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감이 있는 사람이 되라 2002-05-28 14:28:36 read : 21621
2002-05-19 // 왕하2:7-14
1. 서론/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 성공을 한다.
미국의 강철회사 가운데 펜실바니아에 베들레헴 강철회사가 미국의 최대 회사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1930년대의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70여전의 일입니다. 이 회사 사장인 찰스 스와브에게 아이비 리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이 아이비 리라고 하는 사람은 "나는 경영상담자다" 하면서 "내게 회사를 지금보다 더 발전시킬 묘안이 있으니까 만나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회사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인데, 이런 사람쯤은 만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스와브 사장은 이 경영상담자라는 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 우리 회사를 더 잘되게 할 묘안이 뭐란 말이요. 만약에 당신이 이 회사를 더 발전시키게 하는 묘안을 일러주면 나는 당신에게 응분의 보상을 할 것이요. 이제 말해 보시오"
아이비 리라고 하는 경영상담자가 찰스 스와브 사장에게 백지 한 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사장님께서 내일 하셔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시키는대로 종이에 이러한 일들을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비 리가 하는 말이 "이제는 그 일들 가운데 가장 쥬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1번,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2번, 그 다음은 3번, 이런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시키는대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부터 번호를 매겼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비 리가 하는 말이 "사장님, 내일 아침이 되시면 기록하신 것 가운데 1번의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 1번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하지 말고 계속 이 일을 하시고, 1번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 2번 일을 착수하십시오. 그리고 3번, 4번, 이런 식으로 하십시오. 만약에 일이 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날은 중요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일 중요한 일부터 하는 일을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장님의 생각에 옳다고 생각이 되시면 이 방법을 부하 간부나 직원들에게도 적용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되시면 저한테 상 좀 주십시오" 하고 떠나갔습니다.
이 회사의 사장, 찰스 스와브는 이 사람, 아이비 리라는 사람의 지도대로 가장 중요한 일부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회사가 너무너무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비 리라는 사람에게 상금을 내렸는데, 1930년대에 2만5천불, 지금은 아마 25만불, 250만불 그래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엄청난 액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일들 가운데 중요한 일을 찾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찾아 먼저 하는 것, 이것이 성공하는 길입니다.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남자가 있고, 많은 여자가 있는데, 그 중에 결혼하려면 딱 한 사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만 잘해야 합니다. 이 사람과 결혼한다 그러고 저 사람도 만나고 하면 결혼이 되겠습니까? 그런 남자, 그런 여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사람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그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공적인 삶을 위해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 재벌 총수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술이 백만명을 먹여 살린다." 기술 교육이 중요하다, 과학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증기기관차가 나오고 지금은 떼제베까지 발전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습니까?
포드라고 하는 사람은 말없이 달리는 마차가 없을까 해서 만든 것이 자동차입니다. 또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고 오늘 그 비행기 때문에 얼마나 이 세계가 하나처럼 되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기술이 사람들을 먹여 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21세기 과학기술의 최고는 무엇입니까?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데, 이 물을 사서 먹는다? 여러분, 물 사서 먹는다는 말을 할 때, 그럴 수도 있겠다 했지만은 그것을 실제로 믿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연세 드신 분들을 이것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을 어느 정도로 비싸게 주고 사먹느냐? 자동차 기름보다 더 비싸게 사먹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환경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것입니다. 기술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술 못지 않게 그것에 따라 오는 환경의 문제, 심각합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정말 먹을 것을 찾으려면 비싼 돈을 주어야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월 초파일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내 안에 부타가 있다 자기를 잘 가꾸고 인간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라` 그런 얘기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이 나라가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여러분, 한 어머니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애 넌 교회는 나중에 하고 공부 먼저 해라" 했답니다. 그래 지금 좀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라도 제대로 가르쳤으면 나중에 공부할 수 있지만 공부만 한다니까 신앙도 저버리고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어냐?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잘 되야 한다. 사람이 노력해야 사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신앙인은 영감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두 사람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나오고 엘리사가 나옵니다. 엘리사의 선생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의 제자가 엘리사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명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명, 제자인 엘리야에게 자기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부탁하면서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는다. 그러자 엘리사가 "선생님, 선생님이 가졌던 영감의 갑절을 내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영감이란 무엇입니까? 영감은 히브리어의 `루하흐` 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영이란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영감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호흡을 느끼는 그런 사람을 의민합니다. 갑절의 영감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갑절이나 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것 중에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했겠는가?
도대체 어떤 생각 때문에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했는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책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책에도 왜 갑절의 영감을 달랬느냐 하는 배경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2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엘리야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제가 갈멜산에 성지순례갔을 때에 갈멜산에 올라갔는데, 그 중턱쯤 올라가니까 엘리야의 동상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칼을 든 엘리야의 동상이, 그것은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과 누가 진짜 참 신을 섬기느냐 하는 것을 내기를 했는데, 승리했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존심입니다. 예수님 변화산상에서 변화되었을 때에 그 때 나타난 것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자존심입니다. 그 엘리야가 그렇게 능력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라고 하는 왕비의 죽이겠다는 위협에 도망을 가서는 기껏 한다는 말이 "하나님, 나 못살겠습니다. 나 좀 제발 죽여주십시오"입니다. 이세벨의 위협에 겁을 먹고 하나님께 죽고 싶다고 하는 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러한 사실을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강할 때는 영감이 있을 때이고 약할 때는 영감이 없을 때임을 보았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 보게 되면 "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랬습니다. 우린 본래 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이 있을 때에는 강한 존재, 없을 때에는 약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감을 갑절이나 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강할 때에 영감이 있었으니까 약할 때에도 영감을 주어서 강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와는 달리 강할 때는 강하고, 약할 때는 약하고가 아니라 언제나 강한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갑절의 영감을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이라고 얘기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성령의 충만은 어떻게 다른가?
성령의 충만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성령의 감동은 일회적입니다. 이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사람들은 주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주를 배반 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자 그만 배신하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사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초대임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잘 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교만해지고 영감이 없는 삶을 살자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다 그 말입니다.
반면에 성령충만한 사람은 절대 배반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를 위해 죽는 순교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스데반이고 야고보이며 성령충만한 베드로이고 사도 바울입니다. 엘리사가 그랬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한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의 일군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다스림을 받을 때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한시도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받지 아니하면 약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아합왕 때문입니다.
아합은 아버지 오므리와 함께 당대로서는 강력한 나라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정치, 외교적으로 능한 사람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도 마찬가지고 아합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의 이스라엘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개 대륙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가려면 꼭 이스라엘에 있는 길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통행료만 받아도 돈 버는 것입니다. 다메섹 같은 곳은 바다하고 연결되니까 항구가 되어서 수출할 수 있는 기지가 됩니다. 또 외교가 능해 가지고 이러한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보면 불의한 일들입니다. 공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 다음에 돈 벌면 좋은 일 해야지" "이 다음에 출세하면 훌륭한 사람되어야지" 정말 그렇습니까? 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대도 불구하고 불의한 일이 계속됩니다.
그 때 왕인 아합을 보십시오. 이 사건 이후의 일이지만 나봇이라고 하는 사람의 포도원, 엄청나게 많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포도원을 자기 정원으로 만들면 좋겠다 해서는 이 나봇이라는 사람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세상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서 `안되겠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돼야지, 이렇게 돈이 다스리고 힘이 다스리고 권력이 다스리는 나라는 안된다, 이것은 불의한 것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 나라는 과거보다 기술 개발이 많이 되어서 물질적인 부가 엄청나게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모든 사건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감이 정말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정치를 보고, 경제를 보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살인, 강도, 마약, 술 소비량 세계 1위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노아 홍수 때의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도 하나님의 영에 다스림을 받아야 될 사람들이 육체의 다스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진짜 왕이 되시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이 나라가 잘 살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속에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이렇게 소원했다는 말입니다.
3. 영감 있는 사람의 2가지 특징
그러면 갑절의 영감을 가지면, 영감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1) 영감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사람이다.
생명의 사람이란 생명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사람, 만들어 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 미국의 하버드대학입니다. 이 세계적인 대학의 총장가운데 35세의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바로 찰스 엘리어트입니다. 그는 75세까지 40년간의 긴 세월을 총장직을 감당하면서 세계적인 대학교로 만든 아주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그는 날 때부터 얼굴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이 흉터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그 자신에게는 마음의 큰 상처였던 것입니다.
그는 돈을 열심히 모아서 어떻게 해서든 이 얼굴의 흉터를 제거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의 얼굴의 흉터를 없애 주세요. 저는 이 날 때부터 있는 흉터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찰스 엘리어트의 얼굴의 흉터는 없앨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엘리어트는 큰 실망을 하고 깊은 실의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 가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 기대가 무너졌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낙심하고 있을 때, 믿음 좋은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네 얼굴의 그 흉터는 지워버리지 못할 거야.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또 너를 도와주실 거도 믿는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너의 흉터를 보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너의 마음과 인격이 큰 사람이 되면, 사람들은 너를 볼 때에 네 얼굴에서 흉터를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에 있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 외모를 가꾸지 말고 마음을 가꾸라는 말, 사람들에게 흉터를 보이지 말고 마음과 인격을 보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들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말씀, 믿음과 지혜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을 하여 어머니의 말씀 이상으로 마음과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35세에 하바드 대학교의 유명한 총장이 될 뿐 아니라 40년 동안이나 총장에 있으면서 하버드 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든 분입니다. 대학교의 교육제도를 개선하고 미국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훌륭한 교육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누구나 흉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못사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이신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 우리는 잘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개인주택이기 때문에 큰 물통이 있습니다. 물이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물이 오래 되면 깨끗한 물과는 달리 찌꺼기가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수기를 씁니다. 그래서 직수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습니다. 올라갔다 내려오면 좀 지저분한 것도 있고 불편합니다.
그런데 참 물통이 진가를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냐? 물이 안나올 때, 집집마다 물이 안나와서 물 받아놓느라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을 다 동원해서 채워놓아도 그 물통만큼 채우지를 못합니다. 물을 안 받아놓아도 아껴 쓰면 몇 일을 씁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가뭄이 듭니다. 저수지가 마른다고 합니다. 농사를 못 짓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 사람들은 걱정을 안 합니다. 왜? 한강물이 있으니까. 한강물 얼마나 대단합니까? 언제든지 떠나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강보다 더 크신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과 연결하기만 하면 우리의 고난의 문제는 다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통스런 현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소설가 스티븐슨은 결핵 말기의 고통 속에서 명작을 집필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 만성두통을 참아내며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파스칼은 청년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힌 온몸의 통증을 이겨내고 `팡세` 를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의 고통 속에서 불후의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선교사 마틴은 폐결핵과 악전고투하며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으로 고통을 겪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붓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얼굴에 고통의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구세군운동을 주도한 캐더린 부드는 내 삶에 있어서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고난이 없는 평탄한 삶이 아니라 이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이겼는가? 지식이 많거나 의지가 강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에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죽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난 월요일에 지하철을 타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갔습니다. 그 경기장을 얼마나 잘 지어놓았는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어딘가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봤더니 하늘공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하늘공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서쪽하늘의 일몰이 참으로 장관입니다. 이 하늘공원이 높습니다. 그런데 왜 높은 지 아십니까? 이 하늘공원은 본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었습니다. 서울의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이곳에 모았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이 난지도에서 목회를 하던 친구가 있어서 추운 겨울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들어가니까 판자집 교회가 나오고 판자집 사택이 나왔습니다. 거기 들어가서 라면을 끓여먹었습니다. 라면을 끓여먹고 부엌에 내놓는데, 천장이 새까맣았습니다. 그래서 콜타르를 발랐나보다 하고 가만히 보니까 까만 파리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 더러운 곳이 난지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세계 사람이 모이는 월드컵 상암경기장이 있고, 또 그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원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만든 것은 쓰레기 산입니다. 그러나 내버려두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풀이 나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나무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 아닙니까?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납니다.
반대로, 생명 없는 죽음의 경우를 봅시다. 우리 집의 나무 한 그루가 다른 나무와는 달리 새싹이 돋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가지를 잘라 보았더니, 뚝하고 부러졌습니다. 그리고는 부러진 상태로 그냥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죽음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부러지고 찢어져도 다시 회복이 됩니다. 도마뱀은 꼬리를 잘려도 다시 생깁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명이 없는 죽음은 부러지고 찢어져도 다시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있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이것을 잘 극복합니다.
생명과 죽음의 두 번째 차이는 냄새가 다릅니다. 생명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죽음에는 악취가 납니다. 생명 있는 사람은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즉, 불평과 불만은 죽음의 냄새이고 감사와 긍정은 생명의 냄새입니다. 당신의 신앙의 냄새는 무엇입니까?
나는 얼마 전에 칼에 손을 베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상처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생명의 역사이니까요. 지난번에 우리 집사님의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뼈가 부러졌습니다. 기브스를 하고 오랫동안 불편한 시간을 지나고 난 후, 지금은 뼈가 잘 붙어 건강하게 잘 다니고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생명의 역사입니다. 죽은 것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역사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잘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된 사람은 요셉도 그렇고, 다니엘도 그렇고, 주어진 환경은 쓰레기 같고 정말 지옥 같았지만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다니엘은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고 사도 바울은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살아가는 것이란 말입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 이 세상은 조금만 고난이 오면 다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IMF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잘 사는 것 같지만 어려움 오니까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IMF때 모르긴해도 원수진 사람들 꽤 많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내가 손해 받는 일이 오면 다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좋은 것도 다 나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다릅니다. 고난의 때에 빛이 나는 것입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갑절의 영감을 받은 이 엘리사가 제일 먼저 당한 것은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스승 엘리야는 요단강을 헤치자 마른 땅이 나와서 걸어갔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난 이후에 엘리야의 찢어진 옷자락을 가지고 강을 쳤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십니까?" 하니까 요단강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고난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이것은 착각 중의 착각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 영감이 있는 사람은 이 어려운 때에 생명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의 가정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3주 동안 집을 팔고 3주 동안에 집을 얻어야 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같이 기도하십시다"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집을 세놓게도 하시고 또 3주만에 집을 이사하게도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 만나서는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지,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구나"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영감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생명의 사람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생활하는 것,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기도의 줄을 놓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꼭 역사하시고 은혜 주실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영감은 우리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영감에 찬 모세가 홍해바다를 건너고 영감에 찬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우리는 이 고난의 구렁텅이를 영감으로 잘 뛰어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필요한 것은 산업이고 정치고 경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배부르게는 하지만 승리하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영감이 필요합니다. 생명 되신 하나님과 연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영감을 통해서 승리케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 영감 있는 사람은 은사적 사람이다.
은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주신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 주는 일이고, 생명을 살리우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영감 받은 사람은 은사를 받아서 남을 살리우는 일을 합니다.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그러니까 딸아이가 엄마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는데, 엄마를 위해서 녹차를 따뜻하게 끓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녹차가 티백에 나오지만 입을 직접 먹지 않습니까? 그래서 입을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망에 걸러서 먹는데, 딸아이가 망을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해서는 엄마한테 갔다 주었습니다. 엄마가 "고맙다. 내가 좋아하는 녹차 가지고 와서. 그런데 내가 망을 씻어서 말리려고 옥상에 갔다 놓았는데 너 어떻게 차를 걸렀느냐?" 아이가 하는 말이 "아닌게 아니라 내가 열심히 찾았는데, 없어서 파리채를 갔다가 걸렸어"
엄마가 놀래서 "파리채라니"했더니 "엄마, 놀라지 마. 내가 새것 안 쓰고 헌 것 썼으니까" 그랬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귀하게 써야 합니다. 결과만 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이 세계적인 부자가 된 것은 40대 초반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지만 한편 그는 병을 얻었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이제 죽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했더니 그 목사님의 말씀은 "그 동안 돈 버느라고 잠 못 자고 피곤하며, 숱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졌으니, 이제부터 남에게 베풀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가치 있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덧붙여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요, 돈을 바로 쓰는 것은 예술"이라 했습니다.
기술과 예술은 다릅니다. 그림도 보면 예술 작품은 비쌉니다. 그러나 그 예술 작품을 기술자가 베껴놓은 것은 쌉니다. 기술과 예술의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라 하는 얘기입니다.
록펠러는 목사님의 자문에 생각과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돈을 잘 쓰는 일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아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대학과 불쌍한 자를 위하여 병원도 설립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시카고 대학에 갔는데 이 대학이 록펠러가 지은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또 많은 자선단체를 설립했고, 봉사하는 동안 섬기며 베푸는 즐거움이 돈 버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그는 사업이 더 잘되고 그리고 그는 98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은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을 살게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은사를 사용하는 두 가지 얘기가 나오는데 하나는 엘리사가 여리고성에 갔습니다. 부강한 성입니다. 그런데 물이 나빠서 농사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그 물에다가 소금을 갔다 뿌렸더니 그 쓴 물이 단 물이 돼서 지금까지 잘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엘리사가 벧엘로 갔습니다. 벧엘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집 아닙니까? 거기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놀다가 엘리사가 올라오니까, 이 엘리사가 대머리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머리, 대머리, 올라가라, 올라가라" 하고 놀렸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가 뒤로 돌아보며 저주하매 숲속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가지고 아이들 중에 42명이 찢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엘리사가 저주한 것은 조금 이해가 안되지만 자기에게 받은 은사를 가지고 남을 놀리고 비판하고 했더니 자기 죽음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기의 것 가지고 사람 살리우는 일에 사용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 받는 길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겸손하게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면 이런 일도 있다는 말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 일, 이 모든 것들이 은사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내쫓고 병고치는 일도 했습니다.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때 이것이 은사고,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실 줄로 믿습니다.
신용카드가 좋습니까? 나쁩니까? 요즘 신용카드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들입니다. 빚쟁이들이 되어 살인이 일어나고 자살을 하는 사람, 강도 짓을 하는 사람, 빚에 빚을 지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카드는 좋은 것입니다. 누구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지 않아도 기계에서 현찰을 빌려 쓸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나 사람이 문제입니다. 좋은 것을 쥐어 주어도 잘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영감이 필요합니다. 은사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아들 홍걸이가 비밀리에 입국하여 구속이 됐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도 우리와 같은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감리교의 장로 아닙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은사로 주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육체적 욕망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녹차가 좋아도 파리채에 걸르면 더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은사도 걸러야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구원입니다. 구원이후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늘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노력을 하는 일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자냐 아니냐는 다음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사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당신의 신앙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신문이나 길거리에 박옥수라는 사람이 부흥회를 한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단입니다. 소위 구원파입니다. 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이 사람들의 관심은 구원받았냐 안받았느냐가 관심의 목표입니다.
우린 예수 믿으면 다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뭐냐면 이것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 감사할 줄 모르고 기뻐하질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구원의 확신 속에서 늘 감사고 기뻐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품 닮으려고 노력하십시오.
이것 안하니까 교회가면 `일만 해라, 헌금 해라` 그런다고 합니다. 여러분, 헌금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고 구속의 확신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월드컵경기장엘 갔는데, 그 이유는 월드컵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잘 되게 해달라고. 그런데 나는 16강이냐 결승이냐 이런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월드컵 잘 치루면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놀랄 것 아닙니까?
영국의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고, 6·25전쟁해서 거지같다는 얘기를 썼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억울해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봐야 할 것은 일본의 식민지 36년, 6·25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50년 밖에 안되는데, 우리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얘기합니다. 하나는 교육,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근대적 교육은 누가 시작했습니까? 교회가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와서 그 일 했습니다. 이것 아셔야 합니다. 자부심입니다.
두 번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원래 일 열심히 합니까?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이것 일본 사람들이 가르쳐 주었습니까? 한국의 유교가, 불교의 전통이 우리에게 일하게 했습니까?
여러분 일하는 것은 누가 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잘 하게 되어 있습니다.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보면 자본주의의 발전과 교회의 발전이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뭐냐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자리, 그것이 직장이건 가정이건 남편이건, 부모건, 자식이건, 이것은 내가 재수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는 은사적인 사명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직업의 귀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안에는 없습니다. 빈부의 차도 없습니다.
불교문화권이나 유교문화권에서는 양반 쌍놈을 따집니다. 그리고 직업의 귀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없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했습니까? 그것은 다 기독교의 영향입니다.
이 땅에 크리스챤이 25%입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로마가 국교가 되기까지 약300이 걸렸고 400년 즈음해서 로마의 기독교인의 분포가 약10%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25%의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대단한 것입니다.
4. 결론/ 영감있는 사람이 되라
영감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겸손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엘리사는 그 스승 엘리야와 함께 다녔고 스승에게 배웠으며 스승이 가진 영감을 갑절을 사모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당장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곰에 물려 죽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지혜로운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
|
 |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  | Contact Webmast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