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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사람(4):
2002-11-22 09:58:19   read : 37716

살전 2:9-13 // 2002년 11월 3일

요즘 <존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위나 소유나 학식, 얼굴 생김새 또는 집안 환경이 좋은 사람을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사느냐에 따라 존귀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비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 속알, 즉 마음 중심(中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겉모습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별로 배우지 못한 사람도 성령 받아 새 사람이 되면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같이 하찮은 여인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변화 받으면 아주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중심과 삶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되고, 또 크게 사용되느냐 그렇지 못한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것을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겉만 번지르르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속이 차 있어야 되고, 중심 자세가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고, 꼭 필요한 사람이고, 귀하게 사용될 수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존귀한 사람인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손수 노동을 하며 자급(自給)-전도(傳道)를 하였습니다. 그가 한 일은 장막(텐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처음 믿는 교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손수 노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목회자중에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고, 자기 생업을 따로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고, 오늘날 목회자도 바울처럼 해야한다고 문자적(文字的)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게 더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의 도움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어려울 때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당연히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하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그 속에 의존심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은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도 강했기에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요, 이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한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에스키모 노인들은 죽을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집을 나가서 조용히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식구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는 매우 독립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연세가 드시면 집을 나가서 혼자 돌아 가셔야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제 친구 중에 아들 둘을 영국에 유학시키고 있는 목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과 대학에 다니고, 하나는 법과 대학에 다닙니다. 그런데 그 두 아들에게 많은 돈을 보내야 되고, 또 신경을 보통 많이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아이들이 나에게 앞으로 자기네 수입의 1/10을 준다고 해서 난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절대로 기대하지 말라. 그 아이들이 백인 여자와 결혼하면 당신은 국물도 없다"고 했더니, "정말 그럴까?"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6:13에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5:10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 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요즘, 광고를 많이 하는 영화 중에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 아줌마 역으로 배우 배두나(24)가 나오는데, 이 영화는 못된 남성들을 향한 유쾌한 꾸짖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순은 전직 국가대표 배구선수출신의 새내기 아줌마로, 계획 없이 덜컥 낳은 '떡두꺼비같은' 딸 송이(6개월)를 돌보기도 너무 힘겨운, 집안 일이라고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초보주부인데, 어느 날 남편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있으니 170만원이라는 거금의 술값을 갖고, 남편을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무작정 달려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왜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일까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나 유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좀더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여성(아줌마)이 유약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매우 강하고 굳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특이합니다.



시편 31:24에 보면,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 2:1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믿음에 굳게 서서 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해 나갈 때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지금 사람들이 너무나 유약해져 있습니다. 너무 의존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정신은 대단히 강하고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간디는 "병든 몸은 견뎌 낼 수 있지만 병든 마음은 견딜 수 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병을 얻었을 때 마음으로 좌절하면 그 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담대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면 어떤 시련(병과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의존적인 마음을 버리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시련을 이겨 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권면, 위로,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11절에 보면,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보면 더 확실하게 들어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처럼 여러분 하나 하나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권고>하고 <격려>하고 <지도>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이 시대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상실한 시대에 사는 아이들은 어쩌면 불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들도 학교나 학원에서 너무 늦게 들어오고, 또 시간이 좀 있으면 아이들은 자기네 친구들 만나러 가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고3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오랜만에 아이를 보니까 아이에게 무조건 "오냐! 오냐!"하게 됩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인 제임스 돕슨은 "자녀에게 존경과 책임을 가르치라"는 글에서 다섯 가지를 얘기합니다.



1) 부모에 대한 존경을 심어주는 것이 자녀관리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징계를 할 때도 그 아이에게(to)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for) 행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도록 하라.

2) 징계 후에는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가지고 사랑의 팔로 감싸 주라.

3) 가능한 한 잔소리를 삼가라.

4) 물질주의(物質主義)에 물들지 않게 하라.

5) 지나친 통제와 사랑을 피하고 중용을 지키라.



가톨릭 교회에는 대부(代父)·대모(代母) 제도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는 기독교(개신교)에도 이런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2장 7절에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약자를 돌보는 것에 대해 얘기했고, 오늘 본문 11절에서 '아버지와 같은 자세'를 얘기했습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이런 부모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을 고린도 전서 4장 15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그 은혜 높기가 하늘같고 그 은덕 두텁기는 땅과 같으네!"라는 옛글과 통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역할을 세 가지로 바울이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이 바로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① 권면하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권면하는 일은 지도자의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각기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바른 길로 가도록 권면하고, 또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하지 않으면 그것을 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②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또한 슬픈 자를 위로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을 격려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극한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졌는데, 그것이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러한 일들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③경계하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경계한다는 말은 원어의 자구적(字句的)인 뜻은 "바른 길을 증거한다"는 말인데, 이런 경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지도'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할 일은 아버지 같은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도하고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도하고 인도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시편 23편 말씀대로 목자로서 양을 먹을 꼴이 풍부한 푸른 풀밭과 마실 물이 풍부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3.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가 말씀을 전할 때 인간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우들을 칭찬했습니다. 그것이 본문 13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 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役事)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께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교만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사람의 말로 들리지만, 진실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위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는 자의 마음에서 역사(役事) 합니다. 그래서 13절 뒷 부분에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役事)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시편 119:103에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꿀 보다 더 단 경험을 한 사람은 이런 찬송을 불러도 감동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1절)



설교(말씀)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나에게 내려주시는 말씀이라고 받아 들을 때 그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 생명력 있는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역사 할 수 있도록 말씀 듣는 자세를 바로 하고, 날마다 그 말씀이 여러분 삶에서 육화(肉化) 되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뿐더러, 또한 풍성한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여러분을 하나님은 분명히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크고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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