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복 2001-12-08 15:10:11 (엡1:3~12)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하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를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찬송해야 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가운데 하나인 선택의 복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또 그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사 아들들이 되게 하심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입술로, 행동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령한 복, 또 한 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구속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구속'이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이 '구속'이라는 말은 당시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 로마제국에는 6백만 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있어서 그들을 사고 파는 노예시장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친척이나 친구가 노예인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 그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를 위해서 반드시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때 노예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지불해 주는 돈을 속전이라고 했고, 또 그렇게 돈을 주고 사서 자유롭게 해주는 행위를 구속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도 다 노예였다고 합니다. 어떤 노예였는가 하면, 죄의 노예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 8:34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하셨습니다. 또 롬 7:14에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죄 아래 팔렸다"고 합니다.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죄의 노예상태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롬 7:19) 그것이 다 죄 아래로 팔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롬 7장에 보면 바울은 그런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그는 그런 절규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바울은 자신이 죄 가운데 살고, 죄의 얽매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절망적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종으로 태어납니다. 마치 노예들이 태어날 때 부모를 노예로 두면 자신도 노예로 태어나는 것처럼 조상들이 다 죄인이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에 얽매여 어쩔 수 없는 죄의 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우리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시대에 살기 때문에 잘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벤허같은 영화를 보면, 벤허라는 사람이 노예가 되어 참담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든지, '뿌리'라는 영화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이 나면서부터 노예로 태어나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돈으로 팔려가는 것을 봅니다. 이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살아있지만 산 것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는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노예라는 상태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세끼 밥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호화롭게 산다해도 그 마음에 진정한 낙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죄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죄에서 태어나 죄를 짓고 살다가 죄로 인해 멸망받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정말 이 죄라는 것은 우리를 속박하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안지으려해도 죄를 안지을 수 없는 우리 자신, 이것이 우리의 죄의 종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셔서 죄에서부터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옛날에 노예를 사서 그를 자유케 해준 것처럼, 죄에 매여 살다가 죄로 멸망받을 수 없는 우리를 값을 지불하고 사셔서 더 이상 속박받지 않는 자유의 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불하신 값이 무엇입니까? 여기 보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피는 곧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피를 내t셔서 그 값을 가지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작은 것이라도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육체적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영원히 죽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멸망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죄의 삯을 지불할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은 죄의 노예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분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야만 죄의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죄없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구속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없이 사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혀 살을 찢고 피를 흘려 값을 지불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갚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려 죽음으로 우리 죄의 값을 다 지불하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자식을 바치겠습니까? 자식을 내놓고 좋은 것을 구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엄청난 은혜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하셨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은혜 속에서 구속함을 받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롬 5:7, 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에게 무슨 의가 있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는 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릴 위해 아들을 보내사 구해주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찬송하며 감사,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속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아래 보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복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과 죄사함이 같은 말로 나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구속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죄사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비싼 구속으로 인해 죄사함을 입습니다. 이 죄 사함은 부분적인 것이 아닌완전한 죄 사함입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구속함이 이 모든 것을 갚고도 남을 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롬 8:1에서 한 말이 그것이 아닙니까? 그 앞 7장에서는 계속 죄의 노예로 있는 우리의 비참함을 말합니다. 24절에서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합니다. 그러다가 25절에 이르러서는 찬송을 부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면서 찬송합니다. 그리고 8:1절에 이르러서 무어라고 합니까? 따라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여러 가지로 확신시켜 줍니다. 시 103:12에 보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사 44:22에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렘 31:34에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미가서 7:19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하셨습니다.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다시 죄 때문에 염려할 것 없습니다.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죄는 이제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말은 이제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를 지었고 습관적으로 앞으로도 죄를 지을 것입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우리를 속박하거나 멸망시키지는 못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히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제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피를 흘려, 비싼 값을 치러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는데 우리가 또 죄를 지으면 얼마나 염치가 없습니까? 그래서 구속의 의미를 깊이 아는 사람은 죄를 못짓습니다. w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멀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난 다음에도 죄를 지으면 속히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요일 1:9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죄로부터 우릴 구원한 그 은혜는 우리에게 계속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로우셔서 죄를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자백하면 용서해주십니다.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속박을 받거나 멸망을 받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하거나 사로잡지 못한다는 것이 구속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죄사함의 축복입니다. 두 번째로, 8절에 보면, 구속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넘치는 지혜와 총명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우리가 죄의 노예로 있을 때는 죄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면 죄가 우리의 겉사람만 아니라 속사람까지 지배해서 우리의 생각하는 것, 마음 먹는 것 모두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보지 못하고 바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모릅니다. 그 말은 죄로 우리들의 지혜와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버는 데에는 아주 귀재입니다. 돈벌고, 남 등쳐먹는 것은 안가르쳐줘도 잘 압니다. 남들과 싸움도 잘합니다. 이세상의 생존경쟁을 통해 터득한 것으로 세상에서 잘 사는 방법을 압니다. 그러나 죄의 종된 사람이 똑똑해봐야 얼마나 가겠습니까? 노예는 생각 자체가 그 이상 발전을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깨끗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진짜 지혜와 총명이 생겨납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을 압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사명을 압니다.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진정한 지혜와 총명은 구속함을 받은 사람, 죄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러한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통일 바람이 불어서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데, 남북통일이 되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남북은커녕 동서 통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 아직도 교파간의 담이 있고 교회간의 담이 있으며 심지어는 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끼리도 담을 가지고 삽니다 통일이라고 하면 아주 요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9절에 보면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반드시 통일이 됩니다. 그것을 알고 기다릴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중요한 말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과 "통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이 단어가 동시에 나오는데, 통일은 2장에서 더 확실하게 나옵니다. 하나님은 장차 하나님의 때에 온 우주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통일 되도록 모든 질서를 잡으시고 만들어가십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비밀은 하나님이 먼저 교회를 통해 통일을 이루시고 교회를 중심으로 우주의 통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교회가 신비로운 것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구속함을 입어 진정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업이 됩니다. 11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무엇입니까?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빼앗길 수 없는 진정한 재산,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속함을 받아 죄사함을 입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지혜와 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소유, 기업이 되게 하셔서 엄청난 투자를 하셨습니다. 아들의 값비싼 피를 주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결코 이것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요즘 기업들이 구조조정하느라 몸살을 앓습니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해도 내주는 것이 있고 안내주는 것이 있습니다. 끝까지 안내주고 붙잡는 것은 그에게 가장 귀한 기업입니다. 이런 기업은 자신이 젊을 때부터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기업,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절대로 안놓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기업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비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 10:28,29에 보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여기 보면 우리를 붙잡고 있는 두 손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손', 예수님의 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손',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손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있어서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두 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는 귀한 소유, 기업을 삼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속함을 입은 자에게는 이런 축복이 있습니다. 쉽게 된 것이 아니라 비싼 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구속을 입어 죄함을 받고 지혜와 총명을 얻어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비싼 존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귀한 존재, 절대 놓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비싸게 생각하시는 데 우리는 왜 자신을 값싸게 생각합니까? 왜 우리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쉬 절망하고 낙심합니까? 이것은 자신의 값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불한 값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보는데, 나는 왜 나를 귀하게 보지 못합니까? 비싼 몸을 함불로 굴리지 마십시오. 비싼 몸은 비싸게 살아야 합니다. 함부로 죄짓지 말고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귀하게 사십시오.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비싼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궁창의 별과 같이 영원토로 비취는 하나님의 보석같은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12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찬송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구속의 복을 늘 잊지 않고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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