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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성찬 2002-04-01 15:23:16 read : 20174
마26:26-30 // 2002-03-24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으로 지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성찬식을 갖게 됩니다.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찬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은 "나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꼭 알아야 될 일은 아무나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성찬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남녀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약속해도 결혼하지 않고 혼인신고하지 않으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받은 사람만이 성찬의 은혜를 나눌 수 있고, 받을 수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려면 먼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죄씻음 받은 표입니다. 그리스도인된 증거입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사람만이 참석한다 하는 것이 성찬의 규칙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을 해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옆에서 달라 그런다고 해서 주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뭐 그까짓 빵 한 조각, 포도주 한 모금 얼마나 된다고 인색하게 구느냐? 이런 식으로 불평하거나 시험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인색하게 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빵은 얼마든지 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 성찬의 떡은 내가 주고 싶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이 성찬에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알면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교회가 왜 이런 규칙을 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앞에 17절부터 20절까지 있는 말씀을 한 목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아멘.
예수님께서 성찬을 시작하신 날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잔치 때 이일을 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히브리 사람들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전국각지에서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던 교포들까지 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200만 내지 300만이 모였다 그럽니다. 굉장한 숫자입니다. 여관은 물론 각 집, 그리고 빈터마다 텐트들로 인산인해였다 합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월절이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해방된 날입니다. 이 날이 이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애굽이라고 하는 나라가 당시 최강대국입니다. 피라밋이 불가사의 아닙니까? 피라밋을 건축하는 나라니까 굉장히 힘이 센 나라다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를 대항해서 종살이하던 이들이 해방 받아 자유를 쟁취했다 이거는 이스라엘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그것도 창과 칼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심과 은혜로 해방을 받았다 이것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자부심입니다. 이런 간증이지요. 여러분, 내가 이북에서 내려올 때 죽을 뻔했는데 살았다 그 간증이 하루 이틀 하고 끝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한다구요.
이번 부활주일 앞두고 지난 번 장장로님 환송하느라고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죽었다 살은 얘기를 했어요. 우리 고장로님이 새벽기도 오시다가 중앙선 침범해서 다 죽었다가 차는 폐차 되었는데, 내외가 살았어요. 야 좋으시겠다 말이에요. 옆에 신장로님 최권사님 다 돌아가실 뻔하고, 장례식 준비하다 살았다, 얼마나 좋겠느냐? 그 다음에 채장로님 한집사님 그랬지요, 방장로님 그러셨지요. 그러니까 한턱들 내십시오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합시다. 이번 부활 주일에 아마 큰 턱이 있을 겁니다. 부활 주일이 다음 주일이에요. 멀지도 않습니다.
죽었다가 살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이거는 평생 자랑입니다. 이거는 신앙인의 자부심이라고요. 그래서 유월절은 지킨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잔치해서 먹는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그런 자부심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속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소망이란 딴 거 아닙니다. 로마에서 해방 받고, 승리하면 좋겠다 하는 그런 염원과 열정들이 유월절 잔치 속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잔치라고 하는 것이 대단하게 치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월절 첫날이 되게 되면 오후 3시쯤 해서 제사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 예배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져온 양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도살을 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200만 명이 모이면 한가족이 한 마리를 먹는다 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10명에 한 마리 정도 따집니다. 200만 명이 모이면 20만 마리의 양이 죽는 겁니다. 300만 명이 모이면 30만의 양이 그 날 죽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그래서 이 집안에 가장이 양을 메고 성전을 향해서 들어갑니다. 그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이 죽은 양을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데, 그 양고기를 이들이 먹어야 되니까 그 제사장들이 죽이는 일을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20만 마리가 그 피를 흘리고 그 피를 쏟아냈다 어떻겠습니까? 피비린내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다 하느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24개조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반열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24개조가 1년에 15일씩 돌아가면서 이 성전에 와서 봉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조는 각 지파가 나누어준 레위 사람들의 거처에서 자기생활을 하다가 자기 순서가 되게 되면 올라오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제사장이 그래서 올라온 것이 아니냐?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이렇게 순서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유월절이 되게 되면 24개조가 풀가동이 됩니다. 다 올라오는 거지요. 그래서 와 가지고 이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 제사를 지낼 때에 한번은 한 노인이 그만 많은 인파에 깔려 죽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후로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이러면 되겠느냐 해서 질서 있게 진행이 되면서 예수님 당시에는 20만 마리, 30만 마리가 2시간이내에 다 양을 도살하는 일을 끝냈다고 하니까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일이 진행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희생 제사를 드리고 난 가장들은 자기의 희생제물인 양을 도로 받아 가지고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처소에 돌아와서 저녁부터 유월절 잔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성경말씀의 20절에도 보게 되면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랬습니다.
유월절 잔치는 예루살렘성에 어두움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저녁 때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도 이 계절이 날씨가 좋습니다. 꽃도 피고 좋은데, 유대나라는 이 계절이 굉장히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이제 비가 오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향이 나고, 그러니까 초여름입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이 날이 바로 보름 전날이니까 달이 환하게 떠 있습니다. 좋은 일기 속에서 하늘의 보름달이 거의 만들어지는 그 밝은 아래서 이들이 잔치를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이 앉고 가족들이 앉아서 같이 합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집집마다 잔치마다 양고기를 굽는 냄새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낮에는 피비린내로 대단하고 밤에는 양고기 굽는 냄새로 얼마나 대단한 지 모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안에가 이 냄새로 얼마나 지독했겠는가는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주 끔찍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방 사람들이 전혀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 유월절 잔치에 참가했을 때는 냄새가 역해서 아마 한순간도 못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그 냄새의 의미가 다릅니다. 바로 이 양고기를 먹고 그 양고기를 굽고 그 피를 받을 때에는 우리는 애굽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자유인이 됐다. 그 의미를 가지고 그 양고기를 굽고 그 피비린내를 어떻게 봤겠습니까? 얼마나 은혜로 봤겠어요. 그러니 의미를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렇게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런 잔치를 지금 합니다. 그래서 이날 잔치날이니까 아주 흰옷들을 쫙 입고 집집마다 다 흰옷을 입고 잔치를 하고 그 잔치가 끝나게 되면 아이들은 한 2시쯤 끝나는데 잠자리에 들고 나머지 식구들은 또 모여 가지고 신앙 토론도 좀 하고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으로 유월절 잔치를 계속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 잔치에 있어서 크라이막스는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들이 음식을 먹는 것이 예수님 당시에는 양고기 그 다음에 쓴나물, 이 쓴나물은 양고추냉이 여러분 고추냉이 뭔지 아시죠? 와사비..쓰죠? 와사비 씁니다, 고거 하고 그 다음에 마짜라고 하는 유대인의 빵이 있습니다.
누룩 없는 빵인데요. 밀가루 반죽해 가지고 이스트 안 넣고, 부풀리지 않고 그냥 만든 빵 있잖아요. 맛없잖아요. 그 빵. 요 세 가지를 먹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요 세 가지 외에 세 가지를 더 먹는데, 정강이 뼈, 그 다음에 삶은 달걀, 그 뭐냐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던 것을 상징해 가지고, 그 우리의 정강이뼈가 없으면 걷질 못하잖아요.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 계란을 먹으면서 우리는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계란이 그렇잖아요, 삶으면 삶을수록 어떻게 되요? 단단해져요. 우린 고난을 받을수록 단단해 진다. 그래서 이들은 그것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을 소망하면서 이것을 먹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파슬리나 샐러리 같은 것들을 양상추 같은 것들을 소금물에 찍어서 먹는데 소금물이 짜지 않습니까? 그 때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 봄, 즉 봄 날씨에 채소가 있으니까, 그 봄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민족에게도 봄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그걸 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먹었던 것은 이 양고기, 마짜, 쓴나물 이 세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유월절 잔치상에 벌려진 음식들의 종류를 보면서 우리가 한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부페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음식잔치가 아니라는 겁니다. 유월절 잔치는 단순히 음식 먹고 마시고 뭐 얼마나 먹느냐 배부르냐 이런 잔치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식이고 제사고 예배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유월절 잔치입니다. 유월절 잔치는 그렇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을 순서로 딱 짜놓고 이제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 순서를 보시게 되면 주께 나아갑니다, 주께 경배합니다, 말씀하소서, 주여 나를 받으소서, 주여 나를 보내소서. 이 예배 순서라고 하는 것도 그냥 짜진 것이 아닙니다. 요것도 하나님 앞에서 순서를 만듭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갑니다. 겸손하게 나가고 주님께 경배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고 내가 주님께 나를 받칩니다. 이제 나를 하나님 세상을 향해 보내달라 이런 순서대로 이들의 유월절 잔치도 과거, 현재, 미래, 이런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그래서 과거 그러면은, 지난날의 어려운 시절들과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면서 과거, 또 현재의 축복을 감사하면서 현재, 미래의 소망을 주실 것을 원하면서 미래 이런 순서대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이들이 포도주 잔을 놓고 포도주 잔을 4번 따르고 4번 마시고 하는 것으로 순서가 진행이 되는데, 이제 가장이 앉고 가족이 쭉 둘러앉습니다.
그러면 가장 앞에 포도주잔이 있고 거기다 포도주 한잔을 붓습니다. 그리고는 얘기를 합니다. `지금부터 유월절 잔치를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님 이 자리를 축복하소서` 하고 축복의 선언을 하게 되면 앉아있던 가족은 일제히 일어나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손을 씻고 옵니다. 깨끗이 씻고 다시 그 자리에 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음식을 마짜를 부수고, 그 다음에 쓴나물을 놓고 양고기를 펼쳐 놓습니다. 자 거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다 준비 됐는가` 그러면 주인은 포도주를 쫙 마십니다. 내려놓습니다. 다시 포도주잔이 올라옵니다. 채웁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시작이 됩니다. 이때가 과거를 회상하는 겁니다. 그러면 맏아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버지, 이 밤이 다른 밤하고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요즘에 유대인들은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어린 자녀부터 시작해 가지고 한마디씩 묻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왜 쓴나물을 먹어야 합니까?` 또 다른 아들이 `아버지 우리가 왜 마짜를 먹어야 됩니까?` `아버지, 우리가 왜 이 양고기를 먹어야 됩니까?` `아버지 우리가 왜 이 정강이뼈와 삶은 달걀을 먹어야 합니까?` 이렇게 음식 하나 하나를 놓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그 질문을 하게 되면 그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해주는 겁니다.
먹기 전에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쓴나물은 지난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고난과 슬픔을 생각하면서 먹는 것이다. 마짜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해방시켜 줄테니까 빨리 출애굽 준비를 하라 그럴 때 시간이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 누룩 안넣은 빵을 만들어서 우리는 그것을 먹었다. 바로 급한 상황을 얘기 하는 것이다`
`양고기는 뭡니까?` `양고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피를 뽑아서 문설주에 바르고 너희는 여행을 위해서 음식을 잘 비축해두라. 그리고 피를 바르고 난 그 집에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다니면서 그 피가 있는 집은 그냥 지나갔다. 유월했다. 그냥 담장을 넘었다. 그래서 유월. 유월의 표시다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상징의 표시다. 그래서 양고기는 단순히 고기가 아니다. 바로 이 속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속에 있다`
`그러면 삶은 달걀은 왜 먹습니까?` 이건 요즘 나오는 얘기죠. `이것은 우리가 더 고난받아서 단단해 져야한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다 끝나고 나면 또 가장은 포도주 한잔을 쫙 들이켜 마십니다. 그리고는 또 놓으면은 세 번째 잔이 부어집니다. 이 세 번째 잔이 부어질 때 이들은 정 자세를 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까지는 어떤 자세를 하냐면은 이들이 이렇게 반 누워있는 상태대로 가족들이 다 누워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유대인들의 `미쉬나`에 보게 되면, 교훈집입니다. 탈무드 같은 교훈집인데, "유월절 음식은 꼭 비스듭히 누워서 먹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예수님 당시의 로마 사람들은 그 중에 자유인, 로마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인입니다. 이 자유인들은 식사를 할 때 누워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꼭 유월절 잔치를 할 때 누우라는 거예요, 옆으로. 다 누우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힘으로 자유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노예지만 이 속국에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자유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 상징으로 눕습니다.
그러다가 세 번째 잔이 따라질 때, 이들은 정 자세를 합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음식 먹을 준비를 하는데 쓴 나물과 마짜, 이것을 먹습니다. 요즘에는 마짜에다가 쓴나물을 집어넣어 가지고 먹습니다.
제가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에 갔을 때에도, 그 식당에서 그들이 먹는 것을 보니까, 그 마짜가 이렇게 쌓여있어요. 그래서 동그란 빵인데요. 그것을 열면은 우리의 호떡처럼 이렇게 벌어집니다. 그 안에다가 야채를 막 넣어 가지고, 그렇게 먹더라구요. 저도 또 그렇게 먹었죠. 그리고 쓴나물을 마짜 속에 넣어 가지고 샌드위치처럼 먹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나물이 씁니다. 마짜는 누룩이 없어요. 누룩 없는 마짜입니다. 부풀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딱딱한 그것을 쓴나물과 함께 먹었다. 맛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정자세로 앉으면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설명해주신 그 내용들을 기억하면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그 구원의 해방의 은혜 그것을 생각하면서 먹습니다.
음식은 맛이 없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지금 알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맛이 있다 없다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난 다음에 양고기를 메인 메뉴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그 예수님의 성찬의 그림이 잘못 그려졌다. 그것은 단순히 누워서 식사한다는 그 의미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성찬을 나눌 때, 이들이 정자세 하면서 그것을 받았다,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정자세로 먹는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 때에 유대인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면 그들의 유월절을 더욱 실감나게 음미할 수 있습니다.
아바딤 하이누 하이누 아타 브네 호린 브네 호린
아바딤 하이누 아타 아타 브네 호린
아바딤 하이누 아타 아타 브네 호린 브네 호린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자유롭다네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자유롭다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하시는 내용은 바로 3번째 포도주잔을 따르고 난 다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마짜와 쓴나물과 함께 양고기를 먹어야 되는데, 그 시간에 주님께서 그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26, 27, 2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아멘.
자 여태까지 먹었던 빵을 가지고 제자들도 유월절 잔치에서 마땅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을 구출해낸 광경을 연상해야 될 터인데 주님은 그것을 가르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언약을 세우겠다 바로 이것이 내 몸이다 이것이 내 피다 바로 이것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언약의 피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다시 출애굽기로 돌아가면은 자명해집니다. 출애굽기 6장 1절부터 있는 말씀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여러분, 포도주잔 첫잔이 올려지고 식사를 하기 전에 가장은 무슨 얘기를 하냐면 출애굽기 6장 1절부터 6절까지 있는 말씀, `나는 여호와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우리에게 가나안을 약속한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신음소리를 듣고 자유하게 하실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오늘 이 잔치를 하라고 그랬다` 축복의 제1선언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번째 잔을 마시면서 하는 것이 무어냐면 유월절 잔치의 의미를 얘기하는 것인데, 그것이 6장 6절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그래서 그들의 상황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잔을 마시면서 이 아버지가 이 마짜와 쓴나물과 양고기를 먹으면서 하는 얘기가 무어냐면 바로 이 애기입니다. "편 팔과 여러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량하여" 라는 말이 나옵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갚아준다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의 종이라 그랬습니다. 노예입니다. 종이 해방을 받으면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종이 자유인이 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을 갚아주는 겁니다. 종을 돈주고 사는 겁니다. 두 번째 방법이 뭐냐면 이 주인하고 전쟁을 해가지고 이 주인을 죽이고 그 종을 뺏아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이 자유인이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속량, 대가를 치뤄야 되는 것입니다. 돈이든지, 전쟁을 하든지.
하나님의 선택은 돈을 치루는 것이 아니고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를 어떻게 속량하냐 "편 팔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손을 내미시는 겁니다. 다시 불러모으는 겁니다. 사랑의 관심입니다.
그리고 "여러 큰 심판들로써"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전쟁을 선전포고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희 때문에 전쟁을 할거다 심판하는 일을 할거다` 그것이 바로 열 가지 재앙입니다. 그것도 작은 심판이 아니고 큰 심판을 열가지를 할거다. 열가지 재앙이 말이죠, 얼마나 대단한 재앙들이었습니까? 바로 그것을 통해서 너희들에게 자유할 수 있도록 갚아 주겠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인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속량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언약의 피니라 내가 너희들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서 바로 내 몸과 내 피, 내 생명을 너희에게 대속물로 주노라"
오늘 우리가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은 따른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대속하기 위해서 내어주신 주님의 몸과 피를 먹는 겁니다. 이거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겠어요? 여기 이런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를 무너뜨리면서 자유를 주셨는데, 지금은 다른 것이 무어냐? 똑같은 대가를 치르고 자유를 주는데, 다른 점이 뭐냐? 그 때는 바로를 쳐부수고 자유를 줬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를 희생해서 우리에게 자유를 줬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유월절 양이 제물이 되어서 백성들을 살린 것처럼 예수님이 제물이 되어 가지고 오늘 우리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 빈민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사는 한 유대인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이 여인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유대인이 예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 말이죠, 2차대전 때, 자지가 블란서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독일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죽임을 당했어요.
자기에게도 그 죽음의 위협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독일의 비밀경찰이 찾아와서 숨어있는 자기를 잡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이웃집에 사는 한 미망인 크리스천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 신분증을 나에게 주고 당신은 빨리 피신하시오"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물었다는 거예요. "어째서 당신은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생각을 했습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나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더 큰 사랑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사랑에 비하면 나는 아주 작은 사랑일 뿐입니다." 그 말 한마디했대요.
그래서 그 유대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그 크리스천 여인은 붙잡혀가 수용소에서 6개월동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이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한 사람이 증거한 예수님의 사랑의 증거을 듣고 그는 가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예수를 믿게 되고 그는 일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을 뒤바꾸어 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의미있는 성찬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두 가지 질문을 해야 될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아느냐? 그 분의 생명 바쳐서 나를 구원하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의미있는 성찬을 위해서 두 번째 질문, 나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저 강원도의 양양 남대천의 연어는 저 알래스카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 남대천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하더라구요. 여러분, 알래스카에 살면 거기서 살다가 알낳고 죽지, 왜 거기까지 오는 겁니까? 만약에 알라스카에다가 알을 나면, 그 바다에다가 알을 나면, 그 알은 부화되기 전에 다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생명 살리기 위해서 연어는 그 알라스카에서 이 남대천까지 죽음의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와서 알을 낳고 죽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연어의 생명이 지금까지 보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물 뿐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거기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지 않고 생명이 탄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죽으시니까 우리가 사는 거예요. 우리가 생명 바쳐 죽을 때에 우리의 생명 때문에 또 다른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명도 그렇잖아요.
하물며 우리가 주의 복음을 증거하겠다매요, 많은 생명들을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매요,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우겠다매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너도 생명 바쳐라 하는 겁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도, 하나님의 교회 역사도 순교하는 자가 있으니까 오늘 교회가 이 시간까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요, 피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새벽기도하면서 다섯 가지 제사를 우리가 배웠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 내 죄를 용서받는 의무제입니다. 그러나 내 생명 바치는 번제, 내 재물을 헌신하는 소제,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화목제는 다 자원제입니다. 내가 스스로 해야 됩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건설하겠다면서, 복음화하겠다면서, 이 생명 주는 사명 없이 불가능하다 그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돈 잘 벌기를 원합니다. 출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돈 벌고,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고, 우리는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생명, 이런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예수 닮아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기도하는 분들이, 많은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목사님 설교에 감동 받게 해주고` 여러분, 말씀은요, 감동 받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감동 받아서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수학에 공식이 있고, 과학에 공식이 있습니다. 감동 받아서 문제 풉니까? 풀다 보니까 감동이 되더라구요. 우리가 인생의 공식이라는 것도 딴 거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공식이 딴 거 아니에요. 아이가 감동이 되어서 사랑합니까? 사명이니까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하다 보니까 더 사랑하는 겁니다.
예수로 사는 것도 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를 주실 때에 그 계시가 감동이 되든, 안되든 그냥 받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고 순종하였더니 그랬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시더라는 거예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이루리라" 말씀했거든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랬거든요.
말씀이 뭐 감동입니까? 순종하는 것이지. 주의 오늘 말씀하실 때에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역사하시는 겁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대속에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고 나도 생명 바쳐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이 약속 이것 없이는 우리가 바른 성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생명 때문에 내가 살은 것처럼 내가 생명 바쳐서 많은 사람을 구원해내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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