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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환 목사, 후임 안 정하고 은퇴 /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교회' 7가지 비결
2015-12-18 23:20:10   read : 18276




















김삼환 목사, 후임 안 정하고 은퇴 "전 교인 기도하며, 답 주실 때까지 기다릴 것"

…김 목사 12월 말 은퇴 확정, 원로 추대
이용필 기자

▲ 김삼환 목사는 12월 말 정년 은퇴한다. 소문만 무성했던 후임 목사 청빙은 이뤄지지 않았다. 장로들은 절차를 밟아 내년에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서울시 명일동에 명성교회를 개척하고 36년간 시무한 김삼환 목사가 12월 말 정년 은퇴한다. 명성교회는 김 목사의 섬김을 강조하는 머슴 목회론, 새벽 기도회로 출석 교인이 6만 명에 이르는 교회로 성장했다. 김삼환 목사는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정작 초대형 교회를 이끌어 갈 후임 목사는 정해지지 않았다.

명성교회는 지난 9월 말 청빙위원회를 꾸렸지만, 기도회만 할 뿐 청빙 작업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소문만 무성했다.

"명성교회가 새노래명성교회를 합병한 뒤 김하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세우기로 했다", "김하나 목사가 아닌 제3의 인물을 뽑기로 했다", "담임목사 없이 김삼환 목사 체제로 간다", "청빙위가, 김삼환 목사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등 여러 말만 떠돌았다.
그럴 때마다 명성교회 청빙위원이나 장로들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해명했다.

물러나는 김삼환 목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 목사는 지난 11월 26일, 청빙위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금 상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한국교회의 본이 되고, 귀감이 돼야 한다 △총회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청빙위원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어 청빙과 관련된 구체적인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올해 안에 공동의회 등 교단의 법적 절차를 따라 하나님이 원하는 후임자를 세워 이취임을 시행한다 △다음 한 해 동안 시간을 가지고 청빙 절차를 밟아 후임 담임목사를 세운다 △두 번째 안대로 하되, 김하나 목사(새노래명성교회)는 배제하자고 제안했다.

<뉴스앤조이> 취재 결과, 명성교회는 김 목사가 제안한 두 번째 방안대로 내년에 후임 목사를 뽑는 것으로 확인됐다. 명성교회는 12월 12일 당회를 열고, 예·결산 보고 등을 다뤘다. 관심을 모았던 후임 목사 청빙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당회에 참석한 장로들은 "아직 결정된 게 없기 때문에 내년에 뽑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 장로는 "후임 목사님은 장기간에 걸쳐 뽑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르면 세 달, 늦어도 1년 안에 완료될 테니 그렇게 이해해 달라. 전 교인이 기도하면서 답 주실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물론 청빙위원회도 같은 의견이다.

교회 공식 입장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장로는 "새로운 목사님이 뽑히기 전까지 노회가 파송한 임시당회장 체제로 갈 것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회는 김삼환 목사와 관련된 논의를 위주로 했다. 오전 7시, 교회 지하 1층 임마누엘관에서 열렸고, 장로·부목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437회 당회는 김삼환 목사 주재하에 진행됐고, 2015년 결산 및 2016년 예산 보고가 이뤄졌다. 이어 김삼환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는 안건과 2015년 공동의회 날짜 선정 등을 논의했다. 당회 진행은 대리당회장으로 임명된 변창욱 협동목사(장신대 교수)가 맡았다.

김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는 안건은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오는 20일 저녁 예배 후 공동의회를 열어 교인들의 허락을 구하기로 했다. 김 목사의 은퇴식과 원로목사 취임식은 같은 날 하되, 올해 말 또는 내년 1월 중에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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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로 쫓겨난 삼일교회 "40년 예배한 곳인데..."
윤화미



▲시공사의 느닷없는 강제철거로 예배당을 잃은 삼일교회 교인들이 길 위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사진 기장총회 홈페이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삼일교회(하태영 목사)가 재개발사업 시행과정에서 느닷없는 강제집행을 당해 거리에 나앉았다.

40년 간 같은 지역에서 예배를 해온 삼일교회는 교회 부지가 등기부상에 '종교부지'가 아닌 '대지'로 등재돼 있다는 이유로 재개발 계획 당시 현금청산 대상으로 분류됐다.

삼일교회는 그럼에도 일관되게 구청과 조합에 '예배당 존치'와 '이전'을 고수하며 대토부지를 요구하고 협상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18일 시공사 기업의 난데없는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교회 성물은 밖으로 내던져지고 시설물이 파괴됐다. 교회가 폐쇄되면서 성도들은 당장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하태영 담임목사는 호소문을 내고 "지금까지 시공사 등에서 이렇게 야만적으로 성소를 침탈한 적은 없었다"며 "작은교회가 시대의 탐욕과 맞서 포기하지 않도록 범교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기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삼일교회가 소속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서울노회는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은평구청을 비롯해 시공사, 국무총리실, 서울시청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한편, 추후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노회는 "기업이 사익을 위해 성전을 침탈해 폭거를 자행했다"며 "이는 명백한 신앙 모독으로, 전국의 교회가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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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교회' 7가지 비결
윤화미(hwamie@naver.com)

유대인 복음전도사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가 최근 발표한 글에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로 인도 하이데라바드의 갈보리템플을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로 꼽힌 인도 하이데라바드의 갈보리템플 모습
10년 새 성도 10만명 이상 늘어

마이클 브라운 박사가 근래 방문했다는 갈보리템플은 10년 전인 2005년에는 성도수가 25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현재 13만 명 이상의 교인이 교회를 찾을 만큼 급격히 성장한 곳이다.

갈보리템플의 사티쉬 쿠마르 담임목사는 1995년 '매우 큰 교회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이후 10년 동안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다 점차 교인이 늘어나면서 지난 3년 간은 무려 6만 명이 더 늘어났다.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갈보리템플의 이 같은 놀라운 성장에는 7가지 원인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첫 째는 기도와 금식이었다. 항상 기도와 금식을 강조했던 교회는 특히 교회 건축에 착수하려는 즈음에 전교인 40일 금식 기도를 실시했다.

이 기간은 인도에서 가장 덥고 습한 우기였는데,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천 명의 성도들은 매일 밤 공사 부지에 모여 수시간씩 기도했다고 한다. 사티쉬 목사는 폭우 속에서 설교를 전하기도 했다.

40일 금식기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티쉬 목사는 이후 40일 금식기도를 연달아 두 번 시행했고, 총 120일 간의 금식기도가 이어졌다고 한다. 브라운 박사는 "건축의 기적과 교회 성장의 기적은 기도와 금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열정적인 말씀의 선포다. 매 주일 5번 드리는 예배는 사티쉬 목사가 직접 설교하며 매 예배 때마다 60~70분씩 말씀을 전한다. 말씀의 핵심은 늘 '죄, 회개, 십자가'의 강조다. 그의 메시지의 모든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기도와 말씀, 헌신적인 목양이 '핵심'

세 번째는 헌신적인 목양의 방침이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에 출입하기 이해 카드를 받는데 출입문의 단말기에 카드를 긁으면 예배 출석이 확인된다. 참석하지 못한 성도의 경우, 담당 교역자가 다음 날 전화를 걸어 안부와 기도제목을 묻는다.

또 모든 성도들은 생일이 되면 교회에서 보내주는 생일 케이크를 집에서 받는다. 교회가 배달하는 케이크는 매일 4천 개에 달한다. 사티쉬 목사는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너무 가난해서 가족끼리 집에서 생일 축하 잔치도 하지 못한다"며 "그래서 생일 케이크가 도착하면 눈물을 흘린다"고 전했다.

교회는 매 주일 1만명 분의 음식을 만들고 반값에 의료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네 번째는 초자연적 기적에 대한 믿음이다. 갈보리템플은 수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만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교회가 기도 가운데 건축한 예배당은 중앙냉방시설을 갖추고 좌석 1만 8천 석을 포함한 대형 본당과 여러 개 부속 건물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건물은 단 52일만에 지어졌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건축은 밤에 불을 켜고 이뤄졌다고 한다. 사티쉬 목사는 120일 금식기도 중 느헤미야서를 읽다가 예루살렘 성전이 52일만에 완공됐다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해 이를 성도들에게 선포했고 끝내 52일만에 건축을 이룰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이스라엘과의 연관이다. 사티쉬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인도와 이스라엘 국기가 놓여 있다. 브라운 박사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해왔으며, 이스라엘과의 깊은 관계에서 초자연적인 교회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했다.

여섯 번째는 성실과 도덕성이다. 사티쉬 목사는 하루 평균 16시간을 일한다. 또 교회 임직원들은 하루 12시간 일을 한다. 임직원 중에는 사티쉬 목사와 함께 일한 지 20년이 되는 사람도 있다.

브라운 박사는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화할 때 여유가 있었고 가족들 역시 즐거워 보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언론 홍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설교는 TV에 방송이 되기 시작했고 이에 더 많은 후원자들이 나타났으며 방송 횟수도 늘어갔다.

그의 설교는 매달 약 300개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 방언으로도 방송된다. 이 때문에 매주 5천 명의 새신자들이 교회를 찾고 있다고 브라운 박사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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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교회오정현 목사, "골프채 들고 골프장 거닐어 본 적 없어"

3억 9,000만 원 골프빌리지, 1,200만 원 연회비, 목회 활동비로 수차례 골프 레슨
구권효 기자



▲ 오정현 목사와 골프는 무슨 관계일까.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오정현 목사 대신 증인으로 출석한 사랑의교회 정 아무개 집사가, "오정현 목사님은 골프장에 골프채를 들고 거닐어 본 적도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진술했다. 12월 14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오 목사가 칼럼니스트 강만원 씨와 <당당뉴스> 심자득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네 번째 공판에서 나온 말이다.

강만원 씨의 칼럼 내용 중, 검사가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부분은 두 가지다. 오정현 목사가 퍼스트클래스와 골프장 회원권을 이용했다고 한 대목이다. 검사는 이 두 가지를 입증하기 위해 계속 증인을 부르는 것이다.

지난 재판에서 판사가 과태료 200만 원을 내라고까지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오정현 목사는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 목사는 자신이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가 "이건 향후에도 나오지 않을 예정이라는 말 같은데…"라고 하자, 이날 증인으로 나온 정 집사가 갑자기 "제가 다 입증할 수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판사는 오정현 목사의 증인 채택을 일단 보류했다.

정 집사는 자신을 사랑의교회 안수집사로 이 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정현 목사가 총무장로를 비롯한 총무위원회에 소송 일체를 위임했고, 자신은 총무장로를 중심으로 모인 회의에 수차례 참석했다고 말했다. 검사가, 그렇다면 오 목사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느냐고 묻자, 정 집사는 "회의할 때 오 목사님이 오셔서 격려하시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 진술했다.

정 집사는 오정현 목사가 퍼스트클래스와 골프장 회원권을 이용했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교회 직원들에게 묻고 교회 장부도 확인했다고 했다. 모든 장부를 볼 수 있도록 오 목사가 위임장을 써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확인한 결과, 오 목사는 퍼스트클래스를 이용한 적이 없으며, 골프장 회원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오정현 목사에게 직접 확인했느냐고 판사가 묻자, 정 집사는 종이 한 장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서면으로 오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정말 정직하게 답해 달라고 했어요. 그런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오정현 목사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골프장에 골프채를 들고 거닐어 본 적이 없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오정현 목사가 아닌 교회 소유의 콘도 회원권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 집사는 "예전에 고 옥한흠 목사님 병세가 안 좋아지셔서 요양 차원에서 구입했다"고 답했다. 변호사가 그게 얼마짜리냐고 묻자, 정 집사는 준비해 온 서류를 보면서 "7,800만 원짜리 다섯 구좌(3억 9,000만 원)"라고 답했다.

정리해 보면, 사랑의교회는 2006년 3억 9,000만 원짜리 오크밸리 '골프빌리지'(상품 이름)를 구입했다. 이는 2010년 교회 내부 감사 당시 매각 권고 대상이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연간 1,200만 원의 회비를 내며 이를 살려 두었다.

2011년부터 2013년 5월까지 약 29개월간 38회, 107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중 95%를 오정현 목사가 썼다. 오 목사가 목회 활동비로 아내의 골프채를 구입하고 본인도 수차례 레슨을 받은 증거도 나왔다. 그러나 교회 측은, 오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거나 외부 강사를 대접하기 위해 오크밸리를 사용했지, 골프를 치지는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정 집사는 자신이 오정현 목사를 대신해 모두 답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날 증인신문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 집사가 자꾸 질문과 상관없는 말을 늘어놨기 때문이다. 검사와 변호사가 몇 번이나 "질문을 잘 듣고 답하라"고 말하고 때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판사도 정 집사에게 "증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어떡합니까"라고 지적했다. 증인신문이 끝난 후에도, 정 집사는 재판정을 떠나지 않고 공판에 불쑥 끼어들어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판사는 오정현 목사의 비행기표 예약을 대행한 업체들과 오크밸리 리조트에 사실 조회를 하라고 검사에게 주문했다. 다음 공판은 2016년 1월 13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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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억류된 임현수 목사, 종신노역형 선고받아

국가전복음모죄 적용…김정운 선교사, 김국기 목사에 이어 세 번째
이용필 기자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북한에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캐나다 큰빛교회)가 종신노역형에 해당하는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2월 16일 "최고재판소가 국가전복음모행위를 하다 체포된 임현수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언도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은, 임 목사가 미국과 남한의 적대 행위를 추종하고 북한 체제 전복을 기도했다는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31일 평양에 방문한 이후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임 목사는, 7월과 8월 두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측 공개 영상에서 임 목사는 자신이 국가 전복을 감행하려 했으며, 20년 가까이 대북 지원 사업을 한 것도 종교 국가를 세우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임 목사와 같이 북한에 억류됐다 종신노역형을 선고받은 목회자는 또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김정욱 선교사는 지난해 국가전복음모죄 등으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2월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된 김국기 목사 역시 지난 6월 정탐모략죄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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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는 왜 북한에 억류되었나

선교 사역 보고하면서 김정은 체제 비판…대북 사업가들 통제 위한 본보기일 수도
송인선



▲8월 2일 평양 봉수교회에서 임현수 목사가 미리 준비된 사죄문을 읽고 있다. 1996년도부터 북한 선교를 했던 임현수 목사는 현재 억류된 상태다. (우리민족끼리TV 영상 갈무리)

1996년도부터 북한에 드나들며 대북 지원 사업을 벌였던 임현수 목사. 그는 지난 1월 31일 평양 방문 후 소식이 끊겼다. 6개월 후 임 목사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7월 30일 공개한 기자회견 영상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고 국가 전복 행위를 감행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관련 기사: 북한,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 기자회견 공개)

임 목사는 8월 2일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에도 나타났다. 북한 우리민족끼리TV는 임 목사가 일요 예배에서 속죄했다면서 다음 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도 임 목사는 "저는 커 가면서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으로 세뇌되었고, 고난의 행군 시절에 목격한 북한의 참상이 지도부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중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령님은 정말 소박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지닌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현재는 억류되어 있지만, 임현수 목사는 북한 선교의 '큰손'으로 통했다. 평소 임 목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대북 지원에 재정을 아끼지 않은 결과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 활동 무대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나선특구)였다. 그가 사역했던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2013년 8월 목회 칼럼을 보면 임 목사의 대북 지원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략) 북한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끝없는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땅입니다. 3차 양로원 건립은 멋지게 완성되어서 금년 11월 입주 예정입니다. 목욕탕도 반은 우리 교회가 짓고 반은 나진시에서 짓는 어려움 속에서, 일단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 10월 개장 예정입니다. 4계절 비닐하우스 3동을 짓고, 자연 농법 양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드 쇼(일종의 마케팅 전시회 – 기자 주)를 통해 사무실 장비들과 자동차를 구입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선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 목사는 나선특구를 넘어 평양을 비롯한 북한 곳곳에도 지원 사업을 벌였다. 극동방송은 3월 9일 뉴스에서 임 목사의 장기 억류는 북한에도 좋지 않다며, 그가 평양에 대규모 영어·컴퓨터 강습소와 500명 규모의 가발 공장을 세운 사실을 강조했다. 식품업·어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임 목사의 발언들이 문제가 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교계 전문가들, '북한 붕괴설'에 입각한 임현수 목사의 선교관 지적

대북 지원 사업을 하면서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임현수 목사이기에, 그의 억류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난 3월 채널A도 "북한에서 VVIP로 대접받던 임현수 목사를 당국이 갑자기 억류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의외로 간단하고 일관되게 답변했다.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그의 발언들이 문제가 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임 목사가 인도한 집회나 작성한 칼럼을 보면, 그의 평소 대북관이 담긴 발언이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임 목사의 기자회견 후, 국내 언론들이 주목한 건 2013년 11월 미국 휴스턴의 한 교회 부흥회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었다. 당시 집회에서 임 목사는, '김정은의 폭력과 공포정치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자', '북한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곧 붕괴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잊혀진 통일의 꿈 되살리자'라는 칼럼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가난한 심령들이고, 평생을 속아 살아 온 허망한 마음을 메꿀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임 목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으면서도 김정은 정권에는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임현수 목사의 체제 비판 발언들을 주목해 왔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거대한 지원 사업을 통해 북한에 영향을 끼쳤던 임 목사라도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면 북한 내 활동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신중치 못한 비판은 사역의 진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북측은 임 목사가 숨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던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윤환철 연구위원도 공권력의 필연적 반응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말했다. "임현수 목사의 선교 사역이 아무리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북한 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인물을 좌시할 수 없다. 북한이 자신들만의 법 체제를 구축한 주권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 목사의 발언들에서 보수 기독교의 북한 선교관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북한 체제와 정부를 부정하는 '북한 붕괴론'과 북한 주민의 개종을 염두에 둔 '복음 통일'이다.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게 재원을 쏟아부으면서 정부의 호의나 개인 회심 등의 열매를 바라는 선교 방식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선교 방식은 북한의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일종의 기독교식 정복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둘을 결합하면 마치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달가워할 리 없다.

그러나 역시, 북한이 과한 처사를 내린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 주도홍 교수는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북한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한 임 목사에게 북한이 너무 엄한 처우를 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보고하고 후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북한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북 사업하는 모든 사람이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기준을 정해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면서 변화하는 중이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북한 시장경제 점진적 증가…국가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을 수도

임현수 목사의 억류와 기자회견은 단지 임 목사의 발언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가 체제·정권 유지를 위해 임 목사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현재 북한에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시장경제가 체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시장경제가 활성화하고 대외적으로 개방이 일어나면 주민들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이런 시국에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정권 유지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는 상당 부분 변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은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 북한 경제에 등장한 신흥 자본가 '돈주'를 소개하며 북한 경제의 변화를 짚었다. 돈주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을 뜻한다. 북한 경제가 어렵던 90년대 중반, 북한의 국가 경제가 공급하지 못하는 생필품을 개인이 공급하는 (자유) 시장이 생겨나면서 돈주들은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는 국가 경제가 미치지 못하는 산업 부분에 개인 기업들이 생겨났으며, 이 기업들을 기반으로 돈주는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개념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북한이 시장을 확장하고 대외에 개방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외부 투자자들을 통제할 의도로 임 목사를 본보기 삼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계 북한 전문가는, "많은 사업을 유치하려면 대외 인사들과 사업가들을 초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정권에 불리하게 발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체제 유지에 좋지 않다. 이를 위해 북한이 임 목사를 하나의 비즈니스적 표본으로 삼은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임현수 목사의 가족들과 토론토 큰빛교회는 그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7월 30일 임 목사 가족들의 성명 내용을 보도했다. 큰빛교회의 리사 박 대변인은 가족들을 대신해, 북한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 사업을 한 임 목사의 송환을 요청했다. 그는 동정심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서, 임 목사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현수 목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캐나다 시민권자라 국내 기독교인들이 섣불리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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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착용 여교수 징계한 기독교 대학 "기독교·이슬람교인은 같은 신 섬긴다" 발언,

학교 신앙고백 위배했다며 휴직 처분
이은혜 기자



▲ 이슬람교를 믿는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대림절 기간 동안 히잡을 쓰겠다고 한 휘튼대학교의 래리샤 호킨스 교수. 학교는 그에게 공무 휴직 처분을 내렸다. (<워싱턴포스트> 관련 기사 갈무리)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대림절 기간 동안 히잡을 쓰겠다고 한 기독교 대학 교수가 학교로부터 강연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국 휘튼대학교(Wheaton College)는 12월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치학과 래리샤 호킨스 교수를 공무 휴직 처분했다고 밝혔다.

래리샤 호킨스 교수는 휘튼대에서 흑인 여성으로는 유일한 종신직 교수다. 그녀는 2007년부터 갈등 해소와 평화를 주제로 강의해 왔다. 일리노이 주에 있는 휘튼대학교는 빌리 그레이엄, 존 파이퍼, 랍 벨 목사 등을 배출한 명문 기독 사학이다.

평소 타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호킨스 교수는 대림절 기간을 맞아 페이스북에 이슬람교인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샌버나디노 총격 사건 이후, 미국에서 이슬람교인을 향한 무차별 비판이 일고 있다며 기독교인이 먼저 그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슬람교인도 기독교인인 나처럼 성서의 사람들이다. 지난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중략) 대림절 예식의 일부분으로, 지금부터 히잡을 착용할 것이다. 학교에 출근할 때, 시내에서 여가를 즐길 때, 크리스마스 휴가 때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착용할 것이다. 교회에서도 물론이다."

학교는 호킨스 교수가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휘튼대는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유일신을 믿으나 두 종교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휘튼대는 복음주의 신앙에 기초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교직원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발언할 때, 이러한 정체성에 반하는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휘튼대가 호킨스 교수에게 휴직 처분을 내리자 학생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었다. 루크 넬슨이라는 학생은 "기독교 신앙은 이슬람 신앙과 다르다. 아무리 호킨스 교수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할지라도 그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호킨스 교수를 지지하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라이켄 총장에게 휴직 처분을 재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이켄 총장은 "호킨스 교수를 징계한 것은 그가 히잡을 쓰겠다고 해서가 아니다. 이슬람교 자매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히잡을 쓰겠다고 하는 것을 대학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호킨스 교수가 한 발언은 학교의 신학 정체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휘튼대는 호킨스 교수에게 휴직 처분을 내린 후, 그의 발언이 학교의 신앙고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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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개신교회들, 1887년 가을에 설립

정동제일교회, 내리교회, 남대문교회 1885년 설립설은 자료 해석의 오류
옥성득 sungoak@hotmail.com


한국의 첫 장로교회와 첫 감리교회는 언제 세워졌을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한국인 신자들이 한곳에 모여 예배하고, 성례(세례와 성찬)가 베풀어졌을 때를 개교회 설립으로 본다면, 1887년 9월과 10월에 설립되었다.

올해 설립 130주년을 기념한 정동제일교회, 남대문교회, 내리교회는 전문 사학자가 일차 자료를 재검토하여 1887년이나 1889년, 1908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언더우드가 사택에서 소년 한두 명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을 학교의 출발로 보고 올해 130주년을 기념한 경신학교도 반성하고, 기존 전통대로 설립 연도를 후대로 내리기 바란다. 이번 글에서는 정동장로교회와 정동제일(감리)교회 설립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선교사와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첫 개신교회는 1885년 시작된 유니언교회

서울의 첫 개신교회는 선교사와 외국인들로 구성된 유니언교회였다. 1885년 6월 21일부터 알렌 의사의 정동 사택에서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사들이 함께 정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1885년 10월 11일 첫 성찬식, 12월 25일 첫 성탄절 예배, 그리고 1886년 4월 25일 부활절에 첫 세례식(스크랜턴의 딸 마리온과 아펜젤러의 딸 엘리스의 유아세례와 일본인 하야카와의 세례)을 거행했다.

곧 1886년 3월경 유니언교회에는 영미 선교사와 외교관, 군인 외에도 일본 기독교인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이런 국제적인 성격의 유니언교회에 서울의 첫 장로교인 개종자 노춘경도 한두 번 참석한 후 1886년 7월 18일 세례를 받았다. 이어서 소수의 한국인이 약 1년간 유니언교회에 출석하다가 1887년 가을 정동장로교회와 벧엘감리교회로 이동했다.

1886년 6월 북장로회 한국선교회는 정동에 유니언교회를 설립하고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감리회 선교회와 의논하도록 위원회를 임명했다. 장감공동위원회는 7월에 모여 서울에 교회를 조직할 충분한 교인들이 있으므로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7월 25일 벙커,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교회헌법작성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 공사관 사무실이 오전 11시 예배 처소로 임시로 사용되었다.

11월 3일 교회 헌법에 서명한 교인은 9명이었으며, 이어 추가 서명을 받았다. 서명자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다. 1886년 11월에는 아펜젤러가 유니언교회 첫 담임목사로 임명되었다. 2년의 임기 후에는 언더우드가 담임목사로 선출되었다.

최근 남대문교회와 정동제일교회가 유니언교회에서 했던 예배·성찬·세례 등을 자신들의 교회와 연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설립 연도를 앞당기려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이 모인 교회에 잠시 한국인들이 참석한 것이며, 한국인 개교회(local church)와는 무관하다.

정동장로교회, 1887년 9월 27일 설립

정동장로교회(새문안교회 전신)는 1887년 9월 27일 세례교인 14명으로 설립되었다. 언더우드는 엘린우드 총무에게 보낸 9월 30일 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화요일 밤 우리는 14명의 수세자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기독교 교회를 조직했으며, 지난 주일에 한 명의 수세자를 추가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곧 국내 첫 개신교회였다.

그날 서울의 언더우드 목사, 만주 심양의 로스(John Ross) 목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인 세례교인 14명으로 교회를 설립했다. 그 14명의 이름이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소래의 서상륜·서경조·최명오·주공삼, 의주의 백홍준·이성하·김진기·무명씨 3명(로스가 데리고 온 2명 포함), 서울의 노춘경·무명씨 3명 등으로 짐작된다. 곧 서울·황해·평안도 등 당시 전국에 있던 장로교인을 포괄하는 조직 교회였다. 교회 설립 전, 언더우드는 서상륜을 전도인, 곧 조사로 고용했다.

로스 목사는, 자신이 권서로 파송한 서상륜이 한글 성경(로스본)을 반포하여 개종시킨 10여 명이 세례를 받고 한국에서 처음 조직된 장로교회 신자들이 된 것을 보면서 자신의 성경 번역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렸다. 로스는 이때 언더우드에게 '네비어스-로스 방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기선을 통해 만주로 돌아가는 길에 지푸에 있는 네비어스 목사를 만나고 토착 교회 설립을 위한 선교 방법을 함께 토론하며 교제했다. 언더우드는 네비어스 방법을 책으로 연구하다가 1890년 네비어스 부부를 서울에 초청하여 강의를 통해 그 방법과 경험을 전수받았다.

정동장로교회가 설립되던 1887년 9월 27일, 한국교회를 다스리기 위한 두 명의 장로를 선출했다. 선출된 두 장로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두 선출 장로가 안수를 받았는지도 불확실하다. 자료에 의하면 두 선출 장로는 범죄(아마도 교회 돈 횡령)로 치리를 받았다. 1889년 말~1890년 3월까지 언더우드가 인쇄를 위해 일본 요코하마에 갔을 때, 서울에 있던 헤론 의사와 기퍼드 목사가 장로 한 명을 출교했다. 3월 2일 자 언더우드의 편지를 보자.

"우리 교인 한 명이 얼마 전에 범한 행동을 듣게 되어 유감입니다. 구체적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어서 사건 전부를 알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다소의 박해를 견뎠고, 반대와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굳게 섰던 자입니다. 비록 그가 넘어졌으나 다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정상을 참작해야 할 이유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 명은 치리를 받아 장로직에서 박탈당했다. 이런 훈련되지 않은 장로가 일으킨 문제로 1891년부터 10년간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가 없는 '무장로 시대'를 보내야 했다. 대신 당회를 구성하는 외국인 목사를 정점으로 한국인 조사·영수·집사로 교회를 운영하는 과도기를 거쳤다.

1886년 7월 18일 노춘경이 첫 세례를 받은 후 1887년 9월까지 14명의 남자가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이들로 9월 27일 정동장로교회가 설립되고 장로 두 명이 선출되었다. 전국(의주, 소래, 서울)에 있는 한국인 신자들로 조직된 첫 장로교회였다.

정동제일교회도 1887년 설립

감리교회의 경우, 1887년 7월 24일 일본 유학생 출신 박중상이 아펜젤러 사택에서 비밀스럽게 첫 세례를 받았다. 10월 2일에는 정동과 진고개의 중간 지점, 남대문에서 가까운 상동 부근에 매입한 초가집에서 아펜젤러 목사로부터 한용경이 세례를 받았다. 그곳을 벧엘교회(정동제일교회 전신)로 삼아 10월 9일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첫 감리교회가 출발했다. 이곳에서 권서인 최 씨의 부인이 10월 16일 주일에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최초의 한국인 여자 세례식이었다.

10월 23일 한국인 5명으로 거행된 성찬식은 한국교회의 첫 성찬식이었다. 벧엘교회에서 12월 25일 첫 성탄절 예배가 있었는데, 아펜젤러 목사가 처음으로 한글로 쓴 설교문을 읽었다. 이 상동 부근 벧엘 채플에서 형성된 한국인 신앙 공동체가 5개월 후 예배 중단 칙령을 받아 정동 아펜젤러 사택으로 옮겨 예배를 드리면서 정동제일교회로 발전했다.

이를 자료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1887년 7월 24일 아펜젤러 일기

"최초의 세례: 오늘 나는 우리 집에서 한국인 최초의 감리교 신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의 이름은 박중상인데 우리 학교 학생으로 진지하고 총명한 젊은이다. 그는 일본에 갔다 왔으며 그곳에서 기독교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하야카와 형제와 교제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세례 권면을 받았다.

이것은 이곳에서 우리 사역의 시작이다. 나는 그를 온전히 여호와의 손에 맡겼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그곳에서만 안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불어나게 하옵소서. 그는 약속의 사람이다."

B. 1887년 10월 11일 아펜젤러 일기

"두 번째로 세례 받은 한국인: 10월 2일 일요일 저녁에 우리 집 안방에서 두 번째 세례를 주었다. 우리 학교 학생 가운데 한 명인 한용경이다. 나는 언문으로 번역된 세례 의식서를 가지고 한국말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감리회 선교회에 의해 열린 최초의 종교 집회: 10월 9일 일요일에는 '벧엘'에서 오후 예배를 시작했다. 그곳은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기 위해 매입한 집이다. 지난주에는 봉천에 있는 로스 목사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두 사람의 한국인 신자를 데리고 왔다.

그중 한 명은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로스 목사가 만난 한국인 중에서 제일 우수한 사람이라고 추천을 해서, 나는 그(장 씨)를 두 번째 권서인으로 채용했다. 현재 4명의 한국인 신자가 있는데, 2명의 권서인(최성균과 장씨), 강 씨, 그리고 구도자요 진리를 믿고 있는 최 씨의 아내 등이다. (하략)"

C. 1887년 10월 31일 아펜젤러 일기

"(전략) 최초로 세례 받은 한국 여성: 10월 16일 일요일에 나는 29세의 젊은 부인인 최 씨의 아내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녀는 질문에 분명하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거의 틀림없이 이 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 세례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나는 우리 감리회가 안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척 기쁘다. 말씀을 받은 다른 여성들도 있다. 이 첫 열매로 인해 여호와께 감사를 드린다.

벧엘에서의 최초의 성찬식: 일주일 후 10월 23일, 우리는 한국에서 감리회 최초의 성찬식을 가졌다. 이것은 감리회의 요람인 벧엘의 같은 방에서 거행되었다. 참석자는 형제들 최·장·강·한 씨 등과 최 씨의 아내였는데, 한 사람 박 형제는 불참했다. 스크랜턴 의사도 동참했다. (하략)"

자료 A에서 '우리 교회'는 'our Church'로 감리교회를 지칭하지, 개교회인 정동교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자료 B에서 1887년 10월 2일 벧엘 예배 처소에서 첫 공식 예배와 첫 한국어 설교와 성경 공부, 자료 C에서 10월 16일 벧엘 예배 처소에서 첫 여성 세례식,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10월 23일 주일 첫 한국인 성찬식이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말씀과 성례가 함께한 한국인 신앙 공동체인 벧엘교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 교인 박중상은 첫 성찬식에 불참했다. 사실 그는 배재학당을 졸업한 후 1891년 "선교회 소속의 출판소를 도둑질하려고 하는 대담하고 계획적인 음모를 꾸민 죄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 장로교회 첫 선출 장로들처럼 선교사들과 처음 접촉하고 개종한 자들 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돈 욕심에 넘어진 자들이 있었다.

권서인 최씨는 최성균이며, 두 번째 권서 장 씨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용경의 이름은 밝혀져 있다. 강 씨는 아마도 1888년 배재학당 도서실장을 맡은 강재형일 것이다. 이어 눈에 띄는 인물은 유치겸으로, 그는 1888년 배재학당 3학년이면서 동시에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한편 1888년 12월 올링거 목사가 서울에 부임한 이후 1889년 그가 인천 지역 전도를 맡으면서 인천의 감리교회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1885년에 내리교회가 설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후의 자료에서 보듯이 1886년 감리교회에 초신자들과 학습교인 1명이 있었지만, 세례교인은 없었고 한국 개교회도 없었다.

정동제일교회의 역사 왜곡

새문안교회(정동장로교회)가 1887년에 설립된 사실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다. 그러나 1985년 아펜젤러 내한 100주년을 전후하여, 정동제일교회에서 노종해 목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설립 연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 강매가 쓴 <정동교회 삼십 년사>(1915)가 발견되었다.

1885년 아펜젤러가 내한한 해부터 계산해 정동교회 30년이라 했으므로, 1885년에 설립된 시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결국 노종해 목사는 1988년 아펜젤러 일기를 번역하여 출판하면서, 1885년 7월 17일 서울 정동에 온 아펜젤러 목사가 사택을 마련하고 가정 예배실을 꾸민 후 "7월 29일에 첫 입주 예배를 드려 오늘날 정동교회를 이루게 했다"고 썼다(<자유와 빛을 주소서>, 노종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1989, 286쪽).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 감리회 선교회가 시작된 한 시점은 될 수 있지만 지역 교회로서 정동제일교회가 출발한 시점은 될 수 없다. 사실 7월 29일 아펜젤러 목사가 정동에 오기 전에 스크랜턴 목사가 첫 감리회 선교사로 5월 6일 정동에 도착했고, 당연히 5월 10일 주일에는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또 6월 21일 그의 가족이 정동에 도착하자, 알렌 사택에서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사들의 정기 연합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전에 알렌과 언더우드와 스크랜턴이 함께 예배를 드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아펜젤러가 7월 29일 주일예배를 시작한 것이 한국 감리회나 정동교회의 시작이 될 수는 없다.

한편 강매가 <정동교회 삼십 년사>에서 밝힌 대로 그 30주년은 (1)조선감리교회 30년 (2)아펜젤러 내한 30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강매는 제1장 '교회 설립과 아펜젤러 목사의 일'에서, 1885년 8월 1일에 조선선교회 제1회 회의를 한 이후 여러 가지 선교회의 기초가 놓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 1889년 12월 29일 서울에서 미감리교가 처음으로 조직되어 이듬해 1월 25일 첫 계삭회를, 1890년 2월 25일 장유회와 지방회를, 1905년 조선선교회를, 1908년 조선매년회를 설립했다고 정리했다. 즉 어디에도 정동교회가 언제 설립되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조선선교회의 발전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1885년 정동제일교회 설립설은 1986년 노종해 목사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해에 정동제일교회 설립 101주년을 기념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것은 아펜젤러의 일기나 보고서에 나오는 our Church(우리 감리교회)를 our church(우리 정동교회)로 오해한 데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1885년 감리교회와 선교회가 시작된 것과 지역 교회인 정동제일교회가 시작된 것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동제일교회 125년사>의 왜곡

1885년 설립설은 2011년 발행한 <정동제일교회 125년사> 제1권 통사 편(집필자 오영교)에서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95쪽 '정동교회의 출발'에서 1885년 7월 29일 아펜젤러 사택에서 예배실을 만들어, 아펜젤러 가족과 스크랜턴 가족 등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 교회가 시작되고,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선교사들의 주일 성수 예배다. 지역 개교회의 출발은 될 수 없다.

오영교 교수는 미국 북감리회 해외선교회의 1886년도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of the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주요 근거로 인용한다. 1885~1886년도 보고서를 살펴보자.

1885년도 보고서: 보고할 한국인 교인 통계나 다른 통계 자체가 없다. 따라서 한국 감리교회도 없었다. 선교회만 있고, 선교사들과 외국인의 비공식적 가정 예배만 있었다. (이는 곧 서울 유니언교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보고서 제목에 '한국'이라고 기재한 상태에서 선교를 시작한 해가 1885년이다.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1884년 매클레이에 의해 한국선교회가 시작된 게 아니다.

1886년도 보고서: 1886년 6월 상황이다. 보고서 시작 부분이나 마지막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개종자가 1명이 생겨서 준교인 1명, 초신자 100명, 주일학교 학생 12명,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학생 30명, 병원 1개로 기록되어 있다. 곧 아직 한국 전체(서울은 물론)에 감리교회가 없었다. 한국인들이 예배하는 처소도 구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2년 동안 학교·병원·인쇄소를 세우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교육·의료·문서 사업을 전개했으며, 정동에 선교사 사택 3채를 매입하여 선교의 기초를 다졌다. 세례 받은 준회원 1명(4월 25일 세례를 받은 일본공사관의 하야가와 테츠야)이 있다고 해서, 한국인 초신자(adherents, 아직 원입인/학습인은 아님) 100명(이는 추산치로, 아직 등록 명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이 있다고 해서 개교회인 정동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는 장로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하지만 1886년 한국에는 한국 감리교회(개교회)가 없었다. 다만 감리회 한국선교회만 있었다.



▲ 1886년도 북감리회 해외선교회 연례 보고서 '한국' 부분 일부.

오영교 교수가 인용하는 두 번째 근거는 1885년 10월 11일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이다. 그는 이를 "정동교회 첫 성찬식이 예배처인 아펜젤러 자택의 응접실에서 거행되었다"(100쪽)고 썼다. 이는 앞에서 그리고 '새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를 연재하면서 여러 번 지적한 대로 유니언교회의 첫 성찬식이었다.

참석자를 보자. 아펜젤러 부부, 스크랜턴 부부와 자녀들, 스크랜턴 여사, 언더우드 목사, 알렌 부인, 루미스 목사, 미군 함대의 밀러 함장, 트레일치리 회계, 크레이그 의무관 등이었다. 이것이 어찌 한국인 교회인 정동감리교회의 성찬식이 될 수 있는가. 이 외국인들의 성찬식은 남대문교회나 정동제일교회의 출발과 무관하다. 자료 C에서 보듯이 1887년 10월 23일 벧엘 예배 처소에서 거행한 성찬식이 한국감리회 최초의 성찬식, 곧 정동제일교회의 첫 성찬식이었다.

1886년 4월 15일 첫 유아세례(엘리스 아펜젤러, 마리온 스크랜턴)와 첫 일본인 세례(하야가와)는 언더우드 목사가 참여한 유니언교회 세례식이었다. 반면 7월 18일 노춘경의 세례는 헤론의 집에서 거행되었기에 첫 한국인 장로교인의 세례식이었다. 자료 'A. 1887년 7월 24일 아펜젤러 일기'에서 본 박중상의 세례가 첫 한국인 감리교인의 세례식이었다. 이들 한국인들은 유니언교회에 일단 출석하다가(1887년 2월에 이화·배재학당 학생들, 병원 관계자들, 초신자들이 유니언교회에 많이 참석했다) 9월과 10월 정동장로교회와 벧엘감리교회로 각각 분립되었다.

'첫째, 최초, 최고, 최대' 좋아하는 한국교회, 종의 정신 회복하길

역사는 재해석될 수 있고 상상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그러나 원자료(일차 자료)를 성실히 읽으면서 질문할 때 나오는 상상이라야 한다.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원자료에 접근해서 설정한 목적에 맞도록 자료들에 새 해석을 가해서 적당히 끼워 맞춘다면,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자 역사 왜곡이 된다.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설립일을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지키고 있다. 다만 설립 초기부터 예배당을 자주 옮기고 기존 예배당을 허물고 새로 짓는 문제가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1887년 10월 2일 설립일을 잘 지켜 왔다.

그런데 1885년 아펜젤러 내한 100주년 때부터 그해를 교회 설립일로 만드는 작업을 몇 사람이 시작하여 결국 2010년에 125년 역사서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교회당은 잘 보존하고 있으나 설립일을 앞당기기 위한 역사 왜곡의 작업이 진행된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그런 역사 만들기 작업 대신 1대 아펜젤러 목사, 2대 올링거 목사, 3대 존스 목사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전집 시리즈를 출판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초기 역사를 보면서 드는 또 하나의 아쉬움은 첫 수세자들과 첫 선출 장로들의 일탈이다. 서울의 첫 장로교인 노춘경은 장로교회를 떠나 감리교회로 갔다고 한다.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첫 감리교인 박중상은 삼문활판소를 차지하려다가 처벌과 치리를 받았다. 정동장로교회 첫 선출 장로 2인도 1890년에 치리를 받고 출교되거나 장로직을 박탈당했다. 이런 이들을 '쌀 신자'라고 한다.

처음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처음 장로로 선출되었다고 해서, 혹은 처음 설립된 교회라고 해서 명예가 되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다. 세례교인다운 윤리적 행동이 있을 때, 장로다운 신앙과 지도력이 있을 때,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다운 교회가 될 때 그 처음이 의미가 있다. 첫째, 최초, 최고, 최대를 좋아하는 한국교회가 이제는 섬기는 종의 정신, 본질을 회복하는 회개의 정신을 회복할 때 쓰임 받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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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견해들… 예수 재림과 세대주의 종말론

[ 신학논단 / 정동섭 ] 세대주의 신학의 문제점 분석

정동섭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정동섭 목사 / 가족관계연구소장, 전 침신대 교수,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Ph.D.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예수님의 재림과 세대주의 종말론

사도 요한이 본 천년왕국 비전에 대한 정확한 해석문제는(계 20:1-10) 2세기 이래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많은 흥분과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기본적 입장이 확고해졌다. 그 세 가지 입장은 각각 재림이후에 천년왕국이 온다는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천년왕국 후에 재림이 있다는 ‘후천년설,’(postmillennianism) 그리고 재림 이전이나 이후나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이다.

각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대하여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천년설이 대세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천년왕국의 천년을 교회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무천년설을 추종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천 년을 지금 천국에서 이뤄지는 죽은 성도들의 통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전쟁과 기근, 지진과 같은 징조가 있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며, 배도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대환란과 천년왕국을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서 본다. 교회시대의 정점은 휴거이며,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은 ‘공중에서’ 만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렇게 참된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지면, 적그리스도가 7년 동안 악마적 통치를 시작하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땅위에 쏟아진다. 이러한 대환란 기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와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군대와 함께 재림하셔서 주님의 원수를 모두 처부순다. 그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것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

(1) 세대주의의 보편적 교리적 특징

세대주의의 보편적 교리적 특징은 첫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항상 문자적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둘째,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며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교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말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과 다윗 왕국의 회복을 주장한다. 셋째, 인류의 역사를 일곱 세대로 분류하여 각 세대별로 하나님의 경륜적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넷째, 7년 대환란 전 휴거설과 이중 재림을 주장하며, 그 때와 시간을 알 수 없는 종말론적인 시간을 징조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기독인들로 하여금 미래의 어떤 시점(예수의 재림시점)에만 집착하도록 만듦으로서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도록 만들었다. 1992년 10. 28. 휴거설을 주창했던 다미선교회나 현재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은혜로교회는 소속교인들이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현실을 무시한 채, 강제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회개하게 만들었다.

세대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며, 이 둘의 연관성과 지속성은 단절되어 진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제공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왕국은 일단 보류 또는 연기 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즉 세대주의 관점에서 볼 때 신약시대의 교회는 이스라엘과 왕국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임시적인 시대라는 것이다.

이 세대주의의 특징은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점에서 교회는 7년 대환란 전에 이 세상 밖으로 휴거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잠시 보류하였던 이스라엘을 위한 구약의 계획으로 다시 되돌아가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세대주의가 바라는 왕국은 미래적이며 전천년의 왕국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옛 언약이 폐하여진 것이며 교회를 통하여 새 언약이 새로 세워진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서 파해진 것이며 단절되어진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옛 언약은 없어졌고 폐하여 졌으며, 신약교회 위에 새 언약이 세워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정통 언약신학을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라고 비하하는데,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잠시 보류하고 이방교회로 대체하였다고 본다. 이는 세대주의나 메시아닉이 일반 기독교의 신학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히브리 사상의 뿌리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메시아닉 운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세대주의 신학사상을 지지한다. 이들은 기독교신학을 유대주의 뿌리를 잃어버렸고 헬라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비난하면서, 토라와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이스라엘 시대? 송만석은 온누리교회 장로로서 KIBI (한-이 성경연구소) 대표로서 한국 EFF(유대인 귀환사역)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 히브리 뿌리 운동(Hebrew Roots Movement)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예루살렘 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므로 성경본문의 왜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시아닉 쥬는 여러 부류가 있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유대인으로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자고 하는 소위 히브리뿌리운동을 전개하는 이들도 있다.

(2) 메시아닉의 공통된 입장

이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비밀리에 제3의 성전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절기를 지키며 성전에서 짐승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고 예수님의 재림이 감람산 자락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 김종철 감독의 영화, 제3의 성전 등이 이러한 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김종철 감독은 메시아닉과 세대주의, 신사도운동 인사들과 함께 집회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대주의적인 운동들이 세대주의와 신사도운동에 의해 기독교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지하 가정교회에서 시작된 소위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운동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이 유병언, 이요한의 구원파와 인터콥, G12 등과 같은 선교단체와 신사도운동 교회와 단체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송만석 장로가 대표로 있는 KIBI, 토라의 회복과 히브리뿌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부천제자공동체 교회(김주성 목사) 등이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을 따르고 있다.

이필찬 교수(2014)는 <백투예루살렘운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에서, 세대주의, 메시아닉, 이스라엘 회복과 신사도운동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러 책을 비판하고 있는 데, ①폴터웨이의 <백투예루살렘>, ②키이스 인트레이더의 <그날이 속히 오리라>, ③로버트 하이들러의 <메시아닉 교회: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④대니에 저스터의 <마지막 때의 교회와 이스라엘>, ⑤루벤 도런의 <한 새 사람>, ⑥송만석 장로의 <지금은 예루살렘 시대>, ⑦최바울의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제목을 보아도 그들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요지는 간단하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회복될 것을 믿는 것이다. 예루살렘도 이전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재림도 예루살렘이라는 지정학적 장소에서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심적이다. 모든 성경해석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으로 통한다. 이들은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한 종말적 약속들이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 재림을 통하여 이러한 구약의 약속들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해석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약속들의 성취를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선지자들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또한 그들의 주장은 잘못 해석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도 한다. 1948년에 혙통적 이스라엘의 독립에서 성취되었다고 보는 무화과나무 비유가 그 대표적인 예다. 세속적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독립은 이제 영적인 회복을 남겨두고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과 맞물려 발생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그렇게 갈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그토록 간절한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재림에 대한 갈망의 동기가 올바른 성경이해에 근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

특히 극단적 세대주의, 변질된 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일련의 주장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숫자는 이단적이며, 어떤 특정한 징조를 과장하고 확대해석한 임박한 종말론, 또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고 하겠다.

(3) 예언에 대한 오해

극단적 세대주의를 따르는 자들의 문제점은 예언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다. 이 운동은 구약의 선지적 말씀을 미래에 성취되는 예언이라는 개념에 가둔다. 그래서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과 1967년의 예루살렘 점령 등을 --- 구약 및 신약성경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한다.

예언은 단순히 미래 시점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예언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즉 예언이란 시제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타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즉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해석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야말로 예언의 성취이며 완성이다. 그런데 메시아닉과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추종하는 자들은 이런 성경 해석의 기본적 원리를 무시하고 예언을 단순히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구약의 예언이 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회복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성경구절(렘 3:18; 23:7-8; 30:3; 31:8; 33:24-26; 겔 36:24-25; 39:28)에 담겨 있는 예언이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이 아니라 금세기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이라는 증거들은 나열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에 대한 모든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은 문자적으로, 비유적으로, 원형적으로, 복합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도 이 예언들이 먼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후크마, 2012).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것을 무화과나무의 잎이 나온 것이라 해석하고 1967년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통치 아래 들어온 것을 기점으로 이방인의 때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방인의 수가 다 찬 후에는 다시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예루살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오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라고 하면, 다음은 이방 교회가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유대인 귀환사역을 돕는 일이라고 한다.

구약에서 바벨론 포로 귀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어떤 인위적인 노력도 없이 바벨론 제국의 멸망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작금에 이 운동을 위해 협력하는 단체들의 활동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는 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약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예언은 이미 이뤄졌다.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공동체를 세우셨다. 이 공동체가 바로 새 성전이고 새 예루살렘이다. 지금은 예수살렘 시대가 아니라 새 예루살렘 시대인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세대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많은 이단들이 세대주의에서 파생되고 있으며, 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부 극단적인 세대주의들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성경해석과 함께, 시한부종말을 주장함으로써 그 미혹성은 더 커지고 있다.

(4) 재림의 성격

재림은 영적으로 오시지 않고 인격적인 오심이 될 것이고 눈에 보이는 강림이 될 것이며, 영광스러운 오심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시 오셔서 자신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살후 1:10) 그리스도의 백성인 우리는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골 3:4).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정복자, 만물의 심파자, 온 오주의 구속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며 중간에 7년의 간격이 있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재림을 말한다. 재림의 첫 번째 단계는 휴거(또는 환란전 휴거)라고 불리는 반면, 그리스도가 천년왕국을 세우실 두 번째 단계는 지상재림이라고 불린다. 세대주의자들이 상정하는 마지막 세대는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천년 동안 다스리는 천년왕국 세대로 일컬어진다. 환란 전 휴거설이란 천년왕국에 선행하는 큰 환란이 발생하기 전에 교회가 휴거되어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이라는 견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1-3).

여기서 “우리가 그 앞에 모임”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에피쉬나고게)는 마태복음 24:31에서 휴거에 대해 사용된 동사의 명사형이다. 교회의 휴거는 이 구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큰 환란보다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큰 환란에 뒤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두 단계를 중간에 7년의 간격이 있는 “성도를 위해 오심”(휴거)과 “성도들과 함께 오심”(지상재림)으로 일컫는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사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죽은 신자들이 부활할 것이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모든 신자들도 변화되어 영화롭게 된다는 것이다(고전 15:51-52). 두 단계 재림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큰 환란 이후에 발생하는 하나의 단일한 사건으로 여겨야 한다(후크마, 2012).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일반적 부활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광명에 있는 한나라교회(김상배 목사)에서 임박한 휴거 종말론을 설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예장통합 소속목사가 세대주의신학을 반영하는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설교 중 상당수는 ‘휴거-모의 심판’, ‘임박한 환란의 징조’, ‘주를 맞을 영적 준비란’, ‘말세의 윤곽’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종말과 휴거 등을 설교하며, △휴거가 말세의 복음의 비밀이다 △휴거가 ‘요이똥만 남았다’ △2017년부터 666 (짐승표)바코드를 받지 않으면 체포가 된다 △이미 한국사람 10만명이 짐승표를 받았다는 등의 황당한 발언을 했다.

“휴거라는 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가시권에 다 들어왔고, 준비가 세계적으로 다 돼 있는 상태인데, 어느 시간에 시작하느냐. 일본말로 ‘요이똥’만 남았습니다. 이제는요. 시작하면 그만인 걸루요. 그게 이제 가시적으로는 일단 2017년부터입니다.”

“말세의 복음의 비밀이 휴거”라는 주장에 대해 요한계시록 전공자인 이필찬 목사(전 웨신대 신약학 교수)는 “휴거를 말세의 복음의 비밀이라고 하는 주장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며 “말세든, 언제든, 복음의 비밀은 오직 그리스도다”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휴거를 주장하는 경우에 근거 구절로 살전 4:16-17이 제시되는데,

이 구절에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일시적인 현상을 말할 뿐,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은 후 어느 기간 동안 공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다”고 비판했다. 휴거론자들 대다수가 휴거 이후 이 땅에 7년 대환란이 있고 그 7년의 기간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한다고 해석하는데 이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강림과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그리스도의 강림은 결코 구별되어서는 안 된다(후크마, 2012).

이승구 교수(합신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도 “휴거 주장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말씀의 전후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름대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 주장일 뿐이다”며 “세상의 환란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휴거해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7년대환란이 온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그에 대한 증언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성도들은 환난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 하나님에 의해 지켜진다(마 24:21~22 참조)”고 설명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운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

바울은 로마서 1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근거로 바울은 엘리야를 떠올린다.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을 남겨놓으셨다(롬 11:3-4). 바울은 남은 자 모티브를 통해 언약의 신실성을 변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백성’은 전체를 가리키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은 엘리야 때처럼 은혜로 택함 받은 남은 자들과, 완악해진 남겨진 자에 속하는 자들로 양분되었다. 바울은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얼마’ 곧 ‘몇 명’을 생각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우둔함이 사라지고 제한되었던 모든 이스라엘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모든 이방인을 가리키지 않는 것처럼, ‘모든 이스라엘’ 또한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을 가리켜 사용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온(모든) 이스라엘’이란 11:12의 ‘유대인의 충만함’처럼 단순히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을 의미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완전한 혹은 충만한 후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가리킨다.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남은 자가 바로 모든 이스라엘이다. 이방인의 충만이 모든 이방인을 포함하지는 않듯, 모든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계획 속에 구원받기로 예비된 모든 이스라엘을 의미한다(이필찬, 2014, p.364). ‘온 이스라엘’은 문자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로 선택된 이스라엘만을 뜻한다고 본다.

연대기적 해석을 하게 된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시키고, 율법과 은혜를 대립적 개념으로 분리시켰다. 율법은 모세와 행위와 연관된 반면, 은혜는 그리스도와 믿음에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다. 이들은 “율법은 결코 구원이나 칭의의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스코필드(Scofield)에 의하면, “율법은 죄인을 칭의하지도 않고 신자를 성화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대주의 성향은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삶을 분리시킨다. 이런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등한시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환상적인 이상에 몰두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미래의 어떤 유토피아나 지상천국을 약속한 이단종파에 미혹되어 현실의 삶을 망친 경우를 많이 목격하고 있다.

무천년설은 실현된 천년왕국설이라고도 한다. 요한계시록 20장 4-6절에서 언급한 천년왕국을 현재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해석한다. 무천년설에서는 천 년을 문자 그대로 볼 수 없고 완전수인 10을 세 번 곱한 충만 수로 봐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의 천 년을 교회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

천 년이란 교회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승리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칼빈과 어거스틴도 이 입장을 취했다. 천년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구원하시는 충만한 기간을 천 년으로 보는 것이다. 천 년은 단지 택한 백성을 전부 구원할만한 충분한 기간이다. 이들은 이 천상의 천 년 통치 이후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무천년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국면을 포함한 사건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전체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다. 부활 후에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형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다. 이 두 집단, 즉 부활한 신자들과 변화된 신자들은 그 다음에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신자의 ‘휴거’후에 그리스도는 땅으로의 강림을 마치시고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심판 후에 불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반면,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많은 부흥사들이 전했던 세대주의전천년설은 성경을 벗어난 매우 불건전한 해석이다(피영민). 종말론과 관련된 이단들은 대부분 이 세대주의전천년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7년 대환난, 휴거, 천년왕국, 144000, 666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성경과 조화되지 않는 성경해석체계로 거부해야 마땅하다고 결론짓는다(후크마, 2012).

마틴 로이드 존스는 종말에 대해 강박적 관심을 갖고 있는 구원파와 같은 집단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관심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현재의 세계정세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차츰 이 주제에 마음을 빼앗겨 정복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설교도 하지 않는다. 이 예언적 교훈에 대한 지나친 몰두 이상으로 영혼의 건강에 위험한 것은 없다. 러시아, 이집트, 이스라엘 및 그 밖의 나라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에스겔서 37,38장이나 다니엘서 7-12장 그 밖의 예언적 관점에서 여러 시기나 경우를 계산하는 데 모든 시간을 소비하며 전 생애를 투입하게 되기가 쉽다.

한편 영적 의미에서는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하고 등한히 될 수 있다. 물론 예언적 교훈은 성경의 중요한 일부이고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래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나머지 우리가 지금 살아야 하는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차적인 위험은 균형이나 조화의 감각을 상실하는 데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나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14:36).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 13).

“때와 기한은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 7). 우리는 복된 소망을 갖고 현실에 더욱 더 충실하고 주어진 사명을 더 충실히 감당하며 충성하고 봉사할 때 약속된 하나님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날과 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이다(마 24:36; 벧후 3:11,12).

우리는 특별한 ‘종말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마지막 때로서,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시기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선견자 요한처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우리가 지금 요한계시록에서 경고하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말세에는 네 가지 징조가 있다: ①사람의 징조 “미혹”이다(마 24:4); ②환란의 징조 “난리”이다(마 24:6); ③자연의 징조 “재난”이다(마 24: 7-8); ④종교적 징조 “이단”이다(마 24: 11, 23-24). 우리 모두는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갖춰야 한다.

우리는 재림이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살전 4:11).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를 맞아 영접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불신자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시기에 대해 성도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 11). 매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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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권호덕. <율법의 세 가지 용도와 그 사회적 적용>. 그리심, 2003.
김민규. <신앙, 그 오해와 진실>. 새물결플러스, 2014.
스탠리 그렌츠. <누구나 쉽게 배우는 신학>. CUP, 2000.
앤서니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부흥과개혁사, 2012.
이인규. <평신도들이 혼동하기 쉬운 성경 50>. 카리스, 2014.
_____. “메시아닉 운동에 대하여”.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2015.
이필찬. <백투예루살렘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2014.
_____.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14.
피영민. <신약개론>. 검과흙손, 2015.
Walter Elwell.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Baker Book House,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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