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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2002-07-22 15:29:44 read : 22086
마10:1-4 // 2002/06/30
드디어 한국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저는 월드컵을 보면서 갈등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입니다. 만약 우리 나라가 이
기라고 기도하면 다른 나라가 질 것입니다. 그 나라도 기도할텐데--- 그리고 '이웃을 사랑
하라'는 본질과도 다릅니다. 그러니 기도도 절묘하게 합니다. "우리 선수 실력이상으로 뛰게
해달라고" 그러면 다른 나라 선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16강, 8강, 4강 확
정된 후 이영표, 송종국, 최태욱 선수가 기도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놀라운 점이 많습니다. 세상에 우리민족을 이렇게 흥분시킨 경우는
없었습니다. 1974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한국에서 집회 할 때 100만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열광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열광적으로 만들지 못했습니
다. 축구선수 몇 명이 세상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축구를 보면서 왜 예수님께서 수 백 만 명을 끌고 다니지 않으시고 몇 명에게
만 관심을 갖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왜 의인10명만을 찾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잘 훈련
된 축구 선수 몇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잘 훈련된 제자 몇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번 월드컵으로 인해 행복해 합니다. 실제로 신이 납니다. 붉은 악마들이 특
히 즐거워합니다. 3일 동안 노숙하면서 표를 구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음식점에서 음식을
공짜로 줍니까? 너무나 기뻐서 그랬겠죠,
그러나 아무리 우리들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해 해도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신나고 즐
겁고 행복한 사람은 우리들이 아닙니다. 붉은 악마들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새벽까지 거리
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지만 저들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한 사람은 월드컵 대표 선수들과 저들을 훈련시킨 감독과 코치들입니다. 그 중
에서도 골을 넣은 선수들 일 것입니다. 저들은 아마 요즘 발이 땅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은
흥분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제일 기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 누구보다도 골을
넣은 선수들일 것입니다. 선수들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선수들 때문에 행복해하는 관중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대표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직접 골을 넣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비록 어렵더라
도 마음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의 수고와 헌신으로 기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욕심입니
까?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김 집사님께서 전도하시
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했는데요."라고 한다면 어쩌겠어요?
그러므로 내가 직접 뛰어야합니다. 선수가 되셔야 합니다. 저를 따라해 보세요.
"주님 저도 대표선수 교인이 되겠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신앙의 대표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을 다같이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먼저 그 열두 제자만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와 같은
권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
에게는 그와 같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 축구대표선수들이 행하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보면서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것을 느낍니다.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소리 지르고 즐거워하는 관중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관중들
과 국민들을 소리 지르고 즐거워하게 하는 선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선수가 되는 길보다는 관중이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훌륭한 선수들의 경
기를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자신이 스스로 훌륭한 선수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재능
도 없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하여 겪어야 할 과정을 밟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일에도 대표선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냥 앞장서지 않고 부담 없이 교회만 들
락거리며 사람들만 가지고는 이 세상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귀신들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관중 같은 교인은 아무리 그 수가 많아도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천만 성도는 절대로 그 수가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
도 불구하고 단순한 교인들의 숫자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일에도 선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도 아주 탁월한 대표선수가 있어야만 합니
다.
외신에 의하면 한국 축구는 몇 명이 뛰었다고 합니까? 12명! 응원단까지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마치 12명의 제자가 축구선수와 같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이 제자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셨습니다. 많은 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수로 세상을 바꾸셨던 것입니다. 그래요. 한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히딩크 한 분이 한국 축구를 바꾸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간디 한 사람이 인도를 바꾸
었습니다. 케네디가 미국을 바꾸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한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레어 총독의 등장으로 영국이 힘을 되찾았습니다. 주릉지의 등장으로 중국이
강대국 대열에 끼어 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수가 필요 없습니다. 작은 수를 요구합니다. 그 작은 수를 성경은 무엇이라
고 부릅니까? '제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선수를 제자로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
들을 그냥 나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본문을 보세요
예! 귀신을 내어쫓고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엄청난 파워를 주신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모두가 파워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만입니다. 함
께 있었던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현장에 뛰어드는 제자에
게만 놀라운 능력을 준 것입니다. 관중들이 흉내낼 수 없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할까요? 간단합니다. 선수가 되지 못했
기 때문입니다. 관중석에서 기뻐 하지만 이런 능력을 발휘할 장소가 없습니다. 관중들은 능
력이 있기는커녕 도리어 말만 많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말로는 다 감독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선수로 뛰는 것은 능력을 가지고 뛰어야 합니다. 선수로 현장을 뛰는 것이 중요합
니다.
한국교회 문제가 무엇입니까? 말이 많아요. 그런데 선수로 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임직식을 갔습니다. 대단하더군요. 그런데 그 교회는 축사 4명, 설교자까
지 합쳐서 9명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청중에게 인사시킨 분까지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것은
현장을 죽이는 겁니다. 관중이 주인이 되는 거지요, 한국교회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육에 있어서도 문제가 됩니다. 축구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과 생각은 다릅
니다. 선수와 관중은 다른 것입니다. 선수로 현장에 있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보입니다. 그
런데 관중으로 있으면 순발력이 없고 입만 삽니다.
레오날디즘이란는 말이 있습니다. 팔방미인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딴 '통합교
육'을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케이크를 만듭니다. 저희 나라는 어떻습니까? 열심히 케이
크 만들어서 먹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서구교육은 먼저 밀가루와 설탕, 계란을 가지고
와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베이킹 파우더를 넣으면 왜 부푸는지 이야기합니다.
완성된 케이크를 자르면서 중심각이 몇 도인지 이야기를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먹는 매너까
지 가르쳐 주는 겁니다. 한 수업에 산수, 가사, 도덕, 과학 등이 다 들어 있습니다.
현장에 필요한 것을 통합으로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축구도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
격과 수비를 다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인들이 4분의 1이 크리스천인데 왜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그리고 왜 나는 능력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없는 나약한 존재일까? 그런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없습니다.
관중 같은 교인이 몇 백만 명이 있더라도 선수는 11명입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
로 뒤는 선수가 되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선수를 부르십니다. 제자를 부르십니다. 관중들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능력입니다. 권세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입니다. 귀신을
제어하고 권세 있는 자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예상보다 훨씬 소심한 성격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
실입니다. 내성적이었던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때 6년 동안 반장을 해보았습니다만 그리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부담감이 있습니
다. 그런데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선수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 믿고 나서 선수로
살다가 죽고 싶은 것입니다. 관중석에 앉아 말많은 사람이 싫습니다. 현장에서 뛰다가 능력
을 받고 함께 뒹굴고 골을 넣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신앙의 힙입니다. 기독교의 철학
과 신앙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를 믿으면 대부분 적극적으로 바뀝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힘입니다. 절들은 숲 속에 있지만 교회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입니다.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만약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내성적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배 깔고 간식 먹으면서 축
구에 흥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세상의 일에 근심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월드컵이 끝나면 세상이 얼마나 변할까요?
지금 엄청나게 흥분되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납니까? 사람이 바뀝니까? 어렵습니다.
물론 월드컵 하나로 세상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만도 놀랍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국
민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냥 흥분상태로 끝나는 거지요.
왜냐하면 축구는 축구일 뿐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생명
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셨습니
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소극적이던 저를 적
극적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관중석에 있던 저를 현장으로 선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의
승리를 보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돼서 관중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
것도 대표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훈련이 있습니다.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자로 서
고 싶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싶습니다. 모든 병을 고치고 싶습니다. 모든 악을 예수의 이
름을 물리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으로 인해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을 만나면 바뀝니다. 능력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누구 안에서요? 예수님을 믿으면 능력이 생깁니다.
기막힌 은혜가 나에게 온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월드컵 경기가 온통 세상을 활기 있게 바꾸어 놓았지만 우리는 모두 압니다. 경기가 끝나
면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은 경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월드컵 경
기는 우리와 세상을 흥분시킬 수는 있지만 정말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스
포츠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력이 저를 소극적
이지 않게 하고 적극적이게 합니다. 저를 인생의 관중석에 앉게 하지 않고 경기장으로 내
몹니다. 관중이 되게 하지 아니하고 선수가 되게 합니다. 선수가 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게 합니다. 도전하게 합니다. 극복하게 합니다. 정말 저를 인생의 관중
이 아닌 선수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남의 승리를 관람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승리를 연
출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그 능력이 임해집니다.
저는 복음에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복음을 만나면 사람이 바뀔 수 있습니다.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선수는 바뀝니다. 그러나 관중이 되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수! 그것도 대표선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선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선수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살아갑니다. 쉽게 말씀드리
면 선수생활을 잘하면 먹고사는 것이 문제가 없습니다.
운동만 잘하면 부자가 됩니다. 이번에 적어도 선수들이 3억 이상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
까?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믿음생활 잘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없습니다. 선수가 되면 됩니다. 예수님의
인생을 잘 보십시오, 사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삶이 같았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놀
랬죠.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삶과 믿음이 같았는데 어떻게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가?" 제자들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 예수님께서 뻥 치셨구나!" 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십자가야말로 삶과 말씀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능력이 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말만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선수입니다. 그리고 부활
하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진정한 대표 선수! 예수님께서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끼쳐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합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생활에서 바뀌어야 합니
다. 사실 믿음 생활을 오래했다고 하나 관중 속에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애기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아기들이 예쁘죠. 그런데 정말 이기적입니다.
애기 중에 "우리 엄마가 피곤하구나! 조금 있다가 젖 달래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애는 없습니다. 자기밖에 모르죠, 이런 교인이 있습니다.
또한 애기 보다는 낫지만 아이 같은 교인이 있어요. 매일 교회에서 놀려고 합니다.
교회를 사교클럽과 같이 생각만 하는 겁니다.
은혜를 사모하기보다는 노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노는 것이 중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놀기만 한다면 사교장이 될 뿐입니다.
또 교인들 중에는 환자 같은 교인들도 있습니다. 늘 치료, 위로 받기만을 원해요. 물론 교
회가 병을 고쳐 주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늘 병원 역할만 감당할 수 없습니
다. 어느 정도 지나면 성장해서 퇴원해야 합니다.
반면에 교인들 중에는 선수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전투병과 같습니다. 제자와 같은 교인
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싸우는 교인입니다. 직접 적과 싸우는 교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병든 자들이 많았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이 많았습니다. 문둥병(한센씨
병)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문둥병과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세상으로 내 보내셨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병들었습니다. 세상이 귀신 들렸습니다.
세상이 문둥병에 걸린 것과 같아졌습니다. 그와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동
적으로 귀신 들리고 자동적으로 병에 감염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세상을 고치시
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냥 부담 없이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되지 마시고 좀 힘들고 어렵겠지
만 제자가 되십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안일하게 사
는 것을 거부하고 세상 속에서 세상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는 삶을 사는 사
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삶을 사는 사람
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지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병원, 유치원 같은 교회여야 합니까? 물론 그런
기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교회의 기능은 선수를 만드는 교회입니다.
관중이 아니라 선수를 만드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선수가 되십시오, 제자
가 되십시오, 이왕 예수님 믿고 사는 것! 선수와 같이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되길 바
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편히 살 생각을 버리십시다. 쉽게 살 생각을 버리십니다. 생각
없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따라 살지 마십시다. 생각하며 사십시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과 식
인지를 깊이 깊이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십시다. 싸우며 사십시다.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치
고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독립군과 같은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
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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