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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바라보며
2002-02-25 11:46:45   read : 18128

신 31:1∼8



모세오경의 마지막 성경인 신명기에는 모세의 최후 설교 세 편이 수록되어 있
습니다. 그 내용은 광야생활을 회고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조장을 임명한 이야기, 열두 정탐꾼을 보낸
이야기, 삼십팔 년 동안 광야를 방랑한 이야기, 헤스본 왕 시혼을 비롯하여 여
러 왕들을 정복한 이야기, 이미 앞의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
는 이야기들이 다시 한 번 나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도 신명기 5장에 다시 한 번 나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는 광야생활을 회상하는 내용만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나
안 복지에 들어가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도 많이 들어있습니다.
회고와 함께 전망이 담겨 있는데 회고하는 내용보다 전망하는 내용이 분량도
많고 표현도 강렬합니다. 모세는 설교를 하면서 회고를 할 때는 잔잔하게 말하
고 전망을 말할 때는 큰 소리로 강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율법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말할 때 모
세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이런 율법을 주셨다' 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면 이 율법을 꼭 지켜라!' 했습니다.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신명기'라는 이름은 '명령의 반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아서는
'복지생활의 지침서' 이렇게 해도 좋을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의 끝에서 자기가 사십 년 동안 걸어온 광야만 보지 않았습니
다. 출애굽 한 세대가 아니라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들어가게 될 가
나안 땅을 더 많이 바라보았습니다.

신명기 30장으로 모세의 설교는 모두 끝납니다. 오늘 본문인 31장부터는 신명
기의 부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유언,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운 이야
기, 하나님의 마지막 지시. 모세의 마지막 노래와 축복, 그리고 모세가 죽은 이
야기입니다.

31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
하여" 모세가 이 말씀을 전할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쪽을 바라보게 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 쪽을 바라보게 했을 것입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요단 강을 건
너지 않았는데,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미 요단 강을 건
너가서 가나안 땅에 가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뒤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앞에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뒤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찾아야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가야 합니다. 앞을 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일의 끝에서, 또 어떤 시기의 끝에서, 뒤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
라 앞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성도는 어떤 일의 끝에서, 또 어떤 시기의 끝에서
뒤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겠지요. 성도는 뒤를 많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
을 더 많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끝에서 새로운 앞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성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은퇴를 하면서 회고록만 쓰는 것이 아니라 전망록도 쓸 수 있어야합니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겠습니다' '내 체험을 바탕으로 말하면 이 시대는 앞으로 이렇
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졸업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졸업생들, 앞을 더 많이 보시기 바랍니
다.
앞을 보는데 염려되는 일, 가로막고 있는 일, 이런 것들을 먼저 보지 마세요.
그런 것들만 먼저 보는 사람들, 그런 것들만 골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 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좋은 일. 소망스러운 일들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성도는 삶의 끝에서 영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육신 생활의 졸업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육신생활의 졸업
이면서 동시에 영생생활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
입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때 무엇을 보았습니까?
사도행전 7장55절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
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바
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나를 부르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부르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나를 부르실 것인지, 집에서, 병원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어느 곳에서 나를 부르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나를 부르시더라도, 영생을 바라보
면서,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최후의 전도가 됩니다. 또 최대의 전도가 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교회에 같이 나가자고, 예수 믿으라
고 평생을 두고 말을 해도 남편이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병으로 먼저 세상
을 떠났습니다.
장례예배를 드리는데 장례예배 순서 가운데 유족들이 인사 드리는 순서가 있었
습니다. 그 때 남편이 조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
내가 교회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았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렇게 아픈
가운데서도 평안한 얼굴로 웃으며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아, 아내가 늘 말
하던 천국이 정말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다음에 천국에 가서 아내
를 다시 만나려면 나도 예수 믿어야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에 제가 교회에 나가면
못난 놈이라고 꾸짖지 마시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
내는 삶의 끝에서 최대의 전도를 한 것입니다. 말로 한 전도, 생활로 한 전도는
먹히지 않았는데 삶의 마지막에서 영생을 바라보는 얼굴로 한 무언의 전도가
직통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 다음, 성도는 절망의 바닥에서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서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소개하고 있
습니다.

요셉이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의 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아닌 형들의 손에 죽을 뻔했습
니다. 노예로 팔렸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정결하게 살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객지에서 감옥생활을 합니다. 절망의 바닥이지요. 그런데 그
감옥생활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날이 제일 어두운 다음에 새벽이 오는 것처럼, 새로운 시작은 절망의 바닥에서
준비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앞은 홍해, 뒤에는 애
굽의 군병,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절망의 부르짖음이 홍해 해
변을 덮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열리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삼손이 사랑해서 자기 힘의 비밀까지 알려준 여인 들릴라에게 배신을 당했습니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습니다. 눈이 뽑히고 놋 줄로 결박당하고 옥에서 맷
돌을 돌리는 일을 합니다. 마지막에는 원수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처지에 이
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그런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원수를 갚을 수 있었고 동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사기 16장30절은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아둘람 동굴에 숨었습니다. 사울이
군대를 거느리고 쫓아와서 포위를 했습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탈출하게 하시고 왕이 되게 하셔서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
운 시대를 열게 하셨습니다.

욥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거기에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새 경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에 소유했던 것보다 갑절이나 주셨습
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 당하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27장20절은
이 때의 형편을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소망'이라
고 하지 않고 '구원의 여망(餘望)'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남았던 소망도 다 없어
졌다는 말입니다. 절망의 바닥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멜리데 섬에 상륙해서 구조를 받았고 로마에 도착할 수 있
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으로 끝납니다. 계시록 21장 1절과 2절입
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
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은 이 아름다운 환상을 어디에서 보았습니까? 밧모 섬에서 강제노동을 하
면서 보았습니다.
언제 석방될지 기약이 없는 처지입니다. 이 때 요한은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요한은 이 환상을 봅니다.

여러분, 혹시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까?
입시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사업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건강에 문제가 있습니까?
삶의 암초에 부딪혀있습니까?
또, 정년을 맞이하시거나 정년이 다가 옵니까?
거기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도는 일상생활에서 앞을 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전에 기도를 합니다. 자기 전에 기도할 때, 오늘의 일들을 돌아보
면서 감사를 드리고 잘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그와 함께 내일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일은 오늘
보다 좋은 하루가 되게 하여 주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저를 더 멋있게 사용해
주세요. 제가 이와 같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내일 누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밤사이에 내닐 일
을 준비하십니다.
음식점에 갑자기 가서 주문하면 늦게 나오고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다 있지
요. 미리 예약하고 가면 음식점에서 더 잘 준비해서 척척 내놓습니다.
여러분, 자기 전의 기도로 내일 일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을 예약하시기 바랍니
다.
하루의 끝인 밤에 내일을 바라보면 내일이 미리 시작되는 것입니다. 미리 출발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의 출발을 밤에서 잡습니다.

이렇게 저녁에 내일을 설계하면 그 저녁이 즐거운 것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설계할 때기 즐겁지 않습니까?
건물도 설계할 때 아주 즐겁습니다. 지을 때는 힘이 들지요. 작품도 구상할 때
는 즐겁고 흥분됩니다.
이렇게 준비하고 아침을 맞이하면 그 아침이 즐겁습니다. 시편 65편 8절에 "주
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대로 됩니다.

새벽기도회 설교 원고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씁니다. 그러나 자기 전에 '내일
본문이 어디이지? 여기에 대한 참고자료는 어떤 것이 있지?' 살펴보고 잡니다.
그러면 자는 사이에도 머리 속에서 준비가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
나서 설교원고 만들기가 부드럽습니다.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데 무의식의 작용은 아주 큽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의 대화의 습관, 대화의 내용을 보면 그 사
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대화를 하는데 남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격
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지요. 여러분 이야기할 때 남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지
마세요. 남의 말을 끝까지 다 듣는 것이 좋은 대화의 기초입니다.
대화를 하는데 옛날 일을 많이 이야기하고, 옛날 일을 이야기 할 때 유난히 신
바람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남자
분들이 이야기할 때 군대 이야기 빼놓기 어렵지만 그것에 너무 열을 올리면 곤
란합니다. 신문사에서 신춘문예작품을 심사할 때 소재와 주제, 여러 가지를 보
는데 군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일단 불리한 평가를 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
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통일에 대한 강연을 할 때 저는 통일이 언제 될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이다 하
는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빼놓지 않지만 '통일된 다음에 이렇게 삽
시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통일은 어차피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창세기의 본격적인 역사는 12장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졸업생들, 이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고향에서 족장으로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생활
은 끝이 났습니다. 알지 못 할 곳으로 가야합니다.
졸업 가운데 대학 졸업은 학교라는 온실에서 사회라는 광야로 나오는 것입니
다.
아브라함은 앞을 바라보고 나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것
처럼 바라보며 나갑니다. 창세기를 열심히 보아도 아브람이 하란에서의 안락한
생활, 칠십오 세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길을 떠난 것을 후회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올해 졸업을 하는 학생들, 청년들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
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하는 줄
로 믿고 앞을 보며 나가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유언을 하고 여호수아를 새 지도자로 세우고 마지막 노래와 축복을 하
고 이제 느보산에 올라갑니다.
그 이야기가 신명기의 마지막 장은 3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신명기
34장 1절에서 3절까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아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
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
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느보 산에 올라간 모세에게 하나님은 뒤를 돌아 광야를 보게 하지 않으셨습니
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앞에 펼쳐지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
러분에게, 특별히 오늘 졸업예배를 드리는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앞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양교회의 올해 졸업생이 모두 여든다섯 명입니다. 그 명단을 주보 7쪽에 싣
고 명단 끝에 빌립보서 3장13절과 14절의 말씀을 적어 놓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
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잡을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졸업생들, '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이제 다 이루었다' 하지 말고 새로운 푯대를
향해 달려가기 바랍니다.

느보 산은 지금 요르단 왕국 서쪽 경계 끝에 있는데 모세를 기념하는 교회와
여러 가지 기념물들이 있고 여기에 기록된 곳들이 바라보입니다.

제일 먼저 보게 한 곳은 길르앗입니다. 길르앗은 가나안 여러 곳들 가운데에서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가서 4장1절에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속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아름다운 것들을 묘사하는데 길르앗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도 주로 좋은 곳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실제로는 광야, 사막, 골짜기, 불모지, 이런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느보 산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곳, 종려나무의 성읍, 평지, 좋은 곳들이
나옵니다.
좋은 곳들을 바라보세요.

졸업을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등학생들, 졸업을 할 때 이제 이 학
교와 상관이 없어졌다고 학교의 기물을 부수거나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있습니
다. 아니지요. 그 학교 동창생으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학교는
재학생으로서 관계보다 동창으로서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진한 것입니다. 자기
가 졸업한 모교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어 단어의 졸업은 시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
니다. 졸업을 하면서 앞을 보아야 합니다.
요즘 대안학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충청도에 있는 한 대안학교에서는
"졸업이라고 하니까 학업을 끝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졸업이라는 말이 잘못
되었다."라고 하면서 오래 전부터 졸업이라는 말 대신에 '수업'(修業)이라는 말
을 쓰고 있습니다. 졸업식은 수업식, 졸업생은 수업생, 졸업증서는 수업증서,
동창회는 수업생 모임, 이렇게 부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의 끝에서, 하루의 끝에서, 어떤 시기의 끝에서 앞을 보시
기 바랍니다.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 아주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앞이 막혔다고 하지 마시고 믿음의 눈
으로 그 너머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끝에서 영원한 세계를 보면서 무언으로 최후, 최대의 전도를 하실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졸업생들을 지켜주셔서 이 졸업이 끝이 아니라 앞을 바라
보며 새롭게 시작하는 축복의 출발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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