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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2002-08-13 16:59:19   read : 24563

누가복음 10:38-42 // 2002-7-21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우리는 모처럼만에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우리나라의 4강 진출은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데 충분했으며, 그동안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많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즐거웠던 월드컵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의 입에서는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살지!"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을 주고 의미를 되찾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보람찬 삶을 살고 계십니까? 삶의 의미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보람차며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리아입니다. 반대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르다입니다.

성도 여러분,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아 가장 행복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반면, 어떤 사람은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하고 불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 (무엇보다)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르다는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우선시 했습니다. 마르다로써는 예수님을 초정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이와는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르다를 향하여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리더가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다면, 성장이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일의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하루 24시간도 모자라서 하루가 48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합니까? 존 맥스웰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서 말한바 있습니다. 첫 번째 원리는 집중의 원리입니다. 존 맥스웰이 말하는 집중의 원리란 "중요성의 측면에서 20%안에 들어가는 활동에 관심을 집중한다면, 80%의 보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3RS - 즉 요청(Requirement), 보답(Return), 보상(Reward)의 원리입니다. 요청이라 함은 지금 내게 무엇이 요구되고 있느냐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답이라 함은 '무엇이 내게 가장 커다란 보답을 주는가?'를 생각하여,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80%로 그 일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과감히 맡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상이라 함은 무엇이 내게 가장 커다란 보상을 가져다주는지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다보면, 실제로 우리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 그리고 가장 큰 효과를 가져다 줄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요구되고 있으며, 어떠한 일이 여러분에게 가장 큰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그것이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 듣는 일에 우선을 두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⑵ 타이밍을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이 다 끝났는데, 그제야 나타나서 딴 소리 하는 사람을 보고 속된 말로 "뒷북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일을 해야 할 가장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일을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3장 1절로 8절을 보면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다"고 합니다. 즉,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나에게 무엇인가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즉, "때가 있다"는 말은 사건의 의미성을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슛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수비수가 그 앞에 있습니다.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비수가 한발 늦게 행동을 해서 골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때는 지났고 막으려고 했던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어진 시간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을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타이밍에 해당하는 표현이 헬라어로는 '카이로스(καιρο?)'입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이라는 의미의 단어에 '크로노스(χρονο?)'와 '카이로스(καιρο?)'가 있습니다. 전자 '크로노스'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 '카이로스'라는 말은 주어져 있는 시간들 속에 정말로 내게 의미를 주는 시간, 즉 질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양적인 시간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인생을 즐기느냐 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크로노스'적인 삶을 산 사람과 '카이로스'적인 삶을 산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삶을 산 사람은 마르다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삶을 산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왜 마르다를 보고 '크로노스'적인 삶을 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마르다는 가장 의미있는 시간을 준비해놓고도 타이밍을 놓쳐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가 놓친 타이밍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들어야 할 타이밍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왜 오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배가 고파서 왔을까요? 아니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왔을까요? 물으나 마나 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마르다의 집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는 일을 최우선시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역시 말씀 듣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가끔 심방을 하다보면, 음식 만드느라 심방하러 오신 목사님들을 기다리게 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 마음이야 고맙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음식 만드는 것보다 말씀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집이나 사업장에 심방을 하러 가는 것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가는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보는 것-그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느 때든지 말씀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타이밍을 놓쳐놓고도 자신의 잘못은 탓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르다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보고 마르다가 어떠한 행동을 취합니까? 40절 말씀을 함께 봅니다.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동생의 모습이 자기 눈에는 눈꼴사납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나를 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타이밍을 놓치게 되니까, 어떻게 됩니까? 다른 사람을 시기하게 됩니다. 원망하게 됩니다. 일의 타이밍을 놓치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일도 타이밍을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어떻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도 타이밍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마르다의 모습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마르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음식을 만들도록 주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맡겨야 할 때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 듣는 데에도 타이밍이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놓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때를 살리면, 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이라 할지라도, 죠안 폰 쉴러(Joan von Schuler)라는 극자가의 말처럼 모든 시대를 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세월을 아껴서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춘천중앙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⑶ 선한 목적을 위해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삶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주어진 시간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타이밍을 잘 맞추는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도적질과 같은 악한 일에 사용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선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절 말씀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믿는 일에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 일수록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야 합니다. 요즘, 많은 청년들이 세상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때로는 성도들 가정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며 사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세상에서 아무리 지칠 줄 모르는 출세가도를 달린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의 인생이 헛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녀를 양육하데, 주어진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 읽는 시간, 또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도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의미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을 잘 살려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잘 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⑴ 받은바 은사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받은바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은사를 사용하되 누구를 위해서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겠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은사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도 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사용하면, 내게도 유익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받은바 은사를 나누다 보면,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이 더 많아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산물 품평회에서 항상 일등을 하는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해마다 자기 씨앗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웃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농부가 대답합니다. "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바람이 불면 꽃가루가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옮아갑니다. 따라서 이웃 밭에서 질 나쁜 곡물이 자라고 있다면, 내 곡물의 품질도 나빠질 수밖에 없지요. 내가 이웃에게 좋은 씨앗을 나누어 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심오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은사를 가지고 봉사하게 되면, 설사 내가 좋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할 수 없는데, 그 불완전한 것을 상호 보완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이 혼자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보완하고 서로 도울 때, 우리의 모습은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달란트를 가지고 살지는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주어진 달란트를 어느 정도 잘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할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 즉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예수님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을 잘 드러내면서 살고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마르다의 모습입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가르치는 것은 잘 하지만, 음식을 못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음식은 잘 만들지만 가르치는 것은 잘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 마다 자신들의 달란트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봉사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마르다 역시 음식을 잘 만드는 달란트를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달란트 의식, 즉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만약, 마르다가 자신의 재능이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다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그녀는 동생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고 불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임을 깨닫고 봉사할 때에는 불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만약 여러분이 봉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봉사하지 마십시오. 봉사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봉사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은사배치 사역을 통해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1회 이상 사역훈련을 하고 있는데,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도 발견하고 봉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⑵ 헌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마리아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고 그 일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언니 마르다를 도와주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는 30대 초반 교황 쥴리우스 2세(Julius Ⅱ)로부터 그림을 그릴 것을 명받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일을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는 바티칸의 작은 교회 천장에 열 두 명의 인물을 그리라는 명을 받았지만, 12사도를 넘어 창세기에 나오는 아홉 장면을 뽑아 400명이 넘는 인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는 시스틴(Sistine)성당의 천장에 이 그림을 그리는 4년 동안 항상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고생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왜 그렇게 어두운 시스틴 성당 구석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을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실 것입니다"라는 한 마디에 무엇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켈란젤로의 헌신입니다. 헌신은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는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은 한국 축구를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헌신의 모습이란 무엇입니까? 그동안 한국 축구의 병폐로 작용되었던 모든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혈연을 끊어버리고 외부로부터 어떠한 압력이 들어와도 그에 굴하지 않고 오직 열심있고 성실한 선수를 발굴하여 훈련시킨 것입니다. 아마도 히딩크 감독의 이러한 헌신적인 모습이 없었더라면, 한국축구는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또 다시 4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 한국 축구는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은 더 큰 미래를 보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현대 사회를 "헌신을 두려워하는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기는 하지만,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자리매김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헌신하는 사람만이 자기 안에 "확신"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치고 헌신하지 않은 지도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에드 머클로이(Ed McElroy)라는 사람은 "헌신은 우리에게 새 힘을 준다. 무엇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질병이건 가난이건 또는 재난이건 우리는 결코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헌신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은 남과 나를 구별시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에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정 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참으로 많은 것을 말씀드렸는데, 이것만은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시간과 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아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십시오. 시간을 잘 관리하되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일하십시오. 그리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활용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 인생이 의미있게 됩니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을 활용하되 목숨 걸고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춘천중앙교회 성도들은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관리하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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