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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 무엇입니까?이수영목사 2002-03-31 23:06:34 read : 21265
영성이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영성은 ‘영적 삶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본래 영적인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더불어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본질적으로 인간은 영적인 삶을 살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상실하면서 영적인 삶이 사라지고 죄인이 되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시 영적 삶의 능력이 회복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영적 삶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믿음, 소망이 없으면 육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 소망, 기대를 가지고 그분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영적인 삶이며,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영성입니다. 따라서 영성이 깊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그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겸손과 순종의 삶입니다. 영적인 삶을 상실한 인간이 영적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품게 합니까?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사는 것, 이끌림을 받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영성 훈련은 기본적인 크리스천 삶을 사는 것
성령에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깨닫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증거하는 삶을 끝까지 살도록 견인하는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성이 부족할 때 구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히 구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특히 나에게 계속해서 살아나려고 하는 육적인 욕망이나 세상적인 삶의 욕구들을 성령께서 죽이시고 늘 새롭게 하시도록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성 훈련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선 영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 하는 영성 훈련은 공허하고 맹목적일 수 있습니다. 영성 훈련은 영적 삶을 더 바르게 살기 위한 훈련이어야 합니다. 영적 삶이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 뜻과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세상은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벗어나 살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도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거나 찬양을 많이 하는 것이 영성 훈련은 아닙니다. 영성 훈련은 정상적인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세상에서 바르게 지키며 사는 훈련입니다. 영성 훈련이랍시고 어떤 독특한 방법을 찾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방법은 영성 훈련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적인 삶은 정상적인 신앙 생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바르게 실천하며 사는 삶이 진정한 영적 삶입니다. 따라서 영성 훈련이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도록 하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그런 의미에서 영성 훈련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기복 신앙에서 빠져 나오라
한국 크리스천들이 오해하고 있는 신앙의 단면은 무엇입니까?
기복주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복 신앙이란 자신이 설정한 행복과 가치를 성취하고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나가야, 예수를 붙잡아야 행복해지고 출세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바른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믿음이란 삶의 의미, 목표, 가치관이 변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 때문에 자신의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고 해악으로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믿음은 삶의 목표와 의미와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양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절에 가는 것보다 교회에 가는 것이 더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 잘못된 믿음이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도록 한 제일 큰 원인입니다.
기복주의 신앙에 대한 반성은 이미 보편화된 상태가 아닌가요?
물론 기복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있어요. 그렇지만 기복주의는 아직 믿음이 약한 성도들에게 매력을 주거든요. 그래서 여전히 거기에 호소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실정이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가 중요
어떻게 기복주의 신앙을 극복할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면 됩니다. 그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입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신뢰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낙심과 의심이 생깁니다. 특히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선하시며 공의로우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절대적 신뢰가 없으면 넘어지게 되고, 의심하게 되고,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갈 때, 어떻게 그냥 내버려두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지만, 수십 년 후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을 모두 구원하지 않습니까? 때로 악인들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은 큰 선을 이루십니다. 성경의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 그저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교회에 가기를 좋아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될 때 바로 시험에 들고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굴복하게 됩니다. 이걸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철저한 신뢰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 믿음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설득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숙은 평생에 걸친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성화라는 것은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화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의롭게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인 게죠. 고로 성령의 역사를 가리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칼빈은 일생을 통해서 믿음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죠. 죽는 순간까지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은
성숙의 핵심 도구
성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요?
기도와 말씀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중심적이면 안됩니다. 하루에 3∼4시간 기도하더라도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그게 무슨 성장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한 신앙의 성장은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을 때 신앙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신앙의 모양은 있을지 몰라도 내용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인하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우면 해결될 문제가 비우지 않음으로써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 놓으십시오.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삶의 변화는 성령의 역사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에 성경은 그것 자체의 능력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는 잘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도 그 말씀의 진리 됨을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 자체가 자동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전해주는 것이지, 성경을 읽고 삶이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칼빈도 “하나님께서 밖에서 말씀으로 일하시고,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고 했어요. 말씀을 깨닫게 하고 말씀을 확신케 해 주시는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른바 ‘성경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거죠. 말씀은 그것이 진리라는 의미에서 힘을 갖는 것이지, 진리를 우리로 하여금 소유케 하고 진리대로 살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 없는 성경은 그냥 하나의 책일 뿐이에요. 성령의 역사를 배제한 채 성경 자체의 능력, 자신의 노력으로 진리를 얻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이끄시도록 간구하는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을 읽어야 하나요?
우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으면 안되죠. 셋째는 성령께서 바른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께서 참 의미를 깨우쳐 주시도록 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말씀을 듣는 자세로 성경을 봐야겠죠. 그런 다음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성경이 씌어진 ‘삶의 자리’ 즉 당시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맥락에서 성경을 봐야겠죠. 그 맥락을 벗어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배경을 알지 못해도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빛과 소금/ 신상목 기자 smshin@tyrann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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