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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2002-07-05 11:23:29   read : 33148


말라기 1:1-9
어저께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4강이라는 놀라운 승전보를 접하고 온 국민이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고 한마음 한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 일이 맞이했을 때에 무조건 흥에 겨워 소란스러워 할 것만 아니라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수험생이 입학하고 기뻐 할 줄만 알고 감사를 할 줄 모르면 진정한 승리자가 아닙니다
그동안 키워준 부모와 가르쳐준 스승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월드컵 승리에만 겨워서 술에 취하고 거리를 배회하며 고성 방가를 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월드컵은 이제 며칠 후에 끝나게 됩니다
끝난 후엔 무슨 재미로 사나 걱정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끝난 후를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으니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월드컵도 우리의 인생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언제, 어느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찰스 스펄젼 목사님이 한 번은 시골에 있는 어떤 농가를 방문했습니다. 농가의 마당 한쪽 편에는 큰 풍향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화살촉 밑에 표가 하나 달려있었고 그 표에는 무엇이라고 글자가 쓰여있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과연 무엇이라고 쓰여있을지 궁금해서 풍향계 밑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의 말씀이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좀 의아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주인인 농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농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람이 어떠한 방향으로 불던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거기에 그 말씀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민족과 내 인생을 돌이켜볼 때
곤고할 때도 있었습니다.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주요한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말라기서의 시대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중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스룹바벨과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의 영도 아래 1, 2, 3차의 귀향을 하게 됩니다.

고국에 돌아온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들이 포로 생활속에서 약속했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이민족의 방해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52일 만에 재건됩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을 하고 난 다음이 더 큰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뜨거움이 없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신령과 진정이 사라졌습니다.

성전 건축을 마쳤으나 오리라고 했던 여호와의 큰 영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커녕 오히려 기근과 흉작으로 고통이 연속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말 1:2).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회의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말 2:17).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과 헌신이 부족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행위는 차갑디 차가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2절에서 하나님게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셨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저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그 증거를 대 보십시오."

이것이 그들의 대꾸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사랑을 고백했는데,
정작 사랑을 받은 백성들은 사랑을 받은 적인 없다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도 감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 당신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셨습니까?"라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그들이 잘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데 왜 어렵게 살게 놔두십니까 하고 반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내 욕심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 아파트를 크게 해주시고
내 은행 통장에 현금 액수를 늘려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즉각적으로 응답하셔야만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믿어 주고 있음으로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 범사가 만사형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려라 참깨의 하나님, 만병통치약의 하나님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이나 우리들의 생각이나 비슷해서
물질적인 풍요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마치 내게 내 짝궁처럼 수십만원짜리 신발을 사주지 않고
내 친구처럼 해외 유학 보내주지 못하는 부모는 내 부모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자식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았을 때는 그래도 화려하고 물질이 풍부하고 멋있는 이방 민족의 문화를 보며 살다가 고국에 돌아오니
기대하고 돌아온 고국은 마치 바벨론에 비하면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에 돌아 왔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기대하고 돌아오니 하나님의 사랑이 이 정도냐?"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70년 동안 고생한 대가가 겨우 이것이냐?"는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원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첫 번째 빨간 불은 불평, 불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의뢰하고 감사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을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할 때에
여러분은 "내 신앙이 병들었구나“ 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서에 서 말하는 것은 "회개와 사랑"인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서
심한 영적 건망증에 걸려있는 유다 백성들과 오늘 이 시대 우리를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망증 환자는 자기가 방금 전에 한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점심 저녁 식사를 잘 차려 주었건만 퇴근하여 들어오는 아들에게 며느리가 자기를 굶어 죽이려고 밥 한끼도 안 줬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아들, 며느리가 베풀어준 고마움을 망각의 세계로 던져버리고,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우리주변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경계의 말씀을 주셨을 때는 잠시 잠깐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지 결단하다가도 교회만 나서면
어떤 결단을 했었는지 하얗게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를 모르는 것은 믿음이 병든 것입니다.

세상에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늘 불평 거리만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들은 늘 감사꺼리만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랑을 모르고 감사를 할 수 없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비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나보다 물질적으로 잘 사는 사람을 바라보고 왜 나는 이런가 비교를 합니다.
앞집에 친구의 남편은 잘 나가는데 왜 내 남편은 이런가 친구 자식들은 잘 나가는데 왜 내 자식은 이런가? 늘 비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설령 잘 살아도 더 잘사는 사람을 비교하다 보니 평생을 불행하게 살다갑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 살던 때를 비교하니 그때가 더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불평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비교의식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도 바벨론과 비교하니 하나님 앞에 감사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라는 말도 안 들립니다.
도리어 그 말에 강한 불평과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는 것은 중심이 잘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면 곧 쓰러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 고난과 위기에 부딪혔을 때 내 신앙에 중심이 바로 서있는 사람은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찬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2절)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지로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사랑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싶어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엡1:6)고 말하였다.
우리가 지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셨다는 말씀이다.

3절에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 사랑을 야곱과 이삭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형의 이름은 에서이고 동생의 이름은 야곱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한다.

(2절 하반절과 3절 상반절)
에돔 에서의 후손까지도 선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여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 결정에 어느 누구도 항의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야곱을 선택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짐니다
경제적인 능력, 학벌, 건강, 성품, 가문, 가족 부모배경 등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실 때에 어떤 조건을 갖추었기에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 그냥 선택하여 사랑하셨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감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죄와 허물많은 인생이지만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2-3절에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했고 에서는 미워하신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교활하고 자기만을 알던 자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이런 자를 축복하심이 합당치 여겨집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에서와 다른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에 대하여 간절히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만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 밑에서 살면서
사랑하는 아내도 얻고 약은 꾀로 많은 양떼를 거느리는 부자가 되자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형 에서가 문 제였습니다.
이제 야곱이 고향 땅을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위급상황이 되자 20년만에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야곱의 기도가 어찌나 간절하였던지
브니엘의 하나님 얼굴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용기가 낫습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기도에 대한 약속을 보장받기 전에는 결단코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하고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워 씨름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결단코 당신을 놓아주지 아니하리라”
악착같이 매달려 기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그 처절하고 간절한 소망과 열심에 감동하고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으니 너를 축복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하였습니다. 즉 그의 환도 뼈를 쳐서 위골시켰습니다.
이제 야곱은 환도 뼈가 위골 되었으니 그는 이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 뼈를 첬을 까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자존심이 날아간 것입니다.
야곱은 자만심이 가득찬 자기 생각대로 살아온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높이 쓰시려고 하지만 그의 자만심을 알기에 사정없이 그이 자존심에 환도 뼈를 내리치시고 그를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원하면
여러분의 자존심의 환도뼈, 교만의 환도뼈, 욕심의 환도뼈, 인색함의 환도뼈, 고집의 환도뼈를 깨드려야 합니다.

말라기 1장 6절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요, 이스라엘은 그 주인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인 이스라엘은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마땅히 공경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말 1:6).
종인 이스라엘은 당연히 자기 주인을 두려워해야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말 1:6b).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행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영(靈)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롬 8:14-15)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하였습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부자관계의 단절은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우리는 남북이산가족의 부자간에 50년만에 부자관계 만남의 얼마나 감격적이고 행복한 것이었던가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갖는 모든 관계 중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만큼 그렇게 뜨겁고 간절한 관계는 다시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구해야 될 자식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에 따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자관계의 행복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섬김을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부패하고 타락한 제사장들을 비교하여 우리의 신앙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희생제물을 드릴 때 경건함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희생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나오면 제사장들이 짐승들을 검사하면서
흠없고 살진 것은 빼돌리고, 병들고 흠있고 약한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참석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들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 정직하고 성결하게 살다가 주님앞에 나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몸과 마음이 되어야 할 터인데
마치 제사장이 병들고 약하고 흠있는 제물을 드리듯이
우리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이 죄와 허물로 병든 신앙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리가 영육간에 신앙이 건강할 때
귀하고 흠없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특별한 사랑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특별한 사랑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행복이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관계성이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요 축복의 법칙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생은 대신(對神)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대인(對人)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또한 대물(對物)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스림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유아독존으로 살수가 없습니다.
먼저 대신 관계가 바로서야하고 다음에 대인관계가 바로 서야하고
그래야 대물관계도 바로 서는것입니다.

대신 관계와 대물관계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산물입니다.
우리는 오직 대인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만들 때 때 행복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겨야만 행복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일 때만이 진정으로 복된 명예를 누리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내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영원하신 통치를 받아야만 행복합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라!
너희는 하나님 앞에 특별한 존재, 보배로운 존재임을 잊지 말라!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받은 행복과 축복이라고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롬8:38의 말씀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망조차도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이 세상의 어떠한 것이라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현재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서 얼마든지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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