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부부생활(2) 2001-12-08 15:18:36 (엡 5:25-33)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지난 주일에는 성도의 부부생활 중에 아내들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아내들에게 그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했다고 했습니다. 그 복종이란 여자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보여야 할 미덕인데, 가정에서는 부부관계에서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그 복종이란 굴종이나 맹종이 아닌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인격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라고 했습니다. 또 그것은 소극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사장시킨다든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의 특기나 재능을 살려 남편을 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이 어떤 사람이든지 아내로서는 보여야 할 태도이며, 또 한번 두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보여 주어야 할 태도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그 말씀을 듣고 예배당을 나가던 남편들의 모습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는데 제가 제대로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남편들에게는 그런 기세가 필요합니다. 요즈음 우리 남편들의 모습이 말이 아닙니다. 한 때 고개 숙인 남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남자들의 기가 죽어서 사회적인 문제까지 되었는데, 결국 그런 남자들의 기를 살려 줄 분들은 가정에서 아내들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는 아내를 가진 남자는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기가 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아내들의 역할은 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아내들의 복종,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내들만 복종하면 되겠습니까? 오늘날 가정의 모든 문제가 아내들이 복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만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 부부의 문제는 언제나 쌍방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도 아내의 의무를 다 해야 하지만 남편도 남편의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심지어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문제까지도 남편들이 남편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남편들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는데, 우리 남편들, 지난 주일에는 의기양양하게 나가셨지만 오늘은 어깨가 좀 무거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남편의 의무는 어떤 것입니까? 성경은 남편에게 그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아내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이 사랑을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헬라어에는 사랑을 가리키는 단어가 네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나는 에로스(Eros)인데, 이것은 육체적인 감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필로스(Philos)가 있는데,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 우정 같은 것을 의미하고 스톨게(Storge)는 부모님의 사랑 같은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아가페(Agape)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남편 된 자들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바로 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준이 높은 사랑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은 주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25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아가페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주되, 무엇까지 주는가 하면, 자신까지 주는 희생적인 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이렇게 주는 사랑입니다. 주되 희생적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렇게 주라는 말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합니다. 희생적으로 주어야 합니다. 자기 몸도, 자기 재물도, 자기 시간, 삶 전체를 다 주어야 합니다. 요즘 남편들, 저를 위시해서, 아내에게 주는 것 잘 못합니다. 받기는 잘 하지만 주는 것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늘 대접을 받습니다. 받는데 익숙해서 주는 것을 못합니다. 한국 남자들이 잘 주는 것이 하나는 있습니다. 월급봉투 하나만큼은 철저히 줍니다. 아내들은 그것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노쓰 캐롤라이나에서 목회할 때 미국사람과 결혼하여 사는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남편이 한번은 이웃 친구들을 만났는데 하는 말이 너는 참 좋겠다고, 한국 여자들은 남편들에게 얼마나 싹싹하고 상냥하고 복종을 잘 하느냐고, 자기들도 동양 여자들과 함께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하는 말이 "야, 너희들 몰라서 하는 말이야. 한국 여자들 겉으로는 싹싹하고 상냥한 것 같지만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나는 월급을 받으면 k송두리째 아내에게 바쳐야지 그렇지 않고 조금만이라도 떼었다가는 큰 일 나" 그랬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보더라는 것입니다. 미국 남자들은 아내에게 봉급봉투 다 주지 않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통장을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이해타산에 밝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혼할 때 보면 쉽게 이혼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남편들은 거의가 다 봉급봉투는 아내에게 갖다 바치잖아요? 그것도 큰 사랑입니다. 우리 아내들,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봉급봉투 갖다 주었다고 해서 어찌 사랑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은 돈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는 기적을 베풀어 먹을 것을 주시고, 때로는 아픈 병자들을 고쳐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기도 하셨지만, 그 정도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결국은 자기의 목숨까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시간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들이 필요하면 피곤을 무릅쓰고 그들과 함께 했으며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다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은 남편이 아내를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가진 모든 것, 나 자신까지 다 줄 수 있는 사랑,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랑은 목표가 있는 사랑입니다. 여기 26절과 27절을 봅시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해서 목표를 가지셨습니다. 어떤 목표입니까? 우리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드시려는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그렇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흠과 죄가 많은 우리를 세워주시고 더러운 것을 닦고 모자란 것을 키워서 영광스런 신부로 손색이 없도록 키워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도 아내를 사랑하되 이런 목표를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영광스러운 존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성장을 위하여, 아내의 발전을 위하여, 아내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아내가 자랑스럽게 되게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애쓰는 것보다 더 노력하고 투자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외모나 건강을 위해서만 아니라, 내면적인 삶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서 아내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까지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편이 아내에게 보여줄 진정한 사랑입니다. 저는 남편들이 아내를 키워 주기 위해서 공부도 시키고 전공을 살려 주기 위해서 애쓰는, 그런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그런 남편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유명하게 되고 자기가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아내의 성공과 아내의 보람을 위해서 애쓰는 남편, 그래서 아내가 잘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유명하게 되는 것을 자기가 그렇게 되는 것보다 더 기뻐하는 남편들...얼마나 훌륭한 남편들입니까? 그것이 사랑입니다. 반대로, 자기 성장이나 발전에는 있는 힘을 다 기울이면서도, 아내는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남편들... 그러면서 여자들이란 집 안에서 밥이나 짓고 청소나 하고 빨래나 하는 존재처럼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그런 남편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다 주고 많은 것을 갖다 준다해도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진정한 아가페의 사랑에는 아내를 키워주고 발전시켜 주려는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남편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아내가 나에게 시집 와서 그 전보다 발전했는지 퇴보했는지, 전보다 더 멋있어 졌는지 추해 졌는지, 더 거룩해 졌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여러분을 만나서 더 나아졌을 것입니다. 물론, 마음에는 원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최소한의 행동이라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제가 이제까지 본 바로는 대개 아내를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 최선을 다 한 남편들은 그렇게 하고도 그렇지 못한 것처럼 생각해서 미안해하지만, 거꾸로 그런 마음이 없이 자기 위주로만 산 남편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못 해 준 것 무엇이냐 하면서 더 고자세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제 말씀을 듣고 아내를 키워주지 못했다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오늘 집에 돌아가서 마음을 전하고 그렇게 해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해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의 아내의 마음이 뭉클할 것입니다. 마음만으로도 감격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아내에게 못 해 준 것이 무엇이냐, 제 까지 것이 내게 시집와서 이만큼 살았으면 되었지' 하는 생각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아직 마음 속에 아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이란 내 위주로 생각하는 것 아닙니다. 남을 배려하고 나의 성장이나 발전보다 남의 성장이나 발전을 더 생각하며 남의 발전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줄 아는 마음 자세입니다. 세 번째로, 이 사랑은 보양하는 사랑입니다. 28절과 29절을 읽어봅시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이 사랑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보양하는 것과 같이 보양하는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몸을 보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양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뭐가 들어오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눈꺼풀이 딱 닫히고, 물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해서든지 음료수를 찾아 마십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 몸처럼 남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기 몸은 얼마나 위합니까? 그래서 몸에 좋다고 하면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 아내를 위해 돈을 쓰고, 약을 사는 일에 내 몸을 보살피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보양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주어 교회를 세우셨고, 지금까지 2천년이 넘도록 교회가 이렇게 존속해 오고 성결을 지켜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보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교회를 위해 중보하시며 교회의 모든 필요를 보양해주십니다. 어떻게 보양하셨습니까? 교회를 위해 말씀으로 보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66권의 성경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ㅎ해 주십니다. 또 기도로도 보양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보양하고 계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듯이 성령님께서 교회 안에 또 우리 안에 계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감화 감동하십니다. 우리의 아내 사랑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보양하시듯, 내가 내 몸을 보양하듯 아내를 보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의 아내를 보양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아내에 대해 책임을 느끼십니까? 아내가 영적으로 자라도록 늘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공급하고, 말씀을 배우는 자리에 나아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 남편들 보면 영적인 면에서 늘 아내의 도움을 받습니다. 영적으로 아내를 도와주는 남편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들이 이렇게 영적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을 때, 마음속에 진정한 만족을 얻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에 대해 불만족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 늘 들어가는 것이 남편의 무기력한 영적 지도력입니다. 남편들이 오히려 신앙생활에 짐이 되고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자신을 말씀으로 붙잡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남편이 자꾸 넘어지고, 약한 소리를 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아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 하는 말입니다. 남편들은 영적인 면에서 아내를 보양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의 몸은 무쇠가 아닙니다. 아내들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한계를 알아서 아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피곤하거나 고독해지지 않고, 너무 힘들지 않도록 아내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행복 비타민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피곤할 때 비타민 한 알을 먹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새 힘을 주는 것처럼 아내를 위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사랑이 담긴 행동 한 가지를 함으로써 아내의 모든 피곤이 씻어지고 새 활력을 얻어 주부의 위치에서 가정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비타민 역할을 해주는 것이 결국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복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가정의 문제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데서 오고, 아주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적은 데서 오는 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부 생활의 원리를 무시하거나 불순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희생적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아내를 키워주고 성장시켜주며 거룩하고 영화롭게 해주는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 몸을 보양하듯 아내를 내 몸처럼 보살피고 양육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며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요즈음 우라 나라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가 급증하는 이혼율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작년에 하루 평균 915쌍이 결혼하고 329쌍이 이혼함으로 3쌍에 1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70년에 비해서 10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으로 가정 해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립아동보호소에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들의 80% 이상이 이렇게 깨어진 가정에서 갈 곳없는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양로원에도 자녀들이 결혼관계가 깨어짐으로 부모들이 갈 곳이 없는 경우를 봅니다. 부부관계는 가정의 가장 기본단위이며 핵입니다. 이것이 붕괴되면 자녀를 올바로 키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올바로 되지 않으면 부모님을 바르게 모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부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는데, 그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의 아내들과 남편들이 이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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