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함께 하시는 하나님 2002-01-14 11:19:19 read : 16387
이사야 41:8~16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강한 것 같지만 내면은 참 약한 존재입니다. 달 표면에까지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면 인간은 참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 백만, 수억 개의 정보를 조그만 칩에 저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균 수명이 40세도 안 되던 나이를 80세까지 끌어 올린 것만 봐도, 거의 하나님에 버금가는 능력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답게 대단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에겐 나약하고 작은 모습도 있습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서운 고독 앞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각한 질병 앞에서 하얗게 질려 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지푸라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가엾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14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면 지렁이 같다고 표현했을까요? 새해 첫날,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사람이, 울산 근방의 어느 해수욕장에만 해도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손을 비비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인간의 실존입니까? 그래서 인간이 지렁이로 빗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나약한 존재인 우리가 새해를 다시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한 해를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어떻게 살까?' 하고 우리 마음 속에는 약간의 불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해를 걸어가야 합니다. 이 미지의 길에 한 걸음씩 발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한 해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을까?' 이것이 고민인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 믿는 우리들은 각자 생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늘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 특별히 생각합니까? 제 경우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대표적으로 생각납니다. 그 말씀만 묵상하면 마음에 있는 불안이 사라지고, 제 자신을 초라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게 되며, 커다란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참 엄청난 말씀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우레소리와 같이 제 영혼을 흔듭니다. 연초만 되면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어떤 새로운 힘을 제게 북돋아줍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원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마 유대 백성을 향해 하시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는지 모릅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대 백성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앞으로 100년쯤 지나면 유대나라 사람들이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70여 년간 포로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10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그 사실을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우상숭배로 타락하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타락한 죄 값으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하게 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70년 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면 고레스라는 위대한 왕을 일으켜서 그 왕으로 하여금 철통같은 바벨론을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건설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을 보여 주시면서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셔서 도와 주실 것이므로 그 일은 반드시 성사 된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예언이 아닙니까? 150여 년 전에 이런 예언을 한다는 것이 믿어집니까?
44장 28절을 보면 놀라운 이름이 나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이 때는 고레스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던 때입니다. 그런데 이미 150여 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5장 1절에도 그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이 고레스 왕이 메데 바사를 일으킨 왕입니다. 즉 페르시아의 창업자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먼 훗날을 내다보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했고 새로운 국가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안 포로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이 동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하고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를 보면 그 사건이 그대로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전 538년에 이스라엘 백성 중 제 1진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황홀한 꿈을 꾸는 듯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시고 하나님께서 미리 예언을 통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실 것을 약속한 것이 41장 10절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지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 모두를 향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8~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나라 사람들을 일컬어서 '나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 '나의 택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는 우리를 일컬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를 만세 전부터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구약에 있는 유대나라 사람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나 오늘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하신 말씀임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바벨론에 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세상을 일컬어 바벨론이라고 말씀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망할 바벨론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습니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실제 바벨론이라고 하는 국가에서 포로생활을 했지만, 오늘 우리는 없어질 영적인 바벨론에 몸을 담고 고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나라 백성을 향해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을 했는데, 신약 시대에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똑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그러므로 이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나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받아 들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알고 이해는 해도, 이 말씀의 능력을 얼마나 체험하고 사느냐 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사건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누가 나를 꺾을 수 있습니까? 누가 나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신앙생활하다 보면 '그 말씀이 나에게 실제로 나타나느냐? 능력으로 체험 되느냐? 나에게 분명히 현실로 다가오느냐?'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왜 이 엄청난 말씀이 나에게 큰 능력으로, 기적으로 다가오지 못할까요? 바로 이 점을 생각하면서 몇 가지를 검토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께는 거짓이 없습니다. 사람처럼 말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설교자가 하나님의 진실을 변호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갑자기 진실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설교자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설교자로서 하나님이 진실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더욱 진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제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실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리 문제가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실이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거짓말을 하시거나 마음을 이리저리 바꾸시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여기에서 미쁘시다는 말은 진실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말씀대로 반드시 행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고향을 떠나라. 그리고 내가 가라는 곳으로 가면 내가 너의 후손에게 복을 주겠다. 그리고 너의 후손으로 온 세계 백성들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해주겠다." 그 약속을 받고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많은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의 나이 이미 75세였습니다. 그리고도 25이 나도록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안주셨습니다. 100세가 될 때까지 혈육 한 점 주시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다? 벌써 아브라함이 100세요, 사라가 90세입니다. 자녀를 생산할 능력을 거의 잃어버린 부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은 진실한 하나님이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 몸이 죽은 것 같은 부부에게서 이삭이라는 옥동자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합니다.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앞서 말했듯이 본문의 말씀은 150여 년 후에 일어날 역사적인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전 538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왔고, 계속해서 2진, 3진, 4진이 돌아왔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실행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는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 가운데 모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성곽을 세웠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려 그 약속의 말씀이 실제로 역사하지 못한 것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분명히 확인하고 거기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들째로 '왜 이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다가오지 않은가?' 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10절에 보면, 다섯 번이나 '내가'를 반복하면서 강조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편에 있습니다. 과연 그 말씀을 얼마나 믿느냐가 문제입니다. 생각보다 우리의 믿음은 약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믿어야 되는데, 어른처럼 믿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곤 합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놀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난 사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가룟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의심없이 믿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라 탔습니다. 배 안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지만 그 배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배임에는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유유하게 저어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간다는 뿌듯한 마음 가운데 신나게 노를 저었을 것입니다.
 |
 |
|
 |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  | Contact Webmast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