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막는 사람들!
2001-12-14 11:38:39

(예레미야 5장 24절-25절)

복잡한 버스에서 한 젊은 여인이 아기를 업고 서 있는 것이 안스러워 나이든 중년 신사가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여인은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한 신사가 그 여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네 부인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사는 '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천만에요' 라고 말하려고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여인에게 따끔한 충고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위기에 도움을 청하고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도움을 받게 되면 전혀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배신으로 대신하고 받은 호의를 잊어버린다는 뜻에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란 말이 있는 듯 합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할 때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닙니다'라는 말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에게는 복이 오다가도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귀한 목사님을 통하여 놀라운 은혜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감격과 은혜를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첫 시간부터 정말 큰 깨달음과 감동을 체험하였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을 그대로 고백하고 싶을 정도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한 모든 분들이 함께 이런 고백을 하고 싶으실 줄 믿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감격으로 차고 넘침을 경험하게 됩니다. 넘치는 일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는 찬양입니다. 너무 감격하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어 소리 높여 감격의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둘째는 감사입니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하는 감동이 솟구치면서 눈물 있는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셋째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예수를 알고 그 분으로 인하여 참 행복을 알게 되고 보니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베품으로 나타납니다. 받은 것이 많으니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기에 그 분을 생각해서라도 나누게 되고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만한 사람들은 이렇게 찬양, 감사, 자랑 또는 전도, 그리고 베품을 통하여 넘치는 은혜를 토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환자로 태어나 평생 뇌성마비 환자로 살다가 47년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신앙 시인인 미즈노 겐죠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들국화라는 아름다운 작은 시가 있습니다. 그는 시를 통하여 자신의 감사하는 감격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들국화
들국화가 한 아름
피어 있다.

그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어 가면서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름다움을 서로 자랑하면서
피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피어 있을 뿐」
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피어 있는 들국화들의 모습에서 서로 뽐내는 모습이나 투기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다. 진한 향기를 토해내며 자신을 돋보이려는 교만함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숭고한 신앙적인 모습만을 본 것입니다. 감사로 충만한 그의 눈에 들국화는 오직 감사하는 일만을 위하여 핀 꽃처럼 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5장 24-25절에 보면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추수 기한을 정하여 풍성한 것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좋은 것들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정말 어마 어마한 은혜요 헤아리기 어려운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배반하여 경외하지 않고 그의 은혜를 감사치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자신의 허물로 물리치게 되었고 범죄함으로 그들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적습니다. 그래서 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그 해 농산물이 달라집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파종시기와 추수시기가 다릅니다. 우리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추수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을에 씨를 뿌리고 봄에 추수합니다. 그래서 보리와 밀 같은 곡식은 11월에 씨를 뿌리고 4월말에 추수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농사와 관련해서 비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10월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이 이른 비는 가뭄으로 단단해진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쟁기질을 해서 씨를 뿌리는데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다음해 4월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늦은 비는 농작물의 결실을 풍성하게 해주는 봄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 이 늦은 비는 목초 지에서 풀이 자라게 하는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입니다. 결국 이른 비는 씨를 뿌리는데 영향을 주고 늦은 비는 추수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얼마나 제 때에 제대로 오느냐 하는 것이 흉년이냐 풍년이냐를 좌우하는 겁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한 말씀은 신명기와 요엘에도 있습니다. 신명기 11장 1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라고 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한 때 적당하게 오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많이 추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23절에도 보시면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고 하였고 24절에 계속해서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으면 밀이 가득하게 되고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여기서도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축복의 상징인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자세히 보십시오.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일들과 좋은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25절에 "물리쳤고"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복으로 오는 것을 받지 않았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은 받지 않았다는 의미보다 더 지나친 표현입니다. 발로 차 버렸다는 겁니다. "막았느니라"는 말도 자기 스스로 장벽을 만들어서 좋은 것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들"과 "좋은 것"이란 단어에 복과 은혜를 집어 넣어보십시오. "너희 허물이 이러한 복과 은혜를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복과 은혜를 막았느니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25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허물과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지 못하고 막혔다는 겁니다. 허물과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들을 모두 물리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문제가 있는 허물과 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24절에 보면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하며 존경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존경함을 찬양으로 고백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 찬양과 고백에는 구원해주심과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감격과 감사가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경외와 감사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22-23절에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라고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외하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찬송과 영광은 영원히 죽어야 할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감사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마땅히 올려야 할 찬양이요 고백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시골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새가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봤더니 한 마리의 새가 창문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새야 유리창에 대해서 모르니까 무조건 밖이 보이는 쪽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겁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유리창에 부딪혀 나갈 수 없었습니다. 거의 미칠듯이 유리창을 뚫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고가 허사였습니다. 새는 지금 나갈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있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축복과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생기는 것은 허물과 죄 때문에 생긴다고 말씀합니다. 허물과 죄가 하나님의 축복을 막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죄는 무엇입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생겼습니다. 그 장벽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로 내려오는 통로가 막혀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5장 25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너희가 이렇게 굴었기 때문에 계절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너희가 이렇게 굴었기 때문에 …"라는 말은 곧 '너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감사하지 않아서 이상기온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절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른 비가와야 할 때 이른 비를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셨습니다. 늦은 비가와야 할 때 하나님께서 늦은 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햇빛이 비춰야 할 때 하나님께서 햇빛을 구름으로 가리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농사는 망치는 겁니다. 주시는 은혜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더 크고 넘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받으면서도 감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하나님은 주신 것까지 거두워 가십니다.

시편 103편 2절에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하여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불평하고 때로는 감사하라 이것이 아닙니다. 그냥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할 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95편 2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고 하였고 시편 106편 1절에서는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여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시간 예배를 드리고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금세기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지휘자가 있습니다. 토스카니니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는데 심한 근시로 연주 시간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단의 지휘자가 중요한 연주회가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 누군가에게 지휘를 부탁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 때 악보를 몽땅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지휘자를 대신해 지휘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악보를 외워야 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토스카니니의 회고록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이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가까이에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더 크고 풍성한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촛불에 감사하면 더 밝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더 밝은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면 햇빛보다 더 밝은 영원한 하늘의 빛을 주신다는 말처럼 감사하는 이들에게 더 풍성하고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오는 복과 은혜를 막거나 걷어차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함으로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귀한 믿음들이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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