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며 사는 삶 4월 22일 2001-12-10 18:37:31 □ 이기며 사는 사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장 33절> 지난 주일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기에 그의 다시 살아나심은 우리 성도들에게 여러가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케 하였습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죽음을 모든 해결의 근거로 알고 있던 자들에게 죽음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 이 세상에서의 행동반경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큰 변화는 바로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두려움에 둘러쌓였던 제자들에게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게 하였습니다. 1. 부활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온갖 핍박을 이깁니다. 세상의 관헌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소식이 퍼져나가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금하였습니다. 마치 과거의 군사정권시절에 유신헌법을 공포하고 대통령 긴급조치로 금하였던 것처럼,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이런 저런 말하는 자들은 모두 검거하겠다는 포고령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세상 관헌의 말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교육수준도 낮았고, 사회적 지위도 낮았던 저들이 어떻게 그러한 용기가 생겼을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의지력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한 주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었습니다. 부활은 곧 능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능력으로 더욱 나가 전파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드디어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으로 모든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이 정작 총 칼로 위협하면 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움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보면 이것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이렇게 박해 속에서 성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편안하고 한가한 중에서는 신앙은 성장하기 힘듭니다. 사람이 편안해지면 나태해지기 쉽고, 나태한 중에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아무런 박해와 핍박이 없는 중에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널리 퍼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살기가 등등한 사울과 같은 열심 있는 자들이 예수의 무리들을 모두 검거해야 하겠다는 그런 고조된 열기가 있었기에 더욱 더 부활의 소식은 퍼져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로부터 나사렛 예수의 무리들을 검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그 권한을 부여받아 직접 검거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박해로 시작되었고, 박해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가하면, 한편 로마제국은 그 넓은 영토를 하나로 다스리기 위하여 황제를 신격화하여 정복한 나라들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을 모두 검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당해야 하였습니다. 하나는 종교적으로, 다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모두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로부터 밀고를 당해야 했고, 로마 관헌들로부터 불경죄로 구금과 구속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신자들은 외적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은 퍼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 중에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더 강해집니다. 핍박이 없이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한 고비를 넘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한번은 당황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한 후에야 튼튼한 신앙 위에 서게 됩니다. 간증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모두 하나같이 핍박 속에서, 고통 중에서 은혜를 체험한 말들입니다. 지금 우리 중에 핍박과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영적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2. 부활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상의 온갖 불의한 세력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항상 <진리>가 비 진리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정의>가 불의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항상 세상의 어두움의 힘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혼자서는 도무지 이겨낼 수 없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긴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만이 세상을 이기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온갖 불의가 성행하여도, 그리고 그것이 좌지우지해도, 결국은 승리는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불의한 세력의 도전을 받으며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14-17절에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잘못되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의 자녀들을 본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에 숨겨진 불의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긴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기었습니다. 이기되 총 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기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유일한 힘입니다. 베드로전서 2:11-1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곳에는 승리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불의와 거짓의 위협은 잠시 승리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진정한 승리는 못됩니다. 진정한 승리는 주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3. 부활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신을 이깁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대상이 누구냐?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생각이 일치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서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내 뜻과의 상반된 충돌에서 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기에게 지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 사도는 이런 경우에 『육의 사람』 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의 사람’이란 육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며, 육신이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갈등이 있고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마음에 평안을 누리지 못함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으로 되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잃어버렸던 자기의 위치를 되찾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앙리 누웬>은 화란 태생으로서 화란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들어가 공부를 한 후 목사와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노틀담대학, 예일대학,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유능한 교수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직자가 되고, 교수가 되고, 저술가가 되었으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명예로나 어떤 면으로 보던지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회의가 찾아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으나, 그의 영적인 사람으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얼마나 성공했는가? 라는 회의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알고, 가르친 대로 한다면 지금쯤은 ‘작은 예수’가 되었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직도 자기를 앞세우고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결단했습니다.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장애자 수용소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치었습니다. 이 같은 자신의 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In the name fo Jesus)라는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결국 이기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아직도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느 순간에 우리는 모두 자기를 부인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음지에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어떤 사람들입니까? 믿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신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돈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깁니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지식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깁니다. 재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재능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깁니다. 명예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명예와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깁니다. 모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주님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모든 고난과 세상의 핍박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능력을 받아 승리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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