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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1일 호세아 7장 8절 뒤집지 않은 전병 2001-08-19 23:56:42 read : 11906
얼마전에 교회에서 부침개를 했는데 어떤 것은 너무 타서 까맣고 또 어떻것은 덜익어서
허연 밀가루가 보일 정도로 설익었습니다.
자연히 덜익어서 맛이 없다고 했더니 교회 가스랜지가 일반 가정용하고 달라서 처음 사
용하는 사람은 불꼿을 조정하기가 힘들어서 부침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침개하나라도 사람이 붙어 있어서 정성을 들여서 자주 뒤집어 주고 그래서 양쪽이 알
맞게 익어야 맛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전병이란 우리나라로 말하면 부침개 또는 빈대떡을 가리키는
말로서 호세아 선지자는 자신이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마치 덜익은 전병 즉 덜익은 빈대
떡과 같은 백성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호세아가 살던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나를 통치하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앗시리아라는 강대국과 남쪽에는 애굽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자연히 백성들은 두패로 갈려서 앗시리아 국가에 앞잡이가 되어서 추파를 던지는 앗시리
아패가 있고 또 한쪽은 애굽 국가에 앞잡이가 되어서 친애굽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가는 백성들은 독립 국가의 체면을 버리고 양쪽 나라의 눈치를 보면
서 살아가면서 안으로는 온갖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저울을 속이고 재판괸들은 뇌물을 먹고 불의한 재판을 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
람을 멸시하고 온갖 사치와 방종과 환락의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현실을 "백발이 얼룩 얼룩한 노인이 착각을 하고 힘자랑하는 것과 같다
고 하면서"
시대의 현실을 모르고 흥청 멍청 환락에 미쳐 날 뛰는 모습이 마치 뒤집지 않아서 설익
은 전병 같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으로 집집마다 자가용을 다 있고 가전제품도 없는 것이 없이 다 갖
추고 잘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저
울과 되를 속이고 불의한 재판을 하고 관리는 뇌물을 먹고 사람을 사고 팔고 있는 사람들
은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온갖 사치와 향락에 젖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에 보니까 일산이나 분당이나 중동이나 하는 모든 신도시가 유흥가들이 들어와서 밤
만 되면 환락의 거리로 변하고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술집이든 여관
이든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그럴듯하게 단정히 차려입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밤만 되면 술집으로 달
려가서는 술독에 빠진 사람들이 되어서 무슨 원수가 그리 많은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
고 흥청 망청 돈을 물 쓰듯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백성의 모습도 뒤집지 않아서 덜익은 전병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
고 훌륭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남에 것을 노략질하려는 이리가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7장 10절에 보면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지
아니하면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들에게 교회로 돌아오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을 받아 들여야 할 교회와 교인들에게 문제가 잇는 것입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정화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야 할 교회와 기독교인들
이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아서 신문을 장식하는 많은 부정 사건의 주인공들이 되고 그들
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다 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신자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고 욕을 먹고 비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덜익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빈대떡이든 덜 익어서는 제맛이 안납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빈대떡이든 완전히 익으려면 뒤집어 저야 합니다.
뒤집어 진다는 것은 회개를 말하는 것이요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어도 뒤집어지지 않고 변화가 없다면 예수 믿는 의미가 없는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기대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
는 것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예수를 믿은들 그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무엇하러 얘수를 믿습니까?
먼저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떠나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6절에 보면 (찾아 읽어 보임)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삶에 모습이 변합니다.
삶에 목적도 변합니다.
삶에 수단도 변합니다, 삶에 환경도 변합니다, 삶에 대인관계도 변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나름대로 방
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삶에 목적과 수단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목적은 있는데 수단이 없으면 답답합니다.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실력도 없고 기술도 없으면 그 삶에 목적이 허망한 꿈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학창 시절에 실력과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삶에 수단은 있는데 목적이 뚜렷하지 않거나 잘못되어 있으면 그 또한 불행한 사람
이 될 수 있습니다. 수단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도 돈번 목적이 없으면 매일 육체의 소
욕을 따라서 사치와 허영과 타락에 젖은 생활을 함으로서 오히려 돈을 번 목적을 달성하
였지만 돈이 그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삶에 목표와 분명한 수단을 갖추도록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더욱이 예수 믿는 우리 크리스천은 참 신앙인의 목적과 그 방법을 찾아서 변화되어야 합
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가 삶에 목표와 방법을 바꾸지 아니하고 예전의 구습을 쫒아서
살아 간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에 목적과 방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간단히 말씀드리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들의 삶에 목적이요 예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인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처음에 주님을 따르기 위헤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가정도 직장도 버
렸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을 보고 불의한 사람을 보면 의분을 느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삶에 목적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 생활에 목적이 자신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하여 예수님을 은 30
에 팔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 생활에 목적이 내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하여 예수 믿는 다면 우리도
가롯 유다와 똑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해도 신앙 생활의 목적이 자기의 안일과 평안 만을
위하여 신앙 생활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신앙 생활하다가 고난을 만나면 결국 유다처럼 주
님을 배반하고 교회를 떠나 사단의 권세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목적을 자기에게 두면 우리의 신앙은 위험한 신앙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
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신앙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은혜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인이 되려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삶에 목적과 방법이 변한 사람입니다.
1)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거친 어부였습니다. 또한 그는 무식하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동생 안드레가 달려와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형 나 놀랍게도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만났어 형도 갖이 가보자" 베드로는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그의 인생에 목적이 변하고 방법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제무터 너는 사람낚는어부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어
부일을 그만두고 사람을 낚는 일을 자기 삶에 목적으로 바꾸는 변화가 일어 난 것입니다.
때로 그도 사람인지라 어떤 때는 예수님을 기쁘게도 하였지만 실망시키기 일도 있었습니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어느 여종이
"이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요"라고 말하였을 때에
"아니요 나는 예수를 몰라요 나는 예수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함으로서 예수
님을 슬프게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밖에 나가 통곡을 하고 회개함으로서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서 신앙 생활에 본분의 찾았고 마가의 다락방 교회에서 드디어 성령을 체험함으로서 놀랍
게도 그의 설교를 듣고 3000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2) 우물가에 한 여인도 예수를 만남으로서 삶에 목적과 방법이 변한 사람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목이 마르셨습니다. 마침 우물가에 보니까 한낯에 더울 때에 남들은 낮
잠을 잘 시간에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을깆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내게 물한 잔만 주시요"
그런데 물을 떠주는 여인에 얼굴이 수십이 많고 뭔가 숨기는 것이 있어 보였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형편을 미리 아시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하여 단도 직입적인 화법을 사용
하였습니다.
"네 남편을 데려 오라" 그러자 그녀가 자신의 부끄러운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저에게는 과거 남편이 5이 있었고 지금 남편도 내 남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남보기 부끄
러워서 이렇게 남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 물 길러 왔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녀를 불쌍히 보시고
"여인이여 이런 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요 나는 당신에게 영원한 영생의 생명수를 주겠
오" 그러자 그녀가 의하하게 생각하고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고 물어 보자 주님이 말씀
하십니다. "내가 바로 메시야이니라"
그러자 이 여인은 물 항아리를 놔두고 세상적인 방법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부
그러움도 잊어 버리고 외칩니다
"여러분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다 나와보세요"
우물가에 여인은 그 뒤로 역시 삶에 목적과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자백하고 회개한 때문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삭개오라는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인색하며 키가 작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조국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는 로마 정부를 위하여 자기 동족에게 무거운 세금을 걷
으면서 적당히 치부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많았지만 항상 외톨이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뜨거워 젔습니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체면 불구하고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를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삭개오야 위험하다 급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융숭한 대접을 하였으며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역시 회개하고 삶에 목적과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약
속을 합니다
"예수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남의
것을 억지로 뺏은 것이 있다면 사배로 갚겠습니다."
인색한 구두쇠가 변화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났으면 이와같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다고 다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자 청년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에게 제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의 길을 찾겠나이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말을 따라서 계명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놀랍게도 자기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계명을 잘 지켰다고
하엿습니다.
요즘 우리식으로 말하면 저는 모태 신앙으로서 열심히 교회나와 예배에 빠지지 읺고 잘
참석하였고 경건하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이 청년에게 요구를 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잘 다녔느냐 그러면 이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
와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아무리 신앙생활이 좋다고 하지만 물질의 욕심을 둔 삶에 목적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변화를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슬픈 표정으로 주님을 떠나고 교회
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세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신앙을 갖기 전에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두 번째 자기를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이 성숙하여서 참된 신앙인이 되면 세 번째 주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인은 주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사랑하는 목적이 주
님을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제일 먼저 인간관계가 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12절에 (찾음)
어느때나 우리를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
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안에 온전히 이루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간 관계가 진정한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
계로 회복이 되면 우리의 삶에 보습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옛사람의 구습을 끝는 다고 하여서 갑자기 지난날을 끝
맺음하려면 실패할 확률이 많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술담배를 하던 사람이 신앙 생활을 시작하고는 아 나도 이제 술담배를 끝
어야지 하고 단번에 끝내려고 하지만 쉽게 안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옛사람의 습관을 단번에 끝내려고 하는 것 보다 성령에 새사람의 습관으로 덧입
는 것을 시도하여야 합니다.
혈기를 잘 부리던 사람이라도 갑자기 버리기란 참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혈기를 부리기
보다 상대방에게 깜작 놀라 정도로 사랑을 표현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남을 미워하는 습관을 가졌다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선행을 베
풀면서 사랑하는 습관을 들이면 예사람의 구습이 서서히 물러 가는 것입니다.
즉 이것이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덧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이북에 김일성 김정일을 빨갱이로 몰때가 엊그젠대 이제는 오래된 우방의 지도자로 따뜻
하게 대하고 김정일에 대한 책을 예전에는 갖고만 있어도 빨갱이로 구속되었는데 이제는
서점에서 베스트 셀라가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북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을 미제국의 앞잡이로 몰면서 온갖 흉악한
말을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북에서는 남한 대통령이 온다고 거리마다 꽃을 장식하고 모든
여자들은 고운 한복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대규모로 환영을 행사를 버리고 있다니 세상이
얼마나 변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좀 전에 들어갔던 강속에 물하고 지금 들어가려
눈 강속에 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세상은 매시간 마다 매초마다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변화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받은 크리스천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는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매일매일 그 모습이 똑같습니다.
롯데 월드에 가보면 회전 목마라는 것이 잇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탑니다 그런데 그 말이 달리는 것 같기도 한데 계속 똑같은 곳을 돌고 있
는 것입니다.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변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할 때에 우리는 그나리 오면 주님의 은혜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장 큰 변화란 우리가 어느날 애벌래가 나비가 되듯이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이 천
사처럼 변화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변화입니다.
어느 주부가 어린아이에게 예야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서 콩나물좀 사와라 하고 심부름
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와서 한다는 말이 "엄마 백화점이 없어 젔어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혼을 냈습니다. "아니너 심부름하기 싫어서 거짖말 하는 거지 아니 왜 백
화점이 없어져" 하면서 혼을 내고 다시 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꼬마가 울상이 되어서 또 말합니다 "엄마 백화점이 없어 젔단 말예요"
그래서 엄마가 아파트 문을 열고 밖을 보았더니 멀쩡하던 백화점이 폭삭 가라 앉아 흔적
만 남기고 그 웅장하던 모습이 없어 졌습니다.
여러분 그날이 오면 삼풍 백화점이 없지 듯이 세상이 종말의 때가 오고 심판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 크리스천은 부활의 옷을 입는 변화를 맛보게 될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변화된 사람이 되는 훈련을 해햐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에 변화는 어떻게 하여야 이룰수가 있을 까?
진정한 변화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고 새롭게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
다.
심지어 회개를 하였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하여도 그 회개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여 회개의 열매가 열려야 하는 것입니
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재의 회개의 열매가 있
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은 한 때 평택에서 배나무 과수원을 하였는데 과수원 중간 중간에 복숭아 나무도
있습니다. 저는 나무 보는 눈이 둔해서 나무를 보고는 이 나무가 배나문지 복숭아 나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을에 열매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복숭아가 열리면 복숭아 나무요 배가 열리면 배나무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지 참 배 나문지 돌배나문지 알수가 있는 것
입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그것은 바로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말씀대로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어디에 있을 때에 그런 일이 일어 난다고 하
였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에 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통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동네 멀지 않은곳에 염색하는 공장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천에다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고 긴천을 물감이 들어 있는 통안으로 넣
었다가 뺍니다 그러면 하얗던 천이 빨강색이 되고 초록색이 되고 노랗색이 됩니다. 그런
데 항상 물감통속에 들어가는 천은 항상 하얀색 천입니다.
섹깔이 묻은 천을 넣는게 아니라 항상 하얀천을 넣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들어가 변화받으려면 번저 우리는 회개함으로서
내 마을을 하얗게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는 것은 스스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통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
다.
하얗천으로 그대로 있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통속에 들어가는 체험을 통
하여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성급하게 나 혼자 회개하고 나를 부정하고 내 의지로 나를 변화시키려고 합
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섯불리 염색한 것이 빨래하면 물이 빠지고 색이 바래서 옆에 빨래를 못스게 만들
듯이 설익은 크리스천은 많은 불신자들을 낙심시키고 미움을 삼으로서 그들이 주님앞에
나오는 길마저 가로막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내가 그의 안에 들어가는 그를 진정 만나는
체험을 하여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설익은 전병은 설익은 빈대떡은 맛이 없을뿐더러 잘못 사람을 배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
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후라이팬에 들어가서 여러번 뒤집어 져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익어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전병을 굽는 후라이팬은 뜨겁슨니다
후라이팬이 뜨겁지 않으면 전병이 구워지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변하려면 뜨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냉냉하면 변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드거워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뜨거운 체험이 있기를 바람니다.
그래야 우리는 알맞게 구워진 전병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하나님도 즐겁
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내가 할수 있는 쉬운 것부터 변합시다.
인간 관계부터 사랑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느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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