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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은 자의 결단 8월 19일 2001-12-10 18:48:53 read : 8992
□ 은혜 받은 자의 결단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1. 성도들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나 다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은혜'라는 말의 이해를 잘 못 이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서 은혜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여야 하겠습니
다. 복음서에서 제일 처음으로 '은혜를 받은 자여!'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바로 성모 마리아 이었습니다. 이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으로 우리 인간 편에서 왈
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많고 많은 여자들 가운데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받은 마리아는 선택받은 자의
대표입니다. 왜 하나님이 마리아를 선택하였는가? 라는 질문에는 영원토록 하나님 이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선택받았다는 것은 큰 은혜일 뿐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마리아에게 들어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
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깜짝 놀랄 일입니다.
마리아는 처음 당황하였습니다.
'이런 인사법이 어디 있는가?' 라고 무서워하기까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너무나 은혜를 두려움 없이 쉽게 받으려고만 합니다.
선택이 은혜가 되려면 마리아가 겪었던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2. 은혜를 받은 마리아는 갈등과 희생을 각오해야 하였습니다
마리아에게 천사의 말은 너무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보통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자신에게 그런 일(수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한번 마리아의 입장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보통 큰 고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마리아의 입장이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는 여성들이라면 더더욱 실감할 것입니다.
귀한 딸자식을 키우는 부모님들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도무지 청천벽력같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음 순간 천사의 말을 듣고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신앙은 고민을 통하여 수용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결단이었습니다.
세상 일반적 생각으로 보면 완전히 자신의 몰락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배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비난의 대상이 될 일입니까?
가문의 망신이요, 기성 윤리적 잣대로 보면 쫓겨남을 당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같았으면, 죽어도 자신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수한 것이 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줄 압니다.
성당에 나가는 사람들 보면 "성모 마리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내게 베푸소서!"라고 기도를 드리는 줄 압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리아의 신앙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이라면 희생을 감수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받을 때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분명히 선택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신앙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요즘 제직들 가운데는 그런 의식이 전혀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직분은 누구에게나 다 받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이 교회에 나온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왜 집사나 권사가 안 되는가?"
그렇게 반문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마치 교회의 직분을 군대에서 계급이 주어지듯 세월이 가면 절로 주어지는 것
으로 잘 못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직분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희생의 멍에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처녀들에 비하여 희생을 감수해야 하였습니다.
평탄한 길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왜 하필 예수를 잉태하게 하는 대상으로 선택
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은혜를 받은 자는 전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너무 당황하여 믿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할 때, 마리아
는 전적으로 그 말씀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니 내게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라고 할 때,
"하나님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이
이 동정녀 탄생이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는 과학자들이 모두 그 가능성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신문에 보니, 62세난 불란서 여자가 임신을 하여 어린아이를 낳았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결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도 가능한 문제를 어찌 하나님의 능력이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당사자인 마리아는 처음에 당황했습니다.
말씀 앞에 갈등을 느끼고,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결과를 예상했지만, 결국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오늘도 이런 믿음이 은혜를 받은 자들의 행동에서 드러나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신앙상태를 보면 모두 은혜를 사모하나 그 은혜는 자신의
소원과 뜻이 이루어지도록 허락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에서 보면, 자기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기를 내어맡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신앙에서 볼 수 있는 결단은 마리아 자신의 의지력만은 아니었습니
다. 마리아의 마음에 임하신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과 역사이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누구도 주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성령의 감동을 수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력이 아닙니다.
예수 믿을 때 박해없이, 희생없이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 난 사람들 많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좋은 직장에서 나와야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유교의 사상과 가치관에서 볼 때, 기독교(야소교)는 서양종교라고 매도하였고,
조상을 섬기지 않는 것들이라고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가문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님이 교회에 나간다고 호적에서 제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땅 한평, 유산도 받지를 못하고 쫓겨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장에 먹을 것이 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일가형제들이 불쌍하다고 자기들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으라고 밭 얼마를 내어
주어 거기에다 잡곡을 심어 김을 매러 가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희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번 손익계산서를 작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인 크리스천들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달라는 것 뿐이지,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목사직을 감당하면서 항상 이 문제 앞에 갈등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내가 목사가 되어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의 흔적을 내 몸에 가졌다고 하였는데,
나는 예수를 위하여 받은 희생의 흔적이 무엇인가?
항상 자문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내가 장로가 되어서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내가 교회의 직분을 받아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껏 주일날 헌금한 것? 건축할 때 건축 헌금한 것, 그것을 내세웁니까?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무엇인가 말입니다.
만일 주님을 위해 희생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오늘부터 꿇어 엎드려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 님을 잉태할 때도 그러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에게는 마리아와 같은 신앙적 결단의 아픔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인내의 아픔입니다.
자식이 십자가에서 못을 박혀 매어달려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
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저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손수 경험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권사님이 이북에 두고 나온 딸을 만나보려고 수소문하여 중국에까지 갔었
는데, 그만 안내하는 사람이 잘못 짚어 본인이 아닌 것을 서로 알고는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와 너무나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고 허전하여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에 마리아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을 보았는데,
그 고통스러움이 얼마나 심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의 슬픔과 괴로움을 이겨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적 결단을 통하여 은혜를 받은 자의 결단이 요구될 때,
우리들도 마리아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희생을 감수했기에 오늘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신앙인의 본
이 되었다고 봅니다. 바라기는 우리모두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결단들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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