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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못까지 가야 합니다(순종) 2002-09-04 16:11:07 read : 14038
요한복음9:1-12절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세 가지를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첫째-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아라.
둘째- 수입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라.
셋째-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라.
결국 '록펠러'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십일조를 성실하게 드려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습니다.
'빌리 선데이'가 소년시절에 교회에 나가 등록을 했는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매일 15분씩 성경을 읽고, 매일 15분씩 하나님과 이야기하라(기도). 매일 15분씩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라(전도). 매일 15분씩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라. 그리하면 누구나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년은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매일 60분을 그렇게 실천하면서 산 결과 결국 목사가 되었고,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어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요즈음같이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시켜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은 '록펠러'의 어머니나 '선데이'를 가르친 목사님처럼 말씀을 가르쳐야 하겠고. 자녀들은 어린 록펠러나 소년 선데이처럼 부모님의 말씀과 목사님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듣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순종은 가타 부타가 없습니다. 오직"예"하는 순종만이 우리의 몫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거지를 만나게 됩니다. 소경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가 소경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 제자들은 모든 고통과 병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죄가 원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역경이 닥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부모가 지은 죄의 결과로 자녀가 고통을 받는다는 말씀이 결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출애굽기20:5절에"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부모의 죄로 말미암아 자녀가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병이나 고통이 다 죄 때문이라는 말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고통의 훈련을 잘 견디어야 하듯이 성도가 당하는 고통은 죄 값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롬5:3-4).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묻는 질문에 주님은 말합니다 "그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말미암아 그런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가 소경이 된 원인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소경을 고쳐주심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고난도 다 협력하여 선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높은 영광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소경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까지 가서 씻었습니다. 그랫더니 눈이 밝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소경의 눈이 뜨여지니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나무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고 집도 보입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밝은 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빛을 얻은 소경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그에게 광명한 세계가 보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지금까지 소리로만 알았고, 손으로 만져 보아야 겨우 알게 되었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아름다운 산천초목등 모두를 이제는 거리낌없이 언제든지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들은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빛이 무엇인가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과 밝은 빛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소경으로 있는 사람들을 볼 대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을 믿기 전 영적인 소경으로 있었을 때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영의 눈이 열려지니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밝아져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온 그 사람은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자기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눈이 밝아졌는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가 메시야임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소경이 아닌가?
비록 육신의 눈을 멀쩡하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소경이 아닌가?. 한번 자신을 솔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도 아직까지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보지 못하였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영적인 소경입니다.
2002년은 이미 밝았습니다.
동쪽에서 밝게 떠오르던 태양은 변함없이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새해에는 우리도 소경과 같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영안이 열리고 생명의 빛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소경은 자기를 부인하였습니다.
눈을 뜨게 해달라는 소경에게 주님은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라주었습니다. 당시 로마나 유대 사회에서는 침이 눈병에 특효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떻든 침을 뱉아 진흙으로 자기 눈에 바른다는 것은 아무리 눈뜨기를 바라는 소경이라도 기분만은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참고 견디었습니다. 자기 인격이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평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자신을 맡기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폭적인 복종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내 생각과, 내 계산과, 자기 중심적인 계획이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뜻과는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일 때는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① 자기 본위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 본위로 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본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맑은 양심과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②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기심과 욕심은 영안을 흐리게 합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울 왕처럼 불순종하면서도 합리화 시켜가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불합리한 이기심과 욕심을 가질 때 마귀에게 속고, 사기꾼한테 속기가 쉬운 것입니다.
③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 수 없을 때는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반쪽 열린 문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철통같이 닫힌 문도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④ 온전히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보면 믿기만 하고 맡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할 때는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는 일어날 때는 몽땅 짐을 안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습니다" 했으면 맡겨야 합니다.
맡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으셔서 처리할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경이 자기를 부인하는 순종의 삶에 이르게 될 때, 빛을 얻는 첫 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얻을 사람은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눅5:8)라고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니이다"(사6:5)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소경도 자기를 잘 부인하였습니다.
침으로 진흙을 이겨 자기 눈에 발라도 참았습니다.
나 같은 소경을 위하여 거룩하신 주님께서 친히 손으로 발라주시다니 황송하고 고마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단순히 겸손이나 겸허와는 다릅니다.
거룩한 자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요 다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삶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참 모습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교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부르짖는 이 병자를 향해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이였습니다.
얼른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자기의 누웠던 자리에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면 무슨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축복은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겸손함과 순종에서 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님 탄생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들어가는 문은 단 한 개인데 그것도 아주 낮아서 누구든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록 어떤 군왕이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야만 그 예배당에 들어가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며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자신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에게만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2. 보냄을 받은 곳까지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신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소경은 주님의 말씀대로 못에 가서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눈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실로암 못까지 가서 씻으라고 하신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함과 동시에이제 그에게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순종이 곧 믿음이요 믿음의 표시가 순종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당시 소경이 실로암 못까지 간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경은 더듬거리면서 얼굴에 흙을 바른 채 부끄러움이나 고통스러운 것을 참고 주님이 가라고 하신 곳까지 가서 하라시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실로암이란 "보냄을 받았다" 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셔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는 그 곳까지 순종함으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까지 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냄을 받은 곳까지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가리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모세는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번 거절했다가 결국은 애굽으로 갔습니다. 베드로도 로마로 가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기에 로마를 떠나 도망치다가 주님을 만나 다시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 십자가에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도망갔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갔던 것입니다. 가라는 곳에 갔기에 역사에 위대한 신앙인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실로 보냄을 받은 곳까지 가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은 보내면서 안일과 무사함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보다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영광을 얻기까지는 참으로 힘든 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이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기쁨의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주님은 일하지 않는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싸움이 없으면 승리도 없습니다.
안일함과 태평스러움 속에서는 승리의 감격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평안보다는 영광을 제시하셨고, 안일함 보다는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광의 승리 이것은 주님의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상급입니다.
주님도 언제나 안일과 평안만을 바라보고 사신 것이 아니라 영광과 승리를 바라보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골고다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일은 그렇게 쉽고 편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영광과 승리를 향하여 고난과 역경의 길을 헤쳐 나가는 순례자의 길이며 순교자의 길과 같으며 빛과 영생을 향하여 흑암의 골짜기를 뛰쳐나가는 영문밖의 좁은 길을 가야 하는 고통의 행진과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실로암 못까지 가지 않고 눈이 밝아지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가지 않고도 부활의 영광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고난이 없는 영광만을 찾는다면 그는 분명히 실망하고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쉽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바르게 사는 길을, 승리와 영광의 길을 가르쳐 주는 종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역경과 고난에 대한 도피의 길이 아니라 싸우며 견디면 승리하는 길입니다.
2002년 임오년의 새해가 우리 앞에 이미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실로암 못까지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가야 합니다, 거기에 빛이 있고 영생이 있으며 승리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보냄 받은 곳까지 도달하므로 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보냄을 받은 자들은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의 진흙을 씻고 난 후 소경의 눈이 밝아졌고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눈을 씻으니 용모도 달라 보였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니 다른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묻는 이웃 사람들에게"내가 그로다"라고 말하였고 자기가 눈 뜨게 된 것은 예수님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소경이 눈뜬 사건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크나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소경의 부모를 심문하고 소경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한 소경을 출교하기로 하였습니다.
유대교에서 출교란 완전히 그 사회에서 제거되는 일입니다. 공중회석에 나갈 수 없고 사람들은 그의 곁에서 4규빗 이상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와도 교제하지 못하며 물건을 팔거나 같이 먹지 못합니다.
그가 죽으면 그 시체 위에 돌질을 하고 그를 위해 우는 것도 금하였습니다. 출교가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가를 알기에 그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눈을 뜬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회피하고 아들이 장성했으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비겁한 행동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고침 받은 소경은 끝까지 예수로 말미암아 보게 되었음을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저하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헬라 말에 증거와 순교자는 같은 말입니다.
증인이란 어떤 핍박과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순교하는 각오를 한 사람인 것입니다.
2002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는 본문의 소경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그리고 주님이 가라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보냄 받은 곳까지 순종하고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증거해야 합니다.
아직도 생명의 빛을 얻지 못하여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 계십니까? 이 시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그에게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순종하므로 영안이 열려져 밝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라며 약속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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