 내버려둬야 합니다. 그러면 기를 쓰고 나오면서 머리부분에 있는 모든 양분이 온 몸으로 날개까지 쭉쭉 퍼져서 그래서 날씬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날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쌍히 여기사 구멍을 뻥 뚫어주면 쉽게는 나왔는데 날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고난을 회피하려고 하지말고 어떤 고난은 유익한 고난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교회로 모시고 온다, 그것은 산실에 들어간 임부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편하고 쉽게 애를 낳으려고 주사 맞고 그 다음에 자연분만보다는 제왕절개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이 가정과 상담이라는 월간지 책을 어제 읽어보았더니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왕절개 수술은 다른 나라의 4배가 높다는 것입니다. 전체 산모중의 43%가 제왕절개를 합니다. 외국에는 10%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왕절개 수술을 했을 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있냐면 자연분만한 아이보다 아이가 합병증을 앓는 경우가 두개가 높고 그 다음에 태어난 아이의 사망률이 4배나 높고 마취를 해서 수술을 하기 때문에 마취로 인한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는 어머니가 많으며 기관지 경련을 일으키고 저혈압을 앓는 사람이 있게 되고 산모의 건강회복이 자연분만보다 훨씬 늦다 그런 얘기가 쭉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에 칼을 대는 순간에 아이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중에 정서적인 불안이 더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임상적으로 실험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 자녀를 낳으실 분은 가능하면 꼭 자연분만을 하시고 신체적인 문제 때문에 제왕절개를 안 할 수 없는 분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쉽게 하는 것이 나중에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도 쉽게 하려하는데 아닙니다. 한 영혼을 우리가 전도하려면 임신한 어머니가 10개월 동안 무거운 몸 가지고 다니고 그리고 그 아이를 세상에 출산하려 할 때는 깜빡 죽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아이를 낳거든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는데 그냥 쉽게 되겠습니까? 한나가 믿음으로 기도했고 그래서 그 아이가 임신되었을 때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몸조심했습니다. 마음 조심했습니다. 음식도 조심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이로 내가 길러야 된다, 그런 마음으로 언제나 성령 충만한 것을 택했을 것이고 믿음 충만한 것을 택했을 것이고 하나님 말씀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의 역량은 부모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전도인이냐에 따라서 그 교회 나온 사람의 신앙 성숙도가 달라집니다. 믿음이 별로 좋지 않은 분들이 전도해 올 경우에 따라나온 분들도 별로 믿음이 안 좋은 경우가 많고, 믿음이 아주 좋은 분들이 전도했을 때 그 따라나온 분들이 함께 본받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이냐면 어머니가 건강하니 태어난 자녀도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복음을 입으로만 전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너무 매력 있고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자랑이 있는 이런 사랑이 넘치는 삶이 결국 전도로 이어질 때 우리의 전도대상자는 우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고 저 속에 무엇이 있구나, 나도 한번 가봐야지, 이런 마음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나는 한 아들을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여섯 자녀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한번 문을 열어놓으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전도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쓰고 고생이 되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는 십자가의 사람들이 되면 십자가가 끝나고 난 뒤에 부활의 아침이 올 것이고 승천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로 우리가 함께 올라가게 될 것이니 이런 영광적 소망을 가슴에 품고 신령한 자녀를 많이 낳는 하나님의 사람들, 신령한 한나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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