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설교엔 하나님 나라가 없다 2015-12-16 10:36:33 read : 7539
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원장
간증의 도구화된 설교...‘부흥과 회심’ 일변도 개선 필요
역사의식 거세된 교회 강단...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메시지 회복해야
올 한해 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원장(샘터교회 담임)은 두 권의 설교 비평집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와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로 설교 비평계에 일대 새 바람을 불러 왔다.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강단에 서 있는 목사들의 설교를 냉철하게 비평한다는 건, 전에 없던 도전이였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7여년간, 자신의 설교에서 벗어나 ‘남의 설교 듣기’를 꾸준히 해 오던 그는 2004년부터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해, 올 12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설교 비평을 끝으로 연재를 마감했다. 27일 대구성서아카데미 회원들과 연말 모임을 갖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나봤다.
-월간 ‘기독교 사상’에 3년간 연재해 오던 설교 비평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설교 비평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한번쯤 남의 설교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늘날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선포보다는 목사의 개인적인 신앙관에 치중돼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생각이 없는 성도라면 교회에 남아질 지 몰라도, 지성인 기독교인이라면 말씀의 목마름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단, 개인의 신앙을 간증하거나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점을 밝혀보기 위해 대구 성서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대구 지역의 목회자들과 지성인들과 설교 비평과 인문학적 성서 읽기를 진행했다. 연재하기 전에도 설교 비평은 계속해 오면서 기독교 사상에 연재를 시작한 게 만 3년이 넘었다.
-대구 성서아카데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설교 비평과 함께 비평의 대상이 된 목사님들의 반론도 올라와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체로 반응은 어떠했는가.
응답한 목사님들의 반응도 서로마다 입장이 다르다. 개중에는 (설교비평은)선교에 도움이 안된다는 식으로 자기 변명을 하는 분도 있었고, 박영선 목사님 같은 경우처럼 소탈하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말씀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설교 비평의 근본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분이 드물다.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소통)의 문제다.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선 상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충분한 대화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을 형성해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설교학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올해 11월에 한일장신대에서 설교 비평 세미나가 열려서 설교학 교수들이 내가 쓴 설교 비평을 다뤘다. 그 점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이전까지는 설교학 교수들이 전반적으로 덕담이나 주례사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정도였다.
내가 한 설교 비평이 미국에서 있었던 ‘설교 갱신 운동’의 물꼬를 튼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설교학 교수가 아닌 조직 신학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점으로 성서관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이 아닌, 역사 비평에서 다루는 건 수용하기 힘들다는 평가였다. 그래서 시도는 좋았지만 자칫 한국교회를 허물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성서 안에 있는 신화의 문제를 내가 짚었던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설화나 신화라는 건,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문화의 장이다. 따라서 그 점을 지적한 말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크고 작은 입장 차이가 ‘어떤 신학을 했느냐’에서 보이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한국 교회의 신학적 담론을 형성하는 차원에까지는 바람이 불지 못한 것 같다.
-두 권의 설교 비평책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안다.
설교 비평집 1, 2권이 많이 팔린 편이고, 특히 설교 비평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큰 자극제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열린 예배를 지향하는 교회 분위기나 대형교회의 설교 강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까지는 영향을 못 끼친듯 하다.
그러나 많은 신학생들이 필독서처럼 읽게 된 점이나, 신학적인 스펙트럼을 달리하는 목회자들도 읽으신 분들이 많다는 점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일정 부분에서는 설교 갱신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 차원에서는 변화를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결실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시대의 설교에서 반드시 구현돼야 할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믿어서 죽은 다음에 가는, 천당의 차원이고 공간적인 의미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공간이 아닌 통치의 차원이다. 그 나라의 정의와 평화가 통치하는 그 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 그 나라의 운동은 선(先)취된 것이지만 또한 여전히 종말론적으로는 열려있는 세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해방 - 예를 들어 죄와 죽음,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인데, 한국 교회는 ‘신앙’이라고 하면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 성수를 법칙적으로 지키는 식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킬 필요가 있는 도리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선취된 차원에서 볼 때, 이 땅에서의 정의, 평화,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예수님들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 창기등과 함께 하셨다. 그 당시 바리새인은 요사이 우리가 말하는 ‘교회에서 세련되며 신앙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그 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복지 활동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의 차원을 꾸준히 지향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역사 안에 이미 오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따라가느냐, 이 두 가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기다림이라는 것도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파숫군의 기다림이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와 있다는 확신에 찬 기다림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미래, 처음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이다.
대림절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 본다면, 우리가 하는 행위들 -
교회 개척이나 부흥은 사실은 잠정적인 일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금 자기들은 잘하고 있으니 하나님 나라는 필요가 없고, 1년 내내 짜여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재미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2000년 전에 바리새인이 저질렀던 시행 착오를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는 격이다.
아프간 사태도 2,300년전의 미국과 똑같은 선교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거친 모형을 그대로 한국교회는 따라가는 모습이 있다.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로 영적인 주파수를 거기에다 맞춰야 한다. 그 가치에 우리를 상대화시켜서 교회를 비워내는 영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부족감을 많이 느낀다.
-이 주제가 한국 교회 안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평신도 지도자를 포함해서 기독교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를 믿고 영적인 감동에 젖어있는 상태나, 율법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영성에 취해 형식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다.
기본적으로 기초 신학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 인격적으론 참 좋은 목사님들도 이 기초 신학의 형태적인 차이를 모르고 교단과 교파 구조로 들어가 보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 같다.
신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방향 정위)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몇 가지를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기초를 세워나가야 한다. 성서 해석을 하려면 먼저는 역사 비평을 알아야 한다. 수 백, 수 천년부터 전승된 역사를 실증적으로만 해결하고 해석하려고 하니까 텍스트가 빛을 잃는다. 개인적이 신앙의 만족을 위해 도구화 하지 말라는 지적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설교자가 성서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역사 비평과 함께, 신학의 역사, 교회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텍스트(Text)가 단절되지 않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로는 오늘과 우리를 이어주기 위한 조직신학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하나님 나라, 종말론, 칭의, 삼위 일체 등을 알아야 도그마(Dogma)가 텍스트를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세 번째가 인문학이다. 정작 설교를 들어야 할 청중을 이해해야 성서가 살아날 수 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한국 교회설교, 세계 신학계선 여전히 ‘변방’ ‘한쪽에 치우친 설교’
성서 텍스트에 충실한 명(名)설교가로 민영진 박사등 5명 추천
-이런 한계를 지닌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의 ‘시대 정신’의 문제라고 본다.
상식적인 차원에서만 짚고 넘어간다면, 오늘의 시대는 신 자유주의적이고 감각적이며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요구하며, 삶의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설득력에 있어 은사가 있는 목사님들이 그들의 요구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고 본다. 내용보다는 청중들의 대중 심리를 끌어낼 수 있는 카리스마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능력만으로도 한국에서 설교와 목회로 성공할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비극적이다. 종말론적으로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과 꿈을 담지해야 할 교회가 종교적 욕망에 영적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포퓰리즘적이고 오로지 현 시대정신에만 맞춘 작업이라고 본다.
-설교 비평을 하면서 추천할 만한 설교가들도 있었는가.
물론이다. 박영선 목사님 설교는 본인이 초기에 비평을 했는데, 칭의와 성화에 있어 한때 약간의 신학적 혼란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성도들의 포퓰리즘적 요구를 근본적으로 벗어나려고 한 측면에서 대중 설교자로서 좋게 평가한다.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도 탄탄한 교회론에 근거한 설교를 하고 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이나 모세골 임영수 목사님도 대중적인 비위나 그들이 원하는 설교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텍스트를 말하고자 한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성서공회 전 총무이신 민영진 박사님은 성서 텍스트에 가장 일치한 설교를 하신다고 평가한다. 흡사 돌고래가 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이 성서 텍스트와 긴밀한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기독교사상 기념 세미나에서 목사가 설교 강단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말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이 입장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는가.
나는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은 진보주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설교화하지는 않는다. 목회자에게도 최소한의 정치적 선택은 있어야 하지만, 어느 당을 붙잡아야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개인의 정치 성향으로 설교 강단에서 청중을 끌어서는 안된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정치에 대해 발언했지만 그것을 우리도 따라 해도 된다는 보장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예언자적인 정치 설교자들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진리로써,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정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자세하게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수구 보수적인 목사님이나, 주한 미군 철수를 말하는 목사님이나 그 점에선 마찬가지다. 주일 공동 예배는 반드시 케리그마(kerygma)가 선포되는 자리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말해야 하는 자리다. 좌익이든 우익이든지간에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거론한다는 건, 근본적인 자리를 떠난 ‘설교자의 외도’라고 본다.
-세계 신학계의 흐름에 비춰볼 때, 한국 교회 설교의 현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 개신교의 뿌리 자체가 지엽적인데서 시작됐다. 미국 선교사를 통해 근본주의적이고, 부흥 운동만을 중심삼고 있다. 그 뿌리가 유럽의 2000년 전, 교회적 전통을 배척하면서 시작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종의 부흥회와 같은 분위기만이 자리잡아, 개인의 회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다.
지금 내가 영접하는 것에 대한 관심과 뜨거운 불을 받는 등의 아주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데, 이런 체험 중심적인 부류는 전체 기독교 신학의 주류에 있어 변방에 불과하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인 줄로 크게 착각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주로 미국교회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며 자라났기 때문에 복음주의적이지만 보수 우익적 성향이 강해서, 세계 교회에서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강하다. 교회 전체의 흐름에서도 미국의 개인주의 영성에 근거한 설교와 성경공부, 목회 일변도다. 기껏해야 미국 중산층의 건강한 시민을 양육하는 설교 - 예를 들어, 릭 위렌 목사와 같은 설교가 크게 떴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 수준이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설교에서 다뤄야 할 담론은 ‘하나님 나라’인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더 줄이면 ‘하나님’이다.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가 교회론에만 치우치다보니, 교회에 대한 관심은 너무 높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즉, ‘하나님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교회 중심적인 설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의 설교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를 말씀하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한국교회는 막연한 미래, 혹은 휴거등으로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런것이 아니다. 종말론적 구원이라는 것은 곧 ‘역사관’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완성될 역사를 내다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지금 150개 교파가 있다는 것은 코미디다. 종말론적인 구원을 내다 본다면, 해결될수 있는 문제다. 중요한 건 창조론적인 마인드(Mind)로의 변화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타락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힘이 드러난 세계다. 회심 중심의 신앙과 설교에서 창조 중심의 신앙과 설교로 변모해야 한다.
정용섭 목사는 1953년1월 서울에서 출생,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원에서 "한스 큉의 교회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쾰른 대학교와 뮌스터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협성신학대학교와 대구대학교등에 출강했다.
그가 2001년에 설립한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이자 대구 샘터교회를 개척해 담임 목사를 맡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설교 비평집으로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가 있으며 내년 초에 3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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