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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 눅19:1-10
2005-10-14 14:02:04   read : 51358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눅19:1-10)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을 찾는 일이다. 잃어버린 인간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으실 때부터 인간을 찾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본문 10절에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셨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신데,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을 ‘인자’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성령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셨다.

1.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자로, 사람의 몸으로 오셔야 했나요?

(1)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셔야,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은 오직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께서 죄 지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 주신다면, 하나님 자신이 먼저 모순에 빠지게 되므로, 하나님은 속죄의 방법을 성경에 기록하셨다. 레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으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였다.

아무 흠 없는 짐승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피 흘리고 죽으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죄를 지을 때마다, 흠 없는 짐승이 죽어야만 했다. 짐승을 제단 위에서 죽인지 한 시간도 안돼서, 또다시 죄를 짓게 되기에, 다시 양을 죽여야만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의 피로, 영원히 그들의 죄를 다 용서할 수 있는 피를 찾으셨다.
정말 이렇게 기막힌 피가, 천하에 어디 있는가? 피라고 무조건 다 받아들일 수 없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혈액형이 같아야 하고, 또한 아무리 피가 귀해도, 에이즈에 걸린 피를 받을 사람은 없다.

이처럼 죄 없는 깨끗한 피이어야 하는데, 모든 인간은 죄를 범했기에, 깨끗지 못한 피다.
죄가 없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죽을 수 없기에,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셨다. 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셨다. 장차 여인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치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창3:15).

이를 ‘원복음’이라 하는데,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는 상하게 되었다. 마귀는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뿐이었다. 인간이 타락한 다음, 성경에 약속한 말씀하신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다.

막14:24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 ‘언약의 피’라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면, “그 피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주마.”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다.
(3) 죄인을 사랑함을 눈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롬5장)
하나님께서 아무리 죄인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 주셨다. 사랑한다는 말씀이 믿어지나요.

어떤 박사님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는 교회까지 차를 태워다 주었지만, 자신은 결코 교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추운 크리스마스에 집에 돌아와, 벽난로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봤더니, 추위에 얼어 죽게 된 새가 창문 쪽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래서 문을 열어 주고, 새를 향하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새야 문을 열어놨으니 들어와!’라고 했는데, 새는 어떻게 된 일인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얼어 죽게 된 새를 어떻게 해야 자기 집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새가 되어서 말을 해주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 그는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저 높은 곳에서,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하셔도, 이 땅에 속한 인간들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그 사랑을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인자로, 육체로 오셔야만 한 사건이다.

2. 예수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자에게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자인가요? 잃어버린 자는 헬라어로 아폴뤼미(ἀπόλλυμι)인데 그 뜻은, ‘멸망하다, 죽다, 상실하다, 사라지다, 잃어버리다’를 의미한다.

즉, 마귀에 의해 소망 없이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멸망당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였다. 삭개오(וֹי󰗐󰕿)는 청결한 자, 깨끗한 자라는 의미지만, 그 이름대로 살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삭개오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저가 죄인들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댔다.

부모님께서는 청결한 자로 살기를 원했지만, 이름값을 못하였다. 남을 속이는 자가 되었다. 토색은 속였다는 뜻이다. 남을 속이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이 그를 욕했다. 또한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다. 세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힘이 있다. 지금도 국세청에서 감사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벌벌 떤다.

그런데 그는 세리장이었다. 세리만 되도 큰소리를 치는데, 세리장이다. 권력이 있었다. 삭개오는 부자였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공허했다. 물질과 권력이 그에게 행복을 줄 줄 알았지만, 참된 행복을 주지 못했다. 더욱 물질을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못해서 더 괴로웠다.

그 당시에 세금을 걷는 것은, 로마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세리들은 로마에서, 할당해 준 세금에 과세를 해서 돈을 착취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세리를 창녀 같이 죄인 취급을 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괴로웠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것이 괴로웠다. 그의 양심이 그를 고발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정죄하는 눈빛을 대할 때마다 괴로웠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그 약점은 열등의식으로 나타났다.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쉬지 않고 일한다.

사명 때문에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 출세에 집착하고, 물질에 집착하고, 권력에 집착하게 된다. 물론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열등의식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괴롭혀,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된 만족과 행복을 주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고통 중에 살던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사렛 예수!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그 순간 불치병이 치료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일곱 귀신이 의해서 삶을 낭비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그녀를 묶고 있던 귀신의 억압과 사슬이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길 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친 그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갔다. 예수님은 그의 모습을 보시고,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만나주시고, 자신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자는, 아직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믿다가 낙심한 사람, 세상일에 빠져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우리는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는 잃어버린 나를 찾고, 또 잃어버린 자를 찾아, 그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한다.

(2) 예수님을 잃어버린 자를 찾으신다.
우리는 소중한 것일수록 애착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존귀한 자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길을 잃게 되었다.

비록 잃어버린 자가 되어,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치를 알고 계시기에 찾으신다. 사랑하기에 찾으신다. 사랑의 출발점은 관심이다. 사랑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찾는다. 하나님은 그냥 앉아만 계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시는 분이다.

(3)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난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보려고 할 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만약
‘사람들이 많아서 보지 못하겠네, 에이 모르겠다, 돌아가자’하고 포기했다면, 그는 끝이었다.

‘아휴, 오늘은 비가 오는데 뭐, 교회 가지 말지’하고 귀찮아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10년을 그렇게 허송세월 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도, “교회가 멀고, 또 목사가 생긴 게 뭐 그래?”하면서, 이런 저런 핑계대고,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삭개오는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간절함 때문에,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누군가를 보기 위해, 자동차 위로 올라가 본 일이 있나요? 체면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렇게 하자,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삭개오는 친구도 이웃도 없었다. 돈만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기에, 얼마나 고독한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교제를 나누면서,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하였다.

주님을 만남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교회는 만남의 공동체다.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 성도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옆에 사람과 인사를 어색해 하지 말라. 이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본문도, 잃어버렸던 삭개오를 주님께서 만나주심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는 주님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세상은 잃은 자의 아픔과, 찾은 자의 즐거움이 쌍곡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재산을 잃은 고통,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고통, 배우자를 잃은 고통,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기를 잃은 고통이 가장 큰 아픔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였다. 간절히 찾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분들이 되기 바란다.
3.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려고하면, 협력자보다도 장애물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으려는 길에는, 사단의 장애물과 장벽이 많다. 삭개오는 어떤 장애물을 넘었나?

(1) 불의한 직업과 재물들
세리는 불의한 로마정부의 앞잡이로서, 당시 창녀와 함께 사회에서 정죄받는 직업이었다. 그 직업은 재물을 위해 양심도, 신앙도 버려야만 종사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해도 주님께 나와야 한다.

(2) 형식적인 신앙인들
키가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앞길을 가로 막았다. 그들은 삭개오처럼 진심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온 사람이 아니다. 마음 없이 몰려다니는 군중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허다한 잡족들이 섞여 있었다(출12:38).
교회 안에도 형식적으로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욕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3) 비정하고 성급한 판단들
뭇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렸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댔다(7). 예수님도 비판했다. 형식적인 신앙인들의 폐단이 바로 이것이다. 잘 알지 못하고 비판함으로 많은 사람이 상처받는다.

완전히 알아야만, 믿겠다는 사람이 있다. 물론 하나님은 한 사람이 구원받기에, 충분하고 넉넉한 지식을, 환경을 통해서 계시하고 계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해서, 완전히 다 알지 못한다. 우리는 머리가 아플 때, 아스피린을 먹는다.

그러나 아스피린의 의학적 성분이나, 과학적인 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아스피린에 관해서 다 알아야만, 이 약을 먹을 수 있는가? 의사와 약사의 권유에 의해 믿고 먹으면 된다.
아스피린은 두통에 참 좋은 약이는 믿음을 가지고 먹으면 족하다.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족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성경의 넉넉한 지식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 성경의, 기초적이며 근원적인 지식 앞에 “아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구원은 이루어진다.

교인 중에 너무 위선자가 많아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모든 의사가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여러 병원에서 각각 다르게 진단을 내리는 것을 보면,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는 오진 정도가 아니라, 돌팔이 의사도 끼어 있을 수가 있다.

그렇다고 여러 의사들을 다 불신하겠는가? 요즘같이 교통사고가 많은 때도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이 많은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자동차 무용론을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 많은 위선자들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결론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부르신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고 권하시며 부르신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셨을 때, 주님의 거룩한 명예를 나눠 주시면서 부르셨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께서 부르실 때 영접함으로, 이 은총을 함께 맛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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