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로부터 자유하라 2002-06-25 16:53:16 read : 19253
딤전 6:7-10 // 2002-06-23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온통 돈 이야기뿐입니다. 비자금, 경제전쟁, 무역 전쟁, 세계화, 아파트 분양, 부동산 투기, 주식 투자, 이자율 하락, 자금 압박, 도산, 고액 과외, 물가 상승 등 이러한 말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고 듣는 말들인데,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삶이 그만큼 돈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성인의 경우, 하루의 약 6-70퍼센트를 돈과 관련된 생각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돈 때문에 얽힌 인생을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이 부자이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이므로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보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돈버는 과정이 떳떳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번 돈을 어떻게 간직하느냐가 걱정거리 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성도도 돈 문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가난이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능력 또는 구조적인 악 때문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부자들을 볼 때마다 시기, 질투, 좌절감을 느끼게 되거나 심지어 맹목적인 적대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현대인 모두는 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병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고민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성도 여러분, 도대체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돈이란 무엇입니까?
돈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사람에 의해 돈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돈 그 자체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만약, 여러분이 심한 궁핍함을 겪고 있을 때, 돈이 반드시 필요할 때, 누군가가 다가와 악행을 저지를 것을 부탁하면서 수억의 돈을 준다고 유혹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쉽게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돈이 어떠한 사람에 의해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돈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은 영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즉 돈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삶까지 포함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돈으로 유혹해서 자신의 손 안에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만약, 이 유혹에 넘어가 사단의 세력 아래 놓이게 된다면,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서 "재물"이란 말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재물"이라는 단어를 소문자(mammon)로 표기하지 않고 대문자(Mammon)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까? 재물이 단지 재물 자체로 끝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위탁하는 신으로 변할 수 있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돈"-너무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인간이 돈 문제에 대해 그토록 무기력한 이유는 돈에 신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돈에는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힘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대적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돈의 힘을 알고 그래서 돈을 신으로 섬기게 되면-인간은 돈의 위력을 빌리려 스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됩니다. 지난 5월 17일 뉴스에 일명 대통령의 아들까지 연루된 "최규선 게이트"의 실체가 잘 드러나는 보도가 MBC 뉴스를 통해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최규선-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토록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까? 그는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비활동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스런 아내까지 미국의 거물급 인사의 가정에서 식모살이에 버금가는 삶을 살도록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가 왜 이토록 권력에 손을 뻗으려고 한 것입니까? 돈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돈과 권력은 많은 경우 같이 갑니다. 최규선 그는 전적으로 돈 앞에 무릎을 꿇은 아주 안타까운 영혼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는 어떻습니까? 돈에게 내 인생을 의탁해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는 무릎 꿇지 않으면서 돈 앞에는 무릎을 꿇고 있지는 않습니까?
1. 그럼으로 돈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돈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기 위해서, 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견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⑴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다"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정말 내가 번 돈은 내 것일까요? 우리 사회는 사유 재산권을 인정합니다. 성경도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다"라는 논리는 틀리지 않습니다. 17세기 철학자인 존 로크(John Locke)가 말한 것처럼, "신은 모든 사람이 세상 만물을 공유하도록 하셨다. 그렇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주장에 간과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존 로크는 인간의 죄성을 간과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재산권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주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어느 한군데 사유 재산권의 절대성을 말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아간도 전리품을 자기의 소유로 하려고 했다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번 것이라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번 것은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니까 십일조를 어떻게 드립니까? 마치 내 것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 것 가운데 내가 일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점에 대해서 소홀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도 내 것, 다른 사람의 몫도 내 것이라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번 것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몫이 있습니다. 돈에 대해 반듯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깨끗하고 반듯하게 번 돈이라 할지라도, 그 중에는 분명 하나님의 몫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⑵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듯 싶습니다. 돈만 있으면 안락한 차도 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원, 교수,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막상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돈으로 자식을 키웠으나 자식은 돈 때문에 부모를 죽입니다. 돈으로 사랑과 우정을 산 것 같았지만 돈이 떨어지면 사랑도 우정도 떠납니다. 돈이 많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는 진리를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1921년에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 아홉 명이 미국 시카고의 어느 호텔에 모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주식시장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사람, 가장 큰 철강회사의 사장, 가장 큰 전력회사의 사장, 은행장, 장관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25년 후 이들이 어떻게 되었나를 추적해 본 결과, 그 가운데 세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파산했고, 한 명은 범법자로서 외국에서 빈털터리로 죽었으며, 한 명은 정신병자가 되었고, 두 명은 감옥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돈은 결코 우리의 영혼을 맡길 만한 것이 못됩니다. 돈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정한 돈이 무너질 때 그의 인생은 돈과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⑶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살다보면 돈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이면서 불행한 사람이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소유=행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전도서 1장 8절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또한 전도서 5장 10절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자들 가운데는 가진 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빼앗길까봐, 도둑맞을까봐, 좀이 쓸까봐,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까봐 초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정말 잘못된 이유는 다른데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유함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 5:3)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자, 그래서 겸손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허락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행복은 부유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부자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불행한 사람이며, 가난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합니까?
요즘 우리나라는 한탕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부동산투기, 불법적인 주식 거래, 사기, 뇌물, 마약, 노름, 각종 복권이 오늘날 한탕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실례들입니다. 사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누가 돈을 빠른 시일 내에 많이 벌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많은 유혹에 직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 10절에서는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벌데 하나님의 뜻대로 벌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입니까? 이 사실을 바로 알 때, 우리는 물질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돈을 번다고 생각하십니까?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입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사서 입고, 좋은 집에서 안락하게 지내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그럴듯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돈 버는 목적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목표는 기본적인 목표일뿐 최상의 목표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최상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돈을 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파트너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GE(General Electric)의 사장인 웰취(Welch)는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10년 후 GE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0년 후 신문, 잡지들이 우리 회사를 묘사할 때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회사, 모든 사람이 최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회사 그리고 개방적이며 공정하며 직원들 스스로 각자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그들이 성취한 것들에 대해서 금전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보상받게 해주는 회사라고 기술해 주기를 바란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에서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일하세요. 나만을 위한 이익 추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이익 추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⑵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에게는 무엇을 해서 돈을 버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직업 종류를 선택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단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도 괜찮다고 당신을 유혹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아가 개같이 벌어도 정승같이만 쓰면 된다는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도 여러분, 다음과 같은 기준을 분명히 하고 일을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범죄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죠스'박사는 3,000명의 뉴욕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단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중금속 오염과 망간에 중독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단명한 이유를 조사했는데, 식수에 알루미늄 농도가 큰 것을 발견하고 식수를 바꾼 이후에 "괌" 주민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가치관, 습관, 태도, 건강 등에 악영향을 끼치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든다면, 성도로써 술집을 운영한다거나 어린이에게 폭력을 부추기는 각가지 물건들을 파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음란 비디오를 팔아서도 안 됩니다. 셋째, 불건전한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판매 전략을 세운다면 그러한 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소비자들에게는 소비가 하나의 유혹이 되고 결국 한 가정을 파멸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⑶ 세상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화시키면서까지 장사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이 시간 여러분들 마음에는 "목사님 그렇다면, 성도로써 어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돈을 버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공해물질을 배출하고, 뇌물 수수를 자행하고, 정실인사, 소비자 기만, 내부자 거래 등을 한다 할지라도 '나도 그래도 된다'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회사의 경영자라면 주주에게는 적정한 이윤을 돌려주어야 하며, 정부에 정당한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회사와 연관을 맺고 있는 지역사회에도 마땅한 분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공평한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정직해야만 합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하면서 정직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고 판매한다면 그것은 소비자를 섬기는 사랑의 표현이기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 흐름을 보세요. 무엇을 가장 중요시 합니까? 사람입니다. 성공한 기업마다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말입니다.
⑷ "당신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네가 망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일해 왔다는 것입니다. 즉, 적자생존의 원칙 아래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망하면 나도 망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곳들이 생깁니까? 가구만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고 웨딩드레스만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단지를 이룹니다. 춘천에는 닭갈비집이 많은데 명동에는 닭갈비 골목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따로따로 있는 것보다 함께 모여 있음으로 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신이 망해야 내가 산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당신이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지적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열심히 벌 데 제대로 버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벌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런 사람만이 물질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것이며,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여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4. 어떻게 써야만 합니까?
무엇보도다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곧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최소한 것입니다. 최대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중에 10분의 1만을 요구하십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신명기 14장 28-29절 말씀입니다.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8절 말씀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일 년 동안의 수입의 삼십분의 일을 드리며 되는데, 이를 계산해 보면, 한 달 수입의 삼십분의 일이므로 한 달에 하루 수입을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구제를 위해서는 삼십분의 일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번 돈의 상당한 몫이 나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 안 된다는 하나님의 몫과 다른 사람을 위한 몫까지도 내가 가로채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고, 구제를 위해 얼마 안 되는 돈 마저 사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내가 벌었다고 해서 다 내 돈이 아닙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정당하게 벌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 돈은 깨끗하고 바른 돈이 되지 않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물질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자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관을 바꿔야만 물질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바꿔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차별하고 멸시하려는 풍조를 버려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하고 강한 사람을 보고는 무조건적으로 죄악시하고 매도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보고는 차별하고 멸시하며, 부한 사람을 보면서 그를 부러워한다거나 반대로 죄악시하고 매도해버리고 있다면 내 자신이 돈의 노예로 전락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셔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벌었는지 부정직하게 벌었는지를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아무리 정직하게 벌었다고 하더라도 써야 할 곳에 바로 쓰지 않고 자기만 위해 쓰고 있지는 않은 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내 자신의 삶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할 때 비로소 물질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춘천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물질로부터 자유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질 앞에 무릎을 꿇지 마시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의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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