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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길 / 해체위기에 직면한 농촌교회 2004-01-20 21:44:18 read : 31176
할머니~ 할아버지~
겨울 들녘 묵은 논 위로 주름 같은 시골길. 걷거니 뛰거니 아이들은 설렁거리고 손자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사립문을 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전남 여수=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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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가는 농촌교회 현실과 전망
한국의 농업농민들은 어디에 서 있는가? 또 한국의 농촌교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누구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국민과 목회자들은 농민들, 즉 ‘땅의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다 외국의 농축산물 수입개방과 정부의 농업홀대정책, 그리고 WTO의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인해 농업농민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됐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농촌교회는 벼랑끝으로 내몰려 해체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농촌교회들은 해외선교와 북한선교에 가려져 더욱더 피폐해져 가고 있으며, 이렇게 가다가는 농촌교회의 존립은 물론, 땅의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해체위기에 직면한 농촌교회
무엇보다도 외국농축산물 수입개방은 우리민족의 식량 자급률을 크게 떨어뜨리고, 나아가 농업농민들의 농업에 대한 의욕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무상제공과 외국의 농축산물이 마구 몰려오면서 우리의 입맛은 서구사람들의 입맛으로 변질되어 버렸으며, 우리농산물을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농업은 바로 우리국민의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을 홀대한 결과, 우리의 생명은 외국의 농민들에게 맡기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농민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외국농산물에 국민의 생명을 맡긴 오늘,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떠나버려 농촌사회는 고령화사회로 치닫고 있으며, 농촌에 위치한 교회들도 해체위기에 직면해, 경로당으로 변한지 이미 오래됐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선교에 뜻을 두고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농촌교회가 다시 소생하고,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생명의 선교정책을 구체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늘 농촌교회와 농업농민들은 외국농축산물에 떠밀려 벼랑 끝에 서 있다. 농민들의 아픔은 정부의 농업정책을 결정하는 관계자들과 도시교회 목회자들이 ‘농업이 곧 생명’이라는 철학을 잃어버리고 외국의 통상압력에 떠밀려 정책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촌교회들은 해외선교와 북한선교에 떠밀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실정이며, 이로인해 농촌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생존권과 목회비전을 위해서 도시교회로 떠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교회는 해체될 수 밖에 없으며, 농촌교회 목회자들도 도시교회로 가기 위한 ‘임시정거장’ 또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목회자의 말과 같이 대부분의 도시교회 목회자들은 농민들과 농촌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농촌교회와 기독농민들을 대변했던 ‘기독교농민회’ 마저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유명무실해 졌으며, 과거 그 존재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농촌선교를 외면하고, 기독교의 중심사상인 ‘인간사랑’, ‘생명사랑’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주목된다.
‘임시정거장’이 된 농촌교회
충청남도 서천군 B교회 이모목사의 사연은 오늘 농촌교회 목회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목사는 갑자기 병에 걸린 부인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다가 결국 부인과 이별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뒤늦게 이목사는 언론사와 이웃교회 동역자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부인을 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나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이목사는 입원 수개월만에 부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혼자 외롭게 농촌교회를 지키고 있다. 이목사의 안타까운 사연은 오늘 농촌교회 목회자의 현실을 대변해 주는 실례로, 도시교회 목회자들과 농촌선교 관계자들을 향한 호소의 내용을 담고 있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에게는 희망도 비전도 없다. 농촌을 지키는 ‘땅의 사람’들에게 사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는 그것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교회의 크기에 따라 목회자를 평가하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에서 도시교회 목회자들과 같이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생활형편이 어려운 농촌목회자들은 의료보험을 비롯한 연금, 자녀교육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들은 생활자체가 어려워 의료보험, 연금(은급제도)을 낼 형편도 못된다. 이것은 농촌목회자들이 도시교회의 목회자들과 같이 노후를 보장받지도 못한다는 것이며, 미래의 희망보다는 현재에 안주하면서 이름도 빛도 없이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교회에서 40년동안 강단을 지키다가 최근 은퇴한 한 목회자의 이야기는 도시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40년을 목회하다가 은퇴한 K목사는 마지막에 갈곳이 없이 정부로부터 영세민 카드를 얻어 양로원에 들어갔다. K목사는 생활이 어려워 교단이 실시하는 은급비를 내지 못해,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자식도 없어 노년을 보낼것이 막막한 상황에 있다. 교회도 어려워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교회에서 위로금으로 받은 2백만원이 전부다. K목사의 사정은 오늘 농촌교회 목회자의 미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농촌선교를 연구하는 목회자들은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마음놓고, 소신껏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일부교단서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농촌목회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또한 일부교단은 목회자들에게 ‘보험 들어주기’ 운동을 전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최저생계비만을 지원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농어촌 작은교회 목회자들은 목회에 대한 의욕을 상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교회로 떠나기 위한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교회가 계속해서 벼랑으로 내몰리면서 목회자 한 사람이 두 세 개교회를 함께 시무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를 합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무주군에 위치한 C교회와 D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병합했으며, 강원도 인제군 P교회 이모목사는 4㎞정도 떨어진 J교회를 함께 시무하고 있다. 이렇게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도시의 큰 교회들은 해외선교란 미명 하에 선교비를 물 쓰듯이 마구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뜻있는 목회자들은 해외선교비의 일부를 농촌 선교비로 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교회 예산의 상당 부분은 농촌선교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 P교회는 IMF한파 등으로 인해 교회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촌교회 지원 선교비와 해외 선교비를 10%이상 인상시켰으며, 강남 J교회도 전년도 비교 5만원씩 목회자생활비를 인상해, 농촌선교 지원에 대한 모델을 제시했다. 오늘 일부단체서 주장하는 ‘농촌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 농촌교회의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농촌교회 목회자들을 다시 한 번 울리는 행위이며, 농촌교회를 대상으로 한 ‘사기행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교회 목회자들은 교인들 중에 십일조를 농촌교회로 보내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헌금을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 주장을 내세우는 목회자들은 농촌교회의 희생 속에서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고 농촌교회를 위한 선교비를 책정, 농촌교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일부 단체들은 ‘농촌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농촌교회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형교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세미나도 참석자들 중 30% 이상이 농촌교회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도시 교회가 성장한 과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며, 강사들도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돼야
이런 세미나는 한 마디로 농촌교회 목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목회에 필요한 정보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 이 세미나에 참석, 은혜를 받고 있다. 한 농촌교회 목회자의 말이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도시교회가 주관하는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농촌교회를 한 번 살려보겠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세미나는 실망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계속 참석하는 것은 미래 도시교회에서 목회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교회들의 이런 세미나도 변화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 알맞은 목회비전을 제시하는 선교정책 중심의 세미나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농촌교회가 바로 서는 것이며, 농촌교회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농촌교회는 한국교회의 자원이며, 생명이다. 이를 모토로 한국교회는 농촌선교에 대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대부분은 농촌선교에 예산을 투자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이로 인해 농촌교회는 정치적인 상황과 함께 벼랑 끝으로 내몰렸으며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일부 뜻있는 교회와 농촌선교단체서 농촌교회 살리기 운동을 간헐적으로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갈때까지 간 농촌교회를 소생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농촌교회가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농촌교회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도시교회와 교단적인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단의 농촌선교 관계자들은 농촌교회가 소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물론, 목회자들의 생활까지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80년대 뜻있는 교회와 농촌선교단체 관계자들은 농촌교회와 농업농민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농산물먹기운동, 생명운동, 농사물직거래운동, 조직적인 농민회 활동 등을 통해 농업농민과 농촌교회에 희망을 주었다. 당시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을 벌인 교회와 단체들은 급진세력으로 오해를 받았으며, 정부의 탄압도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이 운동은 외국 농축산물에 떠밀려 ‘유야무야’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교회는 90년대 초 이전으로 돌아가 이 운동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바로 땅의 사람들과 농촌교회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며, 잃어버린 농촌교회 목회자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와함께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농업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땅의 사람들을 위한 선교정책을 세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시말해서 외국농산물에 의해서 자치를 감추어 버린 ‘토종’을 복원하는 일을 비롯한 생명운동, 건강한 먹거리 생산운동 등을 벌여, 땅의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토종’을 복원하는 것은 바로 민족의 자원을 찾아내는 것이며, ‘생명운동’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민족농업과 생명농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달상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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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교토에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중앙일보 고문인 필자가 지난 성탄절쯤에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에게 보낸 기도문의 전문이다. 지금 일본 교토에서 연구 생활 중에 있으며 저서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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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생 주가 급락 … 대기업 대리와 동급?
제33기 사법연수원생들이 2년간의 고된 연수생활을 마치고 1월16일 감격의 수료식을 한다. 그러나 적잖은 이들이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데다 그나마 구한 직장에서도 과거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아 침울한 표정이다.
“변호사란 ‘세무사’와 ‘변리사’까지 겸하는 폐쇄적인 자격증이기 때문에 취업난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실제로 초임 변호사는 몇 년간 선배들로부터 일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첫 직장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30대 초반의 한 연수원생은 “이제껏 20여 군데의 로펌, 정부기관 및 기업 법무팀에 원서를 제출했지만 취업을 확정하지 못했다”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동기생들은 모였다 하면 취업정보를 나누느라 분주하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들어 변호사들에 대한 처우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한 법무팀 관계자는 “재벌그룹에서 연수원 출신 변호사를 채용하는 경우 1980년대는 상무급, 90년대는 부장급으로 대우해주었으나 지금은 과장급보다 낮은 연봉 4000만원의 대리급으로 떨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법무법인 소속 한 중견 변호사는 “그나마 삼성그룹의 경우가 연봉 7500만원 안팎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연수원생들이 선호하는 첫 직장으로는 판ㆍ검사 임용이 첫손에 꼽히고, 이어 대형 로펌-대기업-중소 로펌 순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직장은 400여곳을 넘지 않는다는 게 연수원생들의 자체 분석이다. 당연히 판ㆍ검사로 임용되지 못한 연수원생들은 한정된 자리를 두고 피 튀기는 경쟁을 해야 한다. 최근 법무팀 충원을 위해 면접심사를 마친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경우 1~2명 선발 예정에 많게는 100여명의 지원자가 몰린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1명을 선발할 예정이었으나 45명이나 몰려 1명을 더 뽑을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절반 가까이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거나 지방에 내려가 개업하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여성 연수원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하다. 자신의 성적이 500등 정도라고 밝힌 한 여성 연수원생은 “어중간한 성적과 30살이 넘는 여성인 까닭에 여러 로펌과 기업에서 문전박대했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체는 여전히 젊은 남성들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밖에 외국어 실력과 회계실무 능력을 별도로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사시 합격생 1000명 시대이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당연히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변호사들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동안 변호사들의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이들을 채용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와 중소기업 및 각종 공익단체에서 변호사를 채용하려 하고 있고, KBS에서도 변호사 출신 기자를 선발할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고 연봉을 제시해온 대형 로펌들은 다른 걱정에 빠져 있다. 몇 년 전 로펌의 인기가 높을 때는 판ㆍ검사를 마다하고 로펌에 지원한 경우가 많았으나 갈수록 공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법무법인 ‘세종’의 채용담당 변호사는 “지난 한해 꾸준히 수백명의 지원서가 들어왔지만 300~400등 내외였다”고 아쉬워했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연말 성과급을 더해 세후 1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혜택을 받는 초임 변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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