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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는 불신앙입니다 2002-07-22 15:27:53 read : 23253
빌4:4-7 // 2002/06/16
얼마 전 미국의 콜로라도 주에 있는 400년 된 거목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긴
세월동안 14번 벼락을 맞고,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뎌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딱정
벌레들이 나무를 갉아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게 된 것
입니다. 즉 외적인 압력을 이겨 낼 수 있지만 내부의 딱정벌레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그만
큼 안이 중요합니다.
월드컵 개막 경기인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진 것입니다. 저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 정치의 문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기 가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딱정벌레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심을 갖아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나입니다. 나를 살펴보지 않으면
언제 딱정벌레로 인하여 허물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딱정벌레가 무엇인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딱정벌레! 이것은 무엇입니까? 염려입니다.
우리가 염려를 가지고 있으면 고목처럼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못을 박습니다. 염려 자체가 불 신앙임을 전제합니다.
왜 이렇게 염려가 위험할까요? 염려는 '물어뜯다, 목 졸라 질식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치 쥐가 고양이에게 목덜미를 잡혀서 질질 끌려가다가 죽습니다. 염려 또한 우리의 삶
을 서서히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특히 믿는 자에게 염려는 불 신앙입니
다.
그런 면에서 오늘 저희는 염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염려거리와 염려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니! 얼마나 걱정거리가 많은데요. 그래요 걱정거리는 많습니다. 염려거리는 많아요. 그러
나 염려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죽게 될지 모릅니다. 염려거리입니다. 당시에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선교비도 보내고 기도해준 교회입니다. 그 교회 이름은 빌립보 교회입니다. 그
들은 바울이 감옥에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얼마나 큰 염려거리이겠습니까? 그런데 바울
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거리를 가지고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염
려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기하게 되는 겁니다.
제 이야기는 염려가 염려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염려거리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인가? 아니면 염려하지 않을 것인가? 누가 결정하는 것입니까? 내가 결정하는 것
입니다. 오늘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첫 번째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주안에서라면 모든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들
은 의심할 것입니다. 어떻게 염려할 것이 있는데 염려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금 염려하는 것이 정말 염려할 일입니까?
암에 걸려 있습니까?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옛날에 김종래라고 하는 만화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콜록콜록하는 겁니다. 염려돼서 입원을 시키지 못합니다. 약국에 가보니 약사가 얼굴이 노란
것 같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관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땅을 보는 지관
이 허물어져 가는 판자 집에 사는 겁니다. 그래서 묘자리도 구하지 못합니다. 뭐 그런 이야
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쓸데없는 염려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신과 통계인데 40%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 30%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이었고, 12%는 상상으로 염려하는 두려움이었고, 18%는 근거도 없는 여러 가지
걱정거리였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근거 없이 염려하게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쌓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조건 기뻐하라! 는 것입니다. 명령형입니다.
염려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실제로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전 5장 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기
뻐하라는 것은 어느 때든지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기쁨이 떠나가면 염려가 찾아옵니다. 중간 상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기쁨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마 저 사람은 행복할거야! 저렇게 웃고 지내는 것을 보면... 과연 그
렇습니까? 정말 노력하는 겁니다. 기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코미디 하는 겁니다. 이
것을 아는 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겁니다.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는
"나는 울지 않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 밤낮으로 나를 짓누르는 두려운 고통 때문에, 내가 웃
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
되었습니다.
사실 세상을 살려면 염려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안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기뻐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안에서 기쁨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교회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염려를 이기는 방법이요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관용'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하
죠. 결국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염두 해두고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철저하게 관계 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즉 사람들 관계 속에서 기쁨을 누
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 중에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혼자 거울을 보면서 "난 왜 이럴까? 너무 멋있어!" 요동을 쳐보십시오. 기쁜가?
가게 아줌마가 "어휴 예뻐졌네! 살빠졌어!" 이 말이 훨씬 낫지!
그런데 이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용서합니까? 간단합니다. 당신이 구원받았으면 은혜를 알지 않는가? 그만큼 용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
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염려하는 줄 아십니까? 왜 기쁨이 없는 줄 아십니까? 아직 용서를 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용서한 것을 내가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관용하는 일이 급하다고 말씀합니다. 뭐라고요? 주께서 가까이 계신 것입니다. 용
서는 급한 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가 도움을 받는 일입니
다. 화를 내든지, 용서하지 못한다든지, 공포와 불안에 떨면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하는 사람
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왜 염려하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염려하는 이
유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염려는 믿음
을 잃는 것입니다.
염려란 마치 흔들의자와 같은 것입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아무리 흔들어 보십시오. 여전
히 제자리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염려를 해도 제자리일 뿐입니다. 해결할 수 있다
면 염려하십시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다면 왜 염려하십니까? 여기에 염려의 비생산적입니
다. 그래서 '염려는 비생산적인 것이며 비신앙적인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왜 염려할까요? 결론으로 말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부풀리게 됩니다.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의처증이 무엇입니까? 의심하는 거지요. 그러다 보면 염려가 되고 더 나아가 분노가 나와
폭력을 쓰게됩니다. 왜 의처증이 생깁니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우리가 무엇을 염려합니까? 염려한다고 키가 1센티 크게 할 수 있습니
까? 방법이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십니다.
능력도 없고, 자기 힘으로 할 수도 없으면서, 걱정 근심하며 앉아 있는 다고 해서 해결되
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염려를 기도와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믿음 좋으신 집사님이 외동아들을 결혼시키려는 겁니다. 얼
마나 기도 많이 하겠습니까? 특별히 날씨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염려했습니다. 기
도는 기도고 염려는 염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려대로 결혼식 당일 날 소낙비가 내리
는 겁니다.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망을 했습니다. "염려한 대로야!"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예상인원보다 배 이상이 오게 된 것입니다. 비가 와서 회사에서
야유회가 취소되었다는 것이죠.
즉 무엇입니까? 비가 오든지 말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기도하면 됩니다. 엎드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겁니다.
아이들을 하나님 앞에 맡겨야지 내가 해서 할 수 없습니다. 염려만 있을 뿐입니다.
왜 염려 한다고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결국 염려하는 곳은 어디
입니까?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기도하지 않으면 염려로 가득 차 있게 되어 있
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
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염려대신 무엇을 주신다고요? 평
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 이것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사야 26장 3절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
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뢰하는 자 기도하는 자에게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
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에게 맡기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주안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염려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알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찬송가 455장의 작시자 히윗은 1887년 불량소년을 전도하다가 벽돌을 맞게 됩니다. 처음
에는 사랑이 있고 용서를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앙을 잃게 된 것입니다. 기도도 하
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염려하게 됩니다. 증오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자기 병실
에 찾아온 흑인 아주머니가 그 더러운 고름 닦은 솜을 청소하는 모습을 봅니다. 몇 개월 동
안 항상 찬송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히윗을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리고 쓴 것이 있습니다.
♬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
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
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
님만 따라가리.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이 시간 딴 근심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주님만을 따르겠노라 다
짐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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