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인 사람이 필요한 때 - 박은호 목사 2002-06-03 11:53:31 read : 15308
2002-06-02 // 마태복음 9, 35 - 10, 4
지난 4월 초에, 사랑하는 어느 집사님 가정에 예쁜 두 번째 공주(公主)를 얻으셨습니다. 출산 후에, 저에게도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며칠 후에 그 집사님 내외로부터 간곡한 한 가지 부탁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우리 '둘째 공주' 이름 지어주세요." … 처음에 저는, 그 부탁을 받고는 웃으면서 "예쁜 공주 이름은 엄마 아빠가 지어주는 거지, 왜 목사가 짓습니까?" 하고는, 정말 진심으로 사양했습니다. 사양했지만, 며칠 뒤에 또다시 동일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어서, "녜"하고 대답을 하고는, 며칠 동안 온 마음을 쓰면서 다급한 심정으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네 가지'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을 짓게 된 동기와 이유, 뜻을 자세히 써서 그 中 하나를, 엄마 아빠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제 마음은, 넷 중에서 첫 번째 이름을 선택했으면 하는 욕심을 가졌는데…, 오늘 제가 다 공개하고 싶지만, 비싼 이름을 다 공개할 수는 없잖습니까? 한 가지만 공개할까 합니다).
그 집사님 姓氏가 吳씨인데, 고맙게도 집사님 내외가 '넷 中'에서 제가 욕심내던 첫 번째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름, 궁금하시지요? 시인(·時·人·)이 입니다. 오 시인(吳 時人). "이 시대(時代)의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저는, 정말 집사님의 그 따님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인이가 되기를 기도하고, 축복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時代의 깊은 기갈(飢渴)은, 따지고 보면 결국 사람의 기근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정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사람'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관심을 보면, 예수님의 온 관심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이 시대의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사람들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使役)을 하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을 보시던 예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실 때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본문에만 표현되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무리들을 보실 때 그들을 늘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마태는, 그 이유(理由)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牧者)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여 죽게 되었음이라"(마 9, 36).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splagcni,zomai)는 말씀은, 더 정확한 우리말 어감으로 번역하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실때마다 "애간장이 녹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실 때마다, 애간장이 녹으셨는가?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였고, 기진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그대로 방치하여 둔다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餓死直前狀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예수님의 엄청난 逆說的인 시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시각',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서 최고의 역설적인 시각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중요한 시각을 가지고, 3년 간의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목자와 같은 지도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은 물론, 제사장들이 20,000여명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관원들도 있었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6,000여명이나 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 자타가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牧者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예리한 말씀(aphorism)이 복음서에 나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눅 6,39). 짧은 말씀이지만, 그 시대를 훤히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예리한 시각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무리들을 고생시키고 기진하게 만드는 그들을 소경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왜 소경입니까?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소경됨은, '잘못된 눈' 곧 '잘못된 시각'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무리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기진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둘이 다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바로 그 다음 말씀, 마태복음 10,1-4절 말씀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언급된 12제자(使徒)의 이름은, 그저 단순한 12사람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 12 사람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당시의 소경 같은 목자들, 소경 같은 지도자들과는 구별되는 '이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던 '새로운 목자'라는 겁니다. '새로운 리더십'을 말합니다. '代案的인 일꾼'을 말합니다. 그들이 바로, 12 使徒라는 겁니다.
월간조선사에서 최근 5월에 발간된, 강인선(姜仁仙) 씨가 쓴 '하버드 졸업식 날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은, '하버드 대학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가 말하는 하버드 대학의 힘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기'에서 온다는 겁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하는 공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대안(代案)을 제시하는 공부를 한다는 겁니다.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설명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대안(代案)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버드 대학의 힘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저는 '높은뜻 숭의교회'가 지금 이대로 '좋은 교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높은뜻 숭의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이 시대적인 교회 중 하나인가?는 저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높은뜻 숭의교회를 목회하면서, 요즘에 와서 솔직히 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우들 중에는, 代案的인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 위해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이미 형성된 여러분 나름대로의 가치와 전통,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신앙이 기준이고,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또 그것을 고수하고, 그것을 주장하려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고, 주님을 또 다시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代案的인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던, 12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代案的인 새로운 視覺을 갖는 겁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소경 같은 시각이었던 유대주의적인 시각, 율법주의적인 시각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선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예수 그리스도의 福音的인 視覺'이 그들에게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을 대안적인 일꾼으로 만드는 필수조건이었습니다.
山上垂訓에 보면, 예수님은 "눈"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눈"은, 단순한 視力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눈은, 새로운 視覺을 말합니다. 福音的인 새로운 基準을 말합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듣고 배웠던 것은 이런 것들이지만,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But I Say to You)고 하시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視覺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시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곧 오늘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代案的인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精神과 價値觀입니다(히 1, 1-2).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교훈을 마치셨을 때, 말씀을 들었던 무리들의 '두 가지' 중요한 반응이 나타납니다(마 7, 28-29).
(1) 첫 번째 반응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놀랐더라는 반응입니다. 이 "놀랐다"는 말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를 말하라 한다면,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나타났던 "놀라움"이라는 이 동사를 들고 싶습니다. 그 놀라움은, 갑작스럽게 닥쳐온 인생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서 떠는 놀라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붙잡고 살았던, 인생의 가치와 신앙과 삶의 기준이, 새로운 시각으로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송두리째 흔들렸기 때문에 오는 놀라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금까지의 그들의 인생과 신앙의 기준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대안적인 사람은, 이 놀라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2) 두 번째 반응은,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왜 놀랐는가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매우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의 스승이었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랐습니다. 바로 여기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代案的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소경 같은, 전통적인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랍비들의 시각을 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시각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내 시각과 예수님의 시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이 時代의 世俗的인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복음과 어떻게 다른가를 정확하게 분석해 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시각과 예수님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내 삶 속에서 놀라서 꿈틀거리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 삶이 예수님의 시각 앞에서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맞아야 합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때로는,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밤을 새우기도 해야 합니다. 그저, "주여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리(眞理)라고 생각하면서 붙잡고 있는 그것과 예수님의 복음이 '서로 같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시각, 代案的인 視覺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를 배운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까?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정말 저는 여러분에게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배운 자들입니까? 어떻게 예수를 배운 자들입니까? 정말, 예수님께 나와서 마리아처럼, 무릎 꿇고 앉아서 예수님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나는 마음이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마 11, 28-29).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나와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서와 선지서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습니다. '완전케 한다'(to fulfill)는 뜻은, 가득하게 차지 않는 '덜 찬 그릇'을 '가득하게 채운다'는 뜻입니다. 덜 찬 것을 가득하게 채운, 예수님의 그 정신, 예수님의 그 시각, 예수님의 그 복음을 듣고, 배우고, 그 말씀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과 기준은 아직도 가득하게 찬 그릇이 아닙니다. 차다가 만 '덜 찬 그릇'과 같습니다. 그 덜 찬 그릇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하게 채워야 합니다. 덜 찬 우리의 그릇에 예수의 복음으로 가득하게 채울 때, 이 시대를 향한 代案的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높은뜻 숭의교회에서 예수 믿을 때, 남들 다 믿는 식대로 예수 믿는 습관적인 종교인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게 믿는다고 한들, 그런 우리가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되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능력이 되겠습니까? 자랑이겠습니까? 높은뜻 숭의교회 다니는 것이, 여러분의 자존심입니까? 어림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보면, 이름난 유명한 교회 다니는 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여깁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자랑일 수가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관심 가져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만날 때마다, 모일 때마다, 예배드릴 때마다, 말씀을 공부할 때마다, 나의 視覺과 같지 않고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複音, 예수님의 視覺을 깨닫고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내 삶과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놀라움의 事件이 되어야 합니다.
1997년에 작고한 우리와 同時代人었던 聖女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는, 우리 시대의 代案的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가,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수상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시는 대로, 그가 인도에서 50년이 넘도록,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서, 빈민가에 들어가서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마더 테레사 수녀 그는 왜? 이 시대를 이끈 代案的인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쉼 없이 행한 그의 수많은 봉사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섬긴 그의 정신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시각(視覺)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시각을 가지고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행한 모든 일을 위대하게 하였고, 아름답게 한 것입니다. 그가 행한 일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가 한 일은 온 세계가 떠들 만큼 위대하고, 대단하고, 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중에는, 마더 테레사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는 하였지만, 인도의 가난한 사람 중 극히 소수에게 한 것 뿐인데, 그의 명성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과장평가 되었다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평가하는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한 일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가 그 작은 일을 할 때 가졌던 '그의 정신'은 우리 시대 그 어떤 인물보다 뛰어난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사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넓은 바다 속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바닷물은 그 한 방울만큼 모자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불행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때에 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나는, 그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언제나 하나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 정신, 그가 가진 예수님의 그 마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큰 일을 하든지, 작은 일을 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향한, 대안적인 지혜와 정신과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할 때, 이 시대를 향한 대안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이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과 같은 이 시대의 인물, 시인(時仁)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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