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을 위한 사랑과 슬픔 2002-06-07 19:39:04 read : 19822
■ 설교자:강 원 룡 목사
■ 설교일:2002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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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창세기 18:27 ~ 32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께 감히 아룁니다.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다시 한 번 주께 아뢰었다. "거기에서 마흔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셨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아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감히 주께 아룁니다. 거기에서 스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셨다. "스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 8:38 ~ 8:39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 9:1 ~ 9:3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내게는 내 동족을 위한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13:33 ~ 35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못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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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력에 따르면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3·1절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사순절과 잘 조화가 되는가 하는 점을 놓고 조금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때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002년, 말하자면 3·1 운동이 일어난 지 83년이 되는 금년에는 3·1절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영국, 소련은 승전국가였고, 독일, 일본은 패전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승전국가인 소련은 망했고, 미국과 일본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독일만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나라로 부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수진 나라들에 둘러싸인 그 독일이, 그 모든 나라들과 화해를 이루고, 유럽공동체를 형성해서 그 유럽공동체의 주역이 된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만이 이렇게 된 데에는 소수의 독일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분들이 독일을 이렇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제게는 가까운 친구요, 또 우리 교회 예배에도 참석한 일이 있는 전 독일 대통령 리햐르트 폰 바이제커입니다. 이 바이제커 대통령은 1985년 독일이 패전한 지 40주년 되는 해에 대통령으로서 국회의 상·하원이 다 모인 자리에서 기념 연설을 했습니다. 85년 5월 8일입니다. 이 연설은 전 독일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에 굉장한 파문을 일으켰고, 지금도 그 파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연설에서 바이제커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전쟁에서 패전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지만, 오늘은 패전이라기보다도 해방 받은 날"이라고 선언하고 연설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한 이야기 가운데 기가 막힌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서 지나간 나치스 정권 하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또는 우리가 당한 그 수많은 고통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몸서리쳐지는 일이지만, 그 역사를 잊어버리고 덮어두려고 한다면, 과거에 소경이 되면 오늘 현재에도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없는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할 일은 과거에 저질러 놓은 잘못된 역사를, 아무리 싫을지라도 똑바로 보고, 그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김으로써, 우리가 받은 상처를 치유 받고 화해의 힘이 생겨서, 우리 자신들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도 화해를 하고 서로가 함께 공존해서 살아가는 새 역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이제커 대통령의 이야기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나치스 정권하에서 저지른 그 엄청난 과오를 덮어두려고도 변명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되새기고 또 되새김으로써 그 이웃나라들과의 화해를 이룬 것입니다.
바이제커 대통령 자신이, 독일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던 폴란드를 방문할 적에, 폴란드의 국민들은 전부 독일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거부한 그 장소로 그대로 갔습니다. 가서 정말로 폴란드 국민에게 끼친 슬픈 역사에 대해서 용서를 빌고 왔습니다. 빌리브란트는 수상으로 취임하자마자,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묘지인 아우슈비츠를 찾아가서, 주먹으로 땅바닥을 치면서 눈물을 흘리고 사죄를 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독일에 대한 이웃 나라들의 원한을 녹일 수 있게 했습니다. 몇 달 전 KBS에서 세계를 움직인 지도자 가운데 하나로 바이제커 대통령을 다루었는데, 보니까 그는 지금도 유럽공동체에 폴란드가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3.1절을 통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위험한 처지에 떨어졌는가? 우리가 지금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장 깊은 병은 뭐냐 하면,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해서 눈을 닫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정면으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왜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침략했습니까?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까? 역사 기록이 많이 왜곡이 되기는 했지만, 수요일, 목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명성황후]를 잘 보십시오.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눈을 감고 닫혀진 마음으로 옹졸하게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그 슬픈 역사를 우리가 들여다 볼 때, 그것이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에 들어오도록 길을 만들어 준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조선시대의 그 슬픈 역사를 거의 잊고, 문제로 삼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을 불러들인 것은 우리 자신들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압박과 핍박을 받을 때, 우리의 많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일본인들과 협력하고 앞잡이가 되어서 자기들의 권력욕만을 채웠습니다. 그 친일파들이 이 나라 역사가 잔인한 역사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에 그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기억하고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일제가 망하고 바로 새 정부가 세워졌지만, 친일파를 중요한 자리에 다 기용하고, 이 민족 반역자들이 모든 경제권을 거머쥐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민족반역자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자는 "반민특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박해 당하고, 자동차 사고 당하고, 그래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해방 후 57년 역사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 국회의원 몇 사람이 그나마 친일한 사람 몇 십 명의 이름을 발표하고 나서니까, 엄청난 과오를 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빠진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하고 관계되는, 자기 신문사하고 관계되고 자기 가족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올렸다고 야단 야단하고 나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이렇게 과거에 소경이 되어버려서는 오늘의 현실에 소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비참한 역사 속에서 나라에 대한 사랑에 목숨을 걸고 3·1 운동에 나섰던 사람들, 3·1 운동 때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의 피 값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과거의 역사에서 대원군의 역사, 친일파의 역사를 되풀이하여 되새기고, 깨끗하게 씻어서 청산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역사가 83년 전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 속에서 되살아나야 하고, 그 역사가 오늘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역사의 기로에 서서 금년에 두 번의 선거를 치릅니다. 이 선거를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앞서 말한 바이제커 대통령이 독일 국회에서 행한 [광야 40년]이라는 제목의 그 강연에서, 그는 독일에서의 정치 지도자를 두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한국말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영어로 옮기면, 하나는 폴리티시안(politician)이고, 다른 하나는 스테이cm맨(statesman)입니다. 둘 다 정치가입니다. politician은 다음 선거에 어떻게 이기느냐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반해서 statesman은 다음 선거보다도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politician이라는 사람들은 내 정당이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만 생각합니다. statesman은 먼저 우리 민족이 어떻게 되느냐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가 사는 길은 politician들이 물러나고 진짜 statesman이 우리의 지도자로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나라에는 선거 준비를 하는 가운데 용들이 나와 뛰어 다닙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차기의 대통령이 되고자 뛰어 다니는 사람 가운데, 정말 바이제커 대통령이 말하는 statesman이 누구누구입니까? 눈앞에 선거만 바라보기 이전에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되겠느냐, 내 정당이 어떻게 되느냐보다 내 민족이 어떻게 되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눈에 몇이나 보입니까? 어떤 기자가 제게 물어보기에, 내 눈에는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프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제 오늘 읽은 성서 말씀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창세기 본문에는 망할 수밖에 없는 소돔 고모라 백성들의 현실에 대해 쓰여 있습니다. 이제 부득이 망해야 합니다. 그런 때에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하나님께 간곡하게 매달리는 얘기가 나옵니다. 소돔 고모라 사람들이 다 썩었고 욕심쟁이고 왜곡되었지만, 그래도 이 가운데 50명이 올바르게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50명만 있다면 멸망시키지 않겠다. 40명이면 어떻습니까? 30명, 20명… 마지막 부탁입니다. 열 사람이면 어떡하겠습니까? 열 사람만 있어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하나님은 물러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소돔 고모라는 열 사람이 없어서 망해버리고, 불타버리고, 유황 지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의인 열 사람은 고사하고, 의인이 단 한 명도 없어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의로운 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을 보면, 그 한 분, 예수가 이제 수도인 예루살렘을 향해 들어가는데, 예루살렘 안에서는 이 한 명뿐인 하나님의 아들, 이 의인을 죽일 공론과 계획이 다 짜여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가 피 흘리고 죽는 그것보다도, 이렇게 망해 가는 백성들을 보면서, 나귀에서 내려 주먹으로 땅바닥을 치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어주려고 했지만 너희들은 결국 이렇게 망하고 마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통곡하는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글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 놓을 수 없다는 그것"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다음 9장에서 뭐라 하느냐 하면 "내가 나의 진심, 양심을 속일 수 없다. 내 양심으로 내 진심으로 당신들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내 동족을 생각할 때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만일 이 망해 가는 동포를 구원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하겠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맺어진 이 관계마저 끊어져도 나는 이 동족의 구원을 원하겠노라."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이 세 가지 성서 이야기에는 우리가 찾아보아야 할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 분들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내 정권이 아니라, 내 가정이 아니라, 바로 동포에 대한 사랑, 거기서 오는 아픔, 고통, 슬픔 그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저주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 이것은 꼭 해야 되겠다는 그러한 마음가짐, 그 마음가짐이 사순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의 이 간곡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소돔 고모라는 망했고, 예수님이 눈물을 뿌리며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망했고, 바울이 가슴을 치며 동포를 사랑했지만, 기원후 70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역사는 하나님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의 손에 놓여 있습니다.
이 역사를 끌고 가는 이 인간들이, 로마서 1장 24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탐욕에 빠지고 더러운 짓을 부끄러움도 없이 하자, 하나님은 인간들을 내버려두십니다.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 말예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칼을 드시는 게 아닙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들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우리는 지금 어떤 처지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매달리던 그때의 소돔 고모라, 예수님이 보시던 그 예루살렘, 바울이 염려하던 그 유대인들, 바로 그 무너져 가던 역사적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3.1절만 되면 일본인 욕을 합니다. 일본을 욕해야죠. 일본이 잘못했죠. 그러나 일본을 들어오게 만든 우리의 잘못은 생각할 줄 모릅니다. 3·1운동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일본이 침략해 들어올 때 우리 지도자들이 가장 크게 믿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미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소위 민족자결주의를 외쳤습니다. 그 민족자결주의는 우리도 결국에는 독립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윌슨이 그런 말을 할 때, 윌슨 아래서 국무장관을 하던 태프트라는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일본의 가츠라 수상과 비밀회담을 했습니다.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에,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도록 비밀협약을 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미국은 그때 미국과 다릅니까? 아닙니다. 더 나빠졌습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 하고 맹방이라 하는데, 부시의 정부가 뭘 하고 있습니까? 저는 미국의 현재 정치가 바꿔지지 않으면, 미국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는 21세기를 전쟁의 세기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대로 되면, 21세기는 전쟁으로 이 지구가 끝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금 부시가 세 가지 M을 가지고,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첫째는 Military, 군이고, 둘째는 Money, 자본이고, 셋째는 Media입니다. CNN을 위시해서, 엄청난 정보조작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이렇게 해서는 스스로를 망하게 하고 남을 망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미국이 망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신문에 몇 번이나 썼습니다. 미국이 살아나려면, 미국의 부시가 이 세 가지 M자를 가지고 세계를 지도하려고 하지 말고, 세 가지 R자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Repentance,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저질러 온 아랍에 대한 부당한 정책 등 모든 나쁜 짓을 기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Redemption, 속죄를 받아야 해요. 거기에서 비로소 화해라고 하는 Reconciliation의 힘이 생겨납니다.
아랍 국민들과 화해하고,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과 화해를 할 수 있는 힘은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속죄를 받는 데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부시와 미국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우리가 마땅히 부숴 버려야 할 북한을, 우리 힘이 모자라니까 미국이 와서 부숴 주겠다는데 고맙지 뭐냐?" 하는 이 미친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우리 나라가 뭐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지금 이 기가 막힌 현실 속에서 83주년 3·1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83년 전의 3·1운동은 훌륭한 거였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오늘 여기서 되살아나서 승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83년 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34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서른 네 살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교인 수가 전부 합해서 30만 명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 기독교가, 그런 기독교의 지도자 일부가 정말 이 민족을 구원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불교와 천도교와 손잡고 이 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교회가 불타버린 곳이 82군데, 총에 맞아 죽고 감옥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은 기독교인 수만 60여 명이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 붙잡혀 들어간 수천 명의 사람들.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그런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일에 교회당에 들어와서 예배나 드리고, 밖에 나가 전도해서 교회에나 끌어들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울타리를 넘어서, 도탄에 빠진 민족 속에 목숨 걸고 들어가서 3·1운동을 일으켰던 우리 신도들, 교역자들을, 이 시간에 한번 마음속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83년 전 역사라고 잊어버리고, 과거의 것이라고만 기억하지 말고 그 사건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퍼 올려서 새기고 되새기고 되새겨야,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회개가 일어납니다. 그때에 이 역사에서 받은 우리의 깊은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전라도니 경상도니, 여당이니 야당이니, 남이니 북이니 하는 이 좁쌀 같은 지경을 벗어나, 동포애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공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힘있는 사람들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없는 다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민족을 사랑하는 제단 위에 자기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서, 이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 이 현실, 이런 정치판을 올바른 방향으로 뒤집어보자는 말입니다.
북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어 가는데, 우리는 쌀이 남아 처치하지 못해 농민들이 데모하는 이 상황에서, 그곳에 쌀을 좀 보내주자고 한다고 "퍼주기, 퍼주기"라니, 이런 못돼먹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손에 역사를 맡겨 가지고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우리는 83주년 3·1절을 맞이하는 오늘, 아브라함 같이, 바울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회개하고 우리 자신이 화해의 주역으로 새 역사 창조에 부름을 받았다고 하는 사명감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서,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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