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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하라 2002-06-25 16:26:00 read : 17085
2002. 06. 23 // 고전 9 :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賞)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節制)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전서 9장 24~27절)
<목회기도>
날마다 새 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기쁨의 새 날을 주시고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랑"과 "용서"라는 말씀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더디했던 우리의 게으름과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성령으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녹여 주시고
새롭게 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능력을 주시고, 새 힘을 주옵소서.
육체의 아픔을 가지고 나온 성도는
나음을 얻는 시간 되게 하시고…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나온 성도는
평안을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적인 곤고함을 가지고 나온 성도는
신령한 만나를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기둥교회 속한 이들 가운데
- 앞뒤 막힌 기막힌 환경에서 길을 찾는 이가 있습니다.
- 마음에 섭섭함과 괴로움으로 평안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 군대, 객지, 외국에 나가있는 가족들의 염려로 근심하는 이가 있습니다.
-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모멸감에 몸부림치는 이도 있습니다.
-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탄식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 각자에게 필요한 은혜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은혜와 평강의 복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도 추한 목사의 모습은 가리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하시고 종은 도구로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지금,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축구에 대단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어제 한국 선수들 참 잘 했지요? 참 잘했습니다.
월드컵이 시작될 때는 "한번만이라도 이겨 봤으면 좋겠다"고
꿈에도 소원이 "16강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에
거리마다 "16강 기원"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선을 통과하여16강에 진출하고 나니 다시 "8강에 가자"고 했습니다.
8강을 통과하고 나니 "4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4강에 들고 나니 "내친 김에 결승까지 가자"고 합니다.
정말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브라질이 올라가고 우리가 올라가서 우리가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질에게는 진다고 해도- 터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 마음은 편안할 것 같습니다.
참 잘했습니다.
지난 주간에 강화에서 <강화북지방 연합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화요일(18일)에 포르투칼과 저녁 8시 30분부터 경기를 한다고 하여
목사님들도 고민하고 부흥회 참석하는 교인들도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8시 25분에 설교를 마치고 "축구 봅시다"라고 하자
"아멘"소리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축구가 시작되기 전 강화 북지방의 감리사님이 나오셔서 응원을 하겠다고 하시면서
"제가 대~한민국"하면 "짝짝짝 짝짝" 박수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굵고 짧은 소리로 "대한민국"이라고 하시니
박수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지요.
감리사님이 얼마나 순진하시던지
그 다음날 연습을 해서 제대로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박수를 잘 못 맞추는 사람은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각이 무딘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도 지금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옆의 분들이 박수를 잘 치는지 못 치는지 잘 들어보세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지금 온 세계에서 <한국>과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World Cup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공]하나에 웃고 울고,
[골] 하나에 목숨도 걸었습니다.
지난 18일(화)에 이태리하고 축구 경기를 한 후에
4명이나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어제는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1942년 독일 나치 점령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축구팀은
독일과의 경기에 앞서 "만약 너희들이 이기면 죽는다.” 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독일은 축구를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주민들의 저항의식을 잠재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키예프 선수들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은 열망을 참을 수 없어
히틀러 대표팀을 이기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11명의 선수는 유니폼을 입은 채 총살당했습니다.
그런 독일과 우리가 4강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 우루과이의 언론인 갈레아노는 ‘축구는 전쟁의 형식적 승화’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축구로 인해 전쟁을 치르고, 또는 경기에 졌다고 해서 자살하거나
선수를 살해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2002. 6. 18. 조선일보 <만물상> 참조)
여러분 가운데 축구를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해 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 묻고 싶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운동회 때 "상" 타보셨나요?
달리기를 하면 앞에 뛰는 사람이 많았나요? 뒤에 뛰는 사람이 많았나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일등 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다 반장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부반장은 누가 했는지…
"늘 꼴등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규정을 만들고 시합(경쟁)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특별히 [공]과 [뛸 마당]만 있으면 시합이 되는 축구는
전 세계에 잘 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 구별 없이 좋아합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 삶… 자체가 경쟁(시합)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달음질(시합)하는 인생
사도 바울은 인생에 대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운동경기에 비교해 설명하였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에 보낸 글 중에 일부인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의 설명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합당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올림픽의 발상지인 Greece에 속한 지역입니다.
고린도인들은 올림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사람들도 2년에 한번씩
큰 대회를(Isthmian Games)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운동경기를 비유로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달음질"을 가지고 설명했지만
달음질을 포함한 모든 경기는
- 땀흘린 훈련,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습니다.
-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 중도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심판이 끝이라고 마지막을 선언하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운동경기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선 운동선수들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들 모두는 바울의 표현대로 "이이기를 다투는 자"입니다.
여기 학생이든지, 직장인이든지,
개인사업을 하든지, 일을 찾고 있는 사람이든지…
"이기기를 다투는 자"이기 때문에 범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없도록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① 게으름으로 다가옵니다.
② 마음 속의 타협으로 다가옵니다.
③ 불필요한 욕심으로 발목을 잡습니다.
④ '해 봐도 소용없다'는 낙심으로 우리 마음을 주저앉힙니다.
⑤ '이정도 했으면…' 하는 교만으로 다가와
공부, 기도, 봉사… 실패하게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평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합니다.
축구도 다른 나라 팀과 우리나라 팀이 얼마나 잘 하는가를
시합을 통해 이긴 팀, 진 팀, 이긴 나라, 진 나라로 구분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뛰었느냐, 골을 얼마나 많이 넣었느냐…
하는 스피드(speed)나 공적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스피드(speed)나 공적에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각 사람 각 사람 따라서 평가의 기준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비교해서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speed시대에 살면서 속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남보다 빨리 가고, 남보다 먼저 이루고, 남보다 더 가진 것
남보다 더, 더, 더…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관심입니다.
한 인간이 달려온 인생 길의 평가도
그가 달려온 삶의 길이나 속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얼마나 빠르게 성공했느냐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판단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달려온 시간의 내용이 어떠했는 지,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으며,
왜 그 일을 했는 지에 의해 평가를 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 보다 훌륭해 지려 했고, 보다 멋지게 살고 싶었으나
힘든 시간만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며
자신도 윤택하게 살기 원해 노력했으나
하루 세끼 밥 먹고 살기가 급급한 사람도 있습니다.
- 밤을 지새우며, 하느라고 하며 애쓰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만…
할 것 다하고 즐기면서 공부하는 아이들만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방법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 기준과는 다릅니다.
제가 10년을 넘게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매 학기 성적 산출을 위한 성적기준 방법이 있습니다.
ABCDF로 성적 등급을 나누는데
몇 %는 A를, 몇 %는 B를, C, D를 주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는 해 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학기에 모든 학생들에게 A를 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매 학기 한 두명의 학생에게 F(낙제점수)학점을 줍니다.
그런데 그 학기에는 모든 학생들에게 A, A+ 점수를 주었습니다.
학교에 성적을 보고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이번 학기에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모두 잘 했습니다.
모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학생에게 좋은 성적을 주었습니다."
학생들 모두 정말 잘 했기 때문에 저는 좋은 성적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방법은
우리 모든 각 사람 각 사람이 잘하면 다 A를 못하면 다 F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을 비교해서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더 낫기 때문에
잘했다, 못했다 하며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각기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게, 어떤 사람은 작게…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 태어나게 하셨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총명하게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총명치 못하게 태어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속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2차 대전의 영웅으로, 유럽을 휩쓴 미국의 패튼 장군이 있습니다.
패튼 장군은 특별히 전차부대를 잘 지휘했습니다.
독일과의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한 기자가 패튼 장군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전투를 할 수 있었고,
그 많은 전차를 움직일 수 있는 기름은 어디서 어떻게 구하셨나요?"
장군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내게는 훌륭한 부하가 있었습니다."
명령만 내리면… 그 명령을 위해, 그 명령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던 부하가 있어서 그 엄청난 일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패튼 장군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 장군의 명령 수행을 위해
이름 없이 최선을 다해 일했던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의 이름이 드러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 절제하는 인생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고 모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했습니다.
올림픽에서 받는 월계수로 만든 면류관을 위해서도
운동선수들은 절제합니다.
World Cup을 따내기 위해 싸우는 선수들도 절제합니다.
참을 것을 참고, 먹을 것도 구별하며, 잠도 선별해서 잡니다.
코치가 시키는 대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상 받으려는 사람들도
당연히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극기와 절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3절에 [9가지 성령의 열매]를 보아도
맨 마지막에 <절제>가 들어 있습니다.
사랑이 있고, 희락이 있고, 인내가 있고, 자비한 마음이있다고 해도
절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언을 하고 예언도 하고
갖가지 은사를 다 받았다 하더라도 [절제가 없다면]
언젠가는 쓰러지고 실패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은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자동차라도 그 속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무조건 육신을 악하게만 보는
금욕주의나 이원론(Dualism)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
- 할 말과 안할 말…
- 할 일과 안할 일… 등을
분명하게 구별하도록 가르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는 < 최고로 좋은 것(the best)을 얻기 위해
보다 좋은 것(better)과 좋은 것(good)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절제는 "버리는 것"입니다.
[이기려면 버리라]는 책에 보면
"사람이 성공하고 승리하는 비결은
버려야 할 때 용감히 버리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 상식과 체면도 버려야 하고
- 물욕과 지위도 버려야 합니다.
- 관능도 버리고
- 날마다 과거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 너무 미워하는 것도 버리고
-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과 애착도 버리고
초연한 상태에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집착을 버린 만큼 강해지는 것이고 강해져야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가끔 "입지 않는 옷을 교회로 가져오라"고 광고할 때
"오늘부터 시작해서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이 옷장에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옷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신발장에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신지 않은 신발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발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로 가져 오십시오.
가져오시면 신이 없는 사람,
옷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져 온 옷들을 보면 대부분 헌 옷만 가져 옵니다.
솔직히 여러분의 양심에 묻고 싶습니다.
몸이 부해졌는데 날씬할 때 입었던 옷을 옷장에 넣어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부터 시작해서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이라면
여러분의 옷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옷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 입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도 신지 않은 신발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 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 신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움켜 쥐고 있는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더 좋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일은 물론이고, 목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명예욕과 탐심, 욕심 … 등을 버릴 때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공(成功)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버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자가 되지 못합니다.
승리자가 되지 못합니다.
사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야 할 훈련이 있다면,
<버리는 훈련>과 <절제의 훈련>일 것입니다.
절제하는 삶과 포기하는 삶의 귀중함은
성경에 나온 인물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안락한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 모세는 신분을 버렸습니다.
- 요셉은 정욕을 물리쳤습니다.
- 다니엘은 유혹을 이겼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삶을 버렸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 <버리는 것>, <절제>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쉽지가 않습니다.
① 할 말과 안할 말…
참말과 거짓말…
전할 말과 전하면 안되는 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절제해야 합니다.
잠언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했습니다.
② 할 일, 안 할 일…
갈 곳, 못 갈 곳…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 많은 일 중에도 해서는 안될 일이 있고
그 많은 곳 중에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인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인가',
만약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과 가는 곳이
해서는 안되는 일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면 해서는… 가서는… 안됩니다.
③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마실 것과 마시지 말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 많은 음식, 그 많은 음료 가운데도 먹지 말 것과 마시지 말 것이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먹는 것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상 받기 위하여 달음질하는 크리스챤은
먹는 것에 조심해야 합니다.
먹는 것은 입에 넣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소유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내가 가졌다"라는 것은 "내가 먹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 것이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값을 치룬 것, 대가를 지불 한 것, 땀흘려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 양심에 금해야 하는 것도 먹지 말아야 하고 갖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운동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도 음식을 선별하여 취합니다.
갖는 것도 선별합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도 참습니다.
하물며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어제 축구에서도 심판이 우리나라의 한 선수(이천수)를 불러서
목걸이를 빼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목걸이는 축구 선수가 하기에 합당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축구 선수는 목에 거는 것조차 구별해서 해야 합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최고의 목표를 이루기 원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거리끼는 것이라면…
금해야 하고, 버려야 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기려는 자, 승리하려는 자는
자신을 위해, 남(이웃)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상 받기 위해 절제하는 경주자여야 합니다.
▶ 목표가 있는 인생
아무리 열심히 하고 절제하며 살더라도 목표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달음질하는 인생, 경기하는 인생, 시합하는 인생,
이기려고 절제하는 인생이라 할 지라도
목적이, 목표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표는 첫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세 번째,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생을 "나그네"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을 "경주자"로 설명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상 받으려 달리는 자'가 있고
'벌받으러 달리는 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뛰어도 골인지점이 명확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차야 합니다.
자기 골문을 향해 골을 넣으면 비난받고 그것이 잦으면 제명됩니다.
월드컵이 개막된 후로 온 나라가 축구 얘기로 꽃을 피웁니다.
어떤 사람은 벌써 영웅이 되었고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영웅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많은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수억원의 돈을 받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공을 잘 찼다고 훈장을 수여 한다고 합니다.
우승을 차지한 팀에는 상상키 어려운 엄청난 보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시합에서도 달려갈 길 다한 후에…
최선을 다해 달려 가고 멋진 인생의 시합을 마친 후에…
성경에서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가르치는 대로 멋지게 살다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진짜 '상'을 받는 성도,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경기는 그 날의 운, lucky(행운)도 따릅니다.
차범근은 "운도 실력이다, 실력 있는 팀에 운도 따른다"고 했습니다.
(2002. 6. 22. 조선일보 참조)
그러나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운이 없습니다.
영적인 시합에는 행운이 없습니다.
행한 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계22:12).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그 일을 위해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고전9:27).
왜나하면 신앙생활에는 행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월드컵이 한창인 이 때에
우리의 영적인 삶도, 우리의 인생의 경주도 승리하여
마지막 순간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고
상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다 한후에,
인생의 시합을 마친 후에
성경에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가르쳐 주신 대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산 뒤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진짜 상받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짜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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