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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열린 문
2002-05-28 14:07:02   read : 23552

계4:1-11 // 2002/04/21

제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영국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이 존경하는 윌리암 템플 감독에
게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영국 국민을 위한 라디오 메시지를 부탁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 윌리암 템플 감독은 전영국 국민들에게 띄우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입
니다."
그는 전쟁이 터진 후 국민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전쟁에 참여할 때가 되었습니
다." 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보따리를 싸들고 지금은 피난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에서
템플 감독은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때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참으로 어렵고 존경스러웠는데, 지금이 아이들이 부모를
친구처럼 대합니다. 옛날에는 부모를 친구처럼 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대체로 부모를 친구처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부
모와 대화를 할 때에도 굳이 경어를 쓰지 않고, 또 좋은 부모는 아이들과 잘 놀아 주는 사
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사회가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
을 의미합니다. 부모에게 매여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만 세상은 너무나 넓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폐쇄사회에서 개방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수직적인 관계에 매여 있으면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없
습니다.
그 결과로 요즘 우리들은 그 동안 너무 바빠서 하늘 한번 제대로 바라볼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어떻게
생긴 하늘 밑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혹시 시골 같은 데서 밤하늘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이 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않
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쓸 때 로마의 상황은 너무나도 나빴고 불투명했습니다. 그 동안
평안했던 로마의 평화는 끝나고 여기 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기근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로마 당국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기독교인들의 책임으로 도리고 황제 숭배 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벌이는가 하면 기독교인들을 점점 더 심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도
요한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통치는 전혀 이상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요한의 본격적인 계시는 하늘에 있는 한 보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 현대의 과학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하늘에 있는 한 보좌라고 하면 참 어색한 느낌이 들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하늘을 보았을 때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이 세상과 다른 어떤 세상이 있었고 그는 한 보좌를 보았으며,
보좌 주위에 있는 것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계시를 읽거나 들으면서 너무나도 이상하고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
보좌는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보좌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 같고, 또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이나 천사들의 모습도 우리들이 평소에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너무나도 거리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이것
이 천국에 대한 실제 묘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나 하나님의 모습이나 천사들
의 모습도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과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일부러 그
런 식으로 모양을 나타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절 2절을 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
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에 열린 문'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하늘에 들어가는 문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계시의 영역 안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깨닫게 하기 위하여 어디까지나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지, 천국 그 자체가 아
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리로 올라 오라"고 해서 실제로 요한이 그 하늘의 문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엄청난 성령의 감동으로 어느 누구도 지각하지 못하는 것
을 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그냥 그대로 이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성령
의 능력과 감동으로 마치 하늘로 끌려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실제로 이런 현상들을 보
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 바른 교회를 통하
여 이 세상의 반대와 핍박 가운데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나갈 것인지 보여 주시는 것이
지, 천국이나 하나님의 보좌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의 계시가 일차적으로 이 당시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
도록 보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들이 일차적인 계시의 대상이 아
닙니다. 우리는 일단 그들이 이해한 언어와 해석을 가지고 다시 오늘 우리들의 상황에 적용
해야 바른 해석이 나오는 것이지 현재의 달 탐사나 화성에 대한 우주선 자료 등을 가지고
본문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 당시 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로마 황제가 높은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
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로마 황제의 절대적인 권력이요, 교회는 그 앞에서 전혀 존재
가치조차 없는 천박하고 비루한 존재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는 신입니다. 이 신
을 거부하면 죽음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지는 그림은 무엇입니까? 로마 황제보다 더 높은 저 하늘 영광 중
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교회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바로 그 하나님의 보좌 앞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이신 성
령께서 끊임없이 교회에 생명력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환난가운데 지켜주시며, 시험 중에 피
할 길을 주시며, 오히려 이런 위기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우리 왕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절대적입니까? 이 세상에는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가 절대적
입니다. 그 앞에서 나의 신앙 같은 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
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을 다스리시고 계시며 믿는 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이 세
상을 붙드시며 또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이 깨닫게 하심에 따라 마음의 눈을 열어 보십시오.
요한이 했던 것처럼 하늘의 문을 통해서 새로운 계시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완전
히 다른 세계가 보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그 수정처럼 넓은 유리 바다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들
의 교만한 모습과 잘난 체하는 소리들을 비웃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보십
시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
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2,3절)
요한은 아마 할 수 있었으면 칼라 사진을 찍거나 그림으로 그려서라도 이 장면을 보여주
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늘에 본 것을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려고 하는 것은 하늘에 사라
계신 하나님입니다. 물론 요한이 본 것은 진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천
상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 분은 이 세상에 잇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들만 산다는 것과 우리 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들만 있다면 못할 짓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
리 위에 어떤 절대적인 분이 계시며, 그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을 다 보고
계신다면 그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모두 있으
나 마나 한 신들입니다. 모두 쓸어서 만신전이라는 곳에 쳐 넣고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거짓 신들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 분이 게십니다. 로마 황제
가 모든 것을 다 작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해도 한 분만큼은 도저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립니다.
이 세상에 인간들만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수직적으로 더 높은 분이 계십니다. 이 세상에
권위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위쪽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부모를 공경해
야 하며,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누군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
니까?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 위에 계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
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석의 색깔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의
색깔을 나타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모양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빛 녹보석이라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들의 성격을 색깔로 나타내는 게임을 할 때가 있습니다. 좀 음흉하고 속
이 깊은 사람을 검은색이나 딸 색으로 나타내고, 명랑하고 밝은 성격의 사람은 분홍색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아무튼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분의 색깔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보석의 색
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영적으로 성숙하면 잘 변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꾸 변
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죽고, 많은 고난을 통하여 성숙한 사람들에게서는 보석 빛이 납니다.
그래서 신앙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변하지 않고 늘 환하게 빛나
는 분은 벽옥 같다고 할 것이며, 그런 중에도 늘 뜨겁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홍보석 같다
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벽옥과 홍보석으로 나타낸 것은 하나님의 정결하면서도 분명하심,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그렇게 표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지개는 언제나 노아의 언
약을 생각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물로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표시로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하
나님의 은혜입니다. 거기에 녹보석 색깔로 둘렸다고 하는 것은 역시 화평이신 하나님의 모
습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샬롬입니다. 평화를 원하시고 전쟁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뜯어서 생각해볼 때 너무나도 은혜가 넘치고 푸근
해서 그 앞에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로 보여주는 것은 교회의 위치입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4절)
이것 역시 상징입니다. 이 십사 장로라 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두 교회를 대표하는 사
람들로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야곱의 열두 아들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면, 신약에서는 갈
릴리의 열두 제자들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십 사 장로는 신구약의 모든 교
회의 신분을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승리한 교회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둘려 있습니다. 얼마나 순결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그들
은 모두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승리와 영광의 모습입니다. 지금 지상 교
회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비참합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학대받고 늘 더러운 옷을
입고 삽니다. 그러나 승리한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천사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로마의 학대 아래서 비참하게 죽은 성도들이 다
죽은 것이 아니라 거기서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이 세상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명하게 되고 인정받는 거
이 유일한 소망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욕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바보처럼 보입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순교자들일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겠다
고 해 놓고 나중에 다시 믿으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미련하게 죽을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
까? 그러나 그들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 영원한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에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이 그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차지하면 저기서 차지할 것이 없습니다. 저기서 영광의 자리에 앉고 싶으면 여기서 모든
것을 다 차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힘을 다 써 버리면 안됩니다. 여기서 힘을 아껴서
그 힘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하고 싶은 것을 다 한 사람은 부
자처럼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의 생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좋은 것은 다 해 보고 좋은 것은 다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돌아 갈 것이 없습니다. 찌꺼기나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찌꺼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들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닙
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중요한 어려움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중
요하지 않고 단지 자기 욕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빠지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온통 우리의 마음과 생
각을 지배해 버려서 거기서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침체시켜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럴 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고민하고
흥분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9장을 보면 나중에 왕이 될 사울이 아버지의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찾아 나섰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나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환은 사울에게 암나귀는 고사
하고 부친께서 걱정할 것 같다며 돌아가자고 하는데 사울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가 "나귀도 찾지 않은 주제에 왜 돌아왔느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울은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사무엘은 그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나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구는 이미 찾았고, 중요한 것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블레셋으
로부터 이 백성들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나귀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귀
를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를 낙심시키는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니까 나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정작 중요한 것은 블레셋의 압제에 고생하는 이
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6절에 있는 하나님 보좌 앞의 유리 바다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자신을 돌
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흥분해서 하나
님 앞으로 돌진해 나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는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발 앞에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 중에
계시며 우리 인간의 감정과 흥분에 좌우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자존심이 있는데,
열등의식에서 온 자존심입니다. 이런 자존심은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사
가 못마땅합니다. 결국 이 분노는 성령의 위로를 거부하고 마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마음
이 피폐해지면 행복이란 걸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위로하셔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유리바다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인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빠져서 절망하거나 방심
하지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을 돌이켜보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정차 오실 자라"
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며 모든 것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존재하십
니다. 존재하시는 것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인도하시고 보호
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회복될 것입니다. 여기에 역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모든 것
이 현재 상태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뒤집어 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가 만족
스럽고 좋다고 해서 최후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은 뒤집어 질 것입니다. 그래
서 미리미리 미래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현재를 나의 정욕에 따라 낭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저축해 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로마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어려운
중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베푸시는 구원을 생각하고 에스겔 시대나 이사야 시대에 교회
가 용기와 믿음과 지혜와 인내로 이겼던 것처럼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어려울 때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위축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자 같은 용
기를 가집시다. 그리고 사람의 지혜를 사용합시다. 어려울 때일수록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그리고 몇 십년 몇 백년을 내다보는 독수리의 비전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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