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2002-06-03 13:46:04 read : 19792
2002.06.02 // (시편 46:1-11)
사람이 한 평생을 산다고 해도 겨우 70년 내지 8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짧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가는 세월이 정말 빠르다고 하십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일곱 살에 들어가고, 재수를 하지 않았기에 신학교에 들어가 보니 저보다 한 두 살 많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툭탁하면 저보고 어리다고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어서 한 번은 "늦게 들어온 네가 잘못이지 내가 잘못이냐"라고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이가 좀 드니까, 전혀 그런 소리를 안 합니다. 지난번에 신학교 입학 30주년 행사에서 만났더니 그 친구가 "심 목사, 머리가 많이 희어졌구먼..." 하면서 웃었습니다. 요즘은 하루 하루가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활을 쏴 보니까 더 실감이 납니다. 저는 아직 초보자라서 제가 쏜 화살이 날아가는 게 안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활터에 가서 쐈는데 처음으로 다섯 살(한 손)중에서 이중을 했습니다. 두 개를 맞춘 것입니다. 그 날 사두(射頭)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찌되었건,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빠른 인생도 수고와 슬픔뿐(시 90:10)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정말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은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나 저는 역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짧디 짧은 인생을 정말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 답을 본문에서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믿을 때, 우리는 안심하고 편안하게, 또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즉 임마누엘 신앙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정말 많은 고통과 문제가 있는 세상 한 가운데서도 그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아니하고, 그 문제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날마다 힘있게, 의미 있게,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없는 인생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과연 임마누엘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임마누엘 신앙을 가진다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덕을 끼치고, 자신은 매우 보람 있고, 기쁘고, 즐겁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다음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천재지변이 나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 이유를 1절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온 우주(宇宙)를 운행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요, 힘이요, 도움이 되신다고 믿는 시인에게는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 없이 산다는 것은 크나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자녀들이 잘못될까봐 두려워하고, 교통사고 날까봐 두려워하고, 고독을 두려워하고, 늙는 것을 두려워하고, 나쁜 병이 걸릴까봐 두려워합니다. 그 중에서 <암에 대한 공포>가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암에 대한 공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암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갑자기 암이 발견된 후에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처지까지 갔을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암은 불치병이라고 하는 생각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서 일하다가 국립암센터 병원장으로 온, 이 진수 박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암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많습니다. 환자들은 암을 불치의 병이라고 여기지만 암도 어찌 보면 더불어 살 수 있는 질병중의 하나예요. 오히려 유일하게 치료할 수 있는 만성병인지도 모르지요. 고혈압이나 당뇨병은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지만, 완치가 안 되는데 비해 암은 치료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희망을 갖고 암에 대한 불안감 공포감에서 해방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암에 걸리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죄도 아닙니다. 담배 피워서 폐암에 많이 걸리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담배 피웠다고 벌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병을 통해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삶의 새로운 차원에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겠어요." 저는 이박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떤 심각한 병에 걸렸더라도, 그 병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그 동안에 살아오며 잘못된 자세는 없었는지 조용히 살피며, 좀 더 깊이 있는 삶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박사는 미국 텍사스 의대 앤더슨 암 센터의 흉부 종양내과에서 근무하다 그가 받던 봉급의 반 밖에 안 되는 한국으로 오게 된 사람인데, 지금 52세밖에 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인 남편 한 분이 폐암 판정을 받고, 그 분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서 반가워하며 "박사님만 믿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가 직접 일어서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면서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하더랍니다. 그 후 그분은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암을 완전히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암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가지라고 일러 준 이 박사의 말이 환자로 갔던 그분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유명한 스위스의 의사 폴 투르니에 박사는『강자와 약자』라는 책에서 "우리가 두려움을 정면(正面)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간다면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체험적인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으신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의미 있는 지적입니다. 어찌되었건, 두려움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에 휩싸여 산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싶으면 주님의 말씀에 조용히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날마다 되새겨 보십시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하나님을 친(親) 아버지 같은 분으로 믿고, 그분과 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면, 온갖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두려움은 사랑 안에 거할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은 반비례(反比例)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것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없는 곳에는 두려움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1서에서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4:18)고 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또한 누군가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것을 느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2.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기쁨>과 풍성함이 있습니다.
4절 말씀에,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시내(강)가 흐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을 기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생수(living water)의 강"이란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생수의 강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 에스겔 47장에 보면,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소(聖所)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땅이 치료되고, 식물이 살아나고, 열매가 맺히는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물을 아끼려 하지 않습니다. 지하수가 지금 심각하게 고갈되고 있고, 수질이 많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에스겔 47장에서는 물이 어디론 가로부터 흘러내렸는데 그곳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생수가 성소(聖所)에서 흐르기 시작했다고 그랬습니다. "이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 날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 질 것이므로, 그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47:9 참조)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저는 만물이 살아나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만물을 살리는 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본문 4절에는 한 시내가 흘러 하나님의 도성에서 사는 사람들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생수가 흘러 사람들이 기쁨을 갖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生命)을 날마다 호흡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나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의 삶에 기쁨이 있을 리 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많이 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存在)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언가 선한 일을 많이 해야만 비로소 내가 가치가 있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어릴 때 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하나님 자신은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 그 자체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무조건적으로 용납(容納)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셔들일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향해서도 지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있는 그대로 여러분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이제는 여러분이 받아들일 차례입니다. 그 때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시고, 날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돌보아 주시며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어찌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기쁘고 즐겁지 않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주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들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사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문제가 많은 세상에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답은 "주안에 있을 때" 입니다. 주안에 있을 때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주 예수님을 "생명의 물"(生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는 물, 생수입니다. 성소에서 그 생수가 흐르기 시작하여, 큰 강을 이룬다고 그랬습니다. 이제 그 물줄기를 우리의 심령에 연결하십시다. 그 물줄기가 우리 가정에 흘러 들어오게 하십시다. 그 물줄기가 이 민족을 살리는 물줄기임을 믿으십시다. 생명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게 될 때,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살고, 온 세상이 사는 역사(役事)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삶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 주시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를 합시다.
먼저,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이것을 교부(敎父)들은 "예수 기도"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갈망하는 것이요,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시요, 피난처이시요,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주 예수님이시여! 오, 나의 전부가 되시며,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둘째, 주님에게서 눈길을 떼지 맙시다.
불안한 마음의 초점을 물결에서 떼어, 그 물결 위를 걸으시며 "내니 두려워말라"(마 14:27, 막 6:50, 요 6:20)고 말씀하시는 주 예수님께 마음을 향합시다. 우리 시선을 그분께 돌립시다. 그분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주실 것을 계속 믿읍시다. 그분을 보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말합시다. 그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합시다. 불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분이 내 곁에 가까이 계시며 내 영혼에 쉼을 주신다는 확신으로 그렇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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