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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2002-09-04 16:22:22 read : 19669
디모데후서1:1-5절
마음에 새겨둘만한 기도문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오 주님, 나로 하여금 보다 훌륭한 부모가 되게 하소서.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들이 하는 말을 끈기 있게 들어 주며.
자녀의 괴로운 문제들을 사랑으로 이해할 줄 아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지나친 간섭을 삼가고, 자녀와의 말다툼을 피하며.
모순된 행동으로 자녀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소서.
부모에게 예의바른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것같이
우리도 자녀에게 친절하며 정중하게 하소서.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잘못했음을 개달았을 때는
용감하게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부질없는 일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게 하소서.
자녀의 실수를 보고 웃거나 벌을 줌으로써 자녀로 하여금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자녀가 거짓말을 아니하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게 하소서.
시간마다 나를 인도하시어, 나의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임으로써 정직하게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임을 분명히 보여 주게 하소서.
오 주님, 간절히 비옵나니 초라한 나의 모습을 감추시고
나의 혀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그 나이 때 되면 누구나 행하는 자녀들의
사소한 잘못을 보게 되었을 때
이를 너그럽게 봐 줄 수 있는 아량을 베풀게 하소서.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스스로 실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허락하게 하소서.
부모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자녀를 책망하지 않게 도와 주소서.
자녀가 바라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모두 다 허락하면서도
만약 그것이 자녀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끝까지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공정하며, 생각이 깊고,
사랑이 넘치는 부모가 되게 하시어 자녀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자녀들로부터 사랑받고, 자녀들이 진정으로 닮기 원하는
부모다운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소서.
오 주님! 바라옵나니 안정과 균형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이 기도문 속에는 아름다운 부모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모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책도 숨어있습니다. 이 기도문을 읽다 말고 눈물을 훔쳐봅니다. 부모로서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이런 보잘것 없는 부족한 우리를 부모로 세워 주시다니-- 격려 보다는 꾸지람이 많았고. 칭찬 보다는 항상 면박을 주었던 나의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두 손모아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님! 간절히 비옵나니, 다른 어떤 직책보다 부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시고. 그 동안의 크고 작은 실수들로 자녀에게 남겨준 상처가 있다면 치유하여 주소서. 더욱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더 큰 지혜로 충만케 하시고 주의 뜻 앞에서 신실하게 하소서”
어린이들이 잘 자라야 그 가정은 물론 교회와 사회도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가정과 나라의 꽃이며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순수하며 거짓됨이 없이 맑고 개끗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천국의 보배라고 말합니다.
가정은 귀하며 한 사회의 모체요,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된다고 말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을 통해서 그 민족의 모든 전통이 보존되고 신앙도 보존되고 전승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가정이 파괴되면 민족적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고 모든 사회적 전통과 신앙적인 유전까지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의 훌륭한 신앙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자녀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자녀들이 바른 인격을 지니기를 바란다면 부모들은 먼저 기도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정치학 박사인‘이기옥’교수가 쓴“귀 없는 엄마의 얼굴”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 가운데 교수님의 어린 딸이 화실에 다녔는데 화실에서 엄마의 얼굴을 그리게 되었다.
‘이기옥’교수의 딸도 엄마의 얼굴을 그렸는데 눈도 크고 코도 예쁘게 잘 그렸는데 귀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교수님을 불러 직업 여성이냐고 묻더랍니다. 직업이 있는 엄마는 항상 시간에 쫓기어 자녀들의 말을 들어주거나 대화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아이들의 마음 속에 엄마는 귀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2002년을 맞는 어린이 주일 아침입니다.
신앙의 부모로써 자녀를 위한 우리의 할 일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가정을 통하여 좋은 믿음을 전승합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타는 가시나무숲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을 대 하나님은“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3: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참으로 위대하다고 하는 이유는 조상의
믿음을 그 자손들에게 온전히 전승해 주겠다는 데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신앙이 아들과 딸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그들이 또한 그 믿음을 자녀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민족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을 가진 위대한 민족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 된 사람들 가운데 자녀들을 위해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서 시집 장가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일은 기도할 일임
자녀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빌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까?
어느 부모든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과 같이 영원히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험악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만 둘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잠시만 한 눈을 파도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신앙교육이 필요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등 모두는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였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하루에 세 번씩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했으며, 19명의 자녀들이 말 하기 시작할 때부터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신앙교육도 어릴때부터 잘 다져나가야 합니다.
식사 기도하는 것,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일,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일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습관화 되고 이것이 품격이 되어야 자녀의 신앙이 건전한 터전 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백문이불여일견’(百問不如一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실지로 경험해야 확실히 안다는 말입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경건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앙교육은 몸으로 하는 교육입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부모가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를 더 잘 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에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후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중단되던 날“벤자카이”라는 유대인 랍비가 로마의‘웨스파샨’장군을 만나서 교육의 도시 ‘야브레안’만은 남겨 달라고 애원했던 일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전이 불타고, 성곽이 파멸되고, 주권이 송두리째 박탈된다고 하더라도 교육이 계속되는 민족은 언젠가는 세계 역사 위에 새롭게 재기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벤자카이’의 예언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어김없이 적중되고 있습니다.
로마의 자손들이 침략을 꿈구며 무도를 연마하고, 권력을 신장하는 동안, 유대인의 자손들은 책 모으는 취미와 신앙을 기르는 습성을 길러왔습니다. “유대인을 잡았다”(유대아 카프타)라는 승전 기념 동전을 만들고 승리의 쾌거를 노래했던 로마는 오늘 지구상에서 소멸되어 버렸으나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가르쳐 왔던 유대민족은 살아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배워온 그들의 역사는 한때 민족의 위기까지 몰고 갔으나 결국 재기하고야 만 것입니다. 이 사회와 가정이 사는 길은 교회가,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서 얼마나 참된 신앙교육을 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육을 위한 투자, 특별히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달하는 신앙의 교육은 한 개인의 영혼을 구하고, 가정을 바로 세우고,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승화시키는 유일한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수없는 생명을 앗아간 ‘흐틀러’의 참모“괴링”이 사형집행을 당하기 진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우리 딸은 교회에 보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자녀를 신앙 안에서 바르게 양육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려야 합니다.
2. 의무를 감당하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에베소서6:1-4절에“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 하였습니다.
에베소서5:22-25절에“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고 말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가정에서의 가족들의 신령한 의무와 책임으로 부모는 부모로서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해야 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모습을 분명히 해야 하며 부부가 피차 제 위치에서 자기의 할 일과 본분을 잘 하는 것이 아름다운 가정의 근본이며 질서가 됩니다.
빅톨위고(Vitor Marie Hugo)는“집은 나무와 돌과 시멘트로 건축되지만 가정은 사랑의 행위에서 세워진다, 집은 수십 년만 지탱되면 되지만 가정은 수천 년을 지탱해 나간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가정은 겉 보기는 화려한데 사랑의 의무는 없어지고, 병든 가정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정생활에서의 가장 큰 의무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노동을 하는 것은 육체적인 의무요, 사랑하는 것은 정신적인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남에게 의존하며 바라고 얻어 먹는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도와 주고 나누어 주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적절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의 근면과 사랑은 마치 수례의 두 바퀴와 같아서 가정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3.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기도로 이겨가는 본을 보이라
평안하고 평탄하게 살 때는 사람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곤경에 빠지게 되면 그때는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추한 인간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의 진가를 발휘해야 합니다.
삶이 평안하고 형통할 때는 신앙생활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욥과 같이 사람과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어려움에 굴복하지도 말고 끗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니다.
평소에 평안하고 형통할 때“주여 주여”하던 성도들이 고난의 자리에 떨어지면 믿음도 함께 추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믿음으로 굳건하게 이기며 견디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때 자녀들에게 가장 생상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그 믿음이 자녀들에게 전수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한 인간의 성장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실패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런 용기와 결단의 모범을 자녀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때 그들의 믿음이 크게 자라는 줄 믿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여 원망으로 귀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성도들은 기도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뿐 아니라 어려움을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자녀들에게는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귀한 일일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기도로 참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귀한 부모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자녀들을 축복해 주는 말로 믿음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 다.
예수님께서도 어린이를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구약의 족장들은 모두가 그의 자녀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축복의 말씀은 하나님께 아름답게 들리고 자녀들의 마음에 심어져 그들의 꿈이 되고 인격이 되고 그들의 삶에 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받는 축복으로 부모님들이 여생을 평안하게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지혜가 부족한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한(恨)을 자녀들에게 화풀이 하곤하여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거나 심지어 저주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쁜 놈”“빌어먹을 놈”“찢어 죽일 놈”“망할 놈”“문디 새끼야”“지 아버지 닮았다느니”정말 끔찍한 말들입니다.
말은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9:25-27절에‘노아의 저주와 축복이 그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축복의 말처럼 자자 손손 복의 근원이 되었고, 그 후손을 통하여 위대한 인물들이 배출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저주를 받은 가나안은 자자 손손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천대와 괄시를 받는 민족이 되어 영원한 저주의 상징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집안에서 욕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는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욕밖에 없으므로 밖에 나가면 욕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 잘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거짓말쟁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보고들은 것 대로 밖에 나가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하는 어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도 입으로 저주하거나 욕하지 말고 축복해 주고 좋은 말로 타 이른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축복의 말씀들이 입력되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축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축복은 씨를 심는 것이요, 행복은 그 열매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을 향하여 축복하는 말들이 진동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5. 성공했을 때도 겸손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본을 보이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 가는데 있어서 성공했을 때보다는 실패하여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찾기 쉽다는 것을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성공하고 평안할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처럼 느껴집니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성공하면 얼마나 보람있고 흐믓합니까?. 성공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줍니다. 그리하여 목에 기부스를 한 것처럼 잔뜻 목에 힘을 주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성공하면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게 됩니다. 자기가 노력하고 땀흘린 것을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토라지기도 합니다.
성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너희가 속마음으로 이 재물을 내 능력과 내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그러나 주 너희 하나님을 기억하라.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신8:17-18).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본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했을 때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한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산 교육입니다. 누구든지 평안하고 성공했을 때 진심으로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고통 중에 기도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기는 쉽지만, 평안하고 형통할 때“하나님! 감사 합니다”라고 겸손한 가운데 기도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이 평안할 때 성공적으로 살 때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욥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자식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도 늘 그렇게 했습니다. 욥은 모든 일을 늘 이렇게 신중하게 감당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욥처럼 잘 살고 형통하고 평안할 때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경고하기를“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고 하였습니다. 이는 귀한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성공하고 형통하게 사는 것이 모두 자기가 똑똑하고 훌륭하고 또 잘나서 열심히 일해서 잘사는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만해지기 쉬운 가운데서 하나님게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드린 기도 그것은 바로 입으로만 아니라 욥처럼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곧 몸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능력 있는 기도가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감사로 드리는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6. 사랑의 본을 보여주자
우리들은 얼마나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한 가운데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교회학교 어린이가 모처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려고 추운 겨울 새벽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아빠의 내복을 녹혀서 따뜻하게 해 드리려고 아버지의 내의를 자기가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의 내복을 입고 있는 아들의 그 모습을 보고 꾸짖기를“아침부터 어린 것이 어른의 옷은 왜 입고 있니”버릇이 없다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우리는 사실 칭찬을 해주면 앞으로 발전이 없을까봐 자녀들이 잘했어도 다소 만족하지 못하다는 듯이 말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잘 한 일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말과 행동으로 사랑으로 표현해 주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 했으면 눈짓이나 몸짓으로, 때로는 꼭 안아주거나 뽀뽀해 주는 것으로도 가능하며, 또는 어깨를 툭툭치며 어루만지는 것으로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도 사랑의 표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야단을 치면서도, 교회 안가는 것은 가만히 두고, 학원에 가는 일은 한번 빠지는 것은 돈 아깝다고 야단 법석을 치면서도 교회는 갔는지 안갔는지도 모르고 있고 관심도 없습니다.
헌금은 냈는지 안냈는지 모르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제사장 엘리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가만 내버려 두었습니다. 제사드릴 고기를 훔쳐 먹고 성막 안에서 못된 행실을 해도 애들아 너희들에게 들려오는 소문이 좋지 않더라고만 말할 뿐 크게 꾸짖고 책망하지 않음으로 끝내는 타락하므로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부패해서 재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그런 때이지만 기도 많이 하는 아들,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자라며 신앙으로 무장했던 사무엘은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고 영적으로도 크나큰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면 나라가 복받고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잘 키우지 못할 때는 그 가정도 장차 복을 받지 못하며 그 나라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때문에 축복받기를 바랍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의 자녀이건 남의 자녀이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으로 잘 키우고 훈련시켜 이 나라 이 민족의 기둥이 되도록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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