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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창조과학을 떠난 네 가지 이유/ 이혼 문제, 상담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 2014-12-26 08:31:05 read : 29484
내가 창조과학을 떠난 네 가지 이유
다중격변론 등 창조과학자들과의 논쟁
양승훈 | edit@newsm.com
본지는 밴쿠버에 위치한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자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있던 양승훈 교수가 2006년 부터 시작된 창조론 논쟁 이후 창조과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학술적 논지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 양승훈 원장 © <뉴스 M>
저는 2006년 7월, <창조와 격변>(예영)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 창조론 논쟁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자들과의 논쟁보다도 다른 창조론자들과의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헤프닝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한국인 창조과학자는 제가 제시한 다중격변론을 다른 이단적 주장들과 함께 부수는 만화를 그려 발표하기도 하고, 서울 인근에 있는 어느 교회는 제가 창조과학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집회 강사로 초청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1981년에 시작된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은 일정 부분 한국교회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지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한국 교회에서 성경의 과학적 변증을 주도한 창조과학 운동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교단과 관계없이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분위기는 창조과학의 전성기를 여는 기초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 시대의 새로운 제사장으로 부상한 과학자들이 무너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통합적 권위를 재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홍수설과 젊은 지구론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단 한 차례의 홍수로 인해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으며, 또한 대부분의 지표면의 모습이 결정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 역시 틀렸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6천년/대홍수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틀린 이론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 없이 저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980년, ‘80 세계복음화 대성회’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 미국 창조과학자들로부터 처음 단일격변설을 소개 받은 이후, 제가 이 이론이 완전히 틀렸음을 확신할 때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으니까요. 어떻게 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기초과학인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틀린 이론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믿고 있었을까요? 명백한 오류지만 모른 척하고 지내는 것이 틀렸음을 계속 주장함으로서 교회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나아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전문성 부족
첫째 이유는 창조과학을 전업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더라도 학자적인 치밀함을 가지고 연구하거나 평가하지 못합니다. 기원 논쟁의 대부분의 이슈들이 기초과학 분야에 속한 것들이며,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해 오랜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꼭 학교에서 해당 분야의 석, 박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혼자서라도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근래 북미주에 있는 두어 분이 인터넷을 통해 저의 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창조과학 분야에도 전문가들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전문가라는 분들의 글을 퍼서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반론을 올렸던 한 분은 경영학을 전공한 분이며, 다른 한 분은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퍼온 글의 저자들도 역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창조과학에 참여하는 분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창조과학과 관련된 전문성이 아닙니다. 그러면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전문성이 부족하면 자신이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 않음은 물론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을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8월, 저의 제명 문제를 논의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 이사회가 열렸는데 그 때 회의록과 더불어 우주와 지구가 젊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들을 20여개 첨부하여 임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우연히 저도 그 문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문헌들 중에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쓴 분들 중에 지구나 우주 연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글들을 모은 분도 서울 인근 어느 대학 웹디자인학과 교수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주나 지구 연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을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지만 대폭발이론, 흔히 표준모델(Standard Model)로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해당 과학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는 분들이 또 다른 비전문가들이 쓴 대중서적들을 근거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논쟁에 참여하니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 창조와 격변 (양승훈 저, 예영커뮤니케이션)
제가 2006년 <창조와 격변>에서 제시했던 다중격변론에 대해서도 몇몇 창조과학자들이 비판했지만 아쉽게도 정작 이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중격변모델을 비판하면서 대규모 운석이 떨어지면서 남긴 증거들이 화산폭발 때 만들어지는 증거들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며 운석 충돌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리스(Henry M. Morris)는 달 표면의 수많은 운석 충돌 자국들을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흔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 있는 K-T 경계면 멸종도 부정합니다. K-T 경계면이 운석 충돌에 의한 것인지, 화산폭발에 의한 것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K-T 경계면 멸종이나 수많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 흔적은 해석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입니다.
비록 제가 제시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저 역시 다중격변설이 100%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론은 적어도 지금까지 동일과정설이나 단일격변설(대홍수설)에 비해서는 맞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증주의자들의 표현을 빈다면 다중격변설은 더 나은 이론이 나와서 오류가 입증될 때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잠정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997년, 한국 대학을 사임하고 밴쿠버로 올 때까지만 해도 창조과학 연구에 저의 남은 생애를 걸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지구/우주와 대홍수 개념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기보다는 그것들이 맞음을 좀 더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다른 문헌들을 조사하면서 동시에 야외 탐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업으로 창조과학을 연구하면서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창조과학 모델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증거가 너무 많고 분명했습니다.
창조과학에서 특히 많은 오해가 난무하는 분야는 창조과학자들 중에서 전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천문학과 우주론 분야입니다. 창조과학에서는 현대 우주론의 표준모델이라고 하는 대폭발이론이나 별이나 은하의 나이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이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대폭발이론 등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기 우주론 연구는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상당한 이론물리학적 배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현재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저는 대폭발이론을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학자적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연구는 고사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아마추어들이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들을 근거로 대폭발이론을 마치 사탄의 이론인 듯이 매도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한 예로 대폭발이론을 비판하면서 이는 제재소가 폭발해서 저택이 만들어질 가능성, 수 백 만 개의 비행기 부품 더미가 폭발해서 747 점보기가 조립될 가능성 등을 운운하는 사람은 이 이론의 기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은 너무 많은 증거들이 축적되어서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세부적인 분야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폭발이론보다 천문학 분야의 이론적 증거나 관측상의 증거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음은 분명합니다.
2. 편향된 인용
둘째 이유는 편향된 문헌 인용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나 말을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하거나 필요한 문헌만 선별적으로 인용하는 “생략에 의한 속임”(deception by ommission)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들만 선별적으로 인용하고 싶은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자들도 그런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구나 우주 연대 문제를 다룬 창조과학자들의 문헌에는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왜곡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창조과학 운동의 선구자인 모리스(Henry M. Morris)가 윗콤(John C. Whitcomb, Jr.)과 공저한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수 백만 년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million years ago)라는 구절을 “여러 해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years ago)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방사능 연대측정법은 어떻습니까? 방사능 연대측정은 드물게 틀린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98% 이상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창조과학 대중강사 중의 한 사람이자 전직 과학교사였던 호빈드(Kent Hovind)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이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호빈드 자신은 한 번도 방사능 연대를 연구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자신이 한 번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은 분야에서 전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기 이전에 피조세계의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주선에 의해 대기 중의 질소가 방사능을 띤 C-14로 변하고 이것이 대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CO2를 형성한다. 그 후 동물의 호흡이나 식물의 광합성작용을 통해 체내에 축적된다.
저 역시 아마추어로서 미국 창조과학자들의 문헌만을 접할 때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은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위스콘신 대학(University of Wisconsisn-Madison) 과학사학과에서 방사성 연대측정법의 하나인 탄소연대측정의 역사를 석사 논문 주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탄소연대측정이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작성하면서 방사성 연대측정 분야의 문헌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그 분야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질학 분야에 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 차례의 노아의 대홍수만으로 지구의 모든 지층과 화석, 그리고 각종 지형들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고 성경적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일격변설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지질학 상식을 가지고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나가서 하루만 돌아다니면 충분합니다. 어떤 반대되는 증거가 있더라도 나는 단일격변설만을 믿겠노라고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지구 역사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뚜렷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분명하게 일어났지만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는 아니라는 것이 증거에 충실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속도가 변한다는 주장도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에서는 백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빛을 지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은 우주의 틀에서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는 광속이 무지하게 빨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먼 거리에 있는 퀘이사(quasar) 스펙트럼의 다중선 분석에 기초한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빛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을까요?
실제로 창조과학에서 인용하고 있는 해당 논문의 저자들은 과거에 빛의 속도가 더 빨랐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주에서 빛의 속도가 변했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 속도의 백만분의 일 정도의 무시할 정도이며, 이 또한 관측오차 이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결과는 오히려 젊은 우주론에 심각하게 반대되는 증거인데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데이터를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편향된 신학
셋째 이유는 편향된 신학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창조과학이 근본주의 운동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의 특징은 반지성주의적이며 전투적이라는 점입니다. 창조과학이 그렇게 많은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변증하는데 반지성적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떤 창조과학자와 창조연대와 관련하여 장시간 전화로 논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의 연구만으로 충분하고 우리는 그 주장을 어떻게 전하는가의 문제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의 연구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제게 더 이상 많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근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성의 부재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돌진합니다. 창조론 논의에 있어서 현재의 혼란은 자신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어떤 함의가 있는지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신학적 기초가 없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너무 멀리 갔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의 단순함이 문제를 키웠다고나 할까요? 아직까지 그런 정관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기 한국창조과학회 정관에는 정회원이 되려면 이공계 분야에서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창세기를 전공하는 구약학자들은 정회원이 될 수 없었고, 창조과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은 애초부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 창조과학회도 비슷합니다.
근본주의 신학이 단순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손에서 더욱 더 전투적이고 선명성 있게 다듬어진 것이 현재의 창조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적 반성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이 다룸으로 인해 좌충우돌하는 현재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 창조과학의 문제는 신학이나 과학사, 과학철학자 등 인문학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지 않고 과학자와 공학자들 중심의 운동이어서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성의 여지가 없는 자연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신학자들처럼 생각이 그렇게 깊지 못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에서 그런 단순 사고가 유익할 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 사고를 가진 분들이 창조/진화와 같이 신앙적, 이념적 함의가 강하게 내재된 분야의 지도자로 참여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신학적 반성 능력, 다시 말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분들이 강한 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논쟁에 뛰어들게 되면 옹기전에 황소가 뛰어든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은 자신의 과학적 주장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한 예로 창조과학자들은 성경 문자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사용하면서도 자신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념적 자기 정체성(self-identification)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를 때는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주장과 태도가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과학자들은 아무리 자신을 근본주의자, 혹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신학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근본주의, 혹은 성경 문자주의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스스로의 신학적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전문 신학자나 과학철학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도 훌륭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는 분들이 창조론 분야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큰 고통입니다. 어폐가 많지만 갈릴레오의 심경을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디에 그런 성경 구절이 있느냐고 갈릴레오를 비판, 정죄했던 당시 로마 대학 교수들과 교황청 이단심문소(The Holy Office) 도미니칸 배심원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당시 천동설주의자들은 성경을 내세워 갈릴레오를 정죄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근거해서 갈릴레오를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과학이 천동설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나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흥미로운 것은 지금도 일부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도 있고, 천동설을 주장하는 책도 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글을 보면 하나 같이 성경 구절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천동설을 주장하는 어떤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는 성경 구절이 67개나 제시되어 있습니다!!
4. 소통의 문제
넷째 이유는 소통의 문제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저와 다를 수 있고 또한 저의 제가 제시한 모델이나 이론의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서 겸손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구라도 완전히 주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편견과 아집, 독선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하나님 말씀과 그 분이 만드신 피조세계의 증거들을 함께 연구한다면 진리의 성령께서 바르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쁘게 대화할 수 있으며, 서로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론 오픈 포럼”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오픈 포럼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조과학자들에게도 오픈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라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적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초청합니다. 그래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서로의 의견을 겸손하게 개진하고, 논의함으로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선한 청지기로 구비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양승훈 원장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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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문제, 상담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8장 부부상담의 특수한 문제들(2)
부부상담에서 특수한 문제들은 대개 특수하게 다루어야 하고, 더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할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특수한 문제들은 대개 상담자에게 이해와 식견을 요구하는데, 때로 특수한 문제들은 단순히 심리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시각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특수한 문제들을 다룰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1. 이혼의 문제
부부 문제에서 이혼은 큰 문제로 대두된다. 이혼은 사회에서 증가일로에 있다. 이혼율은 일반적으로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에 이른다고들 알고 있다. 정확성에 다소 문제가 있다 해도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혼에 관한 상담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국가적으로는 이혼을 막으려 이혼숙려 제도를 법적으로 도입·실행하며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자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여 이혼 문제에 대하여 다음 몇 가지로 구분·기술할 수 있다.
1) 이혼의 실태와 현황
우리나라는 지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구조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크게 바꾸어 놓았고, 삶의 방식과 사회적 태도 및 행위도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한 면도 있지만,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이혼의 급증이다. 이혼은 가족해체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과 친족, 친구 관계에도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90년 399,312명이 혼인을 하고 45,694명이 이혼했다(이혼율 11%). 10년이 지난 2000년에는 334,030명이 혼인을 하고 119,982명이 이혼했다(이혼율 35%). 10년 사이 이혼율이 3배 이상 급등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전반에도 낮은 증가율을 보이던 이혼율은 1995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1998년에는 조이혼율이 2.5%, 혼인에 대한 이혼율이 31%로 급증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혼인율이 감소하고 이혼율은 증가 추세다. 이런 수치는 다른 통계청 자료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 비율은 19.0%, “가급적 해서는 안 된다”는 비율은 41.3%로 이혼 반대 입장은 60.3%에 머물고 있다. 반면 “경우에 따라 할 수 있다”는 응답이 29.1%, 이혼 찬성은 8.6%인데, “이유가 있으면 하는 것이 좋다”가 7.4%,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가 1.2%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이 이혼을 허용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혼에 대한 태도는 여러 변수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며, 이것이 이혼을 조장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농촌(반대 70.2%)보다는 도시 사람들(58.0%)이 이혼에 더 관대하고, 남자(63.7%)보다는 여자(57.0%)가 더 관대하다, 나이가 젊을수록 이혼에 반대하는 비율이 낮고(15-19세 42.6%, 20대 47.6%, 30대 57.2%, 40대 65.2%, 50대 71.1%, 60세 이상 81.0%), 교육 수준에 따라서는 '초졸 이하'에서 이혼을 반대하는 비율이 높다(초졸 이하 75.2%, 중졸 56.6%, 고졸 55.8%, 대졸 이상 56.3%). 결혼 상태에 따라서는 사별(77.8%), 유배우자(65.7%), 미혼(44.5%), 이혼(34.3%) 순으로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이혼율 증가에는 지역, 성, 나이, 교육수준, 결혼상태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젊은 층일수록(특히 10-20대), 그리고 미혼일수록 이혼에 더 관대하다는 사실은 앞으로 이들이 결혼한 후 더 쉽게 이혼할 수 있으며, 전체 이혼율은 더 증가할 가능성을 예측하게 한다.
최근 이혼율 변화추세에서 또 다른 특징은 연령대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균 이혼연령과 동거기간 및 15년 이상 동거부부의 이혼비율에 대한 통계청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자료에서는 1990-1991년을 기준으로 각각 평균이혼연령(세) 남자 36.8 40.0, 여자 32.7 36.4, 평균동거기간(년) 7.7 9.9, 15년 이상 동거부부의 이혼비율(%) 11.9 25.9 등으로 나타났다. 오래된 자료라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10년의 추세를 감안하면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 이혼의 원인
이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 원인이나 사유를 관찰하면, 이혼에 대한 사회의식 변화와 함께 심리적 변화도 알 수 있다. 상담은 현장에서 직면하지만,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객관적 자료를 참고해 상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이혼 사유 변화에 따르면, 2009년 이혼한 부부들이 꼽는 첫 번째 사유는 성격 차이였다. 부부 불화가 이혼에 차지하는 비율은 배우자의 부정(8.6%), 정신·육체적 학대(4.8%), 가족간 불화(14.4%), 성격 차이(44.7%)를 포함해 약 73%였다. 두 번째 사유는 경제 문제(13.6%)로, 이는 1991년(2%) 이래 눈에 띄는 증가 추세다. 나머지는 건강 문제(0.6%)와 기타(13.3%) 등이다. 이를 고려하여 우리는 이혼 사유를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외적 산업화의 영향
우리는 이혼의 외적 문제로 산업화로 인한 변화를 간과할 수 없다.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도시화를 수반하는 점에서다. 도시화란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을 말한다. 농림어업이 중심 산업구조일 때 대부분의 인구는 농어촌에 살았지만, 2·3차 산업이 발달하면 자연히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1960년 전체 인구의 28.0%에 불과했던 도시 인구가, 35년 후인 1995년 78.5%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이농 인구의 중심은 젊은 층으로,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혹은 2·3차 산업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대거 이동했다. 우리는 앞)에서 도시 사람들, 젊은 층, 미혼자, 그리고 교육받은 층이 이혼 문제에 보다 개방적인 태도가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도시 인구의 증가는 이혼 같은 가족해체를 촉진할 근본 요인이 되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 따라 사람들의 일과 역할은 매우 복잡해졌고(사회분화), 그 내용도 전문적이 되었다(전문화). 사람들의 가치와 이념은 매우 다양해졌고(다원화), 의식구조도 매우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변동은 가족의 구조와 기능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이혼율 증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
산업화는 가족의 구조와 기능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게 만들었다. 우선 가족 구조의 변화를 보면, 1975년에서 1995년 사이 평균 가구원 수는 5.0명에서 3.3명으로 감소했다. 이는 자녀 수 감소, 핵가족 증가, 독신자 증가 등에 기인한다. 부부 중심의 1세대 가족은 1970년 6.8%에서 1995년 14.7%로, 부부와 자녀 중심의 2세대 가족은 같은 기간 70.0%에서 73.7%로 각각 증가한 반면, 3세대 가족은 22.1%에서 11.4%로 감소했다. 이 결과는 이혼 문제에 있어 남을 의식할 필요가 그만큼 줄었고, 이혼시 자녀에 대한 부담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원래 가족의 기능으로는 성(性)의 통제 기능, 재생산 기능, 사회화 기능, 애정의 기능, 지위 규정의 기능, 보호의 기능, 경제적 기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변동의 결과로 가족은 경제적 기능에 있어 생산보다는 소비의 단위가 되었고, 혼전 및 혼외 성관계가 늘면서 가족의 성적 규제 기능이 약화되었다. 재생산 기능도 출산율 저하와 독신자 증가로 약화되었고, 사회화 기능도 전문 교육기관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약화되었다. 핵가족화,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자유적 가치관에 힘입어 애정적 기능은 강화되고 있으나, 대신 애정이 식어버리면 가족을 지속시킬 근거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지위 기능은 가족 구성원의 역할과 지위가 바뀌면서 약화되고 있고, 보호기능도 복지제도의 발달에 힘입어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가족은 더 이상 가족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결속시키는 절대적 사회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다.
가족 구조와 기능상 변화는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가져왔다. 즉 가족생활에서도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부부관계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관계에서 부부중심의 평등한 관계로 변화됐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이며 개성적인 가치관이 가족관계에서 강화되고 있다. 과거의 가족은 남편 가문에 여자가 시집 와서 애정이 없어도 일생을 함께 하는 ‘제도적 성격’이 강했으나, 오늘날 가족은 남녀가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만나 결혼해서 살지만 성격이 맞지 않거나 애정에 금이 갔을 때 미련 없이 헤어지는 ‘우애적(友愛的)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이 같은 가족 가치관의 변화도 이혼율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3) 개인의 삶의 질 변화
이혼의 폭발적인 증가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혼 사유는 고부갈등 등 부부관계 이외의 문제가 가장 컸으나, 최근에는 부부관계 자체가 주된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1994 사법연감에 따르면 이혼 사유로 배우자의 부정행위(44.9%)가 으뜸이었고, 부당한 대우(19%), 악의적 유기(17.4%)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젊은 부부일수록 성격 차이가 배우자의 부정을 앞지르고 있다. 이는 이혼이 심각한 생활상 문제라기보다는 부부의 심리적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랜 경험을 가진 곽배희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장은 최근 이혼 사유 변화에 대해 과거 상대방의 폭력이나 외도나 경제적 무능 등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이혼이 많았다면, 요즘은 보다 나은 생활이나 행복을 찾아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향이 기성세대보다 신세대층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통계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혼 사유가 사회 여건이나 환경에서, 점차 개인 심리 차원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렵게 살던 1960년대와 경제부흥을 이룬 후의 여러 복합적 문제가 작용한 부분이다. 그러나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부부 모두 생활환경보다는 삶의 질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이혼이 실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이혼 사유이면서 동시에 상담의 초점을 명확하게 하는 측면이다. 바로 인간 또는 부부는 생활에서 개인의 욕구, 즉 심리적 충족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3) 이혼에 대한 상담적 대응
이혼에 대한 상담적 대응은 이혼하려는 심리 상태와 상황, 그리고 이혼 전개 상태 등을 감안해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이혼을 결정하는 심리적 단계와 진행되는 것, 그리고 그 이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이혼이 한 순간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여러 원인과 단계가 있어 그것을 구분하여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1) 이혼 전 상담
이혼 전 상담은 결혼생활의 위기에 처한 부부의 상담에서 시작하여 이혼 직전 상황에 이뤄지는 위기상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주로 이혼을 고려중인 부부와의 상담이다.
이런 과정에서 상담자는 문제가 건설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잠재 대처능력을 발휘시킴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결혼관계를 유지해야 되느냐? 아니면 포기해야 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위기에 처한 자신의 본질적 성격과 특수한 환경이 일치할 수 있는 의미 있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혼 전 상담에서 내담자의 요구에 대한 상담자의 역할은 결혼생활 위기에 처한 부부에게 나타나는 근본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여 결혼을 구제하도록 돕는 과정과, 오히려 형식적 결혼관계로 상대방 인격에 파탄을 계속 가져오는 경우 차라리 이혼을 돕는 과정을 병행하여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상당히 조심스러운데, 인격과 인격의 재결합이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되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라도 이혼에 앞장서야 될 위치에 놓여 있는 점에서다. 이런 경는 결혼의 관계회복이든 해소이든 서로에 대한 파괴적 영향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차후 더 건설적인 인간관계를 준비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찰하고 평가할 것인가? 위기에 처한 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물론 내담자 개인의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심리적 요인에 맞추어 상담을 전개해야 하지만, 대체로 이혼 전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감정 처리보다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원인을 찾아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때 상담자가 이혼 전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를 돕기 위해 관찰하고 평가해야 할 내용은, 먼저 이혼하려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상담자는 이혼이 일시적·감정적 결단인지, 아니면 치유할 수 없는 문제의 결과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혼 감정 속에 부부간 사랑이 남아 있는지도 살펴보고, 회복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이혼이 가져오는 여러 책임에 대해 알려주고 이혼이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2) 이혼 진행 중의 상담
이혼 진행 중의 삼당은 이혼을 결심하고 법률적 관계 해소를 모색하는 과정에 있는 부부를 대상으로 한 상담이다. 이혼하려는 부부는 협의 혹은 재판상 이혼을 통해 법적 절차를 밟을지 모르며, 그 과정에서 상담이 필요하거나 상담을 통해 그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인식할 수도 있다.
이혼 전 상담에서는 대체로 문제의 원인을 밝혀 결혼관계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와 이혼을 굳게 결심한 부부의 경우 이혼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상담자에게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과 조언이 있어도, 자발적 협력과 수용이 없을 때 상담자는 법적 이혼절차를 이미 밟고 있는 그들을 돕기 위해 차라리 다음 단계의 상담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혼 진행 중 상담은 이혼하려는 당사자들이 각자의 권리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법률상담소를 찾거나 재산이나 자녀들의 양육문제를 토의하며, 법적 절차를 알아볼 만큼 재결합이 희박한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조절이 가능한 부부갈등에서 의사소통이 교착된 심각한 갈등단계로 넘어간 상태를 인식한 상담자는, 당사자들이 가정법원을 찾기 전 일시적인 별거 형태를 취하게 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재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이혼 후 바로 찾아올 정서 불안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부부로 하여금 일정기간 동안 별거를 시도하는 시험별거는 상호동의나 어느 일방에 의해 이루어지며, 서로 사랑을 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별거를 거부하고 결혼생활을 청산하려 할 때 이혼 과정을 도우며 이혼 직후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내담자 스스로 인식하고 대처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비록 내담자가 내린 선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담자는 내담자가 이혼 후 상담까지 계속해야 할 것이다.
(3) 이혼 후의 상담
이혼 후 상담내용은 당사자의 육체적·정신적 문제, 자녀문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혼 전보다 이혼 후 상담 내용의 복잡성을 뒷받침한다. 이런 경우 대개 이혼 당사자들에게는 자신의 문제만 복잡할 뿐 아니라, 자녀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인간관계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물론 이혼은 불행한 결혼의 굴레에서 해방을 주지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이혼 후 당사자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이혼 외상(Divorce Trauma)으로, 이혼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이다. 이는 이혼 소송이 제기될 때부터 별거 기간, 그리고 이혼 때까지 계속된다. 구드(William J. Goode)에 의하면 충격이나 불안은 별거 순간 가장 심각하며, 이혼 서류를 작성할 때 담담한 표정을 짓게 되고, 이혼 판결이 내려질 때 그 감정은 사라진다.
그러나 이혼외상에는 제각기 문화적 차이가 있으며, 어떤 형태의 별거나 이혼하려는 사건들에 따라 달라지고, 이혼 후에도 오랫동안 잠재적으로 뒤따를 수 있는 고통이다. 상처가 안으로 곪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안으로 생기는 상처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고, 말한다 해도 거북스러운 이 이혼 후유증은 계속해서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할 감정적 반응들을 포함한다.
4) 이혼상담 사례에 대한 분석
내담자는 서른 한 살의 ‘박’이라 불리는 여인이다. 그녀는 결혼 5년만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이혼 원인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는 서구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동양에서 뿌리 깊게 내려온 전통적 문제이다. 조상제사를 지내는 장손 집안에 들어가 자손을 기다리는 가시방석에 스스로 앉아있는 고통보다, 차라리 이혼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었다. 이혼 후 그녀는 갈 곳이 거의 없었다. 아직 전통의 규범에서 크게 개혁되지 않은 거리를 활보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 여인은 결국 두문불출(杜門不出), 한마디 말할 상대도 없이 두 달간 벽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그녀의 심리를 우리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절망적 감정이 억누른다. 그녀에게 이혼 후 찾아오는 첫 감정은 절망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혼이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실로 그녀에게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결혼을 통한 행복이 무너져 내려, 잃어버린 감정만이 뒤덮인 절망감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이혼한 대부분 사람들이 겪는다. 이런 절망감이 때로는 이혼에 대한 후회로 이어지기도 한다.
둘째로 그녀에게 적개심이 작용하는 문제이다. 이혼 경험은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혼란된 감정을 유발시키고, 사랑의 능력을 감소시킨다. 이런 경우에 이혼 당사자는 자신의 잘못보다 상대방의 잘못이 더 크게 보인다. 이로 인해 충동적인 노여움이 우정을 유지하려는 인간관계를 깨뜨릴 수 있고, 반감이나 적대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
셋째로 죄의식 문제이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는 다른 차원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이런 경우 적개심 때와 달리, 자신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면서 발생한다. 결혼관계를 계속 유지시키지 못하고 파탄을 일으킨 원인을 자신으로만 돌려, 깊은 죄의식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이혼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지만, 거기에 매달려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박’ 여인은 사실상 깊은 죄의식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우 그녀에게는 이혼 전 사건들이나 시부모에 대한 반감 등에 대한 죄의식이 나타나고, ‘조금만 인내했더라면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꼬리를 물고 자신을 짓누름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차가운 시선도 견디기 힘든 부차 요건이다.
넷째로 이상을 일으키는 신체적 문제이다. 규칙적이지 못한 식사와 자기학대는 몸무게 감소나 비정상적 증가를 일으키고, 신경성으로 몸의 각 기관에 이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호흡이 곤란하고 위장 속에 구역질나는 듯한 허약체질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정신의 상태가 와해된 일시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화되는 경우 다른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더욱이 이혼 전 결혼생활에서 즐기던 성생활을 하지 못하는 문제도 육체적으로 나타났다.
다섯째로 사회적 관계의 변화이다. 친척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identity)에 대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개 이혼 전 아내나 남편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관계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자신의 정체위기를 경험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정체위기의 문제는 이혼 후 나타나는 변화 중 가장 크다. 그 변화는 물론 주변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변화한다. 이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속에서는 스스로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여섯째로 자녀에게 일어나는 변화이다.이혼으로 인해 가족이 흩어지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고통받는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쪽을 선택하거나 따라가는 일부터 시작해, 편부·편모 밑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는 비록 매일 같이 가정불화를 일으키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약하다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위 여섯 가지 반응 외에도, 경제적 문제와 같은 실제 눈앞에 닥치는 문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불안한 심정으로 생활을 해 나가게 됐다. 이런 현상은 당사자들 간의 개인적 차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5) 이혼상담 사례에 대한 상담적 대응
이 사례에서 상담자는 이혼 후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반응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내담자가 긍정적 반응을 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상담자는 그녀에게 절망에서 희망을, 적대적 감정에서 사랑을, 죄의식에서 해방을, 자기학대나 자폐에서 자기 정체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상담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이혼 후 상담에서 상담자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다. 이 사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상담적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로 심리적으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상담자는 이혼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우정과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혼은 믿고 의지하던 배우자와의 결별에서 비롯되고, 그 결별은 절망을 낳는다. 인간은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 절망을 느낀다. 바로 이때 그녀에게는 같은 입장에 서서 말해주는 친구가 필요하며, 그 친구가 상담자가 될 수 있다.
둘째로 자신이 책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녀가 문제를 상대방에게 돌리는 것은 순간적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양상이다. 그것은 근본적 해결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이런 점에서 적대적 감정을 가진 그녀에게, 자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상담자가 해야 될 역할 중 하나이다. 부부가 헤어진 후 각각 상대방을 전적으로 어느 한쪽이 잘못이라고 적개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정서나 자녀들의 정서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을 풀어놓게 하는 일은 좋지만, 아울러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자신의 책임이 전혀 없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일깨워야 한다. 그렇다고 별다른 잘못이 없는 경우를 억지로 잘못이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셋째로 정신적 고통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그녀는 지금 죄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해방을 주기 위해 상담자는 불필요한 정신적 고통을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에서 ‘박’ 여인은 아이를 낳지 못한 죄의식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통으로 제거돼야 마땅하다. 이런 경우 이혼한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의식을 갖는 편이다. 문제의 원인에 책임을 느끼고 자숙하는 일은 좋으나,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일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정신적 고통이다.
넷째로 새 출발을 유도해야 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처지이다. 자꾸 이혼 사실에 얽매여 한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다. 이미 일은 일어났고, 삶을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상담자는 그녀가 자기학대나 자폐증에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녀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두문불출하여 외부와의 단절상태로 자신을 더욱 학대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혼한 당사들은 이혼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숨기려 할 때 인간관계가 움츠러든다.
이런 점을 감안해 상담자는 용기 있게 개방적으로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한다. 그 일환으로 상담자는 그녀에게 자꾸만 폐쇄적이 되는 자세를 버리고, 자기개방을 할 수 있는 동질의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담자는 그녀가 자기 정체감을 가짐으로써,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인간관계들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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