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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 2002-05-23 15:57:35 read : 14575
본문 : 에베소서 4장 17-24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분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바램과 달리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 세상이 점점 타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이 세상이 언제나 달라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분야에서 다 잘되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잘 살게 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먼저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새 집을 얻어 이사를 했습니다. 그 동안 부부싸움이 잦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가정불화가 심했으나, 이제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하는 만큼 마음을 새롭게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다투게 되었고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했던 마음도 사라져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집도 가구도 커튼도 모두 새것으로 바뀌었지만, 이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새로 성전을 크게 건축하고 이사를 하여 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니 얼마나 좋습니까? 한편으로 교회 건물이 커지고 좋아졌으니 수영로 교회도 덩달아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분명한 것은 성전이 달라졌다고 해서 교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전보다 더 좋은 교회,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교회 그리고 이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듣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려고 하면 저와 여러분이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변화된 사람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며 이 세상이 변화됩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아름답게 변화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겠습니까?
1.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23:7절을 보면 좬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좭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면, 잘될 사람인지 망할 사람인지, 복 받을 사람인지 저주받을 사람인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길르다 보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생각하는 것이 아름답고 행동이 의젓하고 반듯하면 “아하! 이 아이가 장차 크게 될 인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이 엉뚱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주 방자할 뿐만 아니라 말하는 것이 매우 어리석은 아이를 보면 누구나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 아이에게는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면 제법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방자하고 주책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는 속담처럼 어려서부터 방자한 사람은 나이가 환갑이 넘어도 여전히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평소의 생각이 인간을 만들어 갑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좬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5). 평소에 착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좋은 일을 계획하고, 좋은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말도 선한 말을 하고 행동도 바르게 하기 때문에 자연히 선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악한 사람은 평소에 악한 생각, 더러운 생각, 삐뚫어진 생각,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연히 말도 악독한 말이나 고약한 말을 하게 되며, 자연히 행동도 방자해져서 아주 악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변화되려면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지고 그 사람의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을 보니, 그 목사님이 살고있는 동네에 아들 하나를 둔 거지부부가 살고 있답니다. 비록 거지로 살고는 있지만 매우 착하고 성품이 순한 분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대 째 거지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든지 나가서 노동을 해도 되고 공장에 가서 일을 하며 살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살까요? 그들은 거지로 사는 생활이 비록 누추하기는 해도 이 세상에 이처럼 편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세금을 내라고 하나요. 농사지을 필요가 있나요. 밥 한끼 얻어먹으면 식사가 해결되고, 아무데서나 자면 자기 집이 되고,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지요. 자연히 이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거지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한평생 거지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88 올림픽이 열리기 전만 해도 공산주의 세력은 엄청났습니다. 마치 전세계를 공산화할 것 같은 기세로 민주세력을 위협하며 냉전시대를 이끌어갔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소련의 공산주의가 70년만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국의 공산주의도 40년만에 망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체코를 비롯한 동구권의 공산주의도 줄줄이 다 망했습니다. 그 동안 공산주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도시와 공장이 파괴되었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날마다 감시당하며 자유와 인권이 유린당하는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오늘날도 북한에는 개인의 자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중국에 나가 TV를 사오고 라디오를 사와도 고정된 주파수이외에는 듣지 못하도록 땜질하기 때문에 다른 방송은 전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는 똑똑한 몇몇 사람들이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한번 잘못하면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이 망하고 나라 전체가 망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은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 낼 수 있는 그 어떤 힘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습니다. 그 배는 포르투칼산 마디라 포도주를 실기 위해 포르투칼로 떠나야 하는 배였습니다. 한 선원이 냉동 콘테이너의 짐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때 다른 선원이 안에 사람이 들어간 것을 모르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이 배는 도착지인 포르투칼의 리스본에 도착했습니다. 선장이 닻을 내리고 포도주를 실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한 사람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쇳조각으로 냉동실 벽에 새겨놓은 고통의 일기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벽에는 찬공기로 인해 자신의 몸이 점점 굳어져가는 고통과 죽음의 절망감을 표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비록 냉동컨테이너였지만 물건이 많지 않아서 냉동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컨테이너 안의 온도는 섭씨 19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기온이라면 쌀쌀할 정도로 춥기도 해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온도는 아닙니다. 더구나 가까이에는 먹을 음식들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한 것입니다. 결국 죽을 것만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진짜로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살겠다는 의지 하나만 있어도 얼마든지 살아나올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십대 중년 부인이 직접 짠 스웨터 102벌을 가지고 신문사에 찾아와 이 옷들을 고아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부탁하고 돌아갔다는 신문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부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연을 들어보면, 어느 사십대에 들어선 한 중년 부인이 문득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니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하고 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돌보고 ...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들만을 위해 살아온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우선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고아들에게 나누어 줄 스웨터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이 일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을 비롯하여 만삭이 된 부인에 이르기까지 실을 사다가 스웨터를 짜주었습니다. 스웨터가 어느 정도 모아지자 신문사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일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시간과 물질을 들여 소외된 이웃을 돌아볼 때 비로소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결국 한 여인의 좋은 생각이 이런 보람된 일을 했습니다.
2.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2-24절을 보면 좬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좭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생각이 그 사람의 생을 바꾸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찬송가 539장의 가사를 쓴 [에드워드 모트]는 37살이 될 때까지 공장에서 캐비넷을 만드는 목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열등의식과 원망불평으로 가득차 있었고,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를 발견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존. 하이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본문으로 [거듭나는 도리]에 대한 설교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거듭나야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으로부터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 망치 소리가 노래하기 했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내 마음속에는 생수가 흘러넘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주셨고 그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여전히 그 공장에서 목공의 일을 계속해나갔지만 과거와 달리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성실해졌고 더욱 풍요해졌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목공소의 주인으로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찬송가 539장의 가사는 자신의 삶의 원천이 예수님인 것을 고백하며 쓴 찬송시입니다. 그 가사를 보면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음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 대통령 재직시보다 퇴임 후에 더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Habitat Ministry]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난하여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LA폭동으로 한국 사람들의 집이 불타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26채의 집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망치를 들고 집을 짓는 일에 참여한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한 달에 한번씩 교회청소 당번이 되어 아내와 함께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를 본받아 장로님으로 시작하여 한 달에 한번씩 온 교인이 당번을 정하여 교회 안팍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살아있는 신앙]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리코버 제독과의 면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해군 제독은 젊은 해군 장교인 카터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전술 전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와 태도에 이르기까지 아주 날카로운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해 카터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이 제독이 화제를 돌려 사관학교시절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리고 성적은 어느 정도 나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성적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카터는 몇 점을 맞았고 몇 등을 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독은 다시 “그 성적이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당황한 카터는 “글쎄요.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이 때 제독은 무섭게 젊은 카터 장교를 쏘아보면서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그 후 카터는 “내가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이 해군 제독이 던지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실지도 모른다. 너는 최선을 다했느냐? 만일 주께서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Why not be the best?” -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하는 물음이 그의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터는 성경인물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두 여인을 예로 들면서 이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들어가면서 그 입구에 놓여있던 헌금함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바쳤던 가난한 과부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값진 물건이었던 옥합을 깨뜨려 그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께 부어드렸던 마리아로, 이 두 사람이 자신의 신앙의 모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새 성전에 들어온 이후 더 아름답게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우리 주님 모시고 은혜가운데 살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교회와 세상이 천국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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