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정준 “내 꿈은 선교사” / 서경석 목사,
2005-12-05 21:02:52








▲탤런트 정준
CBS <새롭게 하소서> 출연해 신앙 간증

KBS 일일연속극 <별난여자 별난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탤런트 정준(26)의 어릴 적 꿈은 선교사였다. 지금은 NGO 단체 ‘써빙 프렌즈(Serving Friends)’에서 에이즈에 걸린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정준이 오늘 5일 밤 9시 CBS <새롭게 하소서>를 통해 자신의 진솔한 신앙 이야기를 들려준다.

1991년 MBC 드라마 <고개 숙인 남자>에서 아역 탤런트로 데뷔해 14년 째 연기 생활을 하고 있는 정준은 독실한 신앙인인 어머니의 기도 응답으로 탤런트가 됐다. 그는 자신이 탤런트가 된 이유를 “선교에 도움이 되기 위해”라고 짧게 말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그는 교회에서도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정준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도원을 찾아 하나님께 “아들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셨다.

“어머니는 제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하지 않으셨지만, 신앙만큼은 철저하고 엄격하셨어요. 초등학교 때는 새벽기도에 나가기 싫어서 어머니께 매도 많이 맞았죠. 하지만 그런 어머니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아요”

고3 시절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기도 하던 중 하나님께로부터 총신대학교를 가라는 음성을 듣고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다. 그렇게 신학과 연기를 병행했던 정준은 2001년 KBS 드라마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다. 드라마 <사춘기>나 <맛있는 청혼> 등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던 그였기에, 실패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정준은 그 후 2년 동안 연기를 쉬었고, 쉬는 동안 40일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본 그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교만에 빠져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했다고 한다.

“진정한 연기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러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정준은 NGO 단체 ‘써빙 프레이즈’의 일원으로 에이즈에 걸린 전 세계 아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도우면서 ‘하나님의 일은 계획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맡기고 시작하는 것’임을 깨달았죠”

요즘 일일연속극 <별난여자…>가 인기를 얻으면서 제 2의 연기 인생을 맞게 된 정준. 촬영으로 일주일 내내 눈코뜰새 없이 빠쁜 그지만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 그의 신앙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14년 연기생활 등을 털어놓는다.
김진영 기자


------------------------------------------
양국주 칼럼에 대한 서경석 목사의 반론
뉴스앤조이(newsnjoy)

양국주 대표님

봉수교회 문제에 대해 귀한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또 양 대표님의 말씀을 통해 봉수교회, 칠골교회에 대해 좀더 알게 된 것도 감사드립니다. 보현사 주지가 얼마 전까지 해외총국 요원이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만, 북한에서는 진정한 교회나 절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양 대표님 말씀대로 봉수교회는 조선노동당의 대남통일 전략을 수행하는 전위 기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양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통곡기도회나 한기총 촛불기도회가 세상을 향해 드려지는 절규나 과시, 전시 효과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이 표현은 마음에 걸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님이 명령한다고 해서 교인들이 무조건 동원되지 않습니다. 교인이 오는 것은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충분히 인식을 시켰거나 혹은 교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와 세상을 향해 드려지는 기도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매일 드리는 기도는 “이번 촛불기도회에 꼭 30만 명이 모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30만 명이 모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회를 하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드리는 기도는 잘못되고 순수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홀로 골방에서 드려야 할 기도가 있고 세상 속에서 드려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기도회만 해도 감옥을 갔습니다. 이 때의 기도회는 기도이자 행동이고 선언이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국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촛불기도회는 전시 효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봉수교회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이 세상에 없고 어느 교회가 택함을 받은 교회인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런데 지금의 봉수교회 진위 논쟁을 누가 진짜로 택함을 받았는가 하는 신학적인 토론으로 대치시키는 것은 토론의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저는 지금 원론적인 신학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봉수교회 문제를 앞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의 목표로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봉수교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봉수교회가 조평통의 전위조직임을 폭로하고 봉수교회를 덮고 있는 거짓의 포장을 벗겨야 비로소 봉수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양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아버지의 심령으로 봉수교회를 바라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수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봉수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변하기 때문입니다.

봉수교회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17년이 지나갔습니다.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발짝 더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짜의 현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봉수교회가 세워진지 17년이 지났으면 이제는 봉수교회에 대해 쉬쉬하면서 나누었던 가짜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봉수교회도 이러한 문제제기에 응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봉수교회에서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 때문에 알곡이 뽑히고 있습니다. 봉수교회에서도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가끔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봉수교회는 그를 즉각 농촌으로 추방해 버립니다. 그래서 가라지 사이에서 몇 개의 알곡이라도 뽑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도 봉수교회가 가짜임을 누군가는 고발해야 합니다.

양 대표님, 북한에 있는 의인 열 명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심을 참고 있다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참고 계시니 한국교회도 북한 인권을 위한 기도회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으셔도 좋으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북한의 억눌린 사람들,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강제송환되어 처형당하는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절규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십사 하고 우리가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양 대표님은 앞으로도 계속 북한을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 글을 보니 양 대표님의 말씀의 수위가 위험 수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말씀하신 내용만 가지고서도 북한당국의 분노를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북한 갈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 말씀을 시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신 있는 바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영국, 동성결혼 합법화로 동성커플 19일 첫탄생
남부지역 첫 동성커플은 여성 목사 될 듯

영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 Act)’이 5일부터 발효됐다.

영국정부는 동성커플에게도 세금, 연금, 유산처리 등에서 이성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동성커플에게는 결혼(Marriage) 대신 ‘결합(Union)’이란 용어를, `이혼'(divorce) 대신 `분해'(dissolu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 최초의 동성애자 결혼식은 19일 북아일랜드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5일부터 합법화가 됐지만, 청혼한 뒤 2주간 청혼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결혼법 규정으로 결혼식이 늦게 열리는 것이다. 뒤이어 스코틀랜드에서 20일, 잉글랜드에서 21일 동성애자 결혼식이 각각 거행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 16만1천명 가운데 4만여명이 동성애자인 남부 해안도시 브라이턴에서는 21일 첫 여성 동성애자의 결혼식이 열린다. 이 커플은 16년간 동거를 해온 여성 목사 데비 가스턴과 그의 연인인 엘레인 쿡이다.

한편, 웨스트민스터에서는 40년간 연인으로 지내다가 이번에 합법적인 부부의 지위를 얻는 로저 록키어(77), 퍼시 스티븐스(66)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새 법의 발효로 영국 전역에서는 1만1천쌍의 동성커플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팝스타 엘튼 존(58)과 조지 마이클(41)등 유명인사들도 곧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영국의 성공회가 아직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교회가 아닌 일반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


--------------------------------------------
역선교의 필요성과 브라질 교회의 사례
영국사회와 영국교회 바로 알기(5)

▲박창수 선교사
한국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서유럽과 영국교회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부요한 기독교 국가에서 무슨 선교를 하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서울 주변의 한 도시 교회연합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던 목사님은 ‘배부른 선교현장 보다는 배고픈 선교현장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사회와 교회적 현실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다. 이는 모국교회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지원이 없이 묵묵히 사역하고 있는 현장선교사의 고충이 무엇이며, 오늘 현대선교에서 한국교회가 가진 선교적 사명과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균형 있는 안목으로 유럽교회들이 처한 현실을 보다 정확히 직시하고, 선교가 갖는 보다 심원하고 전략적인 차원들이 무엇인지 고려하게 된다면, 유럽 선교에 대한 회의적이거나 몰이해한 태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북미주와 유럽권의 교회들은 19세기 이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에 복음을 전달하는 소중한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이들 서구교회들은 서구사회가 가진 현대문명의 세속적인 영향력에 짓눌려 기독교의 퇴조기를 경험하고 있다. 대신 이들을 통하여 복음을 수용한 2, 3세계교회들은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며 세계교회들 가운데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이와 함께 서구교회들로부터 선교사들을 받아들이던 체제에서 자신들의 선교사를 다른 국가들에 보내는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2, 3세계, 즉 비서구 교회들로부터 파송되어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수는 서구선교사들의 수를 앞질렀다.

한국교회의 경우, 1980년대 이전까지 주로 중국, 일본, 미주 등지에 흩어진 교포들을 중심으로 선교하면서 세계선교에 대한 감각을 키워오다가 1990년대 공산권의 붕괴 이후 선교의 지경과 대상은 크게 확대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1980년대 이후 크게 주목을 끌고 있는 미전도종족선교(mission for unreached peoples) 및 ‘10/40 창(the 10/40 Window)’ 개념과 전략에 선교자원을 주력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수행에 있어서 이러한 우선순위와 함께 한국교회는 이제 ‘역선교(逆宣敎, Reverse Mission)에 대한 요청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2, 3세계 국가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서구 유럽교회들이 현대에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관심을 주어야 하며, 이들 교회들이 본국의 재복음화(re-evangelization)를 보다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할 때를 맞았다. 그리고 역으로, 역선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시너지 효과(synergies), 즉 세계선교 수행에 파급되는 효과와 한국교회가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유익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역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브라질교회

필자가 버밍햄 동부에서 참여하고 있는 선교현장에는 브라질 출신의 선교사와 동료들도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2004년 11월, 필자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개최된 한 선교대회(Go To The Nations)에 초대되어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역과 비전, 그리고 한국교회를 소개하며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대회는 유럽을 향한 역선교 운동의 하나로서 약 10여 년 전 브라질 출신의 몇몇 크리스천 형제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역선교의 한 모습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이 운동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브라질의 기독교 역사는 15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유럽인들, 특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과 식민지 개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과 궤를 함께 하여 16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회(the Franciscans)와 예수회(the Jesuits)의 선교활동은 기독교 선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재 브라질 전체 인구 약 1억 7천만 가운데 90퍼센트 이상(1억 2천만 명)이 가톨릭으로 자처하고 있다. 이것은 곧 세계 전역에 걸쳐 있는 가톨릭 교인들의 약 10퍼센트가 브라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의 경우는 근대 19세기 선교운동과 함께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 약 2천만 명에 이르고 있다.

브라질 교회들은 아직 외부로부터 선교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현재 자국의 선교사들을 타국으로 파송하는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전환기적 상황에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시점에서 이들 브라질교회와 동일한 체제 전환기에 놓여 있는 제 3세계 교회들을 보다 더 전략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부흥과 급성장의 결과로 능히 독자적으로 세계선교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 전환기에 있는 제 3세계 교회들이 더불어 선교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브라질 교회들이 세계선교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이들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오순절적 열정은 물론, 역사적으로 마련된 전략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종적 모자이크와 같은 브라질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민족적 뿌리와 관계된 것이다. 브라질 인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대륙에 뿌리를 둔 백인들이 약 5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약 34퍼센트에 해당하는 혼혈인들, 그리고 약 11퍼센트의 아프리카 서부에 뿌리를 둔 흑인들, 그리고 소수의 아시아인들과 원주민 인디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9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브라질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조상)찾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들의 인종적, 민족적 뿌리를 찾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경제적인 논리가 있는 것 같다. 브라질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벗어나 좀 더 나은 생활 조건들을 찾는 방식의 하나로 조상의 땅 유럽으로의 이주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브라질의 교회들, 특히 선교 지향적 복음주의교회들은 오늘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교적 역할과 방법들을 발견하고 있다.

그 한 가지 예는 한 무리의 브라질 교회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선교운동(Go To The Nations)에서 잘 보여 지고 있다. 이들은 말라기 4장 6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들이 가진 기본적인 비전은 복음화의 비율이 가장 적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것이었지만, 방향을 전환하여 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준 ‘영적 조상들’의 나라, 즉 유럽을 향하도록 도전한 것으로 확신한다. 따라서 브라질에 온 첫 개신교 선교사들이 영국에서 왔음을 인식하며 영국 내에 일차적 선교기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가진 확신 가운데 하나는, 브라질 교회들이 가진 신앙과 선교의 열정이 영국교회가 가진 선교의 경험과 지혜와 만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세계선교를 위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기초로 이들은 1993년 첫 선교사로 마르코스 바로스(Marcos Barros) 형제와 그의 가족을 영국으로 파송했다. 이 때로 부터 영국과 다른 유럽지역의 본토 교회들과 브라질 교회들은 서로 선교적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오고 있다. 이들 브라질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가진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결속력 있는 친교, 열정 있고 영감 있는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영국교회 안에 신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상호간 방문을 통하여 결속력 있는 친교와 동반자적 선교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이 발견한 사역의 방법론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지만 귀 기울일 만한 것이다. 이들은 ‘성도의 교제’를 원리 삼아 영국과 브라질의 지역교회 목회자 및 회중들 사이에서 상호 방문을 통해 교제의 폭을 확대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일련의 교류를 통해 목회와 선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 ‘일 중심적(task-centred)’ 태도에 익숙해 있던 영국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수행에 있어서 우선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관계중심적(relationship-centred)’ 태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필요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파트너십 안에서 효과적인 선교사역(missionary works)이 개발되는 여러 사례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령, 이렇게 개발된 사역들 가운데 한 가지는 브라질, 영국, 유럽 대륙에 크리스천 언어학교를 설립하여 현지인들과 제 3세계 학생들을 제자화 하는 사역이다. 이들은 선교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현장 사역자들과 함께 해마다 지역과 국가를 달리해서 사흘 간 선교대회를 개최하고 경배와 찬양, 중보기도, 사례발표, 토론, 사경회 등의 시간을 갖는다. 이 운동은 현재 브라질과 영국과 유럽에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다.

박창수(Chang S. Park) 선교사
콜 밸리 클러스터(Cole Valley Cluster of Churches in East Birmingham) 협력선교사
제자도 및 기독교 영성 강사(Kingfisher College)
버밍햄 퀸즈 칼리지(MA Dip.)
서울신학대학교/ 동 신학대학원(BA/ M. Div.)


------------------------------------------------
"개(犬)에 대한 철학적 아이러니
개에 관한 철학적 삶의 지혜 및 성서의 교훈

한 30여 년 전 일이 오늘 따라 유별스럽게 기억이 난다. 경북노회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 장로들과 경북노회 산하 기관(학교와 병원 등) 간에 심각한 갈등의 회오리 속에 잠긴 적이 있었다. 당시 경북노회장은 목회하는 목사였지만, 기관 쪽을 편들게 되어서 여간 숨찬 일이 아니었다. 사건의 내용인즉, 기관장이 정관을 노회에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변경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서 사유화되는 수순을 밟는 길이었기에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양측 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기관 쪽의 사람들은 재정적 여유가 있어서, 목회하는 목사와 소속 된 장로들을 회유해서(선심으로) 선악 간의 구별을 하지 않고 회유에 넘어갔는데, 그 때 변절한 목사 장로들을 일컬어서 “우동 한 그릇에 변절자들”이라고 불리는 유형어가 생기기도 했다.

필자는 당시 기관 쪽을 향해서 정면으로 법적인 논리로 설전을 벌이는 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기관 쪽을 옹호하는 노회장이 사회봉을 잡고 있어서 발언권을 봉쇄하고 마이크를 끄곤 하였다. 노회장이 필자에게는 발언권을 주지 않기에, 그냥 발언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회장! 회장!” 했지만 언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계속 마이크를 잡고 언권을 줄 때까지 서서 기다리었다.

그러는 중에 기관 쪽에 속하는 어느 장로회원 한 분이 “양견 목사, 당신 견(堅) 자(字)가 무슨 견 자요.” 희롱조로 질문하기에 필자는 그의 속셈을 알고, “개 견(犬) 자이다”라고 대답했다. 소크라테스의 반어법(反語法, Irony)의 철학적 이치를 알았기에, “견(堅) 자이다”라고 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굳을 견’(堅)이라고 대답하면 필연코 그는 "아니다. 개 견(堅)이다"라고 희롱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를 쳐서 스스로가 개 견(犬) 자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장내는 대소 폭소가 떠져 나왔다. 그 때 필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반어법의 논리가 적중한 것을 알고, “바로 이 때다” 하고서 외쳤다. “도둑이 침입해서 남의 소유물을 도둑질하러 왔는데, 개는 짖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나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소리를 외치면서, 짖지 못하는 개(犬)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개 짖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라고 하니 장내는, 발언권을 주라고 소리 소리가 진동했다. 그래서 필자는 소신대로 일장 연설을 할 수 있었고, 이 날의 승리는 물론 “짖는 개”로 인해서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필자는 어제(2005. 12. 1.) 대구제일교회 ‘나요섭 목사 당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사건의 총회 재판국의 최종 결심에 즈음하여, 총회 사무실이 있는 선교100주년회관을 찾아 갔다. 그런데 대구제일교회 원고 측(이기수, 양봉수 장로 등)과 버스 편으로 상경한 신도들 30여 명이 총회 건물 4층 재판 장소 앞 복도에 즐비하게 서 있었고, 피고 나요섭 목사를 지원하는 성도들 30여 명 역시 복도 맞은편에 서 있었다. 필자는 사무총장실을 찾느라고 복도를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이들이 서 있는 복도를 지나게 되었다.

원고 측 교인들 중 안면이 있는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복도로 걸어가는데, 오랜 지면이 있는 시내 모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장로 한 분이 “멍 멍~ ~ ~ ~” 계속해서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껄껄 웃는 소리와 함께 야유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필자에게 하는 소리인 줄 알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아마 양쪽의 신경이 예민한 그 순간의 분위기로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먹혀들어가는 정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런 수모를 당했지만, 한편으로는 하구(下邱)하는 필자의 마음은 마냥 뿌듯한 보람을 느끼었다.

피곤한 하루 밤을 지나고, 어제 당한 수모 생각과 더불어, 옛날 읽었던 석용산 스님의 수필집 “개 키우는 데도 인격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국 버지니아에 사는 불교 신자 교포 집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고 사는 교포인데, 자식이 없이 40 고개를 넘고 있는 가정이었다고 한다. 타국생활에 고독과 허전함이 더욱 짙어가는 그런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워야겠다며 신문광고를 훑어보다가 전화를 걸고 쏜살같이 나갔다고 한다. 얼마 후에 돌아왔는데, 강아지는 없고 겨자 씹은 얼굴로 와서, 이유를 물은 즉, 톡톡히 창피만 당하고 왔다는 것이다. “족보 있는 강아지를 키우려면 키우는 사람의 인격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옷 입은 매무새도 그렇고, 말투도 거칠고 등등 어떤 면으로나 강아지를 팔수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강아지 새끼 사러 가는데 정장하고, 나비넥타이라도 매야 하느냐”고 하면서, “입은 대로 운동화 끌고 간 게 뭐가 잘못이란 말입니까, 경상도 문둥이라, 내 말투가 투박한 건 사실이지만, 세련되지 못한 영어가 개 키우는데 무슨 소용이라도 있답니까. 그런 까다로운 개새끼라면, 공짜로 한 트럭 줘도 마, 안 할랍니더”라고 평소 쓰던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스님인 자신에게 하소연을 털어 놓았다는 것이다. “시님, 개 키우는데 무슨 우라질 인격입니까. 배 터지게 묵이면 되지, 지가 백인 놈이면 백인 놈이지, 돈 준다는데 그것도 부른 값보다 두 배나 더 준다는데, 안 판다니 황인종이라고 무시해!”라고 입에 거품을 북적이면서 말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석 스님은 “여보게 처사, 흥분을 가라앉히고, 개를 키우는 데도 인격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라고 말했다는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이었다. 그 백인 미국 사람은 서구적인 고정관념으로 개를 인간의 '생명'처럼 고이 대할 수 있는 개(犬) 주인의 인격을 논한 것이고, 한국 경상도 문둥이 그 분은 개를 잡아서 '보신탕'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화적 이질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필자는 어제도 그런 일을 당했지만, 특히 목사인 필자에게, 장로가 '멍멍' 하고 희롱하는 것이 인간의 제 조건의 한계를 넘지 못한 미성숙된 신앙에 대한 서러운 정서가 만감의 교차를 느끼게 했다. 필자는 어떤 경우에는 어떤 자가 ‘견(犬)으로 도전’하면, 한 수 더 떠서 “나는 보통 개가 아니고, ‘양견’(洋犬)이라고 응수할 때가 더러 있었다.

자, 이제 결론을 맺자. 성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나안(수로보니게) 여인더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1-28) 했다.

율법과 전통을 잘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이 주인이고, 이방 여자인 가나안 여인은 '개' 라는 그 모멸감을 받아들이는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소원 성취를 하고 축복을 받은 이 성서 말씀이 오늘 하루 종일 필자의 뇌리를 사로잡게 한다.

“그래, 대구제일교회 장로인 당신이 그런 인격에서 ‘정 목사’를 개처럼 내어 쫓았고,마치 군사정권 때 미운 자는 빨갱이로 몰아 죽였듯이, 당신들 장로들은 지금도 ‘나 목사’를 이단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하고, 오직 법리(法理)로 볼 때, 가처분의 성격과 목적이 아닌 것을 옳게 해석하는 필자 ‘양 목사’도 “멍멍” 하면서 희롱했구나!

아무리 동물인 ‘개’라도 “생명”은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인격이 갖추어져야만, 개를 키울 수 있다는 교훈과 예수님께서 믿음의 시험 삼아 가나안 여인을 “개”라고 비교한 것이지만, 철저한 자기비하의 믿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한 것이 새삼스럽게 오늘 하루 종일 필자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진실로 ‘개의 생명’보다 ‘천한 인간 말자들’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레 가까스로 놀란 가슴이 지금도 박동한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진실로 개를 키우기도 어려운 비인격적인 스승 장로에게 배운 그 제자들은 올바른 인격자로 잘 살아가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또한 그도 하나님께 진실로 가슴 아리게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어제 당한 일로 가슴으로 우울한 상념 속에 있는 필자를 생각하시와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바람 편으로 오늘 대구제일교회 재판에 대한 낭보(朗報)는 개’(犬)라는 소리를 듣고도 딸의 병 고침으로 기뻐하는 가나안 여인처럼, 필자는 마냥 마음 속에 만감에 넘치는 감격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양견 목사 / 경북山下목회연구소장


-------------------------------------
전도,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라
‘맞춤전도’ 개발해 왕성한 활동 펼쳐
이옥연 기자 coollee@googood.com

©온누리신문
기업 마케팅 원리는 타겟이 되는 소비자의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소비자를 세분화하고, 그 대상에 맞는 프로모션을 개발하고 실행한다.

기업의 ‘타겟 마케팅’을 벤치마킹한 ‘맞춤전도’를 개발해 꾸준한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맞춤전도집회’의 전략

마케팅원리를 교회 전도집회에 적용한 온누리교회는 ‘맞춤전도집회’ 5단계인 △대상 세분화와 △필요분석의 단계, △커뮤니케이션, △집회기획과 실행, △사후 양육을 실행하고 있다.

온누리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이재훈 목사의 맞춤전도집회 5단계는 첫 번째 단계로 ‘대상 세분화’이다. 효과적인 전도집회의 실행을 위해 필수적인 대상 세분화는 복음전달의 효과를 증대시킨다는 주장이다. 대상을 세분화하는 데 고려할 요소는 직업, 연령, 성별 등 이다.

전도대상이 선정되면 대상의 필요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사하는 ‘필요분석의 단계’에 접어든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심리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령별로 대상을 세분화했을 경우, 그 세대의 필요를 파악해 채워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맞춤전도집회를 위한 구성에서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홍보작업 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와 전도대상자에 대한 홍보를 철저하게 구별해야 한다. 전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홍보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집회를 위해서 ‘집회기획과 실행’을 위한 홍보 진행과 동시에 당일, 주제와 집회 날짜에 맞는 맞춤식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기획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집회를 마친 후 이다. 결신자와 참석자 모두에게 감사와 축하의 카드를 발송하고, 특히 결신자들에게는 ‘사후 양육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맞춤전도집회 개최

온누리교회의 첫 번째 맞춤전도집회 대상은 ‘40대 남성’이었다. 이 연령대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는 믿지 않는 40-50대 남성을 남편으로 둔 여성도들이 교회에 약 2,000여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40대 남성들의 심리적인 특성은 ‘쉬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이다. 따라서 그들의 타이틀은 ‘40대 남성을 위한 모임, 비상구’라고 붙였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이 그들의 ‘비상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맞춤전도집회는 40대 남성 750명의 참석자 중 결신자 170명, 구도자 200명이나 되었다.

온누리교회는 이렇듯 40대 남성 맞춤전도집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집회를 실시해왔다. 더 나아가 직업을 세분화해서 전도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드림터치’라는 주제로 의사를 대상으로 한 전도집회를 열었고, 올해 5월은 정보통신(IT)인을 위한 ‘하이터치’라는 주제로 집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전도집회가 발판이 되어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금융인(증권▪보험▪은행)을 대상으로 ‘A+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라는 주제로 맞춤전도집회가 실시된다

이번 집회를 담당하는 온누리교회 여성민 목사는 “다른 집회와 차이점은 초청되는 전도 대상자를 좀더 세분화 한 것”이라며 “직업별 맞춤전도는 무엇보다 세밀하게 그들의 필요와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
‘똘레랑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는다.

박승민 대학생명예기자
얼마 전 MBC 시사프로그램인 ‘PD 수첩’이 CF광고 없이 방송되는 매우 낯선 사례를 보았다. MBC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독특한 소유구조 때문에 광고비를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방송사다.

그런데 KBS 1TV에서나 볼 수 있는 광고 없는 프로그램을 MBC가 방송하게 된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그 전 주에 PD수첩이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있었던 난자 매매 및 연구원의 난자 기증에 관한 의혹에 대해 취재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PD 수첩 측은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여러 가지 의혹이 보이지만, 그 의혹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국제 과학계에 도덕적인 불신을 사게 된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 스스로 윤리적인 문제를 모른 채 덮어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규명하길 원하고 있고, 이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른바 황우석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믿고 있는 수많은 황우석 지지자들은 MBC측을 맹비난했고, 급기야 MBC를 협찬하던 광고주들이 광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화방송이 그렇게 약한 재정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라, 광고는 없었지만 이번 주에도 PD 수첩은 무리 없이 시청자들을 찾아 갔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경제 압박 조치로서 PD 수첩과 MBC 경영진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압력이 될 것임에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나는 ‘PD 수첩의 방송 내용이 옳았다, 틀렸다’ 또는 ‘황우석 박사가 영웅이다, 죄인이다’라는 논쟁을 떠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여전히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과연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여러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위대한 생명공학 박사에 대한 한 방송사의 비판적 보도는 절대로 방영되어서는 안 될 것, 밖으로 표현 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생각일까.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오늘날까지 ‘똘레랑스’(Tolerance), 즉 관용의 사상은 지성인들 사이의 오랜 논쟁사안이었다. 당시 카톨릭의 마녀재판과 잔혹한 화형, 학살의 폭력에 지긋지긋해진 인문주의자들은 ‘과연 교회의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절대 용인하지 않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종교적 관용을 주장했다.

신교와 구교가 전쟁을 치르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손톱만큼의 자비도 없이 잡아 죽이던 그 당시 칼라스라는 개신교도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교적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가 『관용론』이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똘레랑스 사상은 본격적으로 학자들 사이에서 토론되었고, 중요한 인간의 자연권의 한 개념으로 대두되었다.

그 이후에도 인종문제와 나치즘과 같은 독재,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 똘레랑스 사상은 종교적 문제를 넘어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의미가 확대 되었고, 오늘날은 모든 사상과 종교, 이념의 자유를 용인하는 관용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떤 학자는 “‘똘레랑스한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을 견디는 것과 같다고 한다. 추상적인 의미에서 ‘똘레랑스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꾸도록 만들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의도적인 자세이다. 용인이되 의도적인 용인이라는 점에서 무관심이나 포기와는 다른 것이다.

누구나 각자의 사상과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고,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다. 그 누군가의 생각이 내 생각에 달갑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하며, 비판한다 할지라도 합리적 이성에 의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하는 너는 입 다물고 사라져라!”라는 생각은 ‘앵똘레랑스’, 즉 불관용이다.

군사 독재와 국가보안법의 악용이라는 전형적인 앵똘레랑스의 역사를 걸어온 우리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앵똘레랑스의 대립 속에 총체적 난국을 지나고 있다. 앵똘레랑스 공화국, 앵똘레랑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슬픈 현실이다. 판단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안에서 집단행동이 나타나고 시위 현장에 무력이 사용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들어보면, 사실 누구하나 절대적으로 틀린 사람은 없다. 흔히 하는 얘기로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리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똘레랑스가 결핍된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용납할 줄을 모른다.

앵똘레랑스의 극치라 할 수 있는 ‘결사반대’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도처에 사용된다. 그래도 어쨌든 ‘오직 나만은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이런 자세들로 복잡한 계층이 복잡하게 이해관계를 형성하며 살고 있는 우리사회의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 동네의 땅 값을 지키기 위해서 화염병을 만들어 던지고, 동상을 때려 부수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는 이런 기술로서는 우리 사회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전술,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보다 합리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생명 공학계에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세계의 중심으로 서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의 인정이 필수이다. 그것은 앞선 기술로서만 이뤄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PD 수첩 제작진이 황우석 박사에 대한 숨겨진 악의가 있어 음모식의 방송을 제작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미 전 세계의 의심과 불신을 받고 있는 이 마당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무조건 덮고 가자, 무조건 눈감아주자는 자세는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및 과학의 발전을 위하는 자세가 아님을 믿는다.

우리 스스로 확실히 문제가 되는 사항을 짚고 가자는 뜻에서 자기비판, 자기반성의 인상을 대외에 심어주어야 한다는 하나의 의견을 용인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 그것을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참 놀랍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억압하는 것은 우리 정신에 오래토록 기생하고 있는 앵똘레랑스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왼뺨을 돌려 내밀 수 있는 똘레랑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dmin

이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