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식 2001-12-11 21:01:16 베드로후서 1:1-2 베드로전서 말씀은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할까? 어떻게 사원들을 거느릴까? 어떻게 나라를 섬길까? 어떻게 남편을 섬길까? 어떻게 아내를 사랑할까? 핍박을 당하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구체적인 삶의 교훈이 많았습니다. 베드로전서 강해는 지난 시간에 끝이 났고 오늘부터 베드로후서에 들어가게 되는데, 베드로후서는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쓰고 천당으로 이사간 편지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유언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를 쓸 때도 베드로의 눈이 어둡고 손이 흔들려 자기가 직접 쓰지 못해 실루아노를 통해서 썼습니다. 그러니 후서를 쓸 때는 더 쇠약했습니다. 이 마지막 편지를 쓰고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물론 성령의 감동으로 이 편지를 썼지만, 그는 여기에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나누는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금보다 귀한 진리를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두 가지 측면으로 소개합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a servant of Jesus Crist) 시몬 베드로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servant, 예수님의 하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최고 제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제일 먼저 깨닫고 고백해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가장 가까이 두신, 품에 두신 제자입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도,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도 그를 곁에 두셨습니다. 중요한 일은 다 그에게 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만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이라. 너,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치라. 너, 나를 사랑하니?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그를 최고로 높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15절을 보면, "너희는 나의 종이 아니다. 나의 친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교회가 베드로를 예수님처럼 우러러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걸어가고 있는데, 병자가 그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이 낫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분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위대한 사도, 백발이 성성한 사도가 자신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그의 겸손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를 귀하게 쓰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다가 교만해져서 버림받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주의 종이나 성도나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하여 축복을 받았는데 교만해져서 망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의 모든 목사님들이 전도사님이었을 때보다 더 겸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의 모든 장로님들이 집사님이었을 때보다 더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시원해 하시겠습니까? 십일조를 한 달에 1800만 원, 5000만 원을 해도 5만 원 할 때보다 더 겸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모두 겸손의 챔피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랑스의 한 유명한 후작은 어릴 때 남의 집 하인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을 빌려서 틈틈이 공부했습니다.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중합니다. 공부는 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 뗘날 때까지 무엇이든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하면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답니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에서 550명을 임상 실험했는데, 특별히 청년 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답니다. 또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책을 읽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답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치매에 잘 걸리는데, 특별히 텔레비전을 많이 본 사람이 치매에 잘 걸린답니다. 여러분이 TV를 켤 때마다 치매에 가까이 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공부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됩니다. 남의 집 하인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한 그는 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아는 사람이 되어서 후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후작은 5등급의 작위 중에서 둘째 작위, 공작 다음의 작위입니다. 이제 그는 큰 저택에서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사는 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하인의 방'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그가 어릴 때, 남의 집의 종으로 있었을 때 입었던 옷과 낡은 모자, 또 그때 사용했던 용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 씨의 하인이었다.'라는 큰 글이 있었습니다. 그 집을 방문한 사람이 방을 왜 그렇게 해 놓았느냐고 물으니,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그 방에 들어가 내가 과거에 하인이었다는 것을 되새기며 마음을 추스르고 교만을 물리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매일같이 제 책상에 꽂아 놓은 예전의 교회, 초라한 교회의 사진을 보고 저를 봅니다. 겸손이야말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사람에게 귀히 여김을 받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나는 예수님의 종이고 동시에 사도다.' 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사도다.' 이것은 겸손의 측면과는 다른 말입니다. 얼마나 당당한 말인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는 말은 '나는 예수님의 직무 대리자다. 나는 천국의 대사다.'라는 뜻입니다. '로마 황제든 누구든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 라는 당당함이 있는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의 모든 목사님들에게 이런 당당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모든 목회자들이 베드로처럼 이런 권세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이 한국에 파송한 주한 미 대사는 미국의 권세와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천국의 권위와 권세를 다 갖고 있는 의식으로 '나는 사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모든 종들은 파송 받은 대사의 의식이 있어야 되고, 모든 교우들은 주의 종을 그렇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설교자를 존경하지 않으면 그의 설교를 들어도 은혜 받지 못합니다.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15절에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희 중에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나타나기를 원한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대접받으려고 위대하게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위대하게 되어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4장 14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목사를 생각할 때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복 있는 자입니다. '목사님! 아이고, 조심해야지.' 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목사 말이야….'하면 끝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은 위대한 목사님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되고, 또 모든 교우들도 목사님을 구별을 해야 됩니다. 어제 저녁에 어머니랑 아내랑 아들이랑, 제 동생이랑 함께 기도할 때, 제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우리 양곡교회와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위대하게 써 주세요. 제가 위대한 종이 되게 해 주세요." 저는 제가 위대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는 베드로가 살던 당시의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간직한 여러분과 저도 포함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베드로후서는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편지다. 베드로의 편지다." 베드로의 편지가 하나님의 편지인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Individual로, 개인적으로 주신 편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공부하고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이 편지를 쓸 때 양곡교회가 이 말씀으로 은혜 나눌 것을 몰랐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이 편지가 쓰여질 때 양곡교회도 이미 생각하신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2절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이 한 마디에는 베드로 일생의 믿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야, 그물을 깊은 데로 던져라." 깊은 데로 그물을 던졌을 때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는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동안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은혜를 받지만, 처음에는 은혜도 부족하고 평강도 부족해서 불안한 때가 많았습니다. 떡이 떨어져도 불안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서도 풍랑이 일어나면 침몰할까 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니 그는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풍랑도 잠잠케 하시고,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이기시고 사탄을 결박하시고,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신 예수님, 다시 재림하실 예수님을 생각하니, 또 죽는 순간에 천국으로 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헤롯 왕의 칼에 순교 당해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자기가 끌려나가 순교를 당하게 되어 있는데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쿨쿨 잠을 잔 것은 한량없는 은혜와 평강이 그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은혜가 임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기뻐하게 됩니다. 마가렛 코트는 세계 테니스계를 석권해서 테니스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인기, 명예, 돈을 다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쓸쓸하고 공허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그 친구가 자기보다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인기가 있고 돈도 많은데, 어찌 친구는 기쁨이 충만하고 자신은 공허합니까? 그래서 진지하게 그 이유를 물으니,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마가렛, 우리 집에 와서 하루만 살아보면 알게 될 거야." 마가렛이 그 집에 갔습니다.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집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집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온 식구가 모여서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다음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마가렛, 아마도 너의 집과 우리 집의 차이는 가정 예배일 거야. 우리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에배를 드리면서 살아." 그가 충격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2층에서 자고 있는데 창문이 바람에 닫혔다 열렸다 했습니다. 창문을 닫은 뒤 커튼을 정리하고 돌아서는데 그의 심령에 우리 주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나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주님! 그동안 제가 주님을 너무 멀리 떠나 있었어요. 너무 멀리 주님을 떠나 살았어요."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쳐서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다 가졌다고 행복하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못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욕심 많은 남자가 길을 가다가 요술 램프를 주웠습니다. 혹시나 싶어 책에서 배운 대로 램프를 문지르니, 요술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드리지요." 그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갖고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돈도 있어야 되고, 여자를 만나 장가도 가야 되니, 한 가지 갖고는 안 되었습니다. '돈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여자도 필요하고….'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한꺼번에 말하자.' 램프의 요정에게 말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 돈, 여자 결혼." 그래서 그만 돈 여자, 정신이 이상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설사 그 청년이 돈도 얻고 결혼도 했다 한들 행복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신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내가 건강할 때는 평안하지만 병들면 아닙니다. 내가 가졌을 때는 평안할지 모르지만 잃으면 아주 불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평강은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유할 때나 잃었을 때나 언제나 솟아납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 주님의 평안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 평안은 건강의 평안이라기보다는 마음의 평안, 심령의 평안을 말합니다.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세요. 힘있게 걸어들어 간 사람이라도 조사를 받고 나올 때는 후들후들 떱니다. 또 6억을 부도 맞아 보세요. 건강한 사람이라도 금방 무너집니다. 얼마 전에 서울의 한 사업가를 만났는데, 6억이 부도났답니다. 그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도 난 것은 딱 잊어버립니다. 딱 잊어버립니다." 부도난 것을 생각하면 병든답니다. 그래서 부도난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새 사업체를 뚫고 새 사업을 위해 머리를 쓴답니다. 여태까지 사업하면서 받은 수표 중에 부도난 수표가 많았지만, 다 잊어버리니 지금도 사업을 잘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10억짜리 수표가 부도나면 건강한 사람이라도 무너지고 맙니다. 마음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평안이 강같이 흐릅니다. 할렐루야! 이런 은혜, 이런 평화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 이 평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비례합니다. 깊이 알고 많이 알면 더 깊은 은혜, 더 많은 평화를 누리게 되고,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면 그만큼 불안합니다. 알수록 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운전할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운전 기술을 배우고 교양을 배웠지만, 초보 운전 때에는 얼마나 불안합니까? 초보 운전자와 노련한 운전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노련한 운전자는 운전대에 앉으면 앞, 양 옆, 뒤의 차가 눈에 다 들어옵니다. 그러나 초보자의 눈에는 앞의 차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에 힘이 들어가고, 눈은 마치 놀란 토끼 눈과 같이 됩니다. 이번 추석 때 '핵초보'라고 써 붙인 차를 보았습니다. '내 차 가까이에 오면 터질지 모르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보니 무서웠습니다. 왕초보든 핵초보든 초보자는 운전이 얼마나 힘들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초보 운전자는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나 10년, 20년 동안 운전해 온 사람, 운전에 노련한 사람은 여유있게 휘파람을 불면서, 이야기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처음 믿을 때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니 불안합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믿어도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평안하구나.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많이 알수록 큰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와 같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아, 하나님을 많이 알고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아서 많은 은혜, 많은 평화를 누리라." 세상의 지식도 중합니다. 일본어를 알면 일본에 가도 편안합니다. 저희 어머님은 일본어를 잘 하십니다. 그러니 일본에 가실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십니다. 독일어를 알면 독일에 가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면 화장실 찾아가기도 어렵습니다. 영어를 알면 미국에 가도 편안합니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면 미국에 가서 제대로 먹지도 합니다. 서울의 모 사장 부인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회의하러 가서 자기 혼자 호텔에 있는데 배가 고프더랍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고 영어를 모르니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답니다. 그런데 전화기를 어떻게 만지다보니 신호가 갔는지 웨이터가 왔더랍니다. 무엇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영어를 못해서 "꼬끼요! 꼬끼요!"라고 했더니, 닭을 갖다 주어서 그것을 먹었답니다. 모르면 불편한 것이 많고, 알면 그것이 힘이 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지런히 배워야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아무리 공부해도 그것으로 용서함 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고, 영생 얻지 못하고, 천국에 갈 수 없고,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큰 은혜와 평강을 누리면서 살다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배우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게 됩니까? 교회 생활의 나이테가 많아져야 됩니다. 신앙의 연도가 많아져야 됩니다. Annual ring은 나이테입니다. 어린 묘묙,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어린 묘묙은 토끼가 지나가도 쓰러지고 사슴이 밟아도 꺾입니다. 그러나 나이테가 30년, 40년 된 큰 나무는 호랑이나 사자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는, 예수님을 믿은 지 1년, 2년 되었을 때는 불안한 것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불안합니다. 그러나 10년, 20년, 30년 믿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알게 됩니까?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으면 설교의 나이테가 많아지니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됩니다. '아하! 그래. 아하!' 그래서 평안한 믿음 생활, 은혜로운 믿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많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일 낮 예배에만 나오시고 밤이나 삼일 예배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은 나이테가 그만큼 적습니다. 주일 낮에만 나오시는 분은 설교를 1년에 52번밖에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일 밤과 삼일에도 나오시는 분은 1년에 156번을 듣습니다. 새벽에 나오시는 분은 500번을 듣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쌓이니 얼마나 큰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더 쌓이게 됩니다. 제가 성경을 어떤 부분은 삼천 번 읽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백 번 정도 읽었습니다. 이렇게 권마다 조금 다른데, 읽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새로워집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사야 43장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읽다가 제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모를 때는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아 놓고도 또 괴로워하는데, 이 말씀을 알면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를 절대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이야.'하니 얼마나 평안한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불안할 때도 이사야 41장 10절을 공부한 사람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이 떠올라 평안하고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네. 나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네. 그것도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분이네.' 얼마나 든든합니까? 하나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전능하심을 아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 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인 자기 아들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무심코 들었습니다. 아들의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너의 아버지는 능력이 있지 않냐? 그러니까 너의 아버지께 부탁해 봐. 너의 아버지는 능력이 있어서 대번에 해 주실 거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자기 아들이 말했습니다. "에이, 우리 아버지는 능력 없어."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뭐! 내가 능력 없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셔.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셔.'하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할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것도 우리가 공부를 해야 압니다. 그런데 가장 실감나게 하나님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따라합시다. "실험하자. 실습하자. 연습하자." 공수 부대 대장으로 계셨던 한 장로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용감하고 배짱 좋고 힘있는 젊은이들이지만, 특별히 뽑은 특수 부대원들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수십 리 공중 위로 올라가서 낙하 훈련할 때, 특별히 첫 낙하 훈련 때는 모두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뛰어내리지 않는답니다.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도 꽉 붙잡고 뛰어내리지 않는답니다. 떨어지면 죽을까 봐 겁이 나서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확 밀어서 떨어뜨린답니다. 그러면 떨어지는데, 떨어져 보니 낙하산이 좍 펴져서 죽지 않습니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계속 훈련을 받다 보면 '낙하산을 쓰고 내리면 죽지 않네.'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즐겁게 기쁘게 뛰어내리면서 세상을 구경하고 즐긴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도 처음에는 '주일을 지키다가, 주일에 가게 문을 닫았다가 망하면 어떻게 할까? 십일조를 드리다가 경제가 어렵게 되면 어떻게 할까? 너무 정직하게 살다가 어렵게 되면 어떻게 할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해보면 알게 됩니다. "아하!" 따라합시다. "말씀대로 되는구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구나." 그래서 나중에는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은 부부 생활을 즐깁니다. 그러나 제 아내하고 결혼한 처음에는 아내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다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도 없이 싸웠습니다. 어떤 싸움은 한 달간 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3일, 어떤 때는 일주일 동안 싸웠습니다. 어떤 때는 몇 시간만에 끝내기도 했습니다. 11년간 수없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아내를 다는 몰라도 아내의 눈치만 보아도 조금은 아니, 아내는 제 눈빛만 보아도 저를 아니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얼마나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지 모릅니다. 알면 알수록 좋은 것입니다. 제가 아내와 살아보니 '아! 괜찮은 여자네. 아! 괜찮은 여자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사는 것입니다. 제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귀면 사귈수록 불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불행합니다. 그런 사람은 고쳐 나가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오래 놀다가 늦게 돌아오니, 의심이 생긴 이브가 막 따졌습니다. "어떤 여자랑 만났기에 이렇게 늦게 왔어요?"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 에덴 동산에 당신 말고 여자가 누가 있다고 그러는 거요?" "하나님께서 나 모르게 다른 여자를 만들어 주셨는지 알게 뭐예요?" 그렇게 싸우다가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는데 가슴이 이상해서 아담이 눈을 떠보니 이브가 자기 가슴을 막 만지고 있었습니다. "당신, 뭐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보세요. 당신의 갈비뼈가 몇 개인지 세어 보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다른 여자를 만드셨을까 봐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를 세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부부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훌륭한 남편과 훌륭한 아내, 믿음직한 남편과 믿음직한 아내는 서로 알면 알수록 편안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실험을 해 봐야 됩니다. 찰스 스텐리 목사님이 아틀렌타에서 좋은 집을 보았습니다. '아하! 이 집에 살아야 되겠네.' 너무 좋아 '하나님, 저 집을 제게 주세요. 우리에게 주세요.' 기도하고, 대부를 받으려고 은행에 가서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왜 거절할까? 기도하고 갔는데….' 그 다음날 태풍이 왔습니다. 폭우가 내렸는데 그 집이 물에 반이나 잠겨 버렸습니다. 그 집을 얻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아하!" 태풍이 끝난 다음에 언덕에 있는 좋은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집을 사기로 하고 은행에 가니 금방 대부를 해 주어서 그 집에서 8년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목사님이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응답되는 것도 축복이고, 안 되는 것도 축복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많이 알아서입니다. 경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목회를 즐깁니다. 설교를 즐기고, 설교 준비하는 것을 즐기고, 목회를 즐깁니다.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 죽을 쓰는 설교를 하면 어떻게 하나?' 지금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신다. 은혜는 반드시 주신다.' 혹 교회 안에 걱정이 있어도 이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도 좋고 안 좋은 일도 지나면 좋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몰려와서 물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주 걱정되고 긴장되고 초조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감정을 추스릅니까?" "예, 휘파람을 불지요." "아니, 각하께서는 한 번도 휘파람을 부신 적이 없다면서요?" "그럼요. 나에게는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 없었기에 휘파람을 불 일이 없었지요." 유명한 말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는데, 그 거대한 나라에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루즈벨트는 '하나님은 미국을 사랑하신다. 나를 대통령으로 세워 주셨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는 믿음 때문에 태산 같은 문제가 와도 '괜찮다! 합력해서 선이 된다.' 하며 걱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번에 미국의 심장부가 충격을, 타격을 받아 상처를 받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로 교회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는 것이 처음이랍니다. 주일마다 각 교회에 미국의 시민들이 모여든답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아하! 하나님이 세워 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구나.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구나.'하고 깨달아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어 2차 대전 이후로 이렇게 많이 모이기는 처음이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픈 일을 통해 오히려 미국에 축복을 내리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수록 걱정과 근심은 없어지고, 은혜와 평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말씀대로 실습을 많이 해서 더 큰 은혜, 더 큰 평강 속에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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