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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 2월 4일
2001-12-10 18:29:15   read : 8700


□ 진정한 변화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도행전 9:1-9)

1. 진정한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입니다.
새해를 맞은지 어언 한달이 지났고, 벌써 2월달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모두 변화하기를 바랬습니다.
지난주간 청지기직 수련회 주제도 '변화에 부응하는 일군'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빨리 변하는데, 내 생각과 생활은 변함이 없다면 얼마나 짜증스러운 일입니까? 무엇인가 사람들은 모두 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활에서 권태를 느낄 때 무엇인가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구도 바꾸어보고, 여행도 다니고, 환경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형적인 변화는 참된 의미에서 변화라고 볼 수 없습니다.
참된 변화는 마음으로부터의 변화입니다.
마음이 변해야 겉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부터 변화를 추구해야 육신도 따라갑니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정도일 뿐,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에게 지는 경우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다이어트를 하려다 실패하는 것을 보면 대 부분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람이 변화하고 싶은 생각은 마음에 다 있지만, 육신에 이끌리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점을 절감하면서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속의 원하는 바가 있지만, 내 육신의 욕망은 그것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변하고 싶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새해에 들면서 '금년에는 나도 좀 달라져야지...'라고 했지만 그것은 작심삼일 뿐, 이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변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런 의식(意識)이 없다면 바로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하려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로 진정한 변화는 내 의지력으로가 아닌 위로부터 오는 힘에 의하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울이 바울로 변화하는 첫 단계였습니다.
2.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나 글로서는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공자> <맹자>를 통달했다 해도 그것으로 변화된 사람은 없습니다.
제아무리 <윤리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변화된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지성>이란 것처럼 무능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지식>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현실에서 <지식>인이 없어 이렇게 <부 정직>이 판을 칩니까?
아닙니다. <지식>이 있으면 있는 것만큼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법망을 교묘하게 더욱 피해 나갑니다.

사람이 변하는데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 합니다.
[하늘의 음성] 이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반듯이 이렇게 <말씀>의 음성으로 들려주었습니다.
때때로 이 <음성>을 듣지 못하기에 <불행>이 닥칩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러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들었지만 엘리 제사장은 이 음성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가운데서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려면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내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길은 [자의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수직적]으로 임하는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기회]에 들리기도 합니다.
아니면 또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들려집니다.
타락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저도 이 음성을 듣기는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고통스러웠을 때였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외지에서, 그것도 모든 여건이 여의치 못한 불확실한 가운데서 당한 일이었기에 너무나 중압감이 한꺼번에 닥쳐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들은 음성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고, 팔을 뽑아 놓은 이유를 알겠느냐?"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 대한 답을 술술 생각나게 하는데,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환도 뼈를 위골 시킨 이유가 생각에 떠오르면서, "이제껏 너에게 모든 여건을 허락하여 남이 할 수 없었던 유학의 길까지 열어주었더니, 뺀질 거리면서 목회사역을 안 하겠다고...?" 책망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여! 잘못했습니다. 이제 한번만 기회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나가겠습니다"
무조건 귀국하였습니다.

그후에도 몇 번이고 미국에서 남도록 유혹하는 길이 있었지만 모두 물리치고 나왔습니다. 당시에 많은 목사들이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으면서 영사 앞에서 거짓말들을 많이 하던 때입니다.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고 하고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은 목사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미국에서 공부한 학교의 동창이 한동안 영사로 나와 근무하면서 몇 번이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모두 물리쳤습니다. 그랬더니, 부족한 저를 하나님은 이때가지 들어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였다고 봅니다.
저는 지금도 1968년 부활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81번 하이웨이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던 것 같이 나는 미국의 81번 하이웨이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변화는 이렇게 자기의 의지력(意志力)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攝理)와 강권(强權)적 역사(役事)로서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3. 진정한 변화를 체험한 사람만이 사명(使命)을 깨닫게 됩니다.
눈이 멀어 이끌려 갔던 사울이 아나니아의 기도를 통하여 다시 보게 될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자기 눈에 가리워 졌던 것이 벗겨졌습니다.
지금껏 자기의 살아온 길을 보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길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복음 증거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전에 좋아하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사명(使命)을 깨달았을 때 그를 묶어둘 힘이 없었습니다.
로마의 총검도 그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육신은 감옥에 갇혔으나 그의 심령은 더욱 더 분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육신의 목은 로마의 검 앞에 떨어졌으나 그의 복음은 전 로마를 정복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몇 년전 바울이 순교한 로마 옥을 보고 그때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형을 집행한 형리(刑吏)의 칼이 바울의 목을 쳤을 때, 세 번 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는 기념관을 세워 놓고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형장으로 끌려가던 길은 아직도 맨땅으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밟고 갔던 그 길을 밞아 보는 순례 객들의 마음의 무한한 감동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바울이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고생을 하면서 평생을 보냈겠습니까?

그는 당시에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었습니다.
외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대학에서 가말리엘 교수 밑에서 헬라철학과 학문을 다 마스터했습니다.
그의 동창들 중에는 당시 유명한 판검사들이 되었고, 교수들이 되었습니다. 후에 바울을 심문하던 베스도 총독도 바울을 알아보고, '바울아!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라고 한 것을 보아도 바울이 얼마
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인물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 헐벗고, 못 먹고, 매맞아 가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세상의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기에, 그리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에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사명감이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외는 알지 않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철저한 <사명의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울과 같은 시대를 살고 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초라하게 보였고, 미친 사람처럼 보인 바울 이었지만 그는 주님과 함께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렇게 막강했던 로마의 창검을 맨손으로 총 한방 쏘지 않고도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겼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력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는 구제 불능한 죄인들입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다짐하고, 결단하고, 작심해도 우리는 구제 불능의 죄인입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우리 모두 냄새나는 인간들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치장해도,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냄새나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러 새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러기에 변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상황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기회를 주십니다.

그럴 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계속 미루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엎드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된 기도입니다.

건강할 때는 기도가 기도답지 못합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아무리 진지한 기도를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한번의 기회는 다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죽음>입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기 전에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것이 복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복은 <성공>과 <물질의 복>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를 퇴폐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통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두 여유 있을 때 범죄 했지, 위급하고 병들었을 때 범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구조 조정으로 나를 연단 시킬 때입니다.
실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아 넣은 때입니다.
병들어 누워 있게 하는 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변화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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