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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4단계
2001-12-13 20:56:49

2001년 8월 19일
창 37:5-11





제일 불쌍한 사람




어느 여론 기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여러분의 장래의 꿈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는데 각가지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의사, 판사, 변호사 등 등... 그런데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대답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 대답은 "도적질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겠다. 보신제를 먹고 오래오래 살겠다"라는 대답이 아니라 바로 "꿈이 없습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것도 열 명중에 한 명이 "나는 꿈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없다!" 얼마나 슬픈 대답입니까?




어떤 사람이 제일 슬픈 사람일까요? 시한부 생명을 사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까? 파산한 사람? 실직 당한 사람입니까? 정리해고 당한 사람입니까? 그보다 더 불행하고 슬픈 사람은 바로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채 인생의 짐을 지고 당나귀처럼 터벅터벅 죽음의 언덕을 오르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난주간에 노회 임원수련회를 하면서 선교지 탐방을 하는 중에 캄보디아를 다녀왔습니다. 세계 7대불가사의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앙코르와트 유적을 자랑하는 1000여 년 전에 세계적인 문명을 자랑하던 나라가 이제 GNP 200불밖에 안 되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을 했으며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만 명을 처참하게 학살한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의 현장이기도 한 나라, 그 나라에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우상이 들끓는 분위기가 역력했으며 부패한 국가지도자로 인하여 백성들이 신음하며 살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희망의 태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독교선교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 중에 유일하게 기독교복음전파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벌써 한국의 선교사가 40명이나 들어가 선교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꿈을 갖기 시작한 백성들을 생각하며 선교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꿈이 없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 그는 꿈으로 인생을 시작해서 꿈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야곱의 가장 아름다운 부인 라헬의 소생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입지 못했던 채색옷(색동옷)을 입고, 아버지의 장막에서 평안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가 지난밤의 꿈을 이야기하자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이 기가 막혔습니다. 말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그를 면박하고, 구박하며 시기합니다. 그 시기의 장면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어릴 때 꾼 태몽을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함께 놀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중의 한 아이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숨을 헐떡이며 자기의 집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자기의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엄마! 엄마가 나를 뱃속에 가졌을 때 무슨 꿈을 꾸었어?" 하고 묻습니다. 어머니가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니? 글쎄다. 엄마가 너를 가졌을 때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몹시 실망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기의 어머니가 자신들을 낳을 때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왜 그런 꿈이 없는 거야! 나는 꿈을 꾸지 못했으니 나중에 커서 큰 사람이 되기는 다 틀렸네!" 하더랍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민족이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묘사해주는 이야기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모든 것을 운명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났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타고난 운명의 액운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하고,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고, 이름을 작명하기도 하고 또 이름을 새로 갈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주팔자를 보면서 자신의 운명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혼을 할 때에는 궁합을 보아서 그것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이사를 갈 때에는 손 없는 날을 택하여서 이사를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갖고 삽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우리 인간이 운명에 얽매이면서 살아가는 것을 올바른 삶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고 자신의 운명의 쇠사슬을 끊고 살아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경말씀은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은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세상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예수님도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머리 둘 곳도 없을 만큼 가난하게 사셨던 예수님이 성공한 사람입니까?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매달려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세상적인 기준에서 성공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만약에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당대에 아주 유명한 학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성경에서 보여주는 바울의 모습보다는 적어도 인간적으로 보면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락한 평화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운명에 내맡긴 채로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꿈을 이루는 데는 4단계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요셉은 바로 이 4단계를 하나씩 올라갔습니다.




보는 단계: 요셉은 꿈을 계속해서 꾸었습니다.




우리가 꿈을 이루려면 꿈은 한 번만 꾸면 안됩니다. 자꾸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모델을 한 번만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없습니다. 자꾸 보면서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꿈을 이루려면 자꾸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사람은 볼 때 꿈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월트 디즈니가 만든 "디즈니 랜드"입니다. 디즈니 랜드를 만든 후에 월트 디즈니는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디즈니 월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는 그가 꿈꾸었던 디즈니 월드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준공식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월트 디즈니가 없는 준공식을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준공식을 구경왔던 한 사람이 디즈니 월드의 설계와 건축을 담당했던 마이크 벤스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디즈니가 이곳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을 떠나서 매우 유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이크 벤스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이 디즈니 월드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디즈니 월드가 여기 있습니다." 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즈니는 죽었지만 자신의 꿈이 성취될 것을 이미 꿈으로 마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디즈니 월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교회는 항존직분자들(피택자)의 훈련 중에 앞서가는 교회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앞서가는 세계와 문화를 보고 꿈을 이루어 가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의 건물이나 시설이나 환경뿐만이 아니라 예배와 영적 분위기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희망적 요인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단계


우리는 꿈을 자신만 알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남에게 이야기해야 됩니다.


5,6 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9절"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요셉은 자신의 꿈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했습니다. 형들이 싫어할지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으나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꿈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그 꿈은 구체화되고 성취의 한 계단을 오르게 됩니다.




행하는 1단계: 요셉은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간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맡은 일을 아주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종으로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눈에 띌 정도로 열심히 섬겼습니다. 이 집에 어찌 종이 한 둘이겠습니까?




파이드로스라는 사람은 "주인에게는 눈이 백 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개 주인 되는 사람들은 나쁜 일은 사람들을 탓하고 잘 되는 일이 있으면 자신이 잘 함으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주인 보디발은 애굽 황실 시위대장입니다. 애굽에서 가장 유능한 자들을 수하로 거느린 주인 중 주인입니다. 그 사람의 눈에 들 정도로 했다면 얼마나 성실하게 했을까요?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늘의 원리입니다. 그림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케치만 잘 그린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스케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윤곽 잡는 것에 불과합니다. 스케치가 그려졌으면 그 다음의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더욱 상세히, 그리고 더 섬세한 작업이 뒤따라야 합니다. 꿈꾸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건물을 짓는데 설계도 그렸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그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렵고 돈도 더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더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의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성실하게 실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행하는 2단계: 요셉은 오뚜기같이 일어서는 사람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성공적인 사람들도 실패한 사람들 못지 않게 자주 실패를 경험합니다. 실제로 평균해 보면 성공적인 사람은 그들이 시도한 것의 5개 중 2개를 실패하며,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5개 중 3개를 실패합니다. 두 사람들 모두 유사점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모두 실패한다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유사점은 모두 실패를 자주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실패란 우리들에게는 매일 계속되는 행사입니다. 셋째로, 죽을 때까지 실패를 계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만이 실패를 막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꿈으로 인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5절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8절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그 이유는 야곱의 가장 사랑 받는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힘든 것은 참는데 불공평한 것은 못 참는다고..." 그러고 보면 세상은 불공평한 일이 많습니다. 집에서 아이들도 주로 하는 불평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이런 불공평을 수없이 받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좀더 강인하게 만드실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오뚜기처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미러를 보고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앞을 보고 차를 몰아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오늘에 주저앉지 말고 내일을 바라보고 다시 시작합시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지혜가 있었습니까? 재산이 있었습니까? 가문이 훌륭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들을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구원의 빛 아래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와 모함에 의해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잘사는 대갓집에서 심부름을 해주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꿈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신앙의 꿈이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질 수 없다는 꿈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자신은 12명의 아들들 중에서 11번째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결코 신앙에 있어서 만큼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한 곡식 단들이 자신의 곡식 단을 향해서 절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열두 명의 아들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요셉의 뒤를 잇는 지파들이 결코 뒤질 수 없다는 꿈을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의 별을 향해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 꿈 자체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꿈 자체가 요셉을 신앙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에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직한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살지 않고 신앙적으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또 요셉은 요령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앙을 따라서 아주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앙을 따라서 사는 중에 요셉은 신앙의 지혜를 얻었고 그 지혜를 가지고 결국은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성공하게 만든 것은 요셉의 꿈 자체가 아니라 요셉이 꿈을 버리지 않고 신앙 안에서 끊임없이 노력한 대가였습니다.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곧 희망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꿈을 가지고 살았던 하나님의 인물들이었지만 특히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꿈은 내일을 살아가는 양식과 같은 것이며, 꿈은 호흡을 원활하게 해주는 산소와 같은 것이며, 꿈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육교와 같은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한시도 꿈을 가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인간은 피곤하고 곤고한 인생을 살뿐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꿈은 정착의 상태에서 떠나서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도록 합니다. 꿈은 안락한 평화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며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도록 합니다. 꿈은 곧 미래에 대한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희망이 없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가 한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곧 희망인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꿈이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꿈을 품고 새로운 꿈을 품고 인생을 살아가면 인생의 새장이 열릴 것이고 꿈이 없이 살아가면 그 사람은 똑같은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달걀에는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정란은 생명이 있는 달걀이요 무정란은 생명이 없는 달걀입니다. 21일 동안 어미닭이 이 알을 품어보면은 유정란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병아리가 태어납니다. 그러나 무정란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곪아서 버리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사실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은 꿈도 하나님이 주신 살아있는 꿈을 가진 자만이 새 생명을 출산하게 될 수 있습니다.




꿈을 주는 장소




교회는 사람에게 꿈을 주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잠자고 있는 성도들을 깨우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좌절된 인간에게 꿈을 주고 회복시켜 주고 새 소망을 갖게 해야 됩니다.




꿈은 그 꿈을 이루기 전에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은 각오를 해야되는데 첫째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 8절 말씀을 보면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참으로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꿈을 갖게되면 꿈 때문에 미움을 받게된다는 사실 알아야 됩니다. 또 우리가 누구에게 사랑 받게 되면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미움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받지 못하는 악한세력들은 사랑 받는 우리를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신념은 부정적 현상을 초래합니다. 하나님과 맺는 관계 혹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선택하셨을 리 없지. 하나님은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은 내 존재를 기억 못 하실 지도 몰라. 나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난 언제나 재수가 없는 사람이야. 나는 지지리도 복 없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자신의 신념이 됩니다. 물론 그 신념대로 나타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존재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신념을 갖는 것,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운행을 주재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을 믿는 사람은,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지원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고 반복하여 소리내어 외치는 작업은 아주 좋은 행복의 길이 됩니다.




자기 향을 만들 수 있는 창조성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꽃은 이미 생겨나면서부터 향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꽃은 자기 향기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향기를 선택해서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선택해서 자기 향을 만들 수 있는 창조성은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또한 꽃들은 그저 주어진 만큼의 향내만 내지만,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향내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겁니다. 물론 향내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악취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진하고 달콤한 향내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향내는 자신이 만드는 겁니다. 어떻게 그 향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존재"라는 자의식, 그런 믿음이 그 향내를 만드는데 아주 좋은 길이 됩니다.




우리는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바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영혼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운명이 밝게 피어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피어오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형들의 미움, 아버지의 신중치 못한 처신,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의 등장이라는 요소를 끼워 넣어, 이집트로 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낯선 땅에 가서 살아야 하는 시련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역시 그런 종류의 시련을 여러분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련은 장차 여러분이 입을 크나큰 은총의 뿌리입니다. 그러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분의 집중적인 지원과 섭리에 의해 여러분의 인생이 꾸려져 나감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활짝 피어오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된 운명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요셉은 그 꿈 자체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꿈 자체가 요셉을 신앙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에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직한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살지 않고 신앙적으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또 요셉은 요령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앙을 따라서 아주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앙을 따라서 사는 중에 요셉은 신앙의 지혜를 얻었고 그 지혜를 가지고 결국은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성공하게 만든 것은 요셉의 꿈 자체가 아니라 요셉이 꿈을 버리지 않고 신앙 안에서 끊임없이 노력한 대가였습니다.




여러분! 이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꿈을 꾸고 살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운명의 사슬로 스스로 묶어 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의 꿈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배에 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통해서 새창조의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이미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장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차 여행을 하다보면 긴 터널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 터널을 지나간다고 해서 미친 듯이 발광하고, 책을 집어던지고, 기차표를 찢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조금만 참으면 밝은 세상이 나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나가십니다. 오늘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내일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꿈을 먹고사는 소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꿈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꿈의 사람은 미래를 보고 살므로 현실에 묶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제 꿈이 없으면 꿈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희망이 없으면 희망을 빚어야 할 것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과 개인은 멸망하고 맙니다. 꿈이 없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선교의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꿈을 잉태하고 만들어서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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